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마이콜이 아닙니다.
‘마이클’입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
내가 가장 사랑한 고전을 쉽고, 깊고, 유쾌하게 말하는
내가 사랑한 클래식, 당신이 사랑하게 될 클래식!
마이클 1: 오직 행(行)할 뿐, 왕양명의 『전습록』
‘유교’라는 말을 들으면 고루함, 당파 싸움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시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저 역시 그랬거든요. 그런데 유교를 줌인해서 살펴보면 다양한 학파가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일단 주자학, 성리학, 양명학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주자학은 중국과 조선 관료들의 필수 공부 코스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수능시험에 나오는 교과서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까요. 이 코스는 아주 오랫동안 영향력을 끼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자학에서는 ‘격물치지’가 중요합니다. 격물치지란 궁금한 게 있으면 끝까지 파고 들어가고 연구하면 알 수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요런 의미입니다. 아는 것이 행하는 것보다 먼저라고 볼 수 있죠. 양명학의 경우는, ‘행하는 만큼 아는 것’이라고 요약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 내 삶하고 무슨 상관이야? 맞습니다. 이 질문은 아주아주 중요합니다. 왕양명도 이런 질문을 했었지요.
지금의 나와 같은 조건과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면 성인들은 어떻게 했을까. 묘족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했을까. 각종 독사와 독초들에 관해 연구하고 방제 작업을 서둘렀을까. 자객을 막기 위해 집 주위에 방범 시설을 설치하고 개인적으로는 자객에 맞설 수 있는 신체단련을 했을까. 한순간에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 것인가. 어려울 때 성인에게서 삶의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유학의 공부라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문성환, 『전습록, 앎은 삶이다』, 48쪽
‘전습’(傳習)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익힌다는 의미입니다. 『전습록』은 왕양명이 제자들과 나눈 대화와 편지들이 모여 있는 양명학의 교과서 같은 책이랍니다. 『고전 톡톡』에는 에센스만 담겨있었는데요, 마이클 시리즈의 1권 『전습록, 앎은 삶이다』에서 왕양명과 『전습록』에 관해 쉽고 깊고 유쾌하게~ 만나보세요!
마이클 2: 결혼 대신 동거를! 국가 없는 세상을! 캉유웨이의 『대동서』
“결혼제도를 없애고 계약동거로! 국가를 없애고 하나의 세상으로!” 이런 주장을 무려 100년 전에 했던 사람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지금이야 동거가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지만, 무려 100년 전에 ‘동거’를 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유학의 근원지(!)인 중국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다니 당시 사람들은 헉, 하고 놀랐거나 혹은 못 들은 척 했을 것 같습니다. 하하;
어쨌거나 이 과격한 주장을 한 사람은 캉유웨이라는 사상가입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청나라 말기, 특히 서태후가 호령하던 시기이죠. 서구 열강들이 한참 청나라에 눈독을 들이고 괴롭히던 때입니다. 이때 캉유웨이는 청나라의 개혁안을 담은 상소를 올리며 광서제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가 진행했던 개혁안이 바로 ‘변법자강책’(變法自彊策)입니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익숙한 것은 윤리 교과서 덕분이겠지요. ^^;
캉유웨이가 밑도 끝도 없이 결혼을 없애자고 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그는 “인간의 정신이 맑지 못하고 지혜가 뛰어나지 못한 것이나, 근심으로 마음이 어둡고 게으르며 생각이 막힌 듯한 것은 그 모두가 ‘얽매임’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정 역시 이러한 ‘얽매임’ 중 하나이다. 아니, 가장 근본적인 얽매임이자, 가장 깨기 힘든 얽매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은 가정이 있어 즐거움을 누리지만, 또한 가정에 얽매이게 되므로 이에 괴로움에 이르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사사로운 경계에 얽매이다 보면 자기 자신, 보다 확대된다면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밖에 사고할 수 없게 된다.
─김태진, 『대동서,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65쪽
『고전 톡톡』에도 캉유웨이의 『대동서』의 에센스가 나와있습니다만, 이번 마이클 시리즈에서 좀더 찐~하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개혁적인, 너무나 개혁적인 캉유웨이!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개혁을 바란다면, 또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면 이 책은 좋은 스승이자 벗이 되어줄 것입니다.
마이클 3: 내 삶의 주인되기! 칼 구스타프 융
분석심리학의 거대한 산맥(!)인 칼 구스타프 융. 그의 이론은 시대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더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면 따로 마련되어 있는 심리학 코너에서도 융의 책을 쉽게 만날 수 있지요. 집단무의식, 아니마, 아니무스, 콤플렉스 등등… 그런데 사람들은 무슨 질문 때문에 융의 책을 읽는 것일까요?
우리는 대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보다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따져 보며 자란다. 초등학교 때부터 온갖 능력시험들이 난무하고, 취업을 위해서 스펙들을 긁어모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등 우리는 엄격한 검증작업들을 통과해 한 단계씩 사회로 나아간다. 이런 현실에서 노후의 삶이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최종증명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말 그것을 할 수 있는지, 아직 부족하지는 않은지를 계속해서 묻게 된다.
─신근영,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6~7쪽
저는 ‘긍정의 심리학’이 무섭습니다. “넌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금 니가 찌질한 건 노력을 좀 덜 해서야, 조금 더 노력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제가 너무 삐딱하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흠흠;;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버리면, ‘조금 앞에 있던 나’는 사라집니다. 그로인해 오는 엄청난 상실감, 좌절감 등등. 우리의 마음자리는 쉽게 지옥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문제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이 때문에 남탓, 세상탓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지함이 안정을 보장하지 않고 오히려 불안정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비록 두렵기는 하지만 우리를 위협하는 것을 아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올바른 문제제기는 이미 어떤 문제가 반쯤은 해결된 것을 뜻한다.” 그러니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문제들이 있다면, 그 아래 작동하고 있는 내 마음자리인 콤플렉스를 찾아보자. 그곳에 서 있는 나를 보는 것, 이것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앞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출발점이다.
─위의 책, 94~95쪽
심리학 책을 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풀리지 않는 마음의 문제, 그 매듭을 어떻게 잘라버려야 할까요?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탈출이 가능합니다. 또한 탈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미궁에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가 실을 건네 그의 탈출을 도왔다는 얘기, 혹시 들어보셨나요? 그런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융의 이야기는 우리가 마음의 미로를 덜 헤맬 수 있는 조력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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