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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왜 되는 일이 없지? 이게 다 콤플렉스 탓?

by 북드라망 2012. 12. 11.

괴로운 결과가 나올 때, 거기에는 분명 콤플렉스의 작동이 있다. 그러나 결과를 산출하는 더욱 중요한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다. 콤플렉스 작동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 때, 나는 단순한 매개자나 촉매제가 아니다. 콤플렉스라는 자연스러운 현실을 괴로움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수동적 상태에 있는 '나'다. 그리고 내가 이 상태를 고수하는 한 결코 인과는 끝나지 않는다. 인과를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나'이기에 인과를 끊는 열쇠 역시 '나'에게 있다.


—신근영,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98쪽


마음이 괴로운 상태일 때 흔히 상황 탓을 하게 된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라는 표현처럼 가만히 있는 '나'에게 '사건'이라는 외부의 상태가 나를 괴롭게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사건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나를 통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보자. 한 연인이 있다. 두 사람은 처음에 사이가 좋았지만, 헤어지게 되었다. 여성은 남자친구가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상태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별을 결심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화장품과 옷 등을 사들여 자신을 더욱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위의 단계를 반복한다.


내가 겪은 연애 패턴도 비슷했다. 만나고 사귀는 동안 상대의 마음이 변했을까 걱정했다. 그런 불안감이 찾아올 때마다 마음의 지옥에 입장해 스스로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곤 했다. 마음이 변한 상대 탓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불안함을 느꼈던 것일까? 처음에는 '원래 사람 마음은 변화무쌍한 거야, 그런데 상대방의 마음이 변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보내야 할 사람이라면, 마음을 너무 많이 주면 지는(?) 걸로 여기기도 했다.(이게 바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그런 마음일지도;;) 하지만 헤어지고 나서 외모를 가꾸는 데 몰두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남자가 변심했다고 여기는 그 상황에서 '외모 콤플렉스'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로가 왜 그렇게 구성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예뻐야 연애를 잘 한다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이 박혀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콤플렉스는 무조건 없어져야 하는 것일까? 콤플렉스를 완전히 제거하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융은 콤플렉스가 병적인 상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런 경험들 속에서 감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미지들이 생성되고 모여"드는 것이라고 보았다.


외모로 인한 '마음의 짐'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콤플렉스는 자신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경험에서 얻은 감정은 콤플렉스의 핵요소가 되고 그 주위에는 경험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이 배열된다. 이와 비슷한 경험들이 반복될수록, 핵요소는 더 강해지고 배열된 이미지들도 많아진다. 이런 식으로 핵요소의 힘이 세지면, 삶은 콤플렉스에 의해 이끌린다. (같은 책, 102~103쪽)


콤플렉스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각기 다르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콤플렉스 없이 살 수 없다! 헉! 그렇다면 콤플렉스를 어떡하지? 융은 콤플렉스를 먼저 '보라'고 한다. 한 발 떨어져서 그것을 관찰하고, 빠져나와야 한다. 그런데 콤플렉스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무엇이 나를 괴로움에 빠뜨렸는지 볼 수는 있지만, 다시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또다시 붙잡히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콤플렉스를 벗어나려면 어마어마한 마음가짐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융은 앎에 대해 다른 접근을 시도함으로써 이 문제 자체를 없애 버린다. 그는, 알고 난 후 빠져나올 수 있는 것으로 콤플렉스를 생각하지 않는다. 콤플렉스를 안다는 것은 콤플렉스를 다를 줄 아는 것이다. (…) 무엇인지 알고 나서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게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을 다루게 되는 만큼 무엇인지 알게 된다. 융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환자가 콤플렉스를 다룰 수 있도록 전이를 이용한다. (…) 환자들은 자신들의 콤플렉스에 대해 능동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고, 일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인과의 원인으로 콤플렉스가 작동하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같은 책, 101~102쪽)


앞에서 '외모 콤플렉스'를 내 안에서 발견한 적이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함께한다.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점이다.(Yeah! 경험치 상승!) 그런데 아직 마음 속에는 이러저러한 다른 콤플렉스들도 매듭을 이루고 있다. 어찌보면 콤플렉스는 내가 살면서 느껴온 감정의 매듭들로 이루어진 개인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묶인 매듭을 풀고, 또 새로운 매듭을 짓고… 무조건 부인하거나 없애버리기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잘 다룰 것인지, 능동성이 필요한 것은 이때문이 아닐까. 가벼운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삶을 걸어가는 것! 융의 말에 어쩐지 힘이 난다. ^^


융은 알게 된다. 이전에 자신이 보고 있던 개인적 콤플렉스는 사람들의 기질을 결정하는 강도가 센 형식들이었다. 요컨대,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별자리가 빛나고 있었고 이것이 그들 삶에 강하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 안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별자리가 있었다. 이것을 살려냄으로써, 환자들은 새로운 관계 형식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상과 관계맺는 방식도, 삶의 경로도 바뀔 수 있다. (같은 책, 105쪽)



나의 몸과 콤플렉스는 나의 삶이 만들어온 역사가 아닐까? 부정하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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