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68혁명,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밑줄긋기

『68혁명,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밑줄긋기

정리하자면 이미지는 우리에게 느닷없이 달려들고, 우리를 뒤흔들고, 사유하게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들, 걸러 텔레비전이 쏟아낸 그 이미지들은 정확히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전쟁을 실제로 경험했건 아니건,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있건 아니건 모든 사람이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이미지에 습격당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뭔지, 그것이 무엇이기에 나를 굳어 버리게 만드는지 사유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이 전쟁의 ‘진실’과, ‘도덕’에 대하여 사유할 것을 요구받는 것입니다. (「두번째 강의_베트남을 기억하라 : 미디어, 이미지, 진실 그리고」, 81쪽)
1960년대를 장악했던 뉴미디어 컬러텔레비전은 이제 천천히 구시대의 유물로 밀려나며 자리를 내어 주는 중입니다. 대신 그 자리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다양한 영상 플랫폼, 그리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1인 미디어들이 장악해 나가고 있죠. 지금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혼재된 채 하루하루 판도가 변화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미디어들이 지향하는 바는 모두 제각각이에요. 하지만 유일하게 한 가지만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공통적인 가치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실’이라는 가치입니다. (「두번째 강의_베트남을 기억하라 : 미디어, 이미지, 진실 그리고」, 107쪽)

대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 앞 대패 삼겹살집에서 추가로 주문한 삼겹살 2인분을 건네어 받는 순간, 가게 곳곳에서 탄성, 또는 비명 비슷한 것이 터져 나왔다. 영문을 모르던 그제서야 사람들의 시선을 좇아 텔레비전 화면을 보았다. 마치 영화처럼, 무역센터 빌딩이 불타고 있었다. ‘911 테러’였다. 그 일이 있고난 다음에야 나는 ‘미국’에 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날의 그 ‘이미지’가 사유의 조건을 만든 셈이다. ‘텔레비전 시대’ 이후로 어쩌면 ‘역사’는 그렇게 이미지화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지’는 어쨌건 하나다. 다만 나의 의문은, 하나의 이미지에 대응하는 단일한 ‘진실’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68혁명도 그렇고) ‘혁명’은 어쩌면 여러 진실이 힘겨루기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도대체 진짜 ‘진실’이란 무엇인가?

 

 

공통의 사유를 성찰한다는 것이 무가치해진 상황에서, 그리고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감정적 대중 앞에서 앎은 무의미한 탁상공론으로 여겨집니다. 다른 한편으로 앎은 분열된 진실의 양상으로 인해 어떠한 의견과 입장의 대립이 발생했을 때, 그 대립의 원인을 ‘당신이 무지한 탓’, ‘당신이 진실을 모르는 탓’이라고 몰아세울 때 동원됩니다.(「두번째 강의_베트남을 기억하라 : 미디어, 이미지, 진실 그리고」, 112쪽)

68운동의 큰 줄기였던 베트남 반전운동에서 카메라를 들고 전장에 뛰어든 종군기자들의 사진이 포착해 낸 단일한 ‘진실’은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카메라로 각자의 ‘진실’을 만들어 내는 중이다. 모두가 ‘진실’을 알게 된다면 세상이 바뀔 거라는 믿음은 이렇게 망가지고 있지만(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언어와 미디어와 ‘진실’에 대한 사유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마틴 루터 킹이 민권법안을 얻어 냈을 때처럼 운동을 통해서 어떤 성과를 얻어 내고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았을 때, 그 극적인 순간의 기억에 기념비처럼 매달릴 때, 이미 지나온 길 위에 멈춰 서서 망부석처럼 과거와 미래를 규정할 때, ‘신념’이란 이름으로 ‘되기’를 멈출 때, 혁명의 힘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강의_흑인 ‘되기’와 소수자 운동의 길」, 170쪽)

‘운동’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누군가는 성과 위에 멈춰서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리스펙트’는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이 멈춰 선 곳이 ‘신념’의 자리라고 확정하는 순간 ‘망부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68혁명은 ‘이기의 시대에 일어난 되기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너는 ~이어야 한다”는 명령에 맞서, 그 명령에 반해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한 사람들의 ‘운동’이었다는 것이지요. ‘이기’는 존재를 정의함으로써 국면을 확고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가능성을 제약합니다. ‘되기’는 불확실 미래를 향한 도약이고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를 열게 하는 거고요. (「세번째 강의_흑인 ‘되기’와 소수자 운동의 길」, 168~16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성과를 이루어냈을 때, 마틴 루터 킹이 민권법안을 얻어냈을 때처럼 운동을 통해서 어떤 성과를 얻어내고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았을 때, 그 극적인 순간의 기억에 기념비처럼 매달릴 때, 이미 지나온 길 위에 멈춰 서서 망부석처럼 과거와 미래를 규정할 때, ‘신념’이란 이름으로 ‘되기’를 멈출 때, 혁명의 힘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세번째 강의_흑인 ‘되기’와 소수자 운동의 길」, 170쪽) 

5월이면 오월의 노래가 생각나는 것처럼, 68혁명은 5월 이 때에 딱 맞는 ‘역사적 테마’다. 운동의 역사로서 68혁명에 대한 평가는 일정 정도 매듭을 지었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 교훈으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사는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에게 ‘되기의 혁명, 68혁명’은 미래에 대한 다른 시도 희망으로 읽힐 수 있겠다.

 

이듬해, 1968년이 되었고, 아렌트는 미국과 유럽을 집어삼킨 학생 혁명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무엇이 학생들로 하여금 반란과 폭력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했는지 이해하고자 했고요. 2년 뒤에 아렌트는 이 연구를 토대로 『폭력의 세기』를 집필합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시어터 포 아이디어’에서 두 명의 젊은이와 벌였던 토론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노라고 밝힙니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권력’과 ‘폭력’을 구분합니다. 인간의 공동 행동 능력에서 만들어지는 ‘권력’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대립시키며 권력이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할 때 이미 그 권력은 파멸로 향하고 있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여전히 아렌트는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강한 경계를 드러내고 있는 거죠.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시어터 포 아이디어’에서의 순간들을 직접 언급하며 특정한 경우들에는 폭력이 유효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네번째 강의 _ ‘꼰대’들의 혁명, ‘핏덩이’들의 혁명」, 193쪽)

"나치즘과 스탈린주의가 세계와 그녀의 삶에 남긴 흉터"에서 비롯된 한나 아렌트의 폭력에 대한 경계는 그녀가 평생 동안 전체주의를 연구하고 "폭력과 테러에서 비롯하는 정치를 넘어선" 새로운 정치를 발견하는 데로 향하게 했다. 이런 강한 경험과 오랜 연구에도 아렌트는 젊은이들과의 토론에서 받은 문제제기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실감한다. 이것은 그저 존경이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절절한 마음과 지성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예전에 당시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쓴 '68혁명'에 관한 책들을 보았을 때 나는 '68혁명' 속 젊은이의 한 사람이 되어 읽었던 것 같다. 이번에 나온, 나보다 한참 젊은 필자가 쓴 <68혁명, 인간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를 보며 내가 '68혁명' 속 '꼰대'의 한 사람이 되어 읽고 있음을 알았다. 바라건대, 아렌트의 태도처럼 지나온 세월의 경험이 가져온 지금의 내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잊지 않기를, 젊은이들의 반론에 귀 닫지 않고 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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