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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불교가좋다] 타인에게 좋은 말 들으려고 하지마세요

by 북드라망 2022. 8. 3.

타인에게 좋은 말 들으려고 하지마세요

 


질문자1: 내면의 힘을 어떻게 기를 수 있나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가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제가 외부에 많이 휘둘리고 좀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좀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을까요?

 
정화스님: 다른 사람한테 좋은 말 들으려고 하지마세요. 그냥 만만한 거예요. 외부에 자기가 휘둘린다는 것은 그 사람이 거기를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보게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냥 만만한 거예요. 그래서 너무 다른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같이 있는데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안 하면 되요. 아까 몇 년간 지내다가 끊었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끊으면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거예요. 지금 자신이 스스로를 만만하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음.

그래서 이것을 연습할 때에 예를 들면 김대중 대통령은, 독재자들은 우리를 만만한 사람으로 만드니, 만만한 사람이 안 되려면 연습을 해야 되는데 벽에다가 대놓고라도 “그건 아니요” 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 말을 했어요. 옛날 어려운 시대 였잖아요. 전두환 시절에 대놓고 앞에서는 뭐라고 말 못해도 방에서라도 “당신 아니요”라는 연습을. 이렇게 하면 안에서 아까처럼 나를 대하지 않는 기운들이 형성 돼. 휘둘리지 않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그러니까 착하고 좋은 것은 독재자들이 바라는 상이고 대체적으로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독재자들이 원하지 않는 삶이예요. 우리 안에서는 그런 것이 상당히 많아요. 자기도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가 경제적 활동이나 생존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린애기가 처음에 오면 낯을 안 가립니다. 누구라도 좋아해요.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중에 누가 나를 케어할 줄 모르는 상황이라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다 맞춰야 돼. 그런데 몇 살쯤 지나면 엄마, 아빠 등 특정한 사람만 말고 낯선 사람은 싫어하고 울곤 합니다. 독재자들은 우리한테 죽을 때까지 그렇게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냥 자기를 좋아하게. 우리 안에는 알게 모르게 꼭 정치적 독재만이 아니더라도 정치, 경제, 사상, 종교 뭐 등등 해가지고 만만하도록 되어있는 요소가 있어요. 좋은 사람인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만만한 사람이 된 것이니까 좋은 사람이 될지언정 만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요. 그랬을 때는 자기가 자기로 살 수 있는 생각과 능력을 길러서 힘을 비치해야 해요. 그런데 그것이 생각이 그냥 쉽게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인문학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다른 말로는 자기의 향기와 무늬를 만드는 생각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 인문학 이예요. 남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렇게 한번 살아봐. 그럼 네, 너의 향기가 날거야.”라고 자꾸 말해주는 거예요. 근데 그 사람 말을 나는 100% 다 알진 않잖아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공부해 가지고 만만하지 않는 자기 무늬를 만드는 좋은 사람이 돼야지 그냥 그렇지 않으면 평생 휘둘려요 평생. 그러면 아무도 보존 안 해줘요. 보호 안 해줘요.


질문자2: 전 괜찮은데 주변에서는 무력하게 보는 것 같아요.

저는 아까 말씀하신 데 비하면 굉장히 게으른 거 같이 살고 몸도 약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까 앞에 분이 말씀하신 거에 비하면 정말 무력하다. 뭔 재미로 사나. 아침에 눈뜨면 뭐 좀 누워서 음악 좀 듣고, 그 다음에 일어나서 체조 좀 하고 스트레칭 하고, 뭐 간단하게 샐러드 같은 거 먹고, 반찬 점심 약간 하고 장 볼 거 있으면 장보고, 산책하고, 그게 생활의 다거든요. 물론 가끔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나가기도 하지만 절대 일부러 약속을 만들지도 않고, 꼭 가야 될 데 오늘 같은 날엔 이렇게 나오지만 별다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음악 연주 듣는 것 같은 것 좋아하고 남이 보면 무력할 것 같다고 느낄 것 같은데 저는 굉장히 좋거든요. 그 대신 남들은 참 많은 일을 하는 거 같은데 저는 좀 이게 일을 별로 안하는데도 시간은 잘 가고 그냥 편안히 앉아서 그냥 뭐 염불하거나 책을 보거나 그런데도 전혀. 그냥 밥 먹고 생리적인 것만 해결하고 그런데도 굉장히 행복해요. 남이 보면 “굉장히 무력하다.” 이렇게 살다 아까 스님이 빨리 죽는다고 하셨는데 빨리 죽나요? (모두들 웃음)


정화스님: 무력감을 남이 느끼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내가 내 인생을 무력하고 우울하게 느끼느냐가 자기 삶을 정하는 것이지 옆에 사람은 나를 몰라. “너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아?”라고 하는 말이 틀린 말이에요. 본인이 느끼는 것이 자기 삶이지 다른 사람이 느껴주는 것이 자기 삶이 아니에요.

질문자2: 굉장히 무기력하고 우울하다고 오랜 시간 느꼈었어요.

정화스님: 그럼 그때는 무력하고 우울한 거고 그때 당시는. 지금은 안 그러면 지금 안 그런 거고. 둘 중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때 느끼는 것이 그것이 답이고 지금 느끼는 것은 지금 그것이 답이에요. 지금도 만일 무력하고 우울하게 느껴지면 빨리 무언가 조치를 하면 되고 지금 안 그러면 자기 삶을 잘 사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뭐라고 평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그것이 내 인생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보는 인생이지. 아주 친한 친구가 “너는 이렇게 살아 줘.”라고 말하는 것은 전부다 오버에요. 들어줄 수도 없고 그 사람의 판단이 나에게 맞지도 않고. 지금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사느냐가 자기 삶이니까 그거와는 상관없는 다른 것이지. 그래서 지금 그렇게 다른 사람이 보면 천하의 무력한 사람인 거지만 나는 안 그렇다 그러면 안 그런 거 에요. 거기에 대해서 아무 걱정할 이유가 없어요.


질문자3: 화를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요?

살다보면 똑같은 상황이 자꾸 일어나잖아요. 근데 어떤 때는 아 그 상황을 굉장히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받아들여 가지고 핸들링을 하는데 어떤 때는 굉장히 화가 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내가 화가 난다는 걸 아는데 그게 컨트롤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에 끄달려 가는 거예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정화스님: 지도수정을 빨리빨리 해야 되요. 같은 상황이라고 봤는데 실제는 그 안에 내가 어떤 양상으로 보고 바라는가가 달라요. 이쪽 상황에는 a코드가 움직인 거고 이쪽은 b코드로 움직였어요. 내가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안에서 움직여요. 우리가 지금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0.5초전에 내 무의식이 내 말을 다 만들어줘요. 그래서 지금 내가 말을 하는 거요. 지금 생각과 말의 사이가 0.1초차이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 게 아니고 늦어도 0.5초 빨라도 0.2초 안에 안에 있는 무의식의 채널이 계속 움직여가지고 지금 제 말을 만들어주면 내 의식이 거기에 집중에서 이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딱 보는 순간 안에서 a코드가 움직였냐, b코드가 움직였냐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게 다른 거예요.

그래서 같은 상황이든 아니든 자신을 괴롭게 하는 코드로 안가는 훈련을 해놓지 않으면 안에서 그것이 움직여가지고 별 상황도 아닌데 불쑥 그렇게 나와. 특히 인제 지나놓고 보면 오해라고 하는 것이 많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오해 하는 것이 아니고 훈련이 되가지고 안에서 “그렇게 반응해”라고 해요. 생각에 내부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이미지에 따라서 말과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거예요. 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이 만들어요. 거의 대부분. “내가 어떤 기억들의 통로를 강화시켰냐”에 따라서 지금을 가리켜줘요. 지금 현재를 사는 것처럼 보여도 화를 잘 내는 고속도로를 잘 내 논 사람은 화날 일이 아닌데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안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상대는 “아 왜 어제는 이러고 오늘은 이러고?” 이래가지고 더더욱 갈팡질팡해가지고 가까운 사람은 또 혼란스러운 것이지. 그럼 거기다 대놓고 “왜 넌 그러냐?”고 하면 더 화가 나는 것이지.

그러니까 빨리 “그냥 각자인생 각자 알아 사세요.”라고 하고 이 말이 이영애씨가 나왔던 영화 “너나 잘하세요.”있잖아요. 그렇게 보는 연습이에요. 그렇게 안 해놓으면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코드를 만들 때 그렇게 막 만드는 거예요. 자기는 선이라고 하는데 상대한테는 괴로운 일이 부지기수로 많아요. 부모자식 간에도 자식은 엄마가 하는 게 선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저기 엄마는 5개월 동안 같이 갈까 말까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말을 들은 딸이 기겁을 하지.

평소에 저절로 생각이 일어나는 코드를 어느 쪽으로 도로를 크게 낼 것인가를 연습하는 것이 기도해요. 그중에 하나가 가족 간에 볼 때는 바람 없이 그냥 좋게 생각하고 보기예요. 바람 없이. 바람 있으면 좋게 안 보아져요. 바람이 없어야 좋게 보기가 쉬워요. 그럼 내가 좋게 보면 좋은 것은 자기한테 상을 준다는 말이에요. 괴로운 것은 자기한테 벌을 준다는 말이에요. 안에서 선택지가 다 그렇게 돼있어요. 호르몬 등이 상을 받을 때 나오는 호르몬과 벌을 받을 때 나오는 호르몬이 달라요. 일이 옳고 그른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닌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요.

 

 


불교에서는 근본적으로 시비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물어보고 옳고 그른 것이 일반적으로 다 옳다고 하는 것은 대충 옳을 거고 일반적으로는 다 대충 그래요. 그런 거는 시비가 안 붙어요. 대충 시비는 내가 보면 내가 옳은 거고 여기는 이게 옳은 거예요. 그러면 안 정해진 거죠. 그것은 자기가 정해진 지도가 옳은 것이 되는 거예요. 이것 가지고 24시간 싸워도 결론이 안나. 그러면 더 나아가면 시비를 가려서 사건사고를 판단하지 않는 의식영역도 있어. 우리는 거의 그걸 경험하지 못해요. 시비를 내려놓지 않으면 이런 영역을 거의 경험하지 못해.

또 다른 영역이 또 있어. 이런 것은 시비를 내려놔야만 경험할 수 있는 자기 삶의 일부입니다. 아주 깊은 곳에서 항상 작용하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삶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자기 삶처럼 느껴보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 거예요. 헌데 시비가 진화상에서 젤 늦게 나왔어. 근데 힘은 또 세. 그래서 너무 거기에 휘둘리지 말고 아까처럼 같은 상황인데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그것이 나오도록 훈련을 자주해줘요. 그래서 이쪽 이 사람을 봤을 때 기분 나쁜지 아닌지 알잖아요. 그럴 때 빨리 휴전을 하는 거야. 자기 자신하고 휴전해서 잠깐 피했다가 내려오면 다시 이렇게 해서 거길 감당하기 어려우면 휴전을 자꾸 해. 자기가 자기한테 휴전을 자꾸 해야 돼요.

그래서 그것을 옛날 문헌에는 “깊은 호흡을 세 번 하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 심리학책에서는 90초만 세라. 90초만.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쁜 호르몬이 나와서 기분 나쁜 심리상태를 만들어주는데 그 호르몬이 사라지는 시간이 90초에요. 기분 좋은 호르몬이 나오면 기분 좋은데 그것도 90초만 머물러요. 그래서 90초만 딱 있으면 기분 나쁜 상태에서 발전이 안돼요. 근데 기분 좋은 것은 기왕이면 늘 생각하면 시간을 늘릴 수 있잖아요. 기분 안 좋은 것은 90초간 “90초 손님이 오셨군요.”라고 하면 전파가 안 돼요. 그래서 어떤 쪽으로 훈련할 것인가는 좋은 것은 기쁜 마음으로 손님이 오래 남기를. 그렇게 기분 좋아하면 돼. 안 좋은 것은 가만있어서 가기를 기다려야 돼요. 그 연습을 해야해요. a, b의 문제가 아니고 그걸 맞이하는 무의식층으로 90초. a냐 b냐…그래서 b가 온 순간 아 저분이 안 좋은 손님이 오셨군요. 90초만 우리 집에 있다 가세요. 이렇게 생각 하고 가도록 훈련을 해야 돼요. 그러면 돼. 그래요.

 


글_목요대중지성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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