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10) : 한비자 개요 ⑥

by 북드라망 2022. 11. 10.

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10) : 한비자 개요 ⑥

주요개념(1)



한비를 보통 법가의 완성자라고 말한다. 법가에는 세 조류가 있다. 신도(愼到)의 세(勢), 신불해(申不害)의 술(術), 상앙(商鞅)의 법(法). 이들은 모두 한비의 선구자로 이들의 저술은 한비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한비는 이들을 모두 비판적으로 음미한 뒤 그들의 사상을 소화해 심화시켰다. 전국시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인물들로, 사마천은 신불해와 상앙을 기록했다. 신도는 『한비자』와 『장자』에 기록이 보인다. 이들을 소개하면서 한비가 어떻게 흡수했는지 보도록 하자.
    
세勢 : 신도(愼到)에 대한 기록은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보인다. 신도에 대한 가장 상세한 기록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높은데 장자가 기록한 신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 다르다. 장자는 팽몽(彭蒙)과 전병(田騈)을 신도와 한 부류로 묶고,
 

“(그들은) 만물은 동등하다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다. 그들은 말했다. ‘하늘은 만물을 덮을 수 있지만 담을 수는 없다. 땅은 만물을 담을 수는 있지만 덮을 수는 없다. 큰 도[大道]는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지만 구분할 수는 없다.’ 그들은 만물 모두는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때문에 말했다. ‘선택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무엇 하나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빠뜨려 완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도는 빠뜨리는 것이 없다.’ 이런 까닭에 신도는 지식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에서 떠나 어찌 할 수 없는 것을 따르며, 만물에 맡겨 흘러가는 것을 ‘도의 갈 길’[道理]이라고 여겼다. 신도는 말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라. (혹은, 안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얕은 지식이라도 갖는 순간 지식을 해치는 일에 가까워진다.’”[....齊萬物以爲首, 曰:“天能覆之, 而不能載之, 地能載之, 而不能覆之. 大道能包之, 而不能辯之.” 知萬物皆有所可, 有所不可. 故曰: “選則不徧, 敎則不至, 道則無遺者矣.” 是故愼到棄知去己, 而緣不得已. 泠汰於物, 以爲道理. 曰:“知不知. 將薄知而後隣傷之者也.”...]


라고 얘기했다. 팽몽·전병·신도를 하나로 묶은 것은 이들이 모두 제(齊)나라 직하(稷下)에서 공부한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주장을 엮은 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인용한 말은 장자화된 도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장자』를 읽은 사람이라면 거의 장자와 동류라고 생각할 것이다. 신도는 법가의 선구자로 세(勢)에 깊은 관심을 보인 사람으로 알려졌다. “제만물”(齊萬物)이란 말은 장자의 ‘제물’론(齊物論)과 다르지 않으며 도(道)에 대한 견해도 도의 통합적인 성격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장자와 거리가 멀지 않아 보인다. 「천하」편은 도가 관점에서 다른 학파나 주의(主義), 사상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신도에 대한 언급은 비판적으로 마무리된다. 법(法)이라는 인위(人爲)적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한다는 법가의 아이디어는 도가의 언어를 입고 있을 뿐 무위자연을 핵심으로 삼는 도가와는 대척점에 서 있기에 근본에서 사고가 다르기 때문이다. 

 

법가의 형성에는 다른 설명이 있다. 사회조직의 효율적 운영이라는 법가의 사고는 일반 백성에서 나온 게 아니라 공무를 담당하는 행정관리의 손에서 기원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그 가운데 하나다. 법으로 통칭되는 인위적 시스템 안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刑]를 자신이 맡은 자리[名]와 일치시켜 그것만을 충실히 해 나간다는 사고였던 셈이다. 시스템 빌더(builder)라는 측면에서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한비의 기록은 장자의 글과 판이하다. 신도는 상당수의 글을 남겨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목록이 올라 있는데 대부분 유실되고 단편만이 전한다. 장자의 기록도 유실된 원본기록일 수 있고 한비의 글도 신도의 저작일 가능성이 높다. 「난세」(難勢)에 보이는 부분이다.

 

신도는 신자(慎子)에서 말했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뱀은 안개에서 논다. 구름이 사라지고 안개가 흩어지면 용과 뱀은 지렁이·개미와 다를 바 없다. 자기들이 탈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인이 못난 사람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권력이 가볍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요 못난 사람이 현자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권력이 무겁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요임금이 필부였다면 세 사람도 다스리지 못했을 것이고 걸은 천자였기 때문에 천하를 어지럽힐 수 있었다. 나는 이 때문에 세勢와 지위는 믿을 수 있어도 현명함과 지혜는 부러워할 게 아님을 안다. 무릇 활이 약한데도 화살이 높이 오르는 것은 거센 바람을 탔기 때문이요 자신은 못났는데도 명령이 실행되는 것은 사람들의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요임금이 노예에 속해 사람들을 가르쳤다면 사람들은 듣지 않았겠지만 남쪽을 향해 자리에 앉아 천하를 왕으로 다스렸기에 명령을 내리면 실행되었고 금지하면 사람들은 그만두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명함과 지혜는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없으며 세勢와 지위는 현자를 굴복시킬 수 있다.”[慎子曰:“飛龍乘雲, 騰蛇遊霧, 雲罷霧霽, 而龍蛇與螾螘同矣, 則失其所乘也. 賢人而詘於不肖者, 則權輕位卑也;不肖而能服於賢者, 則權重位尊也. 堯爲匹夫不能治三人, 而桀爲天子能亂天下, 吾以此知勢位之足恃, 則賢智之不足慕也. 夫弩弱而矢高者, 激於風也;身不肖而令行者, 得助於衆也. 堯敎於隸屬而民不聽, 至於南面而王天下, 令則行, 禁則止. 由此觀之, 賢智未足以服衆, 而勢位足以詘賢者也.”] 


짧지만 깔끔한 논의다. 논리적인 글의 모범이다. 신도는 세를 정의한다. 그의 정의는 세에 관한 최초의 개념화이자 세에 관한 생각을 재정립하고 새롭게 보도록 했다. 중요한 공헌이다. 처음에는 “권위”(權位)라는 말을 썼다가 다음 문장에서 “세위”(勢位)로 받았다. 권을 세와 등가로 놓았기에 후에 ‘권세’라는 말로 통용되는데 세에는 권력[權]과 지위가 자연히 따라온다는 의미다. 세=권력+지위라는 등식인데 간단한 말이지만 핵심을 찔렀다. 신도가 하고 싶었던 말은 세위의 기능으로, 세가 있기에 능력자[賢智]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임금이라는 지위에 세가 있기에 통치권을 쓸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논의의 초점은 임금이며 통치권의 원천이자 능력자를 부릴 수 있는 근원에는 세가 존재한다는, 통치론의 초석을 세운 명쾌한 논법이다.


전통시대 통치의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 임금이 임금일 수 있는 권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신도의 정의는 이 핵심질문에 대한 간결한 답이다. 현대 통치자의 권위가 국민의 집약된 권리위임에 근거한다고 할 때 그 과정에는 선거라는 제도가 매개된다. 통치자의 권력은 획득지위인 셈. 그럼 과거에는? 신도는 해명한다. 능력, 지식의 유무 같은 것보다 태생적인 지위, 소여(所與) 지위라고.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니라 주어진, 태생적으로 주어진 자리라는 것. 이를 세(勢)라 했다. 임금은 세습적으로 주어진 자리지만 여기엔 세(勢)라는 권위가 붙기에 개인의 역량이나 현우(賢愚)보다 중요하다는 것. 지금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과연 말이 안 될까?) 과거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전통시대에는 세(勢)가 현재 통치자들의 권위보다 무겁고 무서웠다. 논리 이전에 사회적으로 공인되고 역사적으로 승인된, 뿌리 깊은 사고이자 정서였다. 머리로 비판하기 전에 몸은 벌써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측량하기 어려운 위엄이 붙고 전례가 따라 다녔던 것. 

 

한비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비의 응답을 음미해 보자.

 

어떤 사람이 신자에 응답하며 말했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뱀은 안개에서 논다. 나는 용과 뱀이 구름과 안개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현자를 놓아두고 오로지 세(勢)에만 맡긴다면 통치가 가능할까? 나는 아직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구름과 안개의 세가 있고 이걸 타고 놀 수 있는 것은 용과 뱀의 재주가 훌륭해서다. 여기 구름이 많이 끼었는데도 지렁이는 탈 수 없고 안개가 짙은데도 개미는 노닐지 못한다. 많은 구름과 짙은 안개의 세가 있는데도 이걸 타고 놀지 못하는 것은 지렁이와 개미의 재주가 보잘 것 없어서다. 걸과 주가 남쪽을 향하고 앉아 천하를 왕으로 다스리면서 천자의 권위를 구름과 안개로 삼았으면서도 천하가 큰 혼란을 피하지 못했던 것은 걸과 주의 재주가 보잘 것 없어서다. 또 신도는 요임금이 세를 가지고 천하를 잘 다스렸다고 말하지만 그의 세는 천하를 어지럽힌 걸과 주의 세와 무엇이 다른가. 무릇 세란 반드시 현자만 쓸 수 있고 어리석은 이는 쓸 수 없는 게 아니다. 현자가 쓰면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어리석은 자가 쓰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인간사의 본래 모습이란 현자는 적고 어리석은 자는 많은 법인데 위세의 이로움으로 사람들을 도우려니 이것이 세를 써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일은 많고 세를 써서 천하를 잘 다스리는 일은 적은 까닭이다. 

무릇 세란 다스림을 편리하게 하기도 하지만 혼란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마라, 마을로 날아들어가 사람들을 골라 잡아 먹을 테니’라고 하였다. 어리석은 인간에게 세를 타도록 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 걸과 주가 높은 누대를 짓고 깊은 연못을 파서 백성의 힘을 소진시키고 인두로 지지고 불로 고문해 백성의 생명을 손상시켰는데 걸과 주가 함부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남면하는 위세가 그들의 날개였기 때문이다. 걸과 주가 필부였다면 행동 하나도 시작하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세가 짐승 같은 마음을 길러주고 난폭하고 혼란스런 일을 이루게 했다. 이는 천하의 큰 근심이다. 세는 치란(治亂)과 근본적인 상응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신도는 세를 써서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오로지 주장한다. 그의 지식이 도달한 곳이 얕다.

무릇 좋은 말과 튼튼한 수레도 노예가 몰도록 하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왕량이 몰면 하루에 천리를 간다. 수레와 말이 다르지 않은데도 천리를 가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은 훌륭함과 서투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제 임금 자리를 수레로 삼고, 세를 말로, 호령을 고삐로, 형벌을 채찍으로 삼아 요순이 몰게 한다면 천하는 잘 다스려질 것이오, 걸주가 몰게 한다면 천하는 혼란에 빠질 것이니 능력과 어리석음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빨리 달려 멀리 도달하고자 하면서도 왕량에게 맡길 줄 모르고 이익을 가져오고 해악을 없애려 하면서도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길 줄 모른다. 이는 유추할 줄 모르는 병이다. 요순 또한 백성을 다스리는 왕량인 것이다.[應愼子曰:“飛龍乘雲, 騰蛇遊霧, 吾不以龍蛇爲不託雲霧之勢也. 雖然, 夫釋賢而專任勢, 足以爲治乎, 則吾未得見也. 夫有雲霧之勢, 而能乘遊之者, 龍蛇之材美也. 今雲盛而螾弗能乘也, 霧醲而螘不能遊也, 夫有盛雲醲霧之勢而不能乘遊者, 螾螘之材薄也. 今桀紂南面而王天下, 以天子之威爲之雲霧, 而天下不免乎大亂者, 桀紂之材薄也. 且其人以堯之勢以治天下也, 其勢何以異桀紂之勢也, 亂天下者也. 夫勢者, 非能必使賢者用已而不肖者不用已也. 賢者用之則天下治, 不肖者用之則天下亂. 人之性情, 賢者寡而不肖者衆, 而以威勢之利濟(亂世之不肖, 다섯 글자는 衍文)人, 則是以勢亂天下者多矣, 以勢治天下者寡矣. 夫勢者, 便治而利亂者也. 故周書曰:‘毋爲虎傅翼, 將飛入邑, 擇人而食之.’ 夫乘不肖人於勢, 是爲虎傅翼也. 桀紂爲高臺深池以盡民力, 爲炮烙以傷民性, 桀紂得乘四(=成肆)行者, 南面之威爲之翼也. 使桀紂爲匹夫, 未始行一而身在刑戮矣. 勢者, 養虎狼之心, 而成暴亂之事者也. 此天下之大患也. 勢之於治亂, 本末有位也. 而語專言勢之足以治天下者, 則其智之所至者淺矣. 夫良馬固車, 使臧獲御之則爲人笑, 王良御之而日取千里, 車馬非異也, 或至乎千里, 或爲人笑, 則巧拙相去遠矣. 今以國位爲車, 以勢爲馬, 以號令爲轡, 以刑罰爲鞭筴, 使堯舜御之則天下治, 桀紂御之則天下亂, 則賢不肖相去遠矣. 夫欲追速致遠, 不知任王良;欲進利除害, 不知任賢能;此則不知類之患也. 夫堯舜亦治民之王良也.”]   

 

한비는 비유까지 철저하게 비판한다. 신도의 비유는 수사적 윤색에 그치지 않고 세(勢)를 설명하는 근본적인 서술이기에 비유까지 검토해야 한다. 고대 중국의 글쓰기에서 비유가 중요한 이유는 『손자』나 『노자』에서 익히 보았듯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한비도 세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첫째, 한비는 세에 능력[賢]을 짝지어 다르게 설명한다. 신도가 복종의 대상으로 보았던 능력을 세와 짝으로 놓고 넓은 시야에서 검토한다. 세의 함의를 확장한 것. 엄밀히 말하자면 한비의 비판이 정확하다고 보긴 힘들다. 한비는 능력자를 써야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주장과는 별개로 멍청한 인간이 왕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자리에 오르는 일도 부지기수며 이때 능력과 상관없이 왕위라는 세(勢)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비의 주장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앞세우는 그의 주장은 세의 본질을 꿰뚫어 본 신도의 주장과는 범주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세의 남용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한비의 근심을 모르는 바 아니나 세와 왕위라는 단단한 결합이 끊어지는 것도 아니며 세에 대한 다른 정의이거나 세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읽기 어렵다. 


둘째, 한비는 세를 다른 각도에서 검토한다. “무릇 세란 다스림을 편리하게 하기도 하지만 혼란을 도와주기도 한다.”[夫勢者, 便治而利亂者也.]라는 말은 뒤에서 “세가 짐승같은 마음을 길러주고 난폭하고 혼란스런 일을 이루게 했다.”[勢者, 養虎狼之心, 而成暴亂之事者也.]라고 되풀이 되는데 한비가 세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여준다. 한비는 세의 정의보다 운용에 관심이 있었다. 통치라는 관점에 서면 세가 무엇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세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중심에 올 수밖에 없다. 신도를 두고 지식이 얕다고 비판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 신도의 원칙적인 논의를 받아 확장시키고 핵심을 통치의 구체적인 국면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한비는 영리할 뿐 아니라 신도의 맥락을 능숙하게 소화했다.

 


셋째, 한비는 세(勢)의 적용대상을 임금에서 능력자로 옮긴다. “이익을 가져오고 해악을 없애려 하면서도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길 줄 모른다”[欲進利除害, 不知任賢能.]는 말은 왕량을 임금에 비유했지만 궁극적으로 신하를 잘 써야한다는 함의를 갖는다. 이 부분이 한비가 늘 품고 있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훌륭한 임금과 능력 있는 신하의 조합 말이다. 이 논의를 연장시키면 당시에 많아지던 사(士) 계급의 진출과 무관하지 않을 터, 이는 더 따져보면 순자에게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한비는 세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할 것인가, 통치에 관해 신도와 똑같이 고민했다. 신도를 비판하기는 했으나 신도가 만든 틀안에서 논의를 벌였으니 비판은 철저하지 않았다. 걸주와 요순이라는 이상적 모델과 최악의 상태라는 극단형을 두고 논란을 벌였던 것. 한비는 현실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었기에 이에 대해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도 비판도 일면적이었기에 재비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신의 비판에 대한 재비판이면서 신도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극복―비판2가 세번째 단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비판과 재비판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주석가나 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보이는데 여기서는 한비가 신도를 수용·흡수했다는 관점에서 젊은 날의 비판과 성숙기의 재비판이라는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재비판의 핵심부분을 읽어 보자.

 

“1) 어떤 사람이 다시 응답하며 말했다. 신도가 세를 써서 이에 의지해 관리들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자 논객은 ‘반드시 현자가 있어야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그렇지 않다. 무릇 세는 이름은 하나이나 변화가 무수한 것이다. 세가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세에 대해 말할 게 없다. 내가 말하는 소위 세란 사람이 인위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논객은 ‘요순은 세를 얻어 잘 다스렸고 걸주는 세를 얻어 나라를 혼란하게 했다’라고 했는데 나는 요순과 걸주가 그렇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나 세는 한 사람이 인위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순이 태어나 임금 자리에 있었다면 걸주가 열 명이 있다 해도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지 못 했을 것이니 이는 세가 잘 다스린 것이다. 걸주 역시 태어나 임금 자리에 있었다면 요순이 열 명이 있다 해도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못 했을 것이니 이는 세가 어지럽힌 것이다. 그러므로 세가 잘 다스리면 혼란스럽게 할 수 없으며 세가 혼란에 빠지면 잘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자연의 세이므로 사람이 인위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운용할 수 있는 세일 다름이다.....

2) 또 저 요순과 걸주는 천년에 한 번 나오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이 이어지듯 나타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의 다스리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데 내가 세를 말하려 하는 대상은 보통의 군주다. 보통의 군주란 위로는 요순에 미치지 못하지만 아래로 또한 걸주가 되지 않는 존재로, 법을 품고 세에 의지하면 나라를 잘 다스리고 법을 등지고 세를 떠나면 나라는 혼란스러워 진다. 지금 세를 없애고 법을 등지고서 요순을 기다리면 요순이 나타나서야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이니 이는 천년동안 혼란스럽다가 한 번 잘 다스려지는 것이요 법을 품고 세에 의지해 걸주를 기다리면 걸주가 나타나서야 나라가 혼란해질 것이니 이는 천년동안 잘 다스려지다 한 번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천년동안 잘 다스려지다 한 번 혼란에 빠지는 것과 천년동안 혼란스럽다가 한 번 잘 다스려지는 것은 천리마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것과 같으니 서로 차이가 너무도 크다....

3) 논객은, ‘좋은 말과 튼튼한 수레도 노예가 몰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왕량이 몰면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쪽 월나라의 수영 잘 하는 사람을 기다렸다 중원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해 봤자 월나라 사람이 수영을 잘 한다 한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 옛사람 왕량을 기다렸다 현재의 말을 몰게 하는 일은 월나라 사람에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라는 말과 똑같다. 할 수 없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좋은 말과 튼튼한 수레를 50리마다 역을 하나씩 설치해 보통의 수레꾼에게 몰게 해 빨리 달려 멀리 가도록 한다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며 하루에 천리라도 갈 수 있다. 꼭 옛사람 왕량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또 수레를 모는 일이라면 왕량이 몰게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노비가 몰도록 해 실패한다 하면서 다스리는 일이라면 요순이 다스리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걸주가 다스려 나라를 어지럽힌다고 논객은 말하는데 이런 식의 진술은 맛을 말할 때 엿이나 꿀맛이 아니면 반드시 쓴맛 밖에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것을 적변누사積辯累辭·이리실술離理失術·양말지의兩未之議라고 한다. 어떻게 저 도리에 맞는 신도의 말에 비판할 수 있겠는가. 논객의 논의는 신도의 말에 미치지 못한다.” [復應之曰:“其人以勢爲足恃以治官. 客曰:‘必待賢乃治’, 則不然矣. 夫勢者, 名一而變無數者也. 勢必於自然, 則無爲言於勢矣, 吾所謂言勢者, 言人之所設也. 今曰, ‘堯舜得勢而治, 桀紂得勢而亂’, 吾非以堯桀爲不然也. 雖然, 非一人之所得設也. 夫堯舜生而在上位, 雖有十桀紂不能亂者, 則勢治也. 桀紂亦生而在上位, 雖有十堯舜而亦不能治者, 則勢亂也. 故曰: 勢治者則不可亂, 而勢亂者則不可治也. 此自然之勢也, 非人之所得設也. 若吾所言, 謂人之所得勢也而已矣....且夫堯舜桀紂千世而一出, 是(非)比肩隨踵而生也. 世之治者不絶於中, 吾所以爲言勢者, 中也. 中者, 上不及堯舜, 而下亦不爲桀紂, 抱法處勢則治, 背法去勢則亂. 今廢勢背法而待堯舜, 堯舜至乃治, 是千世亂而一治也, 抱法處勢而待桀紂, 桀紂至乃亂, 是千世治而一亂也. 且夫治千而亂一, 與治一而亂千也, 是猶乘驥駬而分馳也, 相去亦遠....夫曰, ‘良馬固車, 臧獲御之, 則爲人笑, 王良御之, 則日取千里,’ 吾不以爲然. 夫待越人之善海游者以救中國之溺人, 越人善游矣, 而猶越人救溺者不濟矣. 夫待古之王良以馭今之馬, 亦猶越人救溺之說也, 不可亦明矣. 夫良馬固車, 五十里而一置, 使中手御之, 追速致遠, 可以及也. 而千里可日致也, 何必待古之王良乎. 且御, 非使王良也, 則必使臧獲敗之. 治, 非使堯舜也, 則必使桀紂亂也. 此味, 非飴蜜也, 必若萊·亭歷也. 此則積辯累辭·離理失術·兩未之議也. 奚可以難失道理之言乎哉. 客議未及此論也.]    

 

한비의 재비판은 첫 비판에 비해 논리가 심화됐다. 그는 자신의 비판을 세 부분에 걸쳐 스스로 논박하면서 자기 의견을 재점검하는데 그가 도달한 결론은 보통 수준의 임금[中]을 위해 자기 의견을 밝힌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비의 의견은 새로운 장을 연다. 요순의 이상정치를 최선으로 보는 태도, 혹은 그와 반대로 걸주를 드는 태도를 모두 비판하면서 한비는 현실에 밀착한다. 한비를 두고 실질적이고 현실성 있다고 한 표현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古가 아니라 今에 방점을 둔 사고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도 유가(儒家)식 논의방식 전개를 반성한 것이기도 한데 본문에서는 이를 적변누사(積辯累辭)·이리실술(離理失術)·양말지의(兩未之議)라고 비판했다. 양말지의(兩未之議)는 문자 그대로 요순과 걸주를 들먹이는 극단적인 논의를 말한다. 양말지의(兩未之議)는 논리를 벗어나 현실적인 방법을 잃었기 때문에 이리실술(離理失術)이며 형식논리만 동원해 번지르르한 말만 늘어놓는 것이기에 적변누사(積辯累辭)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면서 유가와 명가의 논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하다. 마치는 말에서 그는 신도의 논의를 받아들인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긴 우회로와 많은 시간을 통과해 새로 얻은 결론이라 최초의 가치수용보다 더 깊은 통찰을 얻었다. 


한비의 세(勢) 비판과 수용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지만 경유하는 과정에 더 눈길이 간다. 경유로를 통해 한비는 자신의 논지를 벼렸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글쓰기에 도달했다. 예리한 논리적 비판은 언어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기면서 통치의 실천을 위한 (담론을 위한 담론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되었다. 한비가 뛰어난 이유다.   

 

 

글_최경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