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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11) : 한비자 개요 ⑦

by 북드라망 2022. 11. 24.

칼과 바다, 정치사상가 한비자 읽기 (11) : 한비자 개요 ⑦

주요개념(2)


술(術)·법(法) : 세를 자세히 논의했으므로 술과 법은 간략히 논의해 보자. 술과 법은 편을 따로 두어 논란을 벌이지 않는다. 『한비자』 전편에 걸쳐 술법이란 표현이 자주 보이는데 법과 술을 중시해 같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술은 앞에서 본 「내저설 상」(內儲說 上)에 칠술(七術)이라는 부제가 붙었듯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데 쓰는 일곱 가지 통치방법 혹은 기술을 말한다. 한비는 술을 신하를 대상으로 임금만이 구사하는 고도의 책략으로 설명한다. 「내저설 하」(內儲說 下)는 육미(六微)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신하들의 미묘하고 깊은 속마음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의미다. 육미 역시 신하의 알 수 없는 속마음을 임금이 파악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칠술과 짝을 이룬다. 한비가 군신관계에 중점을 두고 신하를 견제하고 통제하는 데 술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술과 법은 「정법」(定法) 편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신불해와 공손앙 두 사람 말 가운데 어느 것이 나라에 더 시급합니까?’ 응답하였다. ‘이는 따질 수 없는 문제다. 사람은 먹지 않고는 열흘이면 죽는다. 매서운 큰 추위에 옷을 입지 않아도 사람은 죽는다. 이때 옷과 먹을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사람에게 더 시급하냐고 묻는다면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니 둘 다 삶을 돌보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보면 신불해는 술을 말하고 공손앙은 법을 말했다. 술(術)은 능력에 따라 관직에 주고 직분에 따라 실질적으로 행했는가를 따지며 살생의 자루를 쥐고 신하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임금이 잡고 있는 것이다. 법은 관청에서 명확하게 보여주는 법령이며 백성 마음에 형벌이 반드시 시행된다고 각인되어 법을 잘 지키면 상을 받고 간사한 행동에는 벌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신하가 잘 따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임금은 술이 없으면 위에서 신하에게 가려지게 되고 신하는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혼란을 일으킨다. 이는 하나라도 없어서는 아니 되니 모두 임금의 통치수단이다.’”[問者曰:“申不害·公孫鞅, 此二家之言, 孰急於國?” 應之曰:“是不可程也. 人不食, 十日則死. 大寒之隆, 不衣亦死. 謂之衣食孰急於人, 則是不可一無也, 皆養生之具也. 今申不害言術而公孫鞅爲法. 術者, 因任而授官, 循名而責實, 操殺生之柄, 課羣臣之能者也. 此人主之所執也. 法者, 憲令著於官府, 刑罰必於民心, 賞存乎愼法, 而罰加乎姦令者也. 此臣之所師也. 君無術則弊於上, 臣無法則亂於下, 此不可一無, 皆帝王之具也.”]

 

한비는 술과 법을 간결하게 정의한다. 술은 앞서 언급했듯 임금이 주체로서 신하를 통제하는 기술이라는 면이 강하다. 법은 신하가 주체로, 백성에게 법을 집행하는 측면이 강해 보이지만 “신하가 잘 따르고 지켜야”[臣之所師]한다고 명시했는데 이는 신하가 법을 어기면 안 된다는 뜻일 뿐 아니라(법의 객관성) 신하의 법 집행이 인사고과의 바탕으로 자신의 직분에 따라[循名] 실질적으로 행했는가를 따지는[責實] 자료라는 점에서 임금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는 법의 객관성과는 별개로 통치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말에서 모두 임금의 통치수단[皆帝王之具也]이라 했다. 

   
질문은 이어진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술만 쓰고 법이 없거나 법만 쓰고 술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問者曰:“徒術而無法, 徒法而無術, 其不可何哉?”] 술법을 하나로 묶는 이유를 따지는 명민한 의문이다. 한비는 신불해와 공손앙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무엇이 그들에게 부족했는지 논증한다. 이론적 규명이 아니라 역사 사례를 통해 실질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한비의 문제의식이 형성되는 지점을 엿볼 수 있는 진술이기도 하다. 

 

 

“대답하였다. ‘신불해는 한(韓)나라 소후(昭侯)를 보좌한 사람이다. 한나라는 진(晉)나라에서 갈라져 나왔다. 진나라의 옛 법이 폐지되지 않았는데 한나라의 새 법이 또 생기고, 옛 임금의 명령을 거둬들이지 않았는데 뒤를 이은 임금의 명령이 또 내려진다. 신불해는 그 법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 명령을 통일하지 못해 간사한 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옛 법과 앞의 명령을 따르는 게 이로우면 그걸 따르고 새 법과 나중의 명령을 따르는 게 이로우면 그걸 따랐다. 옛것과 새것이 상반되고 앞뒤가 어긋나는 대로 이익을 따르니 신불해가 열 차례나 소후에게 술을 쓰라고 한들 간신들은 오히려 궤변을 늘어놓을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진나라에서 벼슬했던) 공손앙의 경우, 진나라는 전쟁에서 이기면 대신들이 높아지고 땅이 늘어나면 사사로이 신하를 책봉하는 일이 생겼다. 임금에게 신하들의 간사함을 알 수 있는 술이 없었던 것이다. 상군(商君)이 열 번이나 법을 바로 잡았다 한들 신하들은 오히려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로 썼다. 그러므로 강력한 진나라의 토대를 갖추고서도 수십 년 동안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은 법으로 벼슬아치를 제대로 바로잡지 못하고 임금은 위에서 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對曰:“申不害, 韓昭侯之佐也. 韓者, 晉之別國也. 晉之古法未息, 而韓之新法又生, 先君之令未收, 而後君之令又下, 申不害不擅其法, 不一其憲令, 則姦多. 故利在故法前令, 則道之, 利在新法後令, 則道之. 利在故新相反·前後相勃, 則申不害雖十使昭侯用術, 而姦臣猶有所譎其辭矣.....公孫鞅....戰勝, 則大臣尊, 益地, 則私封立. 主無術以知姦也. 商君雖十飾其法, 人臣反用其資. 故乘强秦之資, 數十年而不至於帝王者, 法不勤飾於官, 主無術於上之患也.”] 


요컨대 신불해에겐 법이 부족했고 공손앙의 경우 술을 구사하지 못했다는 것. 그렇다면 술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신하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다. 한비에게 계속 따라다니던 문제의식이 여기서 다시 얼굴을 내민다. 법술을 신하를 통제한다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군신관계가 핵심문제의식으로 걸려 있다. 이론에서도 그렇고 역사에서도 숱하게 부닥친 실제 문제가 군신간의 세력 불균형이었음을 한비는 강조한다.

  
유가와 법가는 군신관계를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극명하다. 유가나 법가 모두 임금 중심의 인위(人爲)를 정치의 핵심으로 본다. 도가계열의 사상가들이 인위에 반대해 무위(無爲)를 주장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유가와 법가의 공통점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유가는 인위의 정치에서 군신관계를 필수적이라 하면서 덕(德)으로 수렴되는 인간성 혹은 통치자의 관대함이라는 여지를 폭넓게 인정한다. 그리고 군신관계는 협력관계로 군신이 상보적임을 주장한다. 법가는 유가에 비해 군신 사이를 갈등과 경쟁, 심하게는 상반되는 관계로 본다. 신하가 임금을 죽일 수 있고 실제 시해한 사건이 역사에 적지 않다고 말한다. 법가에서 신하는 임금이 감시하고 통제하며 처벌하는 대상이다. 이때 쓰는 방법이 술(術)이다. 임금 자신만이 간직하고 누구에게도 노출해서는 안 되는 비기(祕技) 같은 것. 이는 동등하게 법(法)을 집행하는 임금의 심리태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법을 구체화한 것이 신상필벌이다. 그렇기에 유가나 법가에서도 무위라는 말을 쓰지만 함의는 다르다. 이때 무위는 도가의 무위와는 다른 임금의 통치술을 가리킨다. 유가에서는 임금이 신하를 믿고 신뢰해 전권을 맡기고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신권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다. 결국 유가는 인치(人治)를 모델로 삼는다. 법가의 무위는 임금이 신하에게 균등하게 적용되는 객관적인 법을 바탕으로 세에 의지하고 술을 구사해 신하를 보이지 않게 다스림으로써 신하들이 시스템(법)에 맞게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게 된다는 의미다. 한비는 “관리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지 않는다[治吏不治民]”고 했다. 임금이 무위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법가는 궁극적으로 법치를 이상으로 삼는다. 법치란 법에 의한 통치를 말하는데 법에 의한 통치는 제도화된 시스템을 말한다. 법치는 제도가 우선이다. 법가는 유가의 덕치(德治)를 믿지 않는다. 도가에서 인간의 자발성을 믿고 그대로 놓아두라는 무위, 혹은 좋은 의미의 아나키즘이 법가에겐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법가는 시스템의 인위적 작동을 최선으로 삼았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제도화에 대한 믿음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신하를 통제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신하를 믿지 못해 통제한다는 인간론의 관점보다는 신하를 복종시키는 문제가 정치학의 주요과제였기에 시스템을 잘 작동시키기 위해 신하를 복종시키는 데 관심을 두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법가는 인위의 가능성을 믿었다고 읽을 수 있다. 강조하지만 유가가 감화력이라는 덕성을 믿었던 것에 비해 법가는 신상필벌이라는 제도를 믿었다. 그 시스템의 정점이 임금이다. 임금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임금이 논의의 중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렇기는 하나 임금이 법위에 군림한다거나 법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거나 하는 의미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임금은 제도의 운용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유가건 법가이건 결과적으로 무위가 되는 정치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무위란 말의 함의가 도가와 유가, 법가에서 이렇게 다르다. (한비는 무위라는 말보다 허정(虛靜)이라는 『노자』에 보이는 다른 표현을 썼다.)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임금이 신자의 술을 쓰고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상군의 법을 쓰면 되는 겁니까?’”[問者曰:“主用申子之術, 而官行商君之法, 可乎?”] 한비는 이 질문에 신불해와 공손앙의 주요 언급을 검토하면서 결론을 내린다. “두 사람의 방법은 아직 미진해 완벽하지 않다.”[二子之於法術, 皆未盡善也.] 이 진술은 한비가 왜 법가의 집대성인지를 보여준다. 


한 가지 과제가 남았다. 한비가 법을 군주의 자의적 수단으로 보지 않고 통치의 기준으로 삼아 국가운영의 핵심기제로 생각했다고 할 때 그 근거를 어디에서 구했을까. 법이 누군가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운영원리라면 국가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토대로서 공유지점이 있어야 한다. 한비는 공통 토대를 도(道)라고 불렀다. 도에서 법이 나온다고. 그렇다면 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한비가 『노자』를 읽고 주석한 이유가 유래하는 부분이다.    

한비는 신도, 신불해, 공손앙의 저술을 세심하게 읽고 공부해 법가로 수렴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하고 정돈된 체계로 완성했다. 「난세」(難勢)와 「정법」(定法)이 중요한 이유다. 두 글을 읽으면 한비 사상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고 할까. 한비의 사상을 얘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가 고민한 지적 행로를 따라가는 일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두 편은 소중하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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