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스페이스, 뒤편으로 쫓겨난 흐름들
공기순환의 N차방정식
내가 열 평 남짓 되는 작은 식당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공기의 순환’이다. 작은 가게인 만큼 요리를 위해 불을 쓰면 가게 내부가 금세 후끈 달아오르고, 물만 끓여도 습도가 몇 분 만에 60%를 상회한다. 음식을 하면서 발생하는 냄새와 연기도 큰 문제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주방에서 발생하는 열과 습기, 냄새와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팬fan을 단다. 이렇게 말하면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공간은 매우 ‘골 때리는’ n차방정식에 돌입하게 된다.
작은 가게의 미닫이 혹은 여닫이문을 열기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열과 습도를 가게 내부에서 외부로 방출하는 팬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가져가지 않고, 가게 내부의 공기를 밖으로 가져간다.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외부의 공기가 내부로 들어와 줘야만 한다. 누구도 가게 내부가 진공상태가 되길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만약 조그만 가게에 출입문을 제외하고 별도의 창이 없다면, 밖으로 나가는 공기만큼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출입문을 밀며 들어온다. 다시 말해 팬을 틀면, 마치 여닫이문을 누가 당기고 있는 것처럼 가게 내부 방향으로 빨려 들어오는 상태를 유지하며 공기가 유입된다. 이렇게 공기의 흐름이 잡힌 상태의 문은 웬만큼 힘이 센 사람도 절대 당겨서 열지 못한다. 미닫이일 경우엔, 공기가 유입되는 최소한의 통로만큼은 절대 문이 끝까지 닫히지 않는다.
그래서 배기를 할 때는 꼭 급기가 필요하다. 출입문 이외에 밖에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는 구멍을 어딘가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급기구의 위치선정이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급기를 통해 여름엔 외부의 더운 바람이, 겨울엔 추운 바람이 들어온다. 배기가 이루어지는 주방의 위치와 급기의 위치에 따라 공간은 눈으로 보기에 견고한 네 벽과 천정으로 막혀 있더라도, 지붕 없는 외부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온습도를 가지게 된다.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하나 뿐이다. 시스템 에어컨. 냉·난방기.
건축은 뒤편으로 쫓겨났다
에어컨은 정말이지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공간을, 건축가가 상상하는 어떤 공간이든 가능케 한다. 에어컨 발명 이전까지의 공간은 늘 공기의 순환과 싸워왔다. 어떻게 공기를 빠져나가게, 지나가게, 머물게 할 것인가. 어떻게 공기를 위로 혹은 아래로, 데우고 식힐 것인가. 고대 로마에선 집 안을 시원하게하기 위해 찬 물이 순환하도록 벽 뒤로 수도관을 설치했고, 동남아 사람들은 젖은 잔디를 창문에 널었다. 우리 한옥 역시, 집의 중앙과 집의 하부로 공기가 순환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은 다 옛날 얘기다. 건축계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어컨디셔너는 건축에 진정한 혁명을 가져왔다. 에어컨디셔너는 건물의 조직과 공존방식에 돌연변이를 발생시켰”다. 1920년대 미국에서 이루어진 에어컨의 보급은 당시 더위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을 40%이상 줄였고, 학교, 병원, 회사, 공연장, 의회 등에 도입되어 사람들의 낮 생활에 엄청난 활기를 가져왔다. 콜하스의 말처럼 에어컨이 발명된 20세기 초 이후 우리는 더 이상 공간과 공기순환의 복잡한 방정식을 따질 필요가 없는 세상, 그리고 그런 원리가 적용되지 않은 건물에 산다. 아파트를 건축할 때 건축가가 던지는 질문은 이제 “어떻게 하면 공기 순환이 더 잘 될 것인가?”가 아니라, “에어컨 배선을 어떻게 숨길 것인가?”, 실외기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이다.
그러나 콜하스는 그의 책에서 뒤이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이로 인해 건축은 뒤편으로 쫓겨났다. 이제 우리의 대성당을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에어컨디셔너다.” 혁명은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진다. 그것은 한편으로 인간이 몇 천 년 간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인간들에게 더 윤택한 삶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에어컨의 원리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액체가 기화되는 과정에서 열을 빼앗는다는 단순한 원리로부터 고안된 발명품이다. 이것이 실내기에 적용되는 것이고, 반대로 기체가 액화되는 과정, 즉 실외기에서는 열이 발생된다. 실내기가 찬바람을 만든다면, 실외기는 더운 바람을 내뿜는다. 누군가는 에어컨이 “세상을 훨씬 시원한 장소로 만들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때 ‘세상’은 ‘실내’에 한정된 세상일 것이다.
‘뒤편으로 쫓겨난 건축’이란, 아마도 에어컨이 존재하기 이전의 건축적 상상력들을 일컫는 것이라 생각된다. 앞서 예를 들었던 한옥,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전통적인 건축은 자연과 사람이 맺어야 할 마땅한 관계를 포함한다.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과 공생하고자 하는 노력. 이때 건축은 단지 건물을 만드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의 삶이 어때야 한다는 상상,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고민과 실험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대성당을 지탱’해주던 튼튼한 기둥과 뾰족한 아치형 천정은 이제 쓸모없는 노동력, 비싼 건축비용, 비효율, 즉 사치로 보인다. 어쩌면 성상이 있던 자리에, 에어컨이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더운 여름, 우리가 에어컨이 없는 대성당을 견딜 수 있을까?
정크스페이스
콜하스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것이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에어컨이라는 건축적 장치들이라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 산업혁명이나 그로 인해 발전한 자본주의가 위와 같은 건축적 장치들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 건축적 장치들이 자본주의를 가능케 했다는 상상이다. 그에게 실내 업무의 경제성을 엄청나게 끌어올린 에어컨, 용적률을 높임으로써 밀집된 대도시를 가능케 한 엘리베이터, 쇼핑센터의 중심부에 놓인 에스컬레이터, 이것들 없이는 자본주의도, 현대건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20세기 이후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만들어진 공항, 터미널, 백화점, 나이트클럽, 아파트…와 같은, 혹은 모든 건축물들에 ‘정크스페이스junk-space’, 즉 쓰레기 공간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정크스페이스는 우리의 무덤이 될 것이다. 인류의 절반은 생산하기 위해 오염시키고, 나머지 절반은 소비하기 위해 오염시킨다. 제3세계의 자동차, 오토바이, 트럭, … 공장,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오염물질을 다 합한다고 하더라도 정크스페이스가 생산해내는 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건축은 사람이 하는 행위(construct)임이 분명하지만, 그 안에 살아감으로써 우리의 삶이 정형화 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되는(construct)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치 건축적 장치들이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다는 생각과 같이, 공간이 우리 삶을 제약하거나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그는 역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축은 그에게 중립적인 사물, 그저 비를 막아주는 지붕과 바람을 막아주는 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인 존재다. “정크스페이스는 정치적이다. 그것은 안락과 쾌락의 이름으로 우리의 비판적 능력을 제거함으로써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안락함이 새로운 정의正義가 된다.”
현대의 정치적 메시지들이 그러하듯, 어떤 가치가 주요한 것으로 내세워질 때에 그 뒤편에 무언가가 감추어진다. 누군가에게 세상이 에어컨 ‘덕분에’ 시원해지는 동시에, 누군가에겐 에어컨 ‘때문에’ 그 밖의 세상이 뜨거워진다는 사실이 감추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콜하스는 정크스페이스가 감추어야 할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흐름’이라고 말한다.
흐르도록 하는 것
“정크스페이스에서 흐름은 재앙으로 이어진다.” 강남에 자리한 열 평 남짓 되는 식당의 인테리어가 거의 마무리 되어갈 즈음. 뜨거운 김을 내뿜는 화구 위로 팬을 달았고, 작동을 체크했다. 30평형 에어컨을 설치했고,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을 확인했다. 작은 공간에 맞게 시원하게 오픈한 주방과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바bar좌석들. 만족스러웠다. 이제 오픈을 남겨두고 있었고, 그 전에 지인들을 초대해 먼저 가 오픈을 시작했다. 공간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는 문자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핸드폰을 확인하니, 가게에서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있었다.
이전에 테스트할 때 간간히 사용된 화구와 달리 많은 지인들을 커버하기 위해 하루 종일 가동된 화구는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열기와 습도를 뿜어댔다. 높아진 습도와 온도는 30평형 에어컨의 ‘파워 냉방’ 기능을 비웃기라도 하듯 끄떡도 않았다. 에어컨은 더 이상은 힘들다며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뚝뚝 물방울을 떨어트렸다. 오픈을 미루고 습도를 낮추기 위해 더 높은 마력수를 가진 팬으로 교체했다. 실내에서 발생하는 습도는 잡혔지만, 여름날의 습기 가득한 공기가 그대로 가게 내부로 흘러들었다. 갈수록 더워지는 실내. 외부로 빠진 팬에 손을 대보니, 에어컨에서 나온 차가운 공기가 그대로 밖으로 빠지고 있었다. 실내의 온습도를 스스로 감지하고 ‘열일’하는 최신식 스마트 에어컨의 실외기는 터질 듯이 뜨거워졌다.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다양한 공정의 전문가들과 상의한 후, 결국 에어컨을 가게 면적의 4배가 넘는 용량으로 교체했다. 실내 온습도는 거짓말처럼 떨어졌다. 오픈 몇 달 후, 여름 전기세가 엄청나게 나왔다는 가게 사장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더니, 그래도 여기저기 물어보니 당신 가게보다 더 작은 가게들이 심한 경우도 많다더라고 하며 외려 나를 위로했다. 다들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콜하스는 그의 책에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미 거장인 그는, 세계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내 건 건축물을 짓는다. 모든 건축물엔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에어컨이 설치된다. 국내에도 최근 광교에 들어선 갤러리아 백화점이 그의 디자인임을 홍보에 사용한다. 에어컨이 수백 대는 들어갔을 것이다. 백화점의 안 보이는 측면에는 실외기와 팬을 몰아놓은 갤러리 창이 보인다. 아마도 그곳으로 엄청난 열이 뿜어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그리고 가게 사장의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될 리 없다. 나는 끝내 이것이 마음에 남아, 더 넉넉한 용량의 에어컨을,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것 외에 이 문제를 해결 할 방법을 찾느라 몇 달을 책을 뒤적이고 자료를 찾았다. 그러나 이미 형성되어 있는 현대건축의 네모난, 외부와 내부를 차단하고 칸과 칸을 분리하는 공간에서는 마땅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나마 답이 있다면 칸막이 공간 내부에 또 다른 칸막이를 설치해서, 공기의 흐름을 끊고, 늦추는 방법뿐이다. 에어컨이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다는 그의 말이 뼛속 깊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그 외의 방법을 찾을 수 없도록 방향이 지어진, 안락함을 숭배하는, 정치적인 건축.
흐름들. 이것은 내가 이 세계 어딘가에 살아간다면―콜하스에 따르자면 그곳은 필히 ‘정크스페이스’일 것이므로―아마도 끝나지 않는 숙제가 될 것이다. 어떻게 흐르도록 할 것인가. 이것은 비단 공기의 순환, 팬과 에어컨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 내가 해야 할 다음 일은, 무엇이 ‘정크스페이스’인가를 따져 묻는 일 보다는, ‘안티-정크스페이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묻는 일이 아닐까. 왜냐하면 콜하스의 건축이 정크스페이스를 묻는 일에서 멈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멈추지 않고, 흐르도록 하는 것. 일단은 여기서부터.
글_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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