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노자의 목소리, 시인의 언어와 철학자의 언어(4) 『노자』의 판본_2

노자의 목소리, 시인의 언어와 철학자의 언어(4)

『노자』의 판본_2 (이전 글 보기)

 

  

앞에서 세 종류의 판본을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노자』의 판본을 얘기하려면 다음에 설명할 두 판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논의 편의상 왕필본을 중심에 두었는데 백서본과 죽간본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앞의 주석본을 판본으로 간주한 것이지 이 두 판본이 아니었다면 노자의 판본을 따로 거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고고학의 중요한 성과인 두 판본이 발굴되면서 현재 통용되는 텍스트들을 ‘판본’으로 보는 관점이 성립했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언급한 상이본도 고고학상의 발굴로 이 부류에 넣어야 온당할 것이다.)   

 

 

 

 

④ 백서본(帛書本)

백서노자(帛書老子)라고도 불린다. 1973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장사(長沙)부근 마왕퇴(馬王堆)라는 곳에 있는 한나라 때의 묘[漢墓]에서 발굴된 문헌이다. 『노자』 외에도 『백서주역』(帛書周易), 『황로백서』(黃老帛書) 등 중요한 문헌이 함께 출토되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비단[帛]에 씌어진 형태라 백서(帛書)라 부른다. 한묘 축조연대가 한나라 문제(文帝) 이전(B. C. 168년)이라는 것이 확인되어 그때까지 알려진 판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판명되었다. 백서본은 갑본(甲本)‧을본(乙本)이라 칭하는 두 판본이 발견되었는데 갑본이 을본보다 더 고본(古本)이다. 갑본‧을본 두 판본은 덕경(德經)이 도경(道經)보다 먼저 놓여 있어 현행본 도경‧덕경의 순서와 반대인데 이것이 『노자』의 원래 형태와 가깝다는 예측을 하게 한다. 글자 차이가 있기는 하나 왕필본을 기준으로 갑본‧을본을 모두 통행하는 81장으로 각각 재구성하면 왕필본과 큰 차이가 없다. 이 점 왕필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중요한 글자 차이를 간과할 수 없다. 3장의 예를 들어 보자.

 

A. 왕필본: 爲無爲, 則無不治. (무위를 실행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B. 백서 을본: 弗爲而已, 則无不治矣. (하지 않을 뿐, 그러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백서 을본의 경우 弗爲而已라 해서 爲無爲라고 한 말과 차이가 있다. 의미상으로 볼 때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왕필의 경우 무위無爲를 위爲의 목적어로 두어 무위를 개념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무위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행위대상으로 의미가 바뀌기 때문이다. 또 백서 을본에는 짧은 문장 안에 而已와 矣라는 허사를 써서 실사實辭로만 의미를 구성한 왕필본과 문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 준다. 문체를 보면 후세로 가면서 허사가 발달해 미묘한 뉘앙스 구사에 능숙해진다는 일반론은 그저 추론일 뿐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증명된다.

하나 더 보자. 30장이다.

 

A. 왕필본: 師之所處, 楚棘生之; 大軍之後, 必有凶年. (군대가 있던 곳에는 가시덤불이 생기고 대군이 일어난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된다.) 

B. 백서 갑본: 師之所居, 楚棘生之. (군대가 있던 곳에는 가시덤불이 생긴다.)

 

왕필본은 전쟁의 후유증에 대한 리얼한 묘사다. 단순 진술이 아니다. ‘大軍之後, 必有凶年’이라는 여덟 자를 어떤 기록자가 대구로 더 집어넣어 갑본보다 전쟁의 리얼리즘을 강화시켰다.

 

간단한 예증 몇 가지로 왕필본과 백서본의 우열을 논한다든가 무엇이 고본이 원본에 가깝다든가 하는 식으로 가치평가를 할 필요는 없다. 죽간본을 검토한 뒤에 판본에 대한 얘기를 정리하도록 하자.

 

 

⑤ 죽간본(竹簡本)

백서본이 발견되고 20년 후 후베이성[湖北省] 형문(荊門)시 곽점(郭店)에서 발견된 조각글이다. ‘곽점노자’(郭店老子)라고도 불리고 간본(簡本)으로도 약칭되는 최고(最古)의 판본으로 모두 71매로 이루어졌다. 현행본 노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갑조(甲組)‧을조(乙組)‧병조(丙組) 등 3조(組)로 분류되었다. 

 

죽간본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눈에 띈다. 기록연대로 보면 판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 노자의 성서(成書)연대가 생각보다 빠른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공자보다는 늦다.) 편집 측면에서 보자면 죽간본은 현행 노자의 편재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노자 편집과 해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내용에서 보면 현행 노자와 일치하는 구절이 포함되었기에 죽간노자(竹簡老子)라 불리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존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죽간본이 옛 초나라 땅이기 때문에 초나라의 글자로 기록되었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문자도 통일시켰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는데 통일 이전 남방과 북방에서 다른 계열의 글자를 썼음을 실물로 볼 수 있어 문자학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증거가 된다. 

 

죽간본을 현행본처럼 재배열하면 차이점을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19장을 예로 들어본다. (죽간본의 초나라 문자는 통용되는 한자로 표기하기로 한다.) 

 

A. 왕필본: a. 絶聖棄智, 民利百倍. b. 絶仁棄義, 民復孝慈. c. 絶巧棄利, 盜賊無有.

B. 죽간본: a. 絶智棄辯, 民利百倍. b. 絶巧棄利, 盜賊亡有. c. 絶僞棄慮, 民復孝慈.

 

문장 패턴은 동일하다. ‘무엇을 하라, 이런 변화가 생길 것이다’라는 문장의 반복이다. “성스러움을 끊어라, 지혜로움(지식)을 버려라. 백성들의 이익이 백배가 될 것이다.” 절絶과 기棄라는 말로 ‘끊어라’ ‘버리라’라고 강하게 말한다. 왕필본의 c는 죽간본에서는 위치가 바뀌었을 뿐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왕필본의 a, b에 보이는 성(聖), 지(智), 인(仁), 의(義)라는 말들. 특히 인의(仁義)는 유가(儒家)의 핵심 이념이었기 때문에 왕필본을 볼 때 노자가 유가에 반대하는 명백한 증거로 이 구절이 운위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놀랍게도 죽간본에는 인의라는 말 대신 ‘교리’(巧利)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교리는 도적과 짝이 되는 문장구조로 볼 때 도적들이 탐내는 교묘한 기구, 이익이 되는 물건으로 볼 수 있겠다. (죽간본의 c에 보이는 절위기려絶僞棄慮는, “거짓을 끊어라, 생각을 버려라”로 보아도 되지만 위僞가 려慮와 짝이 되는 말이라는 점에서 려慮는 거짓된 생각, 즉 사기[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죽간본을 보면 노자와 유가를 대립관계로 혹은 적대적인 비판관계로 보는 시각이 후대에 조작된, 과도한 학파 분별적 사고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죽간본에서 보는 한 노자는 인의(仁義)에 반(反)하는 사고로 접근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이런 방식의 비교가 가능한 것이 새로운 출토본에서 얻는 소득인 셈이다. 

 

이제 왕필본, 백서본, 죽간본에서 모두 볼 수 있는 32장의 일부를 들어 각 판본의 차이를 보도록 하자.

 

A. 왕필본: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B. 백서본: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弗敢臣.

C. 죽간본: 道常無名, 樸雖小, 天地弗敢臣.        

  

해석이 까다롭다. 전체적인 의미를 보면, ‘도(道)는 이름지을 수 없는 것이어서 항상 이름이 없으니 통나무[樸]를 도의 구체적인 이미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가능성으로서 통나무를 제시한 것인데 통나무라고 하니 작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樸雖小] 도와 마찬가지로 미묘한 것이어서 천하의 그 무엇도 신하로 삼을 수 없는 존재다’, 이 정도로 새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죽간본에서는 앞의 두 판본이 ‘천하’(天下)라고 한 것을 ‘천지’(天地)라고 했다. ‘천하’와 ‘천지’는 차이가 있는 말일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천하는 온 세상(the world)이라는 뜻이지만 천지는 우주(the universe)라는 의미망을 가졌으므로 좀 더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백서본은 ‘불감’(不敢)이라는 말을 써서 ‘막능신’(莫能臣)이라고 한 왕필본보다 道=樸의 의미를 도드라지게 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

 

 

한비자, 그리고 정본(定本)이라는 문제

 

이상 몇 가지 단편적인 예를 통해 판본간의 차이를 일별해 보았다. 충분하지 않지만 이 글의 주제가 판본 비교가 아니므로 이 방면은 사계의 전문가에게 맡겨 두는 게 좋겠다. 주석본을 얘기할 때 주석을 비교하게 되면 판본간의 차이가 뚜렷하게 인지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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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본을 얘기하면서 참고해야 할 중요한 책이 있다고 앞에서 말을 꺼낸 적이 있다. 『한비자』(韓非子)가 그 책이다. 『한비자』의 「해로」(解老)와 「유로」(喩老)는 노자에 대한 최초의 주석이라는 면에서 의의가 큰데 한비자가 본 『노자』 텍스트가 백서본과 거의 동시대라는 사실이 관심을 끈다. 현행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德道經)의 순서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백서본과 동일한 전승의 텍스트였을 것이라 학자들은 추측한다. 「해로」(解老)는 덕경의 1장(현행본 38장)을 해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자』 전편의 해석이 아니고 완전히 소화한 『노자』를 자신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해것한 것이 특징이다. 「유로」(喩老)는 자유로운 해석과 달리 비유를 들어 『노자』를 설명한 것으로 역사의 선례를 가져와 『노자』의 구절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현행 『노자』 구절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한비자가 인용한 『노자』는 백서본과도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해석이 강하게 개입한 한비자판 노자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해 보자. 5종의 노자 판본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연대가 가장 이른 죽간본을 원본에 가까운 판본이라고 가정하면 죽간본→ 백서본(한비자본) → 하상공본 → 상이본 → 왕필본이라는 시대순을 그려 볼 수 있을까? 하상공본 즈음에서 덕도경이 도덕경으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추정하면서 이 계보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말은 되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죽간본에서 백서본 사이에 일어난 편집상의 변화는 시대순으로 보는 시각에 의문을 던진다. 덕도경이 도덕경으로 바뀐 것도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노자 텍스트의 계보를 설정하는 데는 몇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노자는 저자가 있을 거라는 추정이 그 하나. 이에 따라 단일하고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책을 저술했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거기에 시대가 지나면서 노자학파나 혹은 그와 유사한 기록자가 완성했을 거란 구도가 성립한다. 

 

생각을 거꾸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 들어 발굴된 새로운 자료들은 지금까지 상정해 왔던 전제들이 어쩌면 허구일 수도 있다고, 사실추정을 재검토하도록 하는 건 아닐까. 고대로 올라갈수록 ‘단일한 저자’라는 개념은 성립하기 어렵다. 판본이라는 사고 자체가 기원을 추적해 원본 혹은 오리지널을 전제하는 가운데 성립한 개념이다. 정본(定本)을 찾아라! 고대에 그게 가능한 사고일까. 5개 혹은 6개의 판본은 그저 다른 이본들로서 원시 도가(道家) 혹은 노자로 대표해서 부르는 어떤 집단 사고가 아닐까. 

어떠한 판본 혹은 대표되는 판본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본(異本) 중 하나(a version)이지 결정본(the definite edition/Standard edition)일 수 없다. 판본에 대한 근본적인 가정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죽간본조차 한 판본이고 이후의 판본들 역시 죽간본과 다른 계통의 이본들을 전승본으로 해서 각각 다른 이본을 형성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5개 판본 모두 자기들 각자의 전승을 가지고 자기만의 계통이 따로 있는 판본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하나로 묶지 않을 때, 일관된 계보를 그리지 않을 때 풍부한 해석과 읽기가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본이 왜 중요한가. 사상사적인 문제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도가 등 각 학파의 발생과 연원, 후대의 영향과 계보를 수형도(樹型圖)로 그리는 문제와 관련된다. 그러나 사상사적인 과제 역시 시간 순으로 엮은 어떤 틀임을 감안할 때 하나의 시각을 보여 줄 뿐이지 절대화할 수 없는 관점임이 명백하다. 독서를 할 때 학자들, 소위 대가들이라는 사람들의 시각과 연구를 받아들여 특정 책에 선입견을 먼저 갖고 접근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관점에 서면 통행본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왕필본이 시금석으로서 따져 볼 가치가 있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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