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 의심이 생길 때
火澤 睽(화택규) ䷥
睽, 小事吉.
규괘는 작은 일에는 길하다.
初九, 悔亡, 喪馬, 勿逐自復, 見惡人, 无咎.
초구효, 후회가 없다. 말을 잃지만 쫓아가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온다. 사이가 나쁜 사람일지라도 만나야 허물이 없다.
九二, 遇主于巷, 无咎.
구이효, 골목에서 군주를 만나면 허물이 없다.
六三, 見輿曳, 其牛掣, 其人天且劓. 无初有終.
육삼효, 수레가 뒤로 끌리고 소를 막아서니 그 수레에 탄 사람이 머리를 깎이고 코가 베인다. 시작은 없지만 마침은 있으리라.
九四, 睽孤, 遇元夫, 交孚, 厲无咎.
구사효, 어긋나는 때라 외로운 처지인데 훌륭한 남편을 만나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귀니 위태롭지만 허물이 없다.
六五, 悔亡, 厥宗噬膚, 往何咎?
육오효, 후회가 없어지니 그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살을 깊이 깨물 듯이 완전히 믿고 따라 주면 나아가는 데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上九, 睽孤, 見豕負塗, 載鬼一車, 先張之弧, 後說之弧, 匪寇, 婚媾, 往遇雨 則吉
상구효, 어긋나는 때라 외로워서 돼지가 진흙을 뒤집어쓴 것과 수레에 귀신이 가득히 실려 있는 것을 본다. 먼저 활줄을 당기다가 나중에는 활을 풀어 놓는데, 이는 도적이 아니라 혼인할 짝이니 육삼에게 가서 비를 만나면 길하다.
3월 초 조카가 결혼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자리. 그런데 막상 그 자리를 축하하러 가는 내 삼형제의 면면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오빠네는 사별하고 나머지는 갈라져 한 쪽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주역에서 가인(家人)괘 다음에 규(睽)괘가 나오는 것이 새삼 와 닿았다. 가정의 도리를 말하는 가인괘와 부부가 갈라져 분열하는 규괘가 한 쌍으로 묶여있다. 사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온 남녀가 만나 함께 생활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립이나 갈등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부딪치고 싸우고 그러다 마음이 어긋나 떠나가기 다반사다. 그러니 결혼하는 남녀에게 필요한 건, 그저 막연하게 평생 함께하리라는 약속이나 바램이기보다 이런 어긋남과 대립의 시간들을 어떻게 겪어내며 통과할 것인가의 지혜일 것이다. 규괘를 보고 있자니 마치 부부가 어긋나고 대립할 때 각 자 처한 위치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주는 것 같았다.
화택규 괘는 위에는 불이 있고 아래에는 연못이 있는 상이다.(上下火澤 睽). 불꽃은 불타오르고 연못의 물은 아래로 내려간다. 두 형체가 서로 어긋나고 그 뜻 또한 함께 가지 않아 분열하고 등을 지는 뜻이 있다. 그럼 그렇게 제각기 갈 길을 가버리면 그걸로 끝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대립하고 분열하는 상황과 조건을 말하면서도 어떻게 이러한 시기를 슬기롭게 넘어갈 것인가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서로 다르면서 조화를 이뤄 뭔가를 이뤄내듯 부부간에도 서로 대립하고 밀어내면서도 화합하고자 하는 힘이 있다는 것. 그 다르기로 말하면 음과 양처럼 극과 극이지만 또한 음과 양이기에 서로 끌어당기는 게 남녀의 관계다. 어긋남과 대립의 시간을 피해갈 수 없는 게 부부관계이니 각 효가 처한 다양한 상황과 해법을 따라가 보자.
결혼 초기 막상 살아보면 연애 때와 너무나 다른 것 같아 실망하고 보기 싫어 등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바로 절교하지 말고 만나라는 게 초효의 처방이다. 나와 다른 타자에게 적응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가져야 후회하지 않고 허물이 없기 때문이다.(초효) 또 내 뜻과 맞지 않아도 뭔가 통하는 것 하나라도 만들어 소통의 창구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다름을 헤아려 그에 맞게 소통하는 방식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다.(이효) 또 정작 부부사이가 아닌 시댁이나 처가 집 식구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이들 방해세력 때문에 처음엔 부부사이가 힘들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면 결국은 짝과 합치해 끝이 있으니 힘을 내라한다.(3효) 또 서로 대립하고 분열하는 때에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땐 진심으로 뜻이 통하고 믿을 수 있는,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연대해야 한다. 알고 보니 나의 짝이 바로 그런 ‘훌륭한’ 짝일 수 있다.(4효) 갈등의 국면을 회피하지 않고 이왕 살 거면 ‘아주 깊숙이 살점을 파고들 듯이’ 상대의 마음속 깊이 가 닿으라 한다. 지극한 진실과 정성으로!(5효) … 이렇게 적다보니 나처럼 결혼생활을 오래 해 본 사람이나 이런 처방이 실감이 날 것 같다. 정작 실제 감정의 격류가 오가고 애증이 교차하는 리얼한 현장 한가운데에 있을 땐 이런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옳은 소리’에 불과할 뿐. 그래서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부부관계는 극한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그 극한에 있는 것이 상구효가 처해있는 의심이라는 병이다.
나도 한 때 남편을 의심한 적이 있다. 이십년 전쯤 좀 큰 위 수술을 하고 집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을 때였다. 처음 한 두주는 어머니가 오셔서 수발을 들어주었으나 이후는 나 혼자 알아서 몸을 단도리 해야 했다. 남편은 바깥일에 전적인 의미를 두고 왕성히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출장도 잦고, 며칠에 한번 들어오는 생활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바깥 활동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 적응해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그런데 내 몸에 탈이 나고 쇠약해지자 예전처럼 ‘그러려니’가 되지 않았다. 아내가 힘든지 어떤지 관심도 없어 보였고 집에는 더 뜸하게 들어오는 것처럼 여겨졌다. 집안에 홀로 고립된 것 같았다.(睽孤) 확 의심증이 올라왔다. ‘아니 이 사람은 도대체 왜 나와 살고 있는 거지? 그 일이 아픈 와이프보다 더 중요해? 집에 안 들어오고 대체 어디서 자는 거야?’ 하다가 점차 ‘아니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아냐?’ … 등등 따위로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점입가경!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의심스러워졌다. 당연히 남편이 예쁘게 보일 리 없다. 보기 싫고 미워지고, 있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망상을 더하는 꼴이었다. ‘마치 돼지가 진흙을 뒤집어 쓴 것’처럼 상대방이 밉게 보이고(見豕負塗), ‘형체도 없는 귀신이 수레에 가득하다고 착각한다’(載鬼一車)는 게 이런 거다.^^ 이쯤 되면 둘 사이는 괴리의 극한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사물의 이치는 극한에 이르면 반드시 회귀한다.(物理極而必反)”(정이천, 『주역』, 768쪽) 회귀는 돌아옴이다.
원래 의심하는 쪽이 괴로운 법. 마음이 편치 않으니 좀 회복되나 싶던 몸이 다시 맥을 못추고 나빠졌다. 게다가 이런 나의 속사정을 모르고 태평한 남편을 보니 더 울화가 치밀었다. 어느 날 남편에게 감정의 둑이 터진 것처럼 쌓여있던 응어리들을 있는 대로 쏟아냈다. 자존심이고 뭐고도 없이. 한 번도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적이 없던 남편의 당황하던 모습이라니. 남편은 알아서 잘 추스르겠거니 하면서 그냥 살아온 대로 산 거였다. 그는 그간의 무관심을 미안해하면서도 한편 기쁜 것 같았다. 내가 의심하는 동안 보였던 냉랭함에 눈치를 보다가, 이렇게라도 속내를 풀어내 주니 뭔가 막혀있던 관계가 조금이라도 뚫렸다고 느낀 것이다. 나 역시 한바탕 터뜨리고 나니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후 남편의 생활패턴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여전히 그답게 살았다. 몸이 회복되고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한 때 내 몸과 마음이 처했던 상황과 조건은 남편을 나를 해롭게 하는 ‘도둑’으로 보고 화살을 겨누게 했다.(先張之弧) 그러나 상대에게 다가가(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려 할 때 겨누던 화살은 내려지고 의심의 먹장구름을 벗어나 서로의 실상을 볼 수 있었다.(後說之弧, 匪寇, 婚媾, 往遇雨)
부부관계에서 서로에게 기대와 집착을 내려놓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하여 어긋남과 대립, 의심과 갈등의 시간을 겪어내며 통과해야 하는 게 부부관계다. 그러니 살건 못살건 잘잘못을 떠나 부부사이에 중요한 건 서로를 가리지 않고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어긋나고 의심하면서도 침묵하는 것만큼 부부 사이를 멀게 하고 쓸데없는 번뇌에 휩싸이게 하는 건 없는 것 같다. 상구효는 리(離)괘의 맨 위에서 강함과 밝음을 가지고 있다. 그 강함과 밝음의 자질을 오로지 상대를 과도하게 살피는 의심으로 쓸 때 등지지 않을 부부란 없다. 의심으로 가기 전에 서로를 환히 드러내고 이해하는 밝은 빛으로 쓸 일이다. 그럴 때, 생겼던 의심도 사라진다.
글_안혜숙(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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