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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만나러 갑니다

[돼지 만나러 갑니다] ‘그 쪽’으로 가는 길

by 북드라망 2023. 8. 30.

‘그 쪽’으로 가는 길

 

새벽이생추어리에 가면 새벽이와 잔디 뿐만 아니라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과 접촉한다. 식사를 준비하며 고구마, 비트, 호박, 보리, 서리태, 시금치 등의 식재료를 손질하고, 물그릇에 미강을 넣고 손으로 휘휘 저어 섞어준다. 새벽이와 잔디의 분비물이 묻은 밥그릇과 물그릇을 설거지하다 보면 물이 옷에 튀고, 덩굴 잎을 채취하느라 잎 사이를 헤집다 보면 씨앗이 옷에 달라붙고, 진흙 위를 걷다 보면 흙탕물이 바지에 묻어 얼룩이 진다. 돌봄을 마치고 나면 내 몸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은밀한 존재들이 우글거리는 작은 아지트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귀가하는 길에 지하철에서 겪은 일이 떠올라 이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 더운 여름 날 돌봄활동을 하다 보면 많은 것들이 내 몸에 들러붙는다. 나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온갖 존재들과 긴밀해진다. 그 존재들이 땀샘을 통해 내 몸 밖으로 나온 노폐물과 섞이고 반응하면 특유의 냄새가 만들어진다. 돌봄 후 귀갓길 지하철에서 하차하려고 일어난 줄 알았던 내 옆자리 사람이, 나와 멀리 떨어진 좌석으로 이동(피신)해서 앉는 모습을 보았다. 혹시나 하고 땀으로 젖은 셔츠를 살짝 들어 코에 가져다 대었더니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때 나는 부끄러움보다는 어떤 사이-존재(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로서 새로운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고양되었다.

 

 

   

   

냄새들

새벽이를 만나기 전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새벽이와 새벽이생추어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벽이의 존재가 '앎'의 차원을 넘어 '감각적 사건'으로 깊이 각인된 순간은 새벽이를 직접 만나 새벽이 냄새를 맡았을 때였다. 작년 미학 세미나에서 발표한 에세이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새벽이를 처음 만진 날을 기억한다. 새벽이가 울타리 가까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손을 뻗어 새벽이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거친 털의 감촉이 느껴졌고 새벽이 피부와 내 손 사이에 무언가 오고 갔다. 새벽이 냄새가 내 손에 배었고 처음으로 살아 있는 돼지의 냄새를 맡았다. 익숙한 냄새(고기 냄새)와 낯선 냄새(새벽이 냄새)가 동시에 감각되어 혼란스러웠다. 

 

새벽이 냄새는 그저 냄새로만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억들을 불러왔다. 내 앞에서 걷고 뛰고, 내가 준 밥과 물을 먹고, 내 앞에서 오줌과 똥을 누는, 명백하게 살아 있는 새벽이 냄새는 익숙하게 맡아왔던 냄새(마트의 정육 코너와 식당에서, 냉장고에서, 프라이팬 위에서, 주방에서 풍겨오던)와 만나 극단적인 부조화를 이루었다. 냄새의 부조화는 내 안에서 즉시 해소되어 새로운 의미로 통합되는 대신, 조화되지 않은 채로 머물며 과거에 있었던 일을 환기하고 미래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딜레마들

몇 년 전에 마장동 축산물 시장 잡지에 '고기로 안 태어나서'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기고한 적이 있다. 축산물 시장 잡지에 채식을 고민하는 사람의 글이 실릴까 싶었지만, 충분히 래디컬하지 않아서인지 별 다른 말은 없었다. 공장식 축산 농장에 관한 르포 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를 읽고 채식을 고민하면서도 계속 고기를 먹게 되는 상황에 대한 글이었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은 후에도 나는 극적으로 달라지진 않았다. 그런데 고기를 볼 때마다 마음 한 켠에서(어쩌면 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건 아니지. 그래 이건 아닌데. 아무래도 아닌데.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릴수록 조금씩 변화가 있기도 했다. 채식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친구와 비건 식당에 가보며 채소와 과일의 세계에 조금씩 다가갔지만, 그러면서도 고기는 먹었다. (...) 채식을 지향하면서도 고기를 먹는 모순된 생활이 이어지는 중에도, 마음 한 켠의 목소리는 계속 들려오지 않을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중에도 무언가를 계속 읽고, 보게 되지 않을까. 비건을 선언한 김한민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변화가 더딘 건 고기로 '안' 태어났기 때문은 아닐까. 

 

작년 말에 파지사유에서 참여한 공생자 행성(생태적 삶을 고민하며 하나의 주제로 팀원들과 돌아가며 실천 일지를 남기는 프로젝트)의 주제는 '잡식가족의 딜레마'였다. 그땐 난 이미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밀양 농활에 가서 비건테이블에 같이 앉은 현민님과 나눈 대화를 계기로 '페스코비건'을 선언하였다.

 

얼마 전 청년들과 밀양으로 농활을 가서 감을 엄청 땄다. 점심으로 같이 카레를 만들어 먹었는데 고기를 넣은 카레와 넣지 않은 비건 카레로 준비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비건 카레 존(zone) 앞에 앉았다. 근데 옆에 앉은 현민님이 "저는 페스코 비건이에요." 라고 하길래, "오, 저도 페스코 비건이요! 11월 부터!!" 라고 말해버렸다. (...) 유연한 채식지향인이라는 이유로 잡식가족, 혹은 잡식사회 안에서 마주하는 딜레마를 비교적 쉽게 피해왔다. 고작 한달이지만 페스코 비건을 선언한 나는 앞으로 어떤 딜레마와 만나게 될까? 나는 냄새와 허기 앞에서, 잡식 가족과 잡식 사회의 딜레마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한 달 후에 나는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프로젝트 기간 중에는 이런 딜레마를 토로하였다.

 

사다리에서 미학 세미나가 있던 날. 우리(우현, 동은, 경덕)는 가는 길에 붕어빵을 사 먹었다. (음.. 붕어빵은 괜찮겠지.) 시간이 남아 근처 카페에서 세미나 책을 읽었다. 나는 이곡라떼를 마셨다. (음, 라떼에 들어가는 우유도 괜찮지.) 이후 머내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동은님이 여기 알밥 엄청 맛있다며 알밥을 시켰다. (음, 알은 괜찮지. ) 나도 알밥을 먹었다. (...) 돌아보니 자꾸 괜찮지, 괜찮지, 하고 있는데 아주 괜찮지는 않은 기분.. 설마 나, 페스코가 허용하는 동물성 식품(동물성 해산물, 유제품, 동물의 알)을 굳이, 애써, 어쩌면.. 집요하게 고르며 안도하고 있나? (흠..)

 

프로젝트 마지막 글에는 이런 고해성사를 덧붙였다.

 

페스코 선언 이후에 육식을 피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조직생활을 하지 않으니 회식 자리도 거의 없고, 어쩌다 같이 먹는 친구들도 채식지향적 삶에 공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가족과 가깝지만 분리된 생활을 하다 보니 메뉴 선택도 어렵지 않았다. 어쩌다 고기를 권하는 부모님의 호의도 자연스럽게 거절했다. 그럼에도 나는 페스코를 엄격하게 실천하지는 못했다. 부모님 집에서 엄마가 끓여 놓은 된장찌개를 퍼서 먹다가 다진 소고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누가 덜어준 라면과 라면 국물을 먹기도 했다. 대놓고 먹지는 않았지만 슬쩍 곁들여 있는 작은 고기는 망설이다 삼키기도 했다.

 

 

페스코들

 

어느 날에는 페스코 선언 딜레마로 고뇌(?)하는 내용의 일지에 문탁샘이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뭘 선언하면 그리 되는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어느 날엔 페스코를 지향하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초밥을 드셨다는 청량리샘의 일지에 이렇게 남기셨다.

 

ㅋㅋㅋ 우리 대부분....육고기는 적극적으로 멀리하지만.... 물살이는 먹고 싶다는(있다는) 거죠? <물고기는 알고있다>...읽으면 괴로울텐데.... 원양어업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되면 심란할텐데.... 특히 연어가 우리 식탁에 어떻게 오는지 알게 되면 머리가 지끈거릴텐데.... 문어가 얼마나 지능이 높은지 알면 피곤할텐데.... 며칠 전... 페북에서 어떤 동영상을 봤어요. 게를 묶어서 물에 넣고 끓이는데(삶는데) 게가 필사적으로 묶은 걸 풀고 냄비 밖으로 탈출했어요.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락토도 페스코도 아니구.....진정한 잡식주의자 입니다. ㅠㅠㅠ

 

그러던 문탁샘이 얼마 후에 경향신문 칼럼에서 페스코를 선언하셨다.

 

최근 공동체 공론장에 낯선 단어, ‘페스코’가 등장했다. 11월 한 달 동안 진행한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젊은 남성 회원 한 명이 자신을 페스코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페스코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의 준말이고, 소·돼지·닭 등의 고기는 먹지 않되 우유·치즈·달걀, 그리고 해산물은 섭취하는 채식주의의 한 종류를 뜻하는 말이란다. (...)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그 책을 읽은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올해 1월 첫 일요일, 우연히 그 책을 집어 들게 되었는데 단숨에 읽었고 책을 덮은 다음 좀 울었다. 나는 그날, 훔쳐서 구조한 돼지, ‘새벽이’를 돌보는 그 생크추어리가 우리 사회 반차별투쟁의 최전선이자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성지라고 생각했다. (...) 또 새해가 온다. 세상이 달라질까?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해본다. 어떤 폭력도 반대하며, 모든 생명은, 그것이 원숭이든 돼지든 닭이든, 애도할 만한 가치를 동등하게 갖고 있다는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또 무뎌지는 나의 감수성을 계속 갱신하기 위해 비건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직 초보니까 ‘페스코’부터 시작할 작정이다.(경향신문 오피니언 -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2150300015)

 

문탁샘은 오랫동안 잡식주의자였지만 성차별, 종차별에 대응하는 스쿨미투 청년들의 민감한 감수성, <나의 문어 선생님>의 문어가 보여준 창의적이고 고유한 생존 방식, 새벽이와 새벽이생추어리의 반차별투쟁 이야기에 감명 받아 새해에 페스코를 선언하셨다. 근데 첫 문단에 나온 '공생자 행성', '페스코', '젊은 남성 회원'의 교집합에 속하는 사람이 나 말고 떠오르지 않았고, 얼마 전에 있었던 <양생프로젝트> 세미나 뒷풀이 자리에서 나는 우연히 문탁샘 앞에 앉게 되었다.

 

나 : 샘! 페스코 비건 계속 하고 계세요?"
문탁샘 : 응, 그럼!"
나 : 그 때 쓰신 칼럼에서 젊은 남성 회원이 혹시..."
문탁샘 : 응, 너야 (ㅎㅎ)!“
나 : 아.......!

 

‘페스코’는 이제 더이상 문탁 공론장에서 낯선 단어가 아니다!

 

 

'그 쪽'으로만 갑시다!

세미나 뒷풀이는 각자 음식을 조금씩 챙겨오는 자리여서 나는 김밥을(야채, 참치) 사갔는데, 건너편에 앉아 계시던 둥글레샘이 샌드위치를 하나 권해주셨다. 감사함니당, 하고 받아서 먹으려는데 안에 치킨슬라이스가 보여서, 어 샘! 감사하지만 저 치킨이 있어서 못 먹어요, 라고 말하는 대신 조용히 치킨을 덜어내고 먹었다. 나는 잡식테이블에서 나의 비건 정체성을 서슴없이 밝히지 못하고 여전히 쭈뼛대는 경향이 있다. 이 글을 쓰며 앞으로는 그냥 담백하게 말하고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옆 테이블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요요샘과 모로샘의 목소리.

 

요요샘 : 경덕님 비덩이라고 알아요? 덩어리 고기는 먹지 않는 채식주의라는데...”
나 : 아 처음 들었어요. 근데 뭔지 알 것 같아요! 채식 하다보면 덩어리 고기 안 먹는 건 좀 쉬운데 육수까지 피하는 건 좀 더 신경을 써야...”
모로샘 : 샘, 그럼 사골국은요?“
요요샘 : 그건 안돼지!!!

 

요요샘은 공동체에서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는다>를 가장 먼저 읽고(혹은 두 세 번째?) 추천사를 게시판에 남겨주시기도 했다.

 

몇주전에 책을 한 권 선물받았습니다. 간간히 문탁의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한 박정애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주고 간 선물입니다. 문탁의 친구들과 함께 읽고 싶다고 선물한 책을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야 펼쳤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이 떨려 왔고, 다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정애님은 새벽이 생추어리에서 작년부터 정기적으로 자원활동을 해왔는데, 이 책을 같이 나누고 싶었던 정애님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습니다. (...)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저도 더 많은 친구들에게 이 책을 함께 읽자고 권하고 싶어지는군요.

 

 

세미나 뒷풀이는 술을 한 잔 곁들이는 자리여서 알딸딸한 기분으로 대화가 오갔다. 세미나에서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를 읽고 ‘이질적 공중’을 키워드로 열띤 토론을 벌인 이후였다. 이질적 공중에 인간 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까지 포함하면 어떤 이론과 정치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럼 또 어떤 '딜레마', 혹은 '부조화'와 맞닥뜨리게 될까?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공부가 필요할까? 아니면 당장 전환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어떤 것일까? 아무튼 지금은 공부와 활동을 병행하며 느슨한 페스코 비건, 비건 지향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공생자행성 마지막 글에서 나는 어떤 선언을 하든, 하지 않든 딜레마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러니 다가올 딜레마를 어떻게든 계속 잘 맞이해보자고 썼다. 그리고 낮달(전 아낫)샘은 댓글로 이런 제안을 해주셨다.

 

저도 '비건'이라고 하다가 그러면 종종 쏟아지는 질문과 시선들이 부담이 되어서.. 요새는 '비건 지향'이라고 해요. 그 궁금함도 이해는 됩니다. 얼마나 궁금한게 많으시겠어요...비건, 락토, 락토 오보, 페스코.. 이런 말들은 자꾸 '그 사람'에게 초점이 가는것 같아서요. 채식을 지향하면.. 채식지향, 비건을 지향하면 비건지향 .. 그게 나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게 도와주더라구요. 저도 페스코로 한참 살았어요. 응원하고 감사합니다. 흔들리면서 공부는 하면서 '그 쪽'으로만 갑시다!!

 

‘그 쪽’을 지향하는 이질적인 존재들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진다.

‘그 쪽’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고, ‘그 쪽’은 이미 있는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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