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3) - 두터운 삶과 얇은 삶
: 태어나면서 아는 성인도 배워야 한다
조금 샛길로!
2020년은 누가 뭐라해도 코로나19의 해입니다. 코로나의 대단한 점은, 제 생각엔, 어떤 단절 그것도 급격한 단절입니다. 올해 초 코로나가 시작될 때만 해도 아마도 그리고 아무도 올 한 해가 이렇게까지 코로나19에 좌우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나온 몇 달을 돌이켜보면 정말 내가 겪은 현실이 맞나 싶게 예기치 못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의미심장한 건, 아마도 그리고 아무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일까요. 당연하게도, 아무도 내일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지 못한다는? 맞습니다. 아무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제까지도 우리는 그럼에도 내일이 오늘과 같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설마 어제까지 하던 이것이 내일 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라도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코로나의 해는 우리로 하여금 그 당연함을 무너뜨렸습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어떤 ‘전문가’의 단언처럼! 과거와 단절되었다는 말은 미래와 단절되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얼마전 퇴근(!)길 지하철에서 ‘코로나 시대…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 (워딩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쩌구 하는 광고를 들었습니다. 작년까진 우리가 여행을 떠났고, 이제는 여행이 우리를 떠났다, 뭐 그런 말 같았는데, 듣는 순간 재밌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는 저도, 코로나로 여행이 저를 떠나기 전까지는 종종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지금으로선 작년 겨울 여행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여행이 당분간, 어쩌면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했다면(최소한 한 해 가까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식의) 제게 그 여행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유배는 여행이 아닙니다. 당연하게도 유배지의 24시간은 평소의 24시간과 다릅니다. 그 이유는 시공간이 ‘질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하루가 내일의 하루를 기대할 수 없다면 그 하루는 같은 24시간이라도, 아니 그순간 이미 다른 24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용장에서 양명이 보낸 시간은 평균적인 시간으로 환산하면 채 2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의 길이는 길거나 짧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굵거나 얇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두터운 삶 혹은 얇은 삶이라고 할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확실히 양명의 삶은 그 표면적 삶의 시간을 넘어 매우 두텁습니다. 59년의 삶, 2년여의 용장생활… 이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이번 장 모두에 입지, 근학, 개과, 책선 등으로 제시된 양명의 <용장의 제자들에게 가르침의 조리를 밝히다(敎條示龍場諸生)>라는 글을 번역해서 실었습니다. 용장이라는 야만의 땅에서 양명은 배우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왕양명과 양명학 혹은 <전습록>은 그 자체로 ‘공부’가 주제라고 할 만큼 공부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습니다. 어디에서든 공부(혹은 배움)에 관한 주제가 빠지지 않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병무(兵務)로 바쁜 와중에도 제자들의 방문을 받으면 제일 먼저 ‘요즘 공부가 어떠한가?’ 라고 묻는 식입니다. 맡은 직분 혹은 임무에 따라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르기도 하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흉흉해진 지역 사회에 가장 먼저 학교를 재건하곤 했습니다. <전습록> 중권에 나오는 <아동 교육의 대의를 교사 유백송 등에게 밝히다>, <학교의 규약> 같은 글은 이러한 양명의 뜻을 잘 보여줍니다. 심지어 병이 깊어져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도 자신을 방문한 제자에게 양명은 근래 공부가 어떠한지 묻습니다. 저는 삶에 대한 왕양명의 이러한 태도가 그의 삶을 두텁게 만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고(傳) 익힌다(習)는 것.
양명은, 아니 유학은 왜 그렇게 배움을 강조하는 걸까요?
사람 중에는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이 있고(生知), 배워서 아는 사람이 있고(學知), 힘들게 노력해서 아는 사람(困知)이 있습니다. 나면서 아는 사람은 편안히 그것을 행하고(安行), 배워서 아는 사람은 이롭게 여겨서 그것을 행하며(利行), 노력해서 아는 사람은 힘써 행합니다(勉強行). 지행(知行)이 곧 공부입니다. 이들을 각각 성인, 현인, 학자로 말하기도 합니다. <중용>에 나오는 말입니다. <중용>에서는 혹은 태어나면서 알고, 혹은 배워서 알고, 혹은 노력해서 아는데 그 앎에 이르러서는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행합일이라고 하면 성인은 태어나면서 이미 아는 사람이고 앎은 행이니 그대로 아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니다. 요컨대 굳이 더 배울 것도 배워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인은 배움이 (필요)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맹자>가 ‘누구나 배워서 요순에 이를 수 있다’고 한 이래, 주자를 거치면서 배워서 성인이 되는 길을 찾는 것은 유학의 기본 구도이자 전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배워서 이르고자 하는 성인은 혹은 그런 성인이 되면 배움이 필요없게 되는 모순이 생깁니다.
양명은 말합니다. 성인은 비록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그 앎을 편안히 여겨 행하는 사람이지만(생지/안행) 그 마음은 감히 스스로 자부하지 않기 때문에 기꺼이 애써서 알고 힘써서 행하는 공부(곤학/면강행)를 한다고.(<전습록>291조목). 이 말은, 안다는 것(知)과 행한다는 것(行) 이 두 글자가 바로 공부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배워서 알고 이롭게 여겨 행하는 사람은 또 그 자리에서, 노력해서 알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각각 공부하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지=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인은 스스로 성인이라고 자부하지 않기에, 기꺼이 스스로 노력해서 알고자 하고 기꺼이 힘써서 행하는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사실은 그럴 수 있기에 성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노력해서 알게되고 힘써 행해야하는 사람이 스스로 태어나면서 알고 편안히 여겨 행하는 것을 도모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인이 성인이 되는 것은 스스로 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노력해서 알고, 기꺼이 힘써 행하려는 마음을 다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행합일은 단지 지금 나의 앎이 어떠한가라거나 나의 행이 나의 앎을 지시한다는 가늠쇠 정도의 역할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지행합일은 그 자체로 지금 나의 ‘앎=실행’이 바로 나의 공부 자리임을 말해주는 척도입니다. 용장의 깊은 산골로 가서 살게되었다면, 성인께서도 역시 나날이 기끼어 노력해서 알고자하고 기끼어 힘써 행하는 삶으로 표현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거꾸로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을 한 번 돌아보면 됩니다. 혹시 내 주변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처럼 굴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늘 편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쩌면 성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스스로 그런 자신에 자족한다면 그는 성인이 아닙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기꺼이 배우려는 삶인가 아닌가에 있습니다. 혹시 내 주변에 언제나 기꺼이 노력해 알고자 하고, 언제나 기꺼이 힘써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성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저도 모르게 성인이기도 합니다. 멀리 볼 것이 아닙니다. 지금 거울 앞으로 가서 거기 보이는 사람을 잘 관찰해보기 바랍니다.
글_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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