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너무 극복하기 힘든, 마음의 장애

난 환자가 아니야



오늘은 제이가 장애인 인권강사 양성 아카데미 졸업하는 날이다. 기초 과정, 전문가 과정 해서 10개월 동안 했던 공부를 마무리하는 날. 제이로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시작하는 새로운 공부라 시작할 때 걱정이 앞섰다. 내가 과연 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제이는 학교 다닐 때 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에도 안 갔다. 책을 읽는 것이 제이에게는 힘들었다. 글자가 눈에 안 들어왔다. 마음 속에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으니 늘 자신의 아우성으로 멍멍한 귀에 남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책을 읽는 대신 제이는 침묵 속에서 고요한 숨결을 전하는 시를 쓰면서 자기 자신과 대화를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혼자서 하는 독백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제이에게는 친구가 필요했다. 내 말을 들어줄 친구. 장애인 인권강사 아카데미는 제이에게 친구를 찾아 나선 모험이었다.

하루종일 집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나 보면서 책이라곤 한 자도 안 읽는 네가 무슨 강사가 되겠다는 거냐. 더군다나 너는 언어 장애가 심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는 거냐. 장애인 인권강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제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제이는 울었다.

사실, 그런 생각은 제이도 들었다. 내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데 내가 강의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카데미의 선생님이 그건 문제가 안 된다고 하셨다. 여러분은 아나운서가 될 필요가 없어요. 전달은 누가 옆에서 도와주면 됩니다. 중요한 건 여러분 자신의 얘기를, 자기의 말로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의 문제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거예요. 선생님의 이 말씀에 힘을 얻어 제이는 열심히 공부했다. 휠체어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 못한 날 빼고 교육 과정 10개월 동안 제이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먼 길을 가서 수업을 들었다. 매주 과제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시간, 동료들 앞에서 직접 강의를 해보는 강의 실습도 훌륭하게 해냈다.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앞으로 제이는 틀림없이 훌륭한 강사가 될 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런데 정작 함께 사는 어머니는 제이의 가능성을 믿지 않다니. 제이는 그것이 슬펐다.



하지만 제이가 아카데미에 공부하러 가는 날 아침마다 일찍부터 일어나 제이의 옷을 챙겨주고 정성껏 머리를 빗겨주시는 분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그동안 제이를 위해 얼마나 노력해 오셨는지 제이는 잘 알고 있다. 제이를 어떻게든 치료해 보려고 안 가 본 병원이 없다. 물리 치료, 작업 치료, 언어 치료 등등 해서 온갖 치료를 다 받았다. 기도원에 들어가 2년 동안 살면서 기도 치료도 했다. 이때 어머니는 40일 금식 기도를 했는데… 이 기도의 효험인지 정말, 그 전까지는 제이의 표현에 따르자면 팔다리가 ‘문어발처럼 흐느적’거리던 제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제이는 몸을 반듯하게 가눌 수 있게 되었고, 버팀대를 붙잡으면 몇 걸음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기적의 힘을 믿는 어머니가 설마 제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 믿겠는가. 강사는 무슨, 이라고 하시지만 제이가 정말 강의를 나가게 되면 예쁜 핸드백을 사주겠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제이는 핸드백을 선물받기 위해서라도 꼭 강사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10개월 간의 교육 과정을 성실하게 마쳤다.

제이가 강의를 한 얘기를 해야겠다. 직접 현장에 나가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강의를 한 것은 아니고, 마지막 수업 시간에 그동안 배운 것을 총 마무리하는 뜻으로 친구들 앞에서 강의 실습을 해보는 것이다.

제이는 “난 환자가 아니야”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전에 우리는 어떤 식당에 함께 갔는데, 이 식당 주인 아줌마가 나보고 “아이구 좋은 일 하시네. 케어는 하루에 몇 시간 하시우?”라고 해서 발끈한 제이가 “케어 아니고 활동보조예요!”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제이는 “장애인과 환자는 다르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강의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Ice Breaking으로 ‘내가 좋아하는 말, 내가 싫어하는 말’이라는 놀이를 한다. 수강생들이 종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말 다섯 가지씩 적어서 발표하는 놀이. 수강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강의 내용에 집중하도록 하는 기획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장애인과 환자는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그런데 사람들은 이 둘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라는 내용을 차근차근 자신의 체험과 함께 설명한다. 그리고 마무리에서는 이 강의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대해 서로 느낌을 나눈다.

제이의 강의는 훌륭했다. 제이의 강의는 여러 가지 점에서 크게 칭찬을 받았다. 우선 자료 준비가 충실했다. 제이는 웹디자인 배운 기술을 활용해서 PT 자료를 만들었다. 배경 화면의 색깔도 직접 칠하고 캐릭터 도안도 직접 고안해서 정말 독특하면서도 충실한 강의 자료를 준비했다. 자신의 체험에 바탕한 얘기라서 강의 주제가 마음에 와닿았다. 강의 구성도 좋았다. 그리고 강사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강의가 아니라 놀이와 대화를 통해 서로 묻고 대답하는 참여형 강의라서 듣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다. 제이가 그렇게 강의를 잘 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 수업시간에 제이는 조용히 듣고만 있는 편이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가끔 말을 해도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강의를 할 때 보니까 제이는 자기 생각이 아주 분명하고, 그 생각을 성실한 과정을 거쳐 전달하며, 대화의 기술이 뛰어났다. 무엇보다 강의를 할 때 발음이 너무나 또박또박했다. 이 점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웠다. 어째서 평소에는 그토록 조그맣고 알아듣기 힘들던 제이의 목소리가 강의를 하니까 이렇게 분명하고 힘이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제이는 무대 체질인가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강의를 마친 제이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과 기특함에 박수가...!!!


제이의 강의에서 한 가지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강의 내용에 비해서 제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난 환자가 아니야. 이 제목에 맞는 강의가 되려면 장애인과 환자의 개념 차이를 전문적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제이의 강의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는 점. 장애인을 환자 취급하면 기분 나쁘다는 얘기를 하는 거니까 여기에 맞는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말” 정도가 알맞다. 전문적인 개념 차이를 설명하는 강의보다 우리의 평소 잘못된 인식을 친근하게 지적하는 데 강의 초점을 맞추는 게 좋겠다는 지적.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다른 점이다. 장애인을 환자 취급하면 왜 기분이 나쁠까. 왜냐하면 나는 홧병(좀더 전문적으로 말하면 ‘간기울결’) 환자이기 때문이다. 뭘 해도 나는 화가 난다. 기뻐도 화가 나고 슬퍼도 화가 나고… 뭘 해도 화가 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내 앞에서 “난 환자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제이한테 어쩐지 난 조금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제이에게 물었다.

- 환자 취급하면 왜 기분이 나빠?
- 환자는 병원에 누워 꼼짝도 못 하는 사람이잖아
- 장애인은?
-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움직일 수 있어

그렇구나… 지난 주 ‘해고사건’ 이후 나는 홧병이 도져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이야 습관적으로 하지만 마음이 끙 하고 드러누워서 꼼짝을 못 했다. 난 정말 환자가 맞나봐. 그깟 작은 실수에 불과한 일 때문에 일주일을 드러누워 있다니. 빨리 이 홧병이 나아야 할 텐데…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매사에 화를 낸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일에, 모든 사람들한테 화를 내면서 살아왔다. 그렇다면 나의 이 홧병은 병원에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그냥 내 존재의 조건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마음의 장애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착잡한 나에게 제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엄마한테 핸드백 사달라고 큰소리 쳐도 되겠지? 핸드백 새 거 사면 구두도 새 걸로 신어야 하지 않을까?”

부글부글… 나는 또 속에서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 강의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어. 10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아카데미 졸업한 걸 축하해. 정말 장하다. 앞으로 훌륭한 강사가 될 거야. 이렇게 말한다는 게… “강의 하는데 구두가 꼭 필요한 거야?”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구겨서 제이에게 쏘아붙이고 말았다.



-정경미(감이당 대중지성)


버럭, 하는 것이 습관인 당신! 혹시 당신은 무엇에 '마음의 장애'를 겪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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