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노자의 목소리, 시인의 언어와 철학자의 언어(4)

노자의 목소리, 시인의 언어와 철학자의 언어(4)
『노자』의 주석 1 - 왕필 주

 

 

『노자』에 주석을 단 책 가운데 오래되어 가치가 있는 것으로 세 종류를 들 수 있다. 왕필의 주석과 하상공의 주석 그리고 상이주가 중요하다. 한비자의 「유로」와 「해로」는 앞서 설명했으므로 제외하기로 한다. 


1. 왕필 주

 

왕필


왕필의 주가 가장 널리 통용되고 왕필의 주를 읽는 것이 실질적으로 『노자』를 읽는 일이라고 앞에서 언급했다. 왜 왕필의 주가 독점적일 만큼 권위를 누리는가라는 질문을 전제할 때 왕필주의 보편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상공의 주와 비교해 구체적인 차이점을 적시하는 작업도 가치가 있지만 왕필의 주가 누리는 권위에 대해 따져볼 때 하상공 주와 차이도 드러나지 않을까. 판본을 살펴보면서 했던 말을 상기해 보자. 하상공 주는 왕필의 주가 나오고 나서도 계속 유통되어 일정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사실 말이다. 현재는 거의 왕필 주를 중심으로 『노자』를 독해하는 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세 가지 정도로 그 이유를 꼽아 볼 수 있다. 첫째는 왕필이 『노자』를 이해하면서 텍스트에 철학적 깊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왕필의 정치사상과 관련된다. 셋째는 두번째 사항과 겹치는 부분으로 왕필의 사고는 뜻밖에도 유가적 사고와 접촉지점이 넓다는 점이다. 세 가지는 왕필의 사상으로 이해해도 충분한데 이는 넓은 시야에서 보면 위진남북조 시대 현학의 융성과 관련이 있다. 또한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친 왕필의 힘이자 하상공주와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1) ‘무’(無)에 대한 철학적 사유


철학적 깊이를 부여한 부분부터 보자. 왕필의 손길은 무(無)를 설명하는 곳에서 빛난다. 『노자』에는 무(無)에 대한 얘기가 곳곳에 보인다. 『노자』는 무(無)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려 무가 ‘없다’는 단순 진술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무가 개념으로 환골탈퇴하면서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알린 것이기도 하다. 


무는 유무(有無)라는 쌍으로 묶여, 통상 ‘있다/없다’라는 서술어로서 이해되었다. 노자는 무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켰는데 그 중 하나가 절대적인 존재로서 무를 개념화한 것이다. 『노자』 28장에, “흰 것을 알고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법도가 된다. 천하의 법도가 되면 항상된 덕에서 어긋나지 않고 무극으로 복귀한다.”[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爲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라고 했는데 여기서 무는 절대적인 경지를 나타낸다. 흑/백으로 서술된 대립되는, 혹은 이원적인 세계를 통합하고 조망할 수 있는, 대립되는 세계를 뛰어넘고 포괄하는 존재로 무극을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무극이란 말을 썼으니 노자가 음양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무를 새롭게 사고한 노자의 세계이다.


좀 더 본질적으로 무(無)를 사유한 곳이 있다. 40장에, “천하만물은 유에서 생긴다. 유는 무에서 생긴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11자밖에 안 되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왕필의 주를 읽어 보자. “천하의 사물은 모두 존재하기에 사는 것이다. 존재의 시작은 없음을 근본으로 한다. 존재를 온전하게 하려면 반드시 없음으로 돌아가야 한다.”[天下之物, 皆以有爲生. 有之所始, 以無爲本. 將欲全有, 必反於無也.] 왕필의 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요컨대 왕필은 모든 존재[有]의 근원을 무(無)로 본 것이다. “유는 무에서 생긴다”[有生於無]는 노자의 말을 “존재의 시작은 없음을 근본으로 한다”[有之所始, 以無爲本]고 푼 것인데 유가 태초에 시작되는 뿌리가 무라고 함으로써 무는 존재론적 근원으로 의미가 깊어졌다. 노자가 한 말은 유와 무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무를 유보다 한 차원 높여 사고한 것이었다. 왕필은 무를 두고 형이상학으로 접근해 무의 위상에 정확한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무가 형이상학의 층위로 격상하면서 현상과 본질에 대한 논의에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이런 안목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두텁게 한 것이어서 후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無)에 대한 왕필의 탁견은 후대에 와서가 아니라 당대에 이미 인정받은 것이었다. 왕필에 대해 알려면 25사(史) 가운데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에 실린 전기를 보게 되는데 이 전기는 너무 짧아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게 별로 없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편(文學篇)에 왕필에 대한 일화가 몇 개 보이는 데 여기에 유효표(劉孝標)가 주석을 달면서 인용한 왕필에 대한 기록보다도 「위서」의 전기는 가치가 적다고 할 수 있다. 뜻밖에 왕필과 동시대 사람인 종회(鍾會)의 전기에 하소(何劭)가 쓴 「왕필전」이 주석 형태로 실려 있다. 하소의 「왕필전」이 우리가 왕필에 대해 알 수 있는 최상의 자료일 것이다. 거기에 흥미로운 일이 보인다. “당시 배휘(裴徽)가 이부랑(吏部郞)이었는데 왕필이 약관이 안 됐을 때 찾아가곤 했다. 배휘가 왕필을 한 번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왕필에게 물었다. ‘무릇 무(無)는 진정 만물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은 말로 나타내려 하지 않았는데 노자는 거듭 무(無)일 뿐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왕필이 말했다.‘성인은 무를 체득하였고 무는 또 무어라 풀이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말씀하지 않은 것입니다. 노자가 말하는 것은 유(有)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무를 말하지만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時裴徽爲吏部郞, 弼未弱冠, 往造焉. 徽一見而異之, 問弼曰:“夫無者誠萬物之所資也. 然聖人莫肯致言, 而老子申之無已者何?” 弼曰:“聖人體無, 無又不可以訓, 故不說也. 老子是有者也, 故恒言無所不足.”] 


왕필은 당돌한 청년이었을까? 20세가 채 안 된 나이에 무(無)로 대표되는 노자를 유(有)라 판단하고 부족하다고 말할 정도이니. 당시의 학문 풍토랄까, 지식인들의 담론 방식을 전해주는 자료로서도 흥미로운데 아울러 왕필이 무에 대해 일찍부터 자신만의 의견을 가졌고 이 때문에 당대 명사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에피소드다. 이런 싹이 노자주에서 완정된 형태를 이루었다고 보는 게 합당할 것이다. 무(無)에 대한 사고가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위진(魏晉)시대의 철학사조를 흔히 현학(玄學)이라고 칭하는 바, 이때 현(玄)은 심오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그 의의는 단순하지 않다. 현상 너머에 혹은 현상에는 보이지 않는 이면이 있다는 사고도 흥미롭지만 그 정체가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명명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사고는 생각보다 깊게 영향을 끼쳐 동시대의 중요한 텍스트였던 『장자』 독해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운다. 『장자』의 편집자이자 뛰어난 주석가인 곽상(郭象)은 존재론적 근원으로서의 무(無)에 강하게 반발하는데 그의 반발은 그만큼 왕필의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장자』에서 재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제시하는 선에서 그치기로 한다. 

 


(2) 왕필의 정치사상

 

둘째는 왕필의 정치사상이다. 『노자』 38장에는 유가의 핵심덕목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는 구절이 있다. “도(道)를 잃은 뒤에 덕(德)이 생기고, 덕을 잃은 뒤에 인(仁)이 생기고, 인을 잃은 뒤에 의(義)가 생기고, 의를 잃은 뒤에 예(禮)가 생긴다. 예는 충과 신이 얄팍해진 것이며 난이 생기는 머리다.”[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而亂之首.] 유가 질서의 원천인 예를 거꾸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주범으로 보다니. 노자는 형식화된 예를, 아니면 형식화될 수밖에 없는 규범의 어떤 특성을 예리하게 간파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문자 그대로 읽으면 ‘인·의·예’라는 중요한 가치를 격하한 말로 읽을 수밖에 없다. 왕필은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각자 올바른 일을 맡아 정성을 다하면 인덕이 후해지고 의를 실행하는 것이 올바르게 되며 예와 공경이 깨끗해진다.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포기하고 자기가 사는 이유를 버리고 기성의 틀을 따르며 자신의 총명함을 부리면 인을 높이게 되고 의를 경쟁하게 되며 예를 다투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덕이 후하다는 것은 인을 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의(義)의 실행이 올바른 것은 의를 쓴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며 예와 공경이 깨끗한 것은 예를 쓴다고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各任其貞事, 用其誠, 則仁德厚焉, 行義正焉, 禮敬淸焉. 棄其所載, 舍其所生, 用其成形, 役其聰明, 仁則尙焉, 義則競焉, 禮則爭焉. 故仁德之厚, 非用仁之所能也; 行義之正, 非用義之所成也; 禮敬之淸, 非用禮之所濟也.] 


왕필의 주석은 노자의 원뜻과 거리가 있다. 노자는 ‘인의예’를 도(道)의 타락으로 보고 예의 경우는 질서를 망치는 못된 가치라고 단언했다. 왕필은 ‘인의예’를 구제한다. 조건을 붙여 올바른 일[貞事]과 성의[誠]를 다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貞=正)이나 성(誠) 역시 유가에서 특화된 개념이라는 점을 눈치 채면 왕필이 ‘인의예’를 노자와 달리 해석해 본문과는 반대로 유교덕목을 긍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왕필의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면 19장의 유명한 구절, “인을 끊고 의를 버려라”[絶仁棄義]에서 인의에 대해 왕필이, “인의는 행동이 훌륭한 것이다”[仁義, 行之善也]라고 약하게 해석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유교 덕목의 긍정은 좀 더 넓은 계획을 가진 것 같다. 42장,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는 구절은 우주발생론으로 읽거나 장자의 대표 사상 가운데 하나인 만물제동(萬物齊同 : 만물은 동등하다)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도는 앞서 말한 무(無)의 다른 말이기도 해서 무가 만물의 모태라는 말이 다르게 표현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왕필은 하나[一]를 다르게 해석한다. “백성은 마음을 가졌으니 나라가 다르고 풍속이 같지 않다한들 하나를 터득한 왕와 제후가 임금이 된다.”[百姓有心, 異國殊風, 而王侯得一者主焉.] 


왕필은 일一을 왕후王侯가 되기 위한 어떤 도(道)로 이해하고 정치사상으로 해석했다. 『노자』 본문은 만물을 일로 수렴하는 구조인데 왕필의 주석은 백성을 왕으로 수렴하는 형태라 철학의 언어가 정치학의 언어로 변했다. 일(一)은 무위無爲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는데 이때 무위는 유가의 순임금을 모델로 한 개념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왕필은 『노자』를 제왕(帝王)의 학(學)으로 읽기도 하는데 이것은 하상공의 주와 일치하는 지점이다.

 


(3) 유가와의 접촉점

 

여기서 세번째로 나아가는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노자』를 정치사상으로 독해하는 일은 노자 주석에서 늘 볼 수 있는 작업이다. 노자가 왕에게 하는 언설로 이해하는 것인데 이때 듣는 사람이 왕인만큼 왕의 역할에 초점이 주어지게 된다. (하상공의 주가 전형적인 예다.) 그럴 경우 80장의 널리 알려진 구절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들을 적게 하라.”[小國寡民] 노자가 꿈꾸는 세상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전원생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원시공동체라 할 수 있는 소규모 자급자족 집단을 구상했던 것 같다. 관리들이 꿈꾸는, 조직화된 효율 중심의 공동체로서 유토피아가 아니라 무릉도원에 가까운, 서양에서는 아르카디아(Arcadia)라고 부르는 무계급사회를 그려볼 수 있다. 왕필은 전혀 다르게 읽는다. “나라가 작고 백성이 또 적더라도 오히려 옛날로 돌아가도록 해야 하니 하물며 나라가 크고 백성이 많은 경우에야 어떻겠는가. 그러므로 작은 나라를 들어 말한 것이다.”[國旣小, 民又寡, 尙可使反古, 況國大民衆乎. 故擧小國而言也.] 

 


왕필은 큰 나라를 지향한다. 그리고 유가의 복고[反古]를 꿈꾼다. 그는 노자의 소망과는 반대로 제국을 상정하고 있으며 유가의 원리를 끌어온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거대한 위(魏)나라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을 공동체란 가당치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왕필의 현실 추종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자기 시대의 현실을 이해한다면 무릉도원을 상상하는 일은 허황한 관념이거나 낭만적 허위일 공산이 크다.

 

왕필은 『노자』를 해석하면서 정치적으로 접근할 때 유가적 사유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전 유가들에게서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형이상학적 깊이를 갖추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송대 성리학자들의 주목과 칭송을 받을 수 있었다. 왕필의 주석이 훌륭한 요건을 가졌기에 후대에까지 살아남을 수 있긴 하나 그와는 별개로 후대의 추앙은 그를 불멸의 이름으로 만듦과 동시에 그의 텍스트가 독존하도록 만들었다. 송대 성리학의 영향력이 커가면서 성리학자들의 평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성리학의 영향력은 지금도 적지 않아서 현대의 텍스트 읽기에도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제도권 교육은 확립된 권위에 쉽게 투항한다. 확립된 권위는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살아남은 저력의 다른 말이기에 당연하다는 형식 논리가 아카데미즘에는 깔려 있다. 거기에는 학문적 권위에 걸맞게 형이상학이라는 고담준론이 촘촘하게 박혀 있기에 엘리트들에겐 지적인 아우라가 가득하다. 문제는 고상한 논의가 현실과 유리되면서 생긴다. 앞서 곽상을 거론했지만 곽상이 존재론적 근거로서의 무(無)에 반발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형이상학적 논의의 공허함이었다. 또 수준 높은 말만 대접을 받으면서 실질적인 논의가 축소된다. 하상공의 주 같은 경우 한漢나라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인데도 지금은 많이 읽히지 않는다.  


현실과 간극이 생긴다는 말은 점점 벌어지는 틈 사이로 왕필의 다른 문제의식이 함몰돼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시대에도 호소력을 갖는 말이 있을까. 왕필의 주석에는 지금 보면 더 놀라운 통찰력이 있다. 49장, “성인은 (백성을) 모두 어린애처럼 생각한다”[聖人皆孩之]에 붙인 그의 주석을 보자. “무엇하러 한 몸의 총명함을 수고롭게 해서 백성들의 실상을 살피려 하는가. 총명으로 백성을 살피면 백성 역시 다투어 자신들의 총명을 써서 지배자를 피하려 한다. 불신을 가지고 백성들을 찾으려 들면 백성 역시 다투어 불신으로 지배자를 대응한다. 천하 사람들의 마음은 반드시 똑같은 게 아니다. 그들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게 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신의 진실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심하다, 백성을 크게 해치기로는 지배자들이 자기의 총명함을 쓰는 것보다 큰 게 없다.”[何爲勞一身之聰明, 以察百姓之情哉. 夫以明察物, 物亦競以其明避之;以不信求物, 物亦競以其不信應之. 夫天下之心不必同, 其所應不敢異, 則莫肯用其情矣. 甚矣, 害之大, 莫大於用其明矣.] 


지배계급과 백성들의 관계에 대한 그의 의견이다. 왕필의 시대에도 백성들을 균질한 존재로 보지 말라 했다. 계급사회일수록 백성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게 일상인데 백성들도 나름의 총기가 있다 했다. 근대 국민국가의 논리는 국민화하는 작업, 즉 전혀 다른 배경과 지역과 언어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동일화, 균질화시켜 하나라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장치에 기반한다. 국민이라는 말에 깊숙이 침윤돼 다른 사고가 작동하지 않을 때 왕필의 말은 다른 상상력을 눈뜨게 한다. 지배계급의 똑똑하다는 오만. 노자의 소박함과 인간의 자발성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었기에 그와 반대되는 총명함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발언이긴 하나 국민으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정치와 치안을 구분 못 하는 보통 사람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발언이다. 『노자』 독해에서 얻은 논리적인 발언이라 여기고 지나가기엔 눈길과 마음이 오래도록 머문다.

왕필의 주를 마무리하기 전에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 『노자지략』老子指略에 대해서다. 『노자지략』은 『노자』의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왕필이 읽은 『노자』의 핵심개념과 구조에 대한 간결한 논문이다. 『주역』의 언어와 개념을 동원해 『노자』를 자유롭게 해설했는데 『노자』 본문 구절에서 짧게 해석하고 지나간 개념을 보충 설명해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 


『노자지략』은 앞서 언급한 하소(何劭)가 왕필이 『노자』에 주석을 하고 『지략』을 썼다는 기록을 남겼기에 누구나 알고 있었던 것인데 실물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쉽게 구해볼 수 있는 『노자지략』의 현행본은 1956년에 와서야 『정통도장』(正統道藏)(『도장경』[道藏經]이라고도 한다)에서 발견되었다. 『도장경』에는 노자미지예략(老子微旨例略)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었는데 하소는 미지예략(微旨例略)을 줄여 지략(指略)이라고 했던 것. 『정통도장』은 불교의 대장경과 같이 도교의 경전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당나라·송나라를 거쳐 명나라 영종(英宗) 정통년간(1436-1449)에 완성된 방대한 규모의 책들이다.


주목할 만한 몇 가지를 들어 본다.

 

“‘도’(道)라는 것은 만물이 생겨나는 것에서 취한 명칭이고, ‘현’(玄)은 가믈하고 어두운 의미가 생기는 것에서 취한 것이며, ‘심’(沈)은 깊은 이치를 탐색하지만 다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서 취한 것이며, ‘대’(大)는 채우고 채워도 그 끝에 도달할 수 없는 것에서 취한 것이며, ‘원遠’은 아득히 멀어 도달할 수 없다는 데서 취한 것이며, ‘미’(微)는 헤아리지 못할 만큼 작아서 볼 수 없다는 것에서 취한 표현이다. 그러하니 도(道)·현(玄)·심(沈)·대(大)·원(遠)·미(微)라는 말은 각자 자기 뜻을 가졌지만 의미를 완벽하게 다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채우고 채워도 끝이 없는 것을 세(細 : 작다)라고 이름 붙일 수 없고 너무 작아 오묘하게 존재해 형체는 없는 것을 대(大)라 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본문에서 ‘이름을 붙여 도라고 한다’라든가 ‘이를 일러 현이라고 한다’는 식으로 말했지 특정한 명칭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夫道也者, 取乎萬物之所由也;玄也者, 取乎幽冥之所出也;深也者, 取乎探賾而不可究也;大也者, 取乎彌綸而不可極也;遠也者, 取乎綿邈而不可及也;微也者, 取乎幽微而不可覩也. 然則道·玄·深·大·微·遠之言, 各有其義, 未盡其極者也. 然彌綸無極, 不可名細;微妙無形, 不可名大. 是以篇云;字之曰道, 謂之曰玄, 而不名也.]


왕필의 말은 개념을 이해하는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먼저 도(道)를 고정된 실체로 파악하는 방식이 도를 오해하는 일임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도를 최고의 실체로 보고 현(玄)·심(沈)·대(大)·원(遠)·미(微)를 하위범주로 놓아 도의 다양한 속성이나 현상으로 본다. 왕필은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에 도를 현(玄)·심(沈)·대(大)·원(遠)·미(微)와 동일한 차원에 놓고 논의를 벌인 것이다. 도 역시 임의로 붙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노자』에서 도가 다양한 이름, 예컨대 무(無)로 불린다든지, 통나무[樸]로 호칭한다든지 하면서 본질이 아니라 성격이나 속성으로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유명한 1장의 발언을 상기해도 좋을 것이다. 이 발언에는 언어에 대한 한계를 지적함과 동시에 좀 더 중요한 지점은, 언어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노자나 장자를 읽을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언어의 한계에 대한 독자의 과한 몰두인데 왕필의 발언을 잘 읽어 보면 언어의 한계에 대한 경계 위에 언어를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하면 안 된다는 사고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 언어의 한계를 자각하면서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왕필은 노자의 핵심을 무엇으로 보았을까. 

 

“노자의 근본 취지는, 태초의 근원을 논해 스스로 그러한 본성[自然之性]을 밝혔으며 아득한 깊이의 극점을 설명해 홀리고 속이는 미망을 판정하는 것이다. 도를 따르고 인위를 행하지 않으며, 덜어내고 일을 펼치지 않는다.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종식시키며, 모태를 지켜 자식을 보존한다. 교묘함과 기술을 천하게 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미리 일을 한다. 남을 책망하지 않으며, 반드시 자신에게서 찾는다. 이것이 핵심이다.”[其大歸也, 論太始之原而明自然之性, 演幽冥之極以定惑罔之迷. 因而不爲, 損而不施;崇本以息末, 守母以存子;賤夫巧術, 爲在未有;無責於人, 必求諸己; 此其大要也]  


“아득한 깊이의 극점”이라고 번역한 “유명지극”(幽冥之極)은 심오해 알기 어려운 것의 최고 경지쯤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까닭에 사람들을 홀리고 속이고 혹하게 만들어 오도하기 쉬운데 그 심오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밝혀 헷갈리지 않게 했다는 찬탄이다. 현대의 독자들에겐 풀기 어려운 숙제가 주어진 것 같은 데 왕필은 미망(迷妄)을 깨뜨렸다고 노자를 칭찬한 것이다. “도를 따르고”부터 끝까지는 “미망을 판정”했다는 말의 부연설명으로 봐도 무방하다. 인용한 말 가운데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종식시킨다”[崇本以息末]는 말이 보이는데, 왕필을 이 구절을 노자의 키워드로 본다.


“노자란 책은 한 마디로 포괄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종식시키는 것일 뿐이다. 시작되는 곳을 관찰하고 귀착점을 찾으면 말은 근본에서 멀지 않을 것이며 일은 근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노자의 글은 5천 자지만 관통하는 것은 하나다. 의미가 넓고 풍부하지만 그 많은 뜻은 같은 종류다. 말 한 마디를 이해해 포괄하면 심오하더라도 알지 못할 것이 없는데 매 구절을 볼 때마다 각자 뜻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설명을 잘 한들 더욱 헷갈릴 뿐이다....오직 백성들이 사랑하고 욕망하는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지 그들의 사악한 행위를 공격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소박함을 알아 성스러움과 지식을 끊어버리고 사사로운 욕망을 적게 해 교묘함과 이익을 버리는 것은 모두 근본을 숭상하고 말단을 종식시키는 것을 말한 것이다.”[老子之書, 其幾乎可一言以蔽之. 噫, 崇本息末而已矣. 觀其所由, 尋其所歸, 言不遠宗, 事不失主. 文雖五千, 貫之者一;義雖廣贍, 衆則同類. 解其一言以蔽之, 則無幽而不識; 每事各爲意, 則雖辯而愈惑....唯在使民愛欲不生, 不在攻其爲邪也. 故見素樸以絶聖智, 寡私欲以棄巧利, 皆崇本以息末之謂也.]  


『논어』의 문장을 빌려와 펼치는 왕필의 논의는 “숭본식말”崇本息末을 추상적으로 논의하는 것에서 마지막에 사회정치사상으로 구체화된다. 『노자』 전체가 일관된 논리로 설명 가능하기에  왕필 자신 “말 한 마디를 이해해 포괄”[解其一言以蔽之]한 작업을 보여 주었다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추상에서 구체로, 심오한 것에서 현실세계까지 아우르는 왕필의 사고는 정녕 노자를 자기 방식으로 독해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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