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비(水地比), ‘나란히’ 서고 싶은 마음
䷇ 水地比(수지비)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 方來, 後, 夫凶. 비, 길, 원서, 원영정, 무구. 불녕, 방래, 후, 부, 흉.
비괘는 길하니 근원을 잘 살피되, 성숙한 지도력과 일관성, 그리고 도덕적인 확고함을 갖추었다면 허물이 없다. 편안하지 않아야 비로소 올 것이니, 뒤처진다면 강한 사내일지라도 흉하리라.
初六, 有孚比之, 无咎. 有孚盈缶, 終, 來有他吉. 초육, 유부비지, 무구. 유부영부, 종, 래유타길.
초육효,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도와야 허물이 없다. 내면의 믿음이 질그릇에 가득 차듯이 하면, 결국에는 뜻하지 않는 길함이 온다.
六二, 比之自內, 貞吉. 육이, 비지자내, 정길.
육이효,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돕기를 내면으로부터 함이니, 올바름을 지켜서 길하다.
六三, 比之匪人. 육삼, 비지비인.
육삼효, 인간 같지 않은 자와 가까이 지내며 돕는 것이다.
六四, 外比之, 貞, 吉. 육사, 외비지, 정, 길.
육사효, 밖으로 가까이 지내며 돕는 것이니, 바르게 행하여서 길하다.
九五,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구오, 현비, 왕용삼구, 실전금, 읍인불계, 길.
구오효, 가까이 지내며 돕는 것을 드러냄이다. 왕이 세 방향으로 몰아가면서 앞서 도망가는 짐승을 잡지 않으며 자신이 직접 다스리는 곳의 사람들에게만 약속하지 않으면 길하다.
上六, 比之无首, 凶. 상육, 비지무수, 흉.
상육효,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돕는데 처음부터 믿음이 없으니, 흉하다.
시작부터 난감 그 자체다. ‘코로나 19’의 기세가 도무지 꺾이질 않는다. 날이 갈수록 확진자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백신을 맞지 않고서는 근처 카페조차 갈 수 없을 정도로 방역 시스템은 계속해서 견고해지고 있다. 이제 마스크는 신체의 일부가 되어 버렸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될수록 ‘타자’와의 접촉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놈의(!) 팬데믹은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때! 내가 유독 이렇듯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유는 머잖아 <대중지성>의 개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지성>은 ‘감이당’을 대표하는 장기 프로그램이다. 해마다 2월, 입춘을 전후로 모든 감이당 대중지성 프로그램이 개강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요일 대중지성>(이후 <일성>)은 나에겐 조금 특별하다. 넓게 보면 나와 같은 직장인들이 일요일 하루를 공부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장이기도 하고, 좁게 보면 내 삶의 무게 중심을 공부라는 영역으로 기울게 해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지난 4년간 <일성>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내 삶에 여러 질문들을 던지며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일성> ‘매니저 활동’의 제의가 들어왔다. 이럴수가! 갑자기 매니저라니! 사실 그동안 <일성>에서 공부를 하면서 공부로 ‘밥벌이’를 하고 싶은 비전이 생기기 시작했고, 감이당 ‘멤버’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일까. 이전에는 결코 품지 않았던 질문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공동체란 무엇일까. <대중지성>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 걸까. 이번 매니저라는 활동을 통해 내 삶의 비전을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솔직히 당황스러웠기 보다는 설레임이 앞섰다.
그런데 이 기쁨 앞에 코로나라는 방해꾼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던 것이다. <대중지성>은 무엇보다 ‘대중’이 함께 모이고 접속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계속해서 대중의 접촉을 제한하고 있다.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이 상황 속에서 <일성>의 문을 무사히 열고, 또 닫을 수 있을까.
이 고민에 대해 『주역』의 8번째 괘(卦)인 수지비(水地比)괘가 가장 적합한 길을 열어줄 것 같다. 수지비괘의 모습은 상괘에는 감(坎)괘가 자리하고 있고, 하괘에는 곤(坤)괘가 자리하고 있다. 땅 위에 물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비(比)’괘를 정이천 선생님은 『서괘전』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군중들은 반드시 친밀하게 협력하므로 비괘로 받았다.” ‘비(比)’란 친밀하게 보좌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라는 부류는 반드시 서로 친밀하게 도움을 주고받은 다음에야 안정을 이룰 수가 있다.”(정이천, 『주역』, 글항아리, 217쪽) 수지비괘의 핵심은 군중들의 ‘협력’이다. <일성>을 만들어가는 군중이란, 학인과 강사, 그리고 매니저인 나를 포함하여 <일성>을 총 지휘하는 담임선생님까지를 말한다. 개강을 앞둔 지금, 우리(군중)들이 친밀하게 서로 협력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일성>을 무사히 열고 닫는데 가장 필요한 힘이라고 비(比)괘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개강 날이다. 사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오리엔테이션인 오늘 연구실이 매우 시끌시끌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원수 제한’으로 40명 가까이 되는 학인들이 전부 온라인으로 오티를 해야만 했다. 개강 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연구실이 고요했다. 거기다 컴퓨터 화면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낯설었고,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자기소개가 어색하기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학인들이 아직은 생소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공부와 삶의 비전을 너무나 즐겁게 나누는 것이 아닌가! 서로가 직접 마주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었지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오티에 참여하고, 이끌어 주어 <일성>의 첫 문을 무사히 열 수 있었다.
그렇게 개강 첫날은 무사히 마쳤지만, 앞으로 있을 강의며 에세이, 낭송, 렉처 등 매 학기에 진행되는 다양한 활동을 지금같이 ‘비대면’으로 해야만 하는 것일까. 다 같이 아웅다웅하며 공부했던 날들을 떠올리니 많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 누군가와의 만남이 이토록 그리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주말마다 바글바글했던 연구실의 풍경이 그립기만 했다. 거기다 혹여나 장기적인 온란인 수업으로 인해 학인들이 중도에 하차하거나, 또는 그 일로 <일성>이 폐강되지 는 않을까. 한편으로는 걱정과 불안감까지 들었다.
나는 수지비괘의 ‘육사효(六四爻)’에게 길을 묻는다. 사효의 자리는 백성과 군주를 ‘이어주는’ 신하다. 즉 위와 아래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나와 같은 처지라고 볼 수 있다. 육사효는 밖으로 가까이 지내며 돕는 것. 외비지(外比之)의 마음으로 비(比)의 때를 맞이 하고 있다. 외(外)란, 육사효 위에 있는 구오효(九五爻)로서 군주를 말한다. 정이천 선생님은 사효와 군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군주와 신하는 서로 친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이며, 서로 협력하고 서로 함께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자와 친밀하게 관계하고 윗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친밀한 협력의 올바른 도리이므로 올바르게 행해서 길하다.”(같은 책, 229쪽)
협력해야 하는 비(比)의 때에 육사효의 첫 번째 올바름은 ‘다가감’이다. 아래로는 학인에게 다가가고 위로는 <일성>의 ‘리더’인 담임 선생님에게 ‘순종(順從)’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여기에서 순종이란, 무작정 쫓아가 따르는 복종의 의미가 아니다. 리하르트 빌헬름에 따르면, 하괘에 자리하고 있는 ‘곤(坤)’괘의 순(順)한 덕은 양(陽)과 상보적인 힘으로써 양의 기운을 완성해주고, 굳센 올바름을 지탱해주는 토대다. 아직은 온라인으로 마주하는 것이 어렵고 낯선 학인들이 많았다. 그들이 오프라인에서도 원활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다가가는 것이 매니저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 일이 곧 매 학기마다 진행되는 다양한 활동을 모두가 빠짐없이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열어주는 길이고, 담임 선생님의 중요한 뜻이기도 했다. 구오의 리더십이 아래로 흘러갈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 이것이 비(比)의 때에 육사효가 구오효에 대한 올바른 행(行)이자 순종이다.
육사효의 두 번째 올바름은 ‘능동성’이다. 비괘의 육사효는 자리[位]가 바르다. 자리가 바르다는 것은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바로 그러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익혀야 할 낯선 일들이 많았다. 특히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장비들의 용법을 아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러자면 먼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정규직’인 나에게 주말 아침은 달콤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학기 내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감이당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온라인 수업을 할 때 장비를 제대로 셋팅하지 않으면 강사와 학인 모두가 곤란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코로나로 인해 접촉이 제한되는 어려운 상황. 내가 학인들 보다 한발 앞서 <일성>의 장을 마련하고픈 마음. 이 모든 능동성의 바탕에는 ‘나란히 서고 싶은 마음’[比]이 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장비들의 용법을 아는 것이 중요했는데, 그러자면 먼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내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장인 회사에서는 친밀한 다가감도, 적극적인 능동성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업무시간 이외에 단 5분도 내 몸과 시간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칼(!)같이 출근하고 퇴근을 한다. 이런 내 모습에 몇몇 상사들은 “일찍 오고, 늦게 퇴근하면 안되겠나?”라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나는 상사들에게 “그럼 월급 더 주나요?”라며, 맞받아 친다. 그렇다고 내 삶을 오로지 ‘화폐’로만 환산하는 것은 아니다. 매니저 활동비로 받은 100만 원은 회사 연봉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금액이지만, 이 돈은 단순히 노동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내 비전을 조금씩 확장 시킬 수 있도록 촉발해주는 공부의 힘이다.
매니저 활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에 ‘수평’적으로 나란히 서고자 함은 지금 나에게 일어난 마음의 때(時)다. 그동안 돈이 주는 쾌락은 외부적으로 화려했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웠다. 하지만 화폐가 움직이는 ‘수직’적인 장에서는 내 존재와 삶을 움직이는 힘이 늘 빈곤했고, 허무했다. 이 때문에 비(比)한 마음, 나란히 서고 싶은 것이 어떤 마음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지성>이라는 시공간에서 함께 모여 고전을 읽고 쓰며 조금은 어설프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나만의 언어를 뱉어내는 과정을 통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외비지(外比之)가 길할 수 있는 이유다. 왜냐하면 공부가 주는 그 역동성만이 이 때에 올바른 길이자, 군중들에게 나란히 서고자 하는 마음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글_고 영 주(글공방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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