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서 죽느냐 비추며 사느냐
重火離 중화리 ䷝
離, 利貞, 亨, 畜牝牛吉.
리괘는 바르게 함이 이롭고 형통하니 암소를 기르듯이 하면 길하다.
初九, 履錯然, 敬之, 无咎.
초구효, 발자국이 어지러우니 신중하면 허물이 없다.
六二, 黃離, 元吉.
육이효, 황색에 걸려 있으니 크게 선하고 길하다.
九三, 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구삼효, 해가 기울어져 걸려 있는 것이니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하지 않는다면 늙은이가 탄식하는 것이니 흉하다.
九四, 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구사효, 갑자기 들이닥쳐서 불태우는 듯하니, 죽는 것이고 버림받음이다.
六五, 出涕沱若, 戚嗟若, 吉.
육오효, 눈물을 줄줄 흘리고 슬퍼하며 탄식하나 길하다.
上九, 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상구효, 왕이 징벌을 나가면 좋은 일이 있으리니, 우두머리만 죽이고 그 무리를 잡아들이지 않는다면 허물이 없다.
나는 목, 화, 토, 금, 수 여덟 글자로 이루어진 사주 중 일곱 글자가 불(火)과 나무(木)로 되어있다. 존재 자체가 언제나 불과 그것을 유지하는 땔감으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열정은 넘치고 행동은 조급하고 무언가에 꽂히면 거침없이 불이 붙는다. 그러다 언제 붙었냐는 듯 불이 확 꺼진다. 이런 태도가 너무 익숙해서 힘든지도 모른 채 살아왔고 열정적으로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이 무언가에 붙으면 열정을 불태웠다. 불씨가 꺼지면 또 다른 붙을 곳을 찾아다녔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건강에 좋다 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보이차를 배우기 시작했다. 보이차로 불이 옮겨붙었다. 회사 일로 지친 심신도 회복할 겸 차를 마시면서 나의 열기도 식히고 싶었다. 친구들과 보이차 지점을 찾아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차를 많이 마실수록 좋다고 해서 배가 불러서 더이상 못 마실 때까지 마셨다. 차를 마시고 열기를 내리고 싶었는데 결국은 열정적으로 보이차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퇴직금이 통장에 있었기에 그 돈으로 값비싼 차를 막 사들였다. 차는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고 손주에게 물려주는 거라 하기에 있지도 않은 손주를 생각하며 차를 샀다. 그때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도 말이다. 보이차에 대한 불이 꺼지자 아파트 재건축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재건축 사무실에 나가서 일을 도와주고, 조합장 선거에도 개입하고 그러다 난생처음 법정에 증인으로 서기도 했다.(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그렇게 난 또 거침없이 태웠다. 리괘를 공부하면서 불이 많은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왜 늘 이렇게 성급하고, 거침없이 불이 붙고, 확 꺼지는지, 대체 이 불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중화리(離)괘는 밝음을 상징하는 불이 두 개가 겹쳐져 있어서 밝음을 계승하여 세상을 비추는 괘다. 불이란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고 무언가에 붙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불을 붙인다, 불이 붙었다고 말할 때처럼 불은 어딘가에 붙어야만 활활 타오르고 붙을 곳이 없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불처럼 서로서로 붙어 의지한다. 내가 붙고자 하는 곳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올바름에 붙어야만 제대로 밝힐 수 있다. 그래서 리괘는 밝음, 붙어 의지함을 나타낸다.(象曰, 離, 麗也) 올바름에 붙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올바름이 아닌 이익에 붙었다. 나의 이익만을 따졌고, 이익이라면 빨리 누리고 싶었다. 보이차가 나에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니 거기에 불이 급하게 붙었다. 재건축 사무실에서 일하면 재건축할 때 내가 좋은 위치를 분양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었다. 매번 이런 식이다. 그러니 결정이 신중하지 못하고 경거망동할 수밖에.
불은 모든 걸 태우고 꺼져버릴 수도 있고, 세상을 밝게 비출 수도 있다. 나는 육이효에서 내 삶의 비전을 찾고 싶다. 육이효는 황색에 걸려 있으니 크게 선하고 길하다(六二, 黃離, 元吉)이다. 걸려 있다는 것은 붙어 의지하는 것을 뜻한다. 황(黃)이란 오행 중 가운데(中)를 나타내고 땅(土)의 색이다. 시간상으로는 한낮의 가장 밝은 해다. 정이천은 황리(黃離)를 “문명하고 중정을 이루었으니 성대한 아름다움”이라고 해석한다.(『주역』, 정이천 주, 글항아리,p.621) 문명하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서 도구를 만들고 제도를 정비해 인간을 이롭게 하고 사회를 번영시키는 것이다. 또한, 중정을 이루었으니 올바름에 붙어있고 치우침이 없는, 사심이 없는 자다. 황리란 이치를 깨달아서 중천에 뜬 태양처럼 세상을 밝히고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크게 선함이고 그런 선함이 길한 것이다(元吉).
황리원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괘상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괘상을 보면 음이 두 개의 양을 붙잡고 있다. 발산의 기운을 가진 양들이 함부로 나아가지 않도록 음이 가운데서 수렴을 하면서 균형을 잡아 주고 있다. 또한, 음이 양들 가운데에 있어서 가운데가 텅 비어 환하게 빛난다. 불이나 태양이라고 하면 꽉 차 있어야 잘 타고 더 빛날 것 같은데 가운데가 비어 있다. 모닥불을 피울 때 위로 쌓으면서 가운데를 비워야 잘 타듯 말이다. 불은 속성상 격렬하게 솟구칠 수밖에 없는데 음으로 인해 꺼지지 않고 빛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음이 황리원길의 비밀이다. 음을 어떻게 보존하고 탐구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음이란 사물의 이치요 존재의 근원이다. 이 음을 탐구할 때 필요한 게 땅의 덕이다. 땅의 덕이란 괘사에서 말하는 암소를 기르는 것과(畜牝牛) 연결된다. 갑자기 웬 암소? 주역에서 암소는 땅을 상징한다. 소는 순종적이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는 우직한 동물이다. 그중 암소는 유순함이 지극하고 차분하며, 송아지를 낳아 생명을 이어간다. 내 본성을 탐구하고 암소처럼 유순하게, 느리지만 쉼 없이, 이치를 구현하는 것. 이것이 나와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영속되는 것임을 육이효는 말한다.
나는 보이차가 주는 기쁨이 오래갈 거라 믿고 막 사들였다.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차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냥 사서 마시는 일 밖에는. 보이차 고수들을 만나도 몇 년 된 보이차인지, 어디서 구했는지, 보이차 체험담 외에는 배울 것이 없었다. 그들이 하는 일도 보이차를 사고 마시는 거였다. 그럼 나도 계속해서 값비싼 차를 사서 쟁기고 마셔야 하나? 이런 고민이 들면서 흥미를 잃었고 불씨가 꺼졌다. 난 왜 그렇게 보이차를 맹신하며 쫓아다녔을까? 보이차를 사두면 오래될수록 돈도 되고, 건강에도 좋다 하니 무조건 붙어 의지했다. 오직 내 소유와 건강을 위해서였다. 결국, 건강도 못 챙겼지만… 물론 보이차는 몇 잔 마시면 머리도 맑아지고 좋은 차다. 나처럼 많이 마시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이제 불의 방향을 어디로 옮겨야 할까? 음에 붙어야 한다. 내게 불이 많다면 내 안에 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거다. 나는 그동안 이 음을 무시하고 살았다. 그러니 나의 생명에너지가 다 마르고 소진될 수밖에. 그렇게 되면 남는 건 공허함뿐이다. 공허함은 음을 채우라는 내 몸의 신호였다. 음은 내면을 탐구할 때 채워진다. 일단 멈추고, 행동하기 전에 전체적인 것을 조망하자. 건너뛴 것들을 미세하게 보려고 하자. 왜 그렇게 소유하려고 하는지 나에 대한 탐구! 이 길은 급하려고 해도 더디게 갈 수밖에 없다. 나를 아는 만큼 타자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을 확장해 나갈 때 불은 나를 태우고 꺼지는 게 아니라 세상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욕심으로 가리워진 나의 본성을 탐구하고 소처럼 느린 걸음 속에서 쉼 없이 정진해 나가는 길. 그런 길만이 나의 불씨를 살리는 길이고, 세상을 비추는 길임을 황리원길을 통해 배웠다.
글 _ 이경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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