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자주 만나는 타인
질문자1: 어머니의 관심이 부담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나이가 오십인데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저밖에 없어서 그런지 저에게 되게 잘해주시려고 하고 하루에도 막 대여섯 번 전화를 하셔요. 그 나름대로 저를 사랑하셔서 그러신 거라는 건 알겠는데 저는 그게 너무 집착으로 느껴져요. 또 인제 어렸을 때는 막 우리 엄마가 최곤가 보다 했는데 이제 좀 머리가 굵어지면서 엄마를 시비분별 하면서 ‘어, 이건 정말 아닌데…’ 하는 생각이 일어나면서, 엄마에게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게 되어요. 그래서 그게 너무 화가 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어떻게 해야 될지 항상 고민입니다.
정화스님: 우선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은 머릿속에 시비 분별의 지도를 따로따로 가지고 있어요. 인제 보살님이 엄마를 보고 시비 분별을 하잖아요? 그 시비 분별이 엄마한테 가면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시비 분별을 하는 거예요. 딸이 엄마를 잘 아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많은 부분에. 그럼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엄마가 이런 일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이런 일을 안했으면 좋겠는데"라고 하는 것이 문제에요. 왜냐하면 "해줬으면 좋겠는데…"는 안 일어나서 괴롭고, 안 해줬으면 좋겠는 데는 일어나서 괴로워요. 왜냐하면 엄마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지도에는 딸은 하지 말라는 것인데 본인은 하고 싶고 딸은 하라고 하는데 본인은 하고 싶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안에는 자기 행동에 대해서 크게 상을 받고 벌을 받는 지도가 하나씩 있습니다. 지도가 복잡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딸한테 하루에 네 번 전화하면 엄마로서 상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전화를 하지 않으면 엄마로서 벌을 받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인제 딸은 반대로 그런 전화 안하고 엄마 생각대로 편히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럼 엄마가 안 해주면 나는 좋은 것처럼 느껴질 뿐이에요. 근데 이 둘은 어떤 것이 맞는다고 할 수가 없어요. 살아오면서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에 지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몇 번을 봐서 “아, 우리 어머니 지도는 이렇구나!”라고 하는 것을 빨리 안 다음부터는 내가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왜 안해야 되냐면 그 말을 하면은 그 일이 안 이루어져서 자기가 벌을 받아요. 벌이 아닌데 내 말대로 행동이 안 이루어지니까 “도대체 나는 뭐하는 걸까?” 이렇게 자꾸 스스로 자기의 존재적 무력감을 쌓아 간다. 이것이 깊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좋은 일을 하려다 우울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엄마가 전화를 하면은 그냥 엄마가 가지고 있는 행복 지도를 발현해서 “나한테 지금 전화하는구나.”라고 하고 전화를 안 했으면 하는 생각 자체가 보살님 같으면 옳은 세계지만, 둘이 만나면 그 옳은 세계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엄마가 전화를 안 했으면 벌써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지금도 계속 되는 것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는 그 일을 계속 하실 거라는 거예요. 내가 엄마한테 항상 “아, 전화 좀 안했으면 좋겠네.” 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마다 내가 괴로워. 불교에서는 이걸 뭐라 하냐면 무지라고, 무지. 결과가 뻔히 괴로울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그걸 원해.
근데 본인한테 좀 생각해 보세요. 나도 이런 것이 안 이랬으면 좋겠는데 하는 것도 잘 안되잖아요. 타인한테 그걸 원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어요. 내가 한 2~3년 전에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어떤 분이 한 말로 가족을 좀 정의해 주세요.”라고 요청해서 그래서 내가 자주 만나는 타인으로 여기라고 했어. 자주 만나는 타인이라고. 보살님은 저한테 별로 바라는 게 없잖아요. 우선 들을 만하면 듣고, 안 들어오면 말고. 내가 어떻게 살지 별 관심이 없잖아요. 보살님과 나 사이는 번뇌가 발생할 일이 없어. 번뇌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정해주는데, 이것 자체도 시대나 인연에 따라서 자꾸 바뀌어.
그런데 종로에 차를 몰고 나가면서 동네에 아무런 차가 없으면 자기 혼자 마음대로 몰수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차를 몰 수 가 있는 거지. 내 몸을 내 맘대로 굴릴 수가 있어요. 근데 종로에 차만 해도 얼마나 많습니까. 근데 그 사람들은 다 제멋대로 그렇게 몰고 나오면 뒤죽박죽 돼가지고 종로 한 거리를 가는 데 절대 자기 생각대로 차를 운전할 수가 없어요. 여기서 무슨…. 그런데 거기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차가 갈 것이라고 거기 나온 사람들은 99%는 안 해요. 한 1% 정도는 “도로가 왜 이래? 저 차는 왜 끼어들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 차를 끌고 나온 사람마다 괴로워. 그런데 99%는 그럴 줄 알고 그냥 가는 거예요.
인생은 똑같아요. 각자 차를 운행해 나가는데 엄마라는 차가 오고 남편이란 차가 오고 자식이란 차가 오면서 부딪치는 사건들은 하루하루 달라요. 그 사건을 아, 우리 엄마는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고, 우리 남편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고, 우리 아들·딸은 이렇게 살았으면… 이 말이 굉장히 가족을 이해하는 말인 것은 확실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느냐? 내가 그렇게 당신들 가족을 위해서 온갖 힘을 다해서 사는데 이거, 이것, 이말 좀 안 들어 주냐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말을 그 말만 못 들어줘요. 자 이제, 그럼 오늘부터 가시면 엄마의 지도는 그것이 행복지도예요. 딸한테 하루에 네 번 전화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지도야. 그렇게 그냥 엄마의 행복지도라고 입력하고. 전화를 하고 말고는 엄마의 생각이에요. 그래서 나는 엄마가 전화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하면 돼.
두 번째, 받고 말고는 나의 일이여. 난 엄마 말 안 받고 싶다. 그럼 전화 코드를 뽑아 버리세요.(청중웃음) 엄마가 전화 할 시간 즈음 되면 뽑아. 그래놓고도 절대 엄마에 대해서 내가 불효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돼요.
질문자1: 그런 생각 자꾸 들어요.
정화스님: 그 생각이 아까 하는 것이 뭐냐면 아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즉 자신한테 전화 받으면서 안 왔으면 좋겠네 하는데,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 하는데 일어나 버렸잖아요. 그러니 자기한테 벌 받았어요. 또 그런데 “엄마한테 내가 잘못한 것 같아.”라고 하고 또 자기한테 벌 받아. 전혀 벌 받을 일이 아닌데 스스로 “그 일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고 정의 해 놓은 것이 자신을 벌주는 거예요. 전화 안 받아도 괜찮아요. 저는 여기 전화를 한 이년동안 다 뽑아놓고 안 해. 하든지 말든지 오든지 말든지 안합니다. 물론 저는 인간관계가 너무 적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도 괜찮지만, 가족한테는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지요. 그때도 저한테 뭐 일 년에 한두 번 전화하신 분이 계셨을 거예요. 그래도 다 전혀 이만큼도 미안한 감을 안 가져요. 그렇게 하시라고.
엄마한테 전화 안 받았다고 미안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담에 또 어느 날 기분이 좋아서 받고 싶으면 꽂아놓고 받아. 그럴 때는 엄마가 전화하지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사라져야 돼. 그건 엄마가 할 수가 없어요. 엄마도 딸 말을 자꾸 들으니까 혼자 있을 때는 안해야지 하는데 전화를 보면 걸어버리지. 왜냐면 그것이 행복이에요. 내가 엄마행복을 위해 존재하려 할 필요는 없는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체는 자신을 힘들게 해. 그담에 안 받고 나서 잘못했다는, 잘못한 것이 전혀 아니에요. 잘못한 게 전혀 아닌데 잘못했다고 하면 자기가 벌 받아. 그런 생각만 안하면 돼요. 오면 받고. 받고 싶으면 받고 하되 방금처럼 안 받아도 되가지고 엄마가 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마. 엄마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요. 서로 자기 행복지도대로 사는데 아! 내 지도하고 엄마지도가 똑같기를 바라는데 그 일은 진화과정에서 안 일어날 수 있도록 딱 진화되어 버렸어. 안 일어날 수 있도록! 그렇게 일어나는 것은 절대 있을 수가 없어요. “아 마음 편히 전화 안 받아도 되고, 단 엄마한테 전화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하면 안 돼. 왜냐? 그 말을 하면 말은 권위를 가져야 돼. 그런데 엄마가 안 들어 줘. 그러면 내가 기분이 안 좋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대체. 그러니까 할 수가 없어. 왜냐면 들어줄 수가 없는 말이에요. 엄마 지도에는. 두 분이 다 엄마 역할을 잘하고 딸 역할을 잘하는데 핀트가 어긋나서 서로 괴로울 뿐이에요. 핀트만 바뀌면 아무 죄도 아니여. 혹시 이런 걸 했다고 해서 내가 뭐 엄청난 죄를 지었다는 생각하면 절대 안 되요. 죄가 아닙니다.
질문자2: 저도 아버지의 관심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앞에 분 저의 학인분 말을 듣고 제 질문에 답이 됐어요. 저도 저희 아버지가 전화를 되게 자주 하시는데, 지금 제가 몸이 안 좋다보니까 받기가 싫은 거예요. 옛날에는 제 성격이 그랬나 봐요. 받으면 열심히 응대해 줘야한다고 생각을 했던 거예요. 거짓말도 하게 되고 아버지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려고 기타 등등, 요즘은 제가 몸이 안 좋으니까 전화벨이 울리면 안 받죠. 그러면 미안한 거예요. “이러면 인간이 참 멋있지 않은데.”라고 생각하서 미안해서 다시 전화를 하는 이러는 경우가 있었는데 방금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질문이 해결 됐습니다.
정화스님: 그럼요. 전화나 다른 비슷한 것에 대해서도 요만큼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어요. 아버지는 전화하는 것이 재밌는데 본인은 안 받는 것이 재미있는 거요. 받을 필요 없어요. 기분 좋을 때 받고 그다음에 아버지가 전화 안 하기를 원하지 말아야 돼. 안하기를 원하는 생각은 자신을 괴롭게 하게 돼. 그분은 상관없이 계속하시는 거지.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한테 원하는 것은 가능한 줄이고 지금까지 아버지가 이랬으면 하는 것이 다 없어지면 좋고, 동시에 그런 일을 안 하고 있어,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한테 상을 주면 되고. 네~.
질문자3: 제가 엄마에게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힘이 듭니다.
저도 앞 선생님이 엄마 얘기를 하셔서 갑자기 저도 엄마 생각이 났는데요. 저는 엄마가 좀 많이 유능하셔서 아직까지도 제가 경제적 도움을 받는데, 받으면서도 제가 항상 열등감 때문에 힘들거든요. 그래가지고, 뭔가 보답하고 싶은데 인간적으로 다가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뭔가 항상 마음이 무거워서…
정화스님: 네. 방금 앞에서 한말과 다 똑같아요. 지금 그렇게 잘 살면 모든 부모님은 다 좋아해요. 혹시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돌아가신 조상이 우리 집에 와서 “뭣을 잘못해가지고 우리가 지금 안됐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조상 중에서 자기후손들이나 이웃집후손들을 괴롭게 하려고 하는 조상들은 아무도 없어요. 삶이 바뀌면 생각지도가 엄청 바뀌어 가지고 아무도 살아있는 사람한테는 해코지 안 해요. 그와 마찬가지로 부모님도 다 그래요. 내가 괜히 그런 생각 할 필요 전혀 없고.
두 번째는 우리한테는 앞서 말한 대로 존재는 이래야 된다고 하는 생각이 있어요. 존재는, 불교는 이래야 되는 존재가 없어요. 매일 매일 인연 따라서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만 있어요. 매일 매일 인연 따라서. 그래서 인연 따라서 하면은 그것이 자기 삶의 가장 가치가 있는 일처럼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대놓고 뭔가 가치 있는 존재성이라는 걸 생각하고 아! 그러면 여기에 맞는 것은 굉장한 것처럼 보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열등한 것으로 보는데, 이 기준자체가 거짓말이에요.
그래서 열등한 게 아니고 개인과 사회가 세워놓은 기준이 틀린 거예요. 그러니 맞추려고 할 필요 없어요. 그냥 인연 따라 마음 편히 즐겁게 살면 되요. 즐겁지 않은 이유는 나도 내 뜻대로 존재하기 바라고, 상대도 내 뜻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런 일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생각한대로 세상이 안 되니까 존재가 열등한 것처럼 느껴져. 근데 본래 그렇게 안 되는 거여. 그래서 그런 마음 자체가 아주 좋은 마음이지만, 열등감을 내게 되는 배경은 좋은 마음이지만, 그 근거 자체는 잘못 설정 됐어요. 앞으로 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쓸데없는 것 가지고 내가 그런 느낌을 이끄는구나.”하고, 자기한테 그 느낌의 이유를 설명해줘요. 그러면 돼요.
정리_목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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