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냄새, 땅 냄새
냄새 공동체
새벽이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고기 냄새’와 ‘새벽이 냄새’가 동시에 감각되어 혼란스러웠다, 고 지난 글에 적었다. 하지만 새벽이를 만날수록 새벽이 냄새는 n가지 냄새로 확산되었다. 식단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또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어떤 냄새라고 딱 구분 짓기 어려운 다양한 냄새를 풍겼다.
새벽이생추어리를 오가며 새벽이 이외의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촉할수록 새벽이 냄새와 새벽이 아닌 냄새는 마구 섞여서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익숙하고 공유된 냄새가 점차 우리 안에 스며들고, 흐르고, 쌓이는 것 같았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비인간 존재들은 서로의 신원을 냄새로 알아볼 수 있을까? 킁킁.. 저기 혹시?)
똥과 부식토학
새벽이생추어리의 냄새들 중에서 새벽이가 갓 배출한 응가 냄새는 꽤 강렬했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응가 냄새를 처음으로 맡았을 땐 숨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흐읍-) 근데 맡으면 맡을수록 우리의 관계가 점점 더 끈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맡다 보니 또 익숙해졌다. 사람 똥과 비교하면 구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숨을 참지 않았다. (후-하-, 후-하-)
새벽이는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조금 걷고 뛰다가 일정한 장소에 볼일을 본다. 인간이 똥과 오줌을 누려면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은밀한 장소, 수세식 변기), 사후에도 많은 에너지 자원을 소비하지만(휴지, 하수 처리), 새벽이는 신호가 오면 무심하게 응가 존(zone)으로 가서 똑바로 선 채로, 응가를 툭-툭- 떨어뜨린다. 새벽이가 볼일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가면 돌봄 활동가들은 큰 통과 집게를 들고 응가를 줍는다. 수거한 응가는 새벽이 집에서 조금 떨어진 퇴비간에 쏟아 붓고 톱밥을 섞어 퇴비화한다. 응가와 톱밥이 섞여 발효되는 퇴비간 냄새는 코를 톡 쏘지만 약간은 한약냄새 같기도 해서, 퇴비간에 입장하면 약방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약사도, 처방전도 없는 약방이지만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서 새벽이 똥으로 약을 조제할 수 있다면? 미생물 조제사를 통해 퇴비화된 새벽이 똥이 세상을 널리 비옥하게 한다면? 돌봄 활동이 인간의 '자기돌봄', 인간-비인간 사이의 '난잡한 돌봄', 더 나아가 복수의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지구돌봄'과도 맞닿는다면? 새벽이 똥의 잠재력을 여러 층위에서 상상하다 보니 퇴비를 물질-기호론적으로 사유하다가 '벌레가 득실대는 퇴비 더미'로 뛰어들었다는 해러웨이가 떠올랐다.
“나의 파트너인 러스틴 호그니스는 인문학humanities 대신에 부식토학humusities을, 포스트휴먼(휴머니즘) 대신에 퇴비compost를 제안했고, 나는 벌레가 득실대는 퇴비 더미 속으로 뛰어들었다. (...) 에코섹슈얼 아티스트인 베스 스티븐스Beth Stephens와 애니 스프링클Annie Sprinkle은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SF를 위해서 범퍼 스티커를 만들어주었다. “퇴비 만들기는 끝내줘요!” (<트러블과 함께하기>, 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가 언급한 부식토학, 퇴비 만들기는 다양한 인간-비인간 존재들의 얽힘과 공생을 강조하는 물질-기호론적 개념이다. 해러웨이의 부식토학은 이론적 수사만은 아니고 함께 살아내고 비옥한 토양을 발효시키는 다양한 실천들로 확장되고 연결된다.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활동가들은 매주 똥을 줍고 퇴비 더미를 밟으며 발효된 냄새를 몸에 묻힌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일지를 쓰며 그날의 똥을 다시 곱씹는다.
오늘 대변의 상태는? 음, 3군데 정도 알알이, 모양은 포도송이 같았고. 곡식이 묻어 있었던가? 비가 와서 좀 묽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냄새가 오늘 유난히 강했어!)
일상 속에서도 몸에 묻은 퇴비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활동가들은 동물권/기후 행진에 참여하고, 비건을 실천하고, 무언가를 읽고 쓰고, 그림을 그리고,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몸을 마구 흔들며 부식토 냄새를 밖으로 널리 퍼뜨린다. 새벽이생추어리의 돌봄 활동은 새벽이를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복수의 존재들(새벽이, 잔디를 포함한 비인간 동물들, 식물들, 새생이, 보듬이, 매생이, 연대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물질적이고(똥을 줍고, 퇴비를 만들는), 동시에 기호론적인(인간중심주의, 종차별주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퇴비 만들기'다. (돌봄 활동은 끝내줘요!)
후각 능력
근데 내가 새벽이 냄새를 맡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벽이가 내 냄새를 훨씬 더 잘 맡을 것이란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는데, 나의 심증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주는 연구 결과를 발견했다.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논문에는 후각수용체 유전자 수로 동물들의 후각 능력을 비교했는데 돼지의 후각수용체 유전자 수는 약 1300개, 개는 약 1100개, 그리고 인간은 약 400개였다고 한다. 유전자만 보면 돼지가 개보다도 냄새를 더 잘 맡는 것이다. 인간의 후각 능력은 포유동물 중 최하위였다. (이런 자료를 인용하면서도 동물 연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지에 대한 관심과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연구진의 인터뷰 내용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돼지의 장기와 조직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인간과 거의 비슷했다”, “돼지를 바이오 장기용 동물로 키울 길이 활짝 열렸다” 헐...?)
새벽이 집 울타리에 가까이 가면 새벽이는 걸걸걸 하면서 다가온다. 그럼 나는 구멍이 숭숭 뚫린 울타리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다댄다. 새벽이는 걸걸걸 소리를 내며 코를 울타리에 바짝 들이민다. 나는 아주 가까이서 새벽이 눈을 보고 새벽이의 길고 노오란 속눈썹을 관찰한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건낸다. 새벽아 안녕? 잘 잤어? 울타리 틈새로 볼록 나온 새벽이 코에 손등을 살짝 댈 때도 있고, 겨울엔 나의 입김이 새벽이 얼굴에 닿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새벽이는 걸걸걸 소리를 내고 코를 씰룩이면서 킁킁! 나의 신원과 안부를 확인한다. 어느 계절이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도 잘 지내는 새벽이와 달리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새벽이를 만나러 간다. 그럼에도 새벽이는 멀리서부터 익숙한 돌봄 활동가들을 잘 알아보고 낯선 사람들은 무척 경계한다.
돼지 코와 연결되기
도나 해러웨이는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피모아 크툴루Pimoa cthulhu라는 거미를 소개한다.
“나는 이 거미에게서 귀환, 그리고 뿌리와 경로 탐색에 도움을 받으려 한다. 이 다리 열덟 개를 촉수로 달고 있는 거미류의 절지동물은 유타주의 고슈트 부족 언어에서 속명을 얻었고, 땅속의 생물들, 즉 땅속의chthonic 것이라고 불리는 지하의 원소적 실체에게서 종명을 얻었다.”
“이 촉수 있는 것들은 육체를 벗어난 형상들이 아니다. 그것은 자포동물이고, 거미이고, 인간이나 너구리같이 손가락이 있는 존재이고, 오징어이고, 해파리이다. 신경회로의 화려한 쇼이고, 섬유 모양의 실체이고, 편모가 있는 존재자이고, 근원 섬유 다발이고, 엉키고 눌어붙은 미생물과 진균류의 얽힘이다. 더듬어 탐사하는 덩굴식물이고, 늘어나는 뿌리이고, 위로 뻗어 올라가는 덩굴손을 가진 것들이다. 또한 클라우드를 들락거리는 망이며 네트워크이고, IT 크리터들이다.”
해러웨이는 거미와 같이 촉수로 세계를 더듬어 탐사하는 동물들의 형상들을 살피고, 그들로부터 '촉수 사유'라고 부르는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기를 배운다. 촉수 사유는 땅과 긴밀한 지구거주자들과의 연결을 상상하고, 촉수적 연결은 '모든 것'과의 연결이 아니라 '어떤 것'과의 연결을 의미하며, ‘부착’과 ‘분리’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함께 '잘 살고 잘 죽기'를 고민한다. (최유미)
해러웨이의 개념을 빌리자면 새벽이의 코 역시 촉수적 사유를 촉발한다. 연구에 따르면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돼지만 갖고 있는 후각수용체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이것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돼지의 후각이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라고 한다. 새벽이는 식사 후에 돌아다니며 루팅(코로 땅을 파는 행동)을 하는 습성이 있다. 이전에는 그저 새벽이의 취미로만 생각했는데 돼지의 후각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중요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상상하니, 루팅은 새벽이가 땅과 교감하는 아주 특별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는 보들보들하면서도 강한 코로 굴삭기처럼 땅을 파헤치고, 흙 더미를 이리 저리 쓸며 탐색하고, 여름에는 진흙탕을 뒹굴며 온 몸으로 땅과 접촉한다. 새벽이는 땅의 세계와 긴밀하고 일상적으로 연결되어있다. 그 세계는, 땅을 상품 생산과 이윤을 위한 자원으로만 바라본다면 다가갈 수 없는 세계일 것이다. 새벽이의 촉수(코)는 땅에 대한 새로운 지각과 사유를 불러 일으키고, 새벽이의 코와 연결된 돌봄은 ‘퇴비 만들기’에 이어 ‘땅 살피기’로 이어질 것이다.
빼앗긴 땅
땅 주인의 사정으로 새벽이생추어리는 이사를 앞두고 있다. 운영 활동가 영인, 나현, 무모는 새벽이, 잔디와 함께 새로운 땅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전염병과 살처분의 위험을 피해서. "더는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미래에 더 많은 사람 포함 동물들이 모일 수 있는" 새집을 찾아서.
새벽이의 코가 땅과 안전하게 교감할 수 있는 땅을 찾아, 많은 이들이 촉수를 더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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