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비틀린 재목에서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1784년에 쓴 코스모폴리스에서의 삶을 다룬 논문에서 일찍이 “인간이라는 비틀린 재목으로 올곧은 것이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고 말했단다. 『짓기와 거주하기』의 저자 리처드 세넷은 칸트의 이러한 주장에 일견 동의하며, 도시계획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은 책을 시작한다. “인간이라는 비틀린 재목”에 대해서 말이다. 나도 그것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맛도 없는 햄버거
드디어 일이 터졌다. 인테리어를 시작한 삼각지 현장은 처음부터 아슬아슬했다. 오래되고 춥고 조그만 건물. 공사 시작 전부터 수도 배관이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터졌다. 난 아직 공사가 시작되기 전이었기에 책임이 없었다. 현장에서 집이 멀고 각자의 업이 있었던 클라이언트들은 물이 터진 건물을 별 수 없이 종일 방치했다. 두 건물 사이에 1mm의 틈도 없이 지어진 이 건물 2층에서 새기 시작한 물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양 옆의 건물 벽으로, 천정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최초로 물이 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옆집 햄버거 집 젊은 사장님이었는데, 급한 상황에 물어물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전화로 아무리 잘 설명해줘도, 이 사람은 계량기를 본 적이 없다. 본 적이 없는 것을 어떻게 찾고, 잠글 수 있을까. 저녁이 되어서야 클라이언트들은 현장에 도착했고, 계량기를 잠글 수 있었다. 이미 물은 양 옆 건물의 오래되고 서걱한 콘크리트들 사이에 흡수되었을 것이고, 급격한 한파에 얼었을 것이고, 봄이 되면 슬금슬금 다시 세어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터진’ 일은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다.
햄버거 사장님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이미 새버린 물, 젖은 천장과 벽을 보며 신경이 곤두 선 햄버거 사장님은 공사를 하며 어쩔 수 없는 소음, 냄새, 먼지와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했다. 두 건물 사이에 얇은 벽을 의지해 간신히 서 있는 이 건물의 특성상, 소음과 냄새, 먼지는 터진 물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자재로 옆집으로 넘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틀 간격으로 사다드리는 모닝커피와 죄송하다는 말 뿐이었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버럭 반장님과 목공 팀을 떠밀듯이 데리고 가 햄버거를 먹이기도 했다.
그렇게 간신히 공사를 진행하던 중 하루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이 터졌다. 햄버거 사장님은 목공사의 시끄러운 소리가 너무 오래 지속되자 현장을 찾아와 좀 쉬엄쉬엄하시라고 했단다. (반장님의 표현에 따르면) 젊은 사람이 어른한테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햄버거 사장님과 통화한 클라이언트에 따르면) 반장님은 그새 버럭을 못 참고 소리를 질렀단다. “내가 맛도 없는 햄버거까지 먹어가며 참았는데!” 나이가 적든 많든 ‘햄버거’ 사장에게 ‘맛도 없는 햄버거’라니. 너무하다. 반장님과 몇 개의 현장을 함께하며 내가 아슬아슬 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진 것이다.
인간이라는 비틀린 재목
나는 반장님의 만행(?)을 클라이언트에게 전해 들으며, 바로 그 칸트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햄버거 사장님에게 열심히 굽신 거리고 조심하던 것을 지켜봐온 이 인간. 그럼에도 자기 성깔대로 질러버리는 이 인간. 이 비틀린 인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이렇게 일이 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현장을 지속하며 내가 느낀 것은 반장님이 한 사람과 오래 호흡을 맞추는 일을 잘 못한다는 것이었다. 몇 달 동안 네 개의 현장을 지나치며 내가 반장님을 통해 만난 목수는 총 7명이었다. 반장님과 싸우고 안 나오는 사람, 반장님의 연락을 피하는 사람, 반장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반장님은 말씀이 엄청 많으시다)…. 뿐만 아니다. 금속이나 페인트 반장님들과 기 싸움을 하고, 대판 싸우기 일보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왜 그걸 그렇게 붙여요?” “왜 그걸 그렇게 칠해요?” 점심에 드신 소주 한 글라스―이것을 반장님은 ‘약’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정말 ‘약’이다―가 아니었다면 그날은 정말 최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인간이 만드는 물건들과 이 인간이 겪은 목수로써의 시간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재미난 상상들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사람은 골라 쓰는 게 아니라 고쳐 쓰는 것”이라던 바로 그 반장님을 골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3회, ‘얽거나 짜서 만드는 방법’을 참조). 난 답답한 마음에 모른 척 반장님께 물었다. “지난번에 목재를 받았는데, 너무 비틀린 재목이 있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반장님은 내 속도 모르고 “나한테 가져오면 되지”한다.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 할 수는 없기에, 내가 해볼 테니 방법을 알려달라니까 비틀린 재목은 그 운치를 잘 살리거나, 그 성질을 잡아줄 수 있는 다른 재목과 섞어 쓰거나, 잘 깎아 쓰면 된단다. 비틀림은 달리 오랜 시간 동안 목재가 건조가 되며 이루어진 결과이므로, 그만큼 잘 건조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 반장님은 내 질문에서 당신 자신이 비틀린 재목이라는 것은 모른 채 나에게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살리거나, 깎거나, 섞거나. 자, 이제 어떡할까.
벼도 너무 익으면 못 먹는 거야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짧은 목수 경험, 삶의 경험으로 반장님이 목재를 다루듯 잘 살리거나 깎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가만히 있으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둘 수는 없었다. 좋든 싫든 내 사람들이 일하는 현장이고,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더 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러나 반장님은 내 말을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버럭 화를 낼지 모른다. 우선 좋은 타이밍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삼각지 현장이 마무리 될 즈음 잔금 결제를 앞두고 반장님을 사무실로 오시라고 했다. 일단 현장 하나 끝냈다는 핑계로 반장님이 좋아하는 우럭 매운탕을 사드렸다. 배도 부르겠다, 약도 먹었겠다. 잔금 결제를 남겨두고 조금 야비해보일는지 몰라도, 이정도면 내가 조금 우위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담배에 불을 붙여드리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부터는 제가 미안해하면 반장님 괜히 나중에라도 한 마디 거들지 마시고, 그냥 넘어가세요. 어차피 나중에 욕먹고 수습하는 건 저 아닙니까.” 예상했지만, 반장님은 한 마디 지는 법이 없다. “그건 맞지. 근데 김 실장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다른 현장을 챙기느라 못 가보아서 알 리가 없다. “오늘 말이야, 일하고 있는데 옆집, 그러니까 햄버거 집 말고 밧데리 집 사장이 갑자기 현장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거야” 젠장 또 일이 있었구나. “들어오자마자 삿대질을 해가며 누가 책임자냐고 묻기에 ‘내가 한 장도 못되는 반장이요’하니까 다짜고짜 고압자세로 자기 집에 물 샜다고 언제 고칠 거냐고 하는 거야” 또 반장님이 한 마디 했겠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한 마디 했지. 아니 어르신이라고 다짜고짜 그리 일하는 현장 문 벌컥 열고 삿대질 하면서 고압자세로 나오면 아랫사람도 기분이 나쁘지요.” 밧데리 사장님은 나에게도 고쳐달라는 말을 여러 번 했었고, 내가 고쳐드리겠다, 죄송하다 여러 번 대답했었다. 이 양반도 참 비틀린 양반이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햄버거 사장에겐 나이도 어린 사람이, 밧데리 사장에겐 어르신이 그러면 안 된다고?
“우리 실장이 여러 번 고쳐준다고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물이 우리 잘못으로 샌 것도 아닌데 우리한테 화를 내면 좋은 마음으로 고쳐줄려는 사람이 좋은 마음이 들겠냐고 했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김 실장 내 말은,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일단 들어본다. “김 실장이 젊은 나이에 화도 많이 날 텐데 고개를 잘 숙이는 건 좋은 일이야. 그치만 자꾸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물 샌 게 우리 잘못도 아닌데 우리 잘못인줄 아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일이 거치니까 옷이 더럽잖아. 사람들은 옷이 더러우면 아랫사람 취급하고, 성깔도 없는 줄 안단 말이야. 그럴 때는 일부러라도 성깔을 부려서 알려줘야지. 우리라고 당신들 괴롭히려고 시끄럽게 하는 거냐고. 당신들 먹고 사는 것처럼 우리도 먹고 살려고 그러는 건데 어쩌겠냐고. 서로 이해하면서 가야지. 우리도 시끄럽게 하고 먼지 나서 죄송하니까 물 샌 거 고쳐주는 거고. 내 말이 틀렸어?” 아니다. 맞다. “내가 분명하게 말했어. 김 실장이 고쳐준다면 고쳐주는 사람이라고. 내가 한 번 더 단단히 당부하겠다고. 그랬더니 고압자세로 나와서 미안하다고. 계단 만든 거 멋지다고 하고 가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우리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잖아. 벼도 너무 익으면 못 먹는 거야 김 실장” 한 마디 하려다가 또 된통 당했다.
열린, 관계들에서 가치를 찾는 일
다음날 현장을 가니, 밧데리 사장님이 슬쩍 와서는 얄밉게도 반장님이 계단을 멋지게 만들었다며 칭찬을 남발한다. 목공 공정이 임무를 완수하고 현장에서 빠진 뒤에도 밧데리 사장님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을 매우 공손하게 노크하고 들어와 이건 뭐냐 저건 뭐냐 물어보신다. 며칠 뒤 햄버거 사장님은 고생하신다고 춥지 않으냐며 커피를 사다주셨다. 여기도 반장님이 뭔가 수를 쓰신 게 분명하다.
세넷은 모든 인간이 비틀린 재목이라는 칸트의 말에 동의하지만, 올곧은 일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는 그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올곧은 물건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비틀린 재목이라는 조건에서 시작해야한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도시는 다양한 성깔을 가진 인간들이 서로 어우러져 때론 싸우고, 때론 화합하는 ‘열린’ 장이다. 세넷이 ‘열린’의 예시로 드는 인도의 네루플레이스(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인도의 용산 전자상가로 유명하다)는 매우 난잡한 시장이고, 거기에선 불법적인 일들도 많이 벌어진다. 그러나 여기선 최근 뉴스에서 화재가 되었던―배달 노동자들의 오토바이를 출입 금지시켜 걸어 다니도록 한―강남의 고급 아파트처럼 거주민과 비거주민을 구분해 통로를 만들고 서로를 차단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는 송도의 스마트시티나 뉴욕의 구글 플렉스(최첨단 시설과 최고의 복지로 유명한 구글의 사옥. 노동 뿐 아니라 여가와 휴식까지 건물 안에서 모두 해결된다)의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형식의 도시 혹은 건축이 사람들을 오히려 소통불능의 닫힌 신체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열린 도시는 활기가 있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에 따르면 이런 곳에서야말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 물건들 뿐 아니라 이웃 간의 협업, 함께 살아가는 윤리까지 말이다.
비틀린. 다시 정리하자면 그건 사람들의 저마다 고유한 성깔이다. 반장님은 분명 비틀린 재목이지만, 목재가 시간이 지나며 그 성질에 따라, 그리고 주변 환경에 따라 건조되고 단단해지는 것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그건 유난히 튀거나 세 보인다고 하여 반장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성깔이 있고,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저마다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대고 내가 아는 예의, 내가 아는 올바름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엄격한 신상조사와, 카드키 보유자에게만 열리는 강남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문처럼 닫힌 방식일 것이다. ‘열린’은 아마도, 비틀어진 반장님이 현장에 만들고, 남겨놓고 간 이 요상한 관계들에서 가치를 찾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밧데리 사장님의 귀찮은 관심과, 햄버거 사장님의 부담스런 커피. 어쨌든 반장님은 관계를 만들지 않았나. 현장을 거쳐 간 일곱 명의 목수들에게 반장님은 굳이 굳이 싫은 소리를 하고도 매번 본인 텃밭에서 캔 고추를 보내고 고구마를 보낸다. 나한테 그러는 것처럼. 그래도 다음엔 말 한마디 정도는 이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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