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한 땐 말보다 행동!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대인배로 살기(1)
䷮ 澤水困(택수곤)
困, 亨, 貞, 大人吉, 无咎. 有言不信. 곤괘는 형통하고 올바를 수 있으니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初六, 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초육효, 밑둥만 있는 나무에 앉아 있으니 곤란하다.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서 3년이 지나도 볼 수 없다.
九二, 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亨祀, 征凶, 无咎.
구이효, 술과 밥에 곤궁하지만 붉은 무릎가리개를 한 구오의 군주가 올 것이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로우니 나아가면 흉하여서탓할 곳이 없다.
六三,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육삼효, 돌에 눌려서 곤란하고 가시풀에 찔리며 앉아 있다.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으니 흉하다.
九四, 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구사효, 천천히 내려감은 쇠수레에 막혀 곤란하기 때문이니, 부끄럽지만 끝맺음은 있을 것이다.
九五, 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구오효, 코를 베이고 발뒤꿈치를 잘리니 자주색 무릎가리개를 한 신하가 막혀 있지만, 서서히 기쁨이 있으리니 하늘과 땅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다.
上六, 困于葛藟, 于臲卼, 曰 動悔, 有悔, 征吉.
상육효, 칡덩굴과 높고 위태로운 자리에서 곤란을 겪으니, 움직일 때마다 후회하며 뉘우치면, 어떤 일을 하든 길하게 된다.
인력거꾼 김첨지는 오랜만에 운수가 좋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들이 연거푸 이어지더니, 최근 어떤 날보다도 많은 수입을 올렸다. 덕분에 오늘은 오랜 병치레 중이던 아내가 얼마 전부터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을 사가지고 귀가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너무 운이 좋았던 걸까. 돌아온 집에서 김첨지가 만난 건 이미 나무 등걸처럼 딱딱해진 아내의 싸늘한 시신과 엄마 잃은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운수 좋은 날>의 유명한 마지막 문장.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현진건, <운수좋은 날>, 1924).
운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건 뭘까. 돈을 많이 벌거나 사람이 죽는 일 같은 걸까. <주역>은 운수의 길흉을 점치는 책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주역>의 64괘는 사람이 살다 보면 겪거나 마주치게 되는 당연한 일들에 관한 ‘썰’의 집합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당연하고 사소해도 그것은 이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 어떤 때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살다 보면 혼돈의 때도 있고 기르고 배양해야 하는 때도 있으며 그런가 하면 곤경에 처하는 때도 있다는 것. 그러므로 크게 축적하는 때라고 해서 길한 것이 아니고, 위험과 곤경의 때라고 해서 흉한 것도 아니다.
혹은 <운수좋은 날>의 김첨지처럼 하루 안에도 보통 좋은 운수와 나쁜 운수는 종종 나란히 벌어지기도 한다. 대충 길이니 흉이니 하는 것들이 서로 무관한 무엇이 아니라며 달관한 척하려거나, 나쁜 때가 지나면 좋은 때가 온다거나 혹은 그 반대, 라는 식으로 두루뭉술 뭉개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반대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인생이란 결국 길과 흉 앞에서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으면서 나아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주역>에는 소위 ‘흉(凶)’하다고 소문난 네 개의 대표 흉괘들이 있다. 즉 그런 때[時]들이 있다. 수뢰둔(水雷屯), 중수감(重水坎;習坎), 수산건(水山蹇), 택수곤(澤水困). <주역>점을 치면 나올 확률이 대략 6.25퍼센트(4/64)인데,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확률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운이 좋든 나쁘든, 확률이 높든 낮든 언젠가는(또는 언제든) 우리에겐 그런 때가 닥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는 것. 좋은 일이라면 여러 번 반복돼도 상관없을테지만 나쁜 일이라면 그것이 일생에 한 번뿐이라고 해도 신경쓰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둔(屯/수뢰둔)괘는 혼돈에서 무엇인가가 시작되는 때의 어려움이다. 함부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勿用有攸往]. 처음 시작되는 것의 혼돈스러움은 혼자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 때는 함께 할 세력이, 제후와 같은 구심점이 필요하다[利建侯].
습감(習坎/중수감)괘는 잇단 위험의 때다. 위험하고 또 위험하다. 그래서 이름도 습감(거듭 위험함)이다. 습감의 때에는 진실된 믿음[有孚]이 있어야 하고, 오직 진실된 마음으로 형통할 수 있다[維心亨].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포인트 하나. 습감의 때에는 위험을 채우고 넘어가야한다. 아니 위험하고 위험할 뿐이기 때문에 나아가야 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고 나아가야 길이 열린다[行有尙].
건(蹇/수산건)괘의 위험함은 나아가고 물러남(진퇴)에 있다. 습감의 때와는 달리 건괘의 때에는 나아가면 위험하다[往蹇]. 그렇다고 무작정 때가 지나길 기다리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함부로 나아가는 것이 위험한 때이기에 더욱더 나아갈 때를 잘 알아차려야 하는 게 관건이다. 건의 때에는 곧고 바른 조력자 혹은 구원자가 필수적이다. 리견대인(利見大人).
그렇다면 곤(困/택수곤)의 때는 어떨까. 글자의 모양으로 보자면 곤(困)은 나무(목재, 유용함)가 울타리에 에워싸여 갇힌 모습이다. 즉 곤의 때는 난처하고 곤란한 상황이다. 힘을 다 써버린 상태여서 궁핍하고, 힘을 더 쓸 수 없는 상황이어서 고달프다[困者憊乏之義]. 하지만 곤의 때에도 형통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곧고 올바라야 한다[困亨貞]. 그리고 거기엔 대인(大人)이 필수적이다[大人吉]. 즉 곤의 때에는 대인이라야 길하다. 우선 이 부분이 대인에 의지하거나, 제후와 같은 구심점을 중심으로 길을 찾는 습감괘나 건괘와 다른 곤괘의 특징이다. 곤의 어려움은 스스로 대인이 되어야 헤쳐갈 수 있다는 뜻이다.
괘의 형상을 한 번 떠올려보자. 연못[澤] 아래 물[水]이 놓인 형국이다. 연못 안에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흘러 어딘가로 빠져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흐르는 것이 속성인 물이 연못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것일 수도 있다. 두 모습 모두 지혜(물)의 위기라고 본다면, 곤의 때에 대인으로서 헤쳐가야 한다는 말이 분명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곤의 때에 소인들은?(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한편 대인이 되라, 대인으로 대처하라는 말은 이 때가 말이 통하지 않는 때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아니 말만으로는 다른 이들의 믿음을 얻을 수 없는 때인 것이다[有言不信]. 말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다. 말이 가려지는 때이고 그 정도로는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는 때라는 뜻이다. 분명히 상황은 좋지 못하다. 쓸 힘이 없어서든, 혹은 힘이 있어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점에서든.
당연하겠지만, 그러므로 곤의 때엔 말만으로 그치지 않도록 혹은 말과 더불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 <대상전(大象傳)>에서는, 명을 다해 그 뜻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치명수지(致命遂志). 목숨을 걸고 뜻한 바를 이룬다는 뜻이다. 보통 이 대목은 자신의 한 몸을 죽여서라도 인을 완성한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다른 버전으로 이해한다. 요컨대 대인의 삶은 명을 다해서라도 뜻을 이루는 것에 방점이 있다. 뜻을 이룬다는 건 끝까지 굽히거나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뜻이지 일의 성공 여부를 말하는 게 아니다. (2편에서 계속)
글_문 성 환(글공방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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