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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연암을만나다

[연암을만나다]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글 읽기

by 북드라망 2020. 8. 27.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글 읽기


 

매주 수요일이면 마음이 급해진다. 씨앗문장을 쓰고 다음날 세미나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쓰지 못하고, 미리미리 다 읽지 못한 것이 한탄스럽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다만 모든 일정이 끝난 저녁이후의 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생각뿐이다. 그래서 이 시간대에 친구가 나에게 무언가를 같이 하자고 하면 ‘어? 안 되는데ㅠㅠ’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내 ‘후딱 끝내고 공부하자’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공부와 친구 둘 다 잡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후딱 끝내자’라는 데에 너무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관계도 공부도 둘 다 잡으려 했던 내 마음과 반대로 어디 한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그런데 한 평생 공부하며 살았던 연암의 글 읽기는 이런 나와 어딘가 달라 보인다.




하늘이 밝아지면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곧바로 부모님의 침실로 가서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기침 소리가 들리거나 가래침 뱉고 하품하는 소리가 들리면 들어가서 문안을 드린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혹 무슨 일을 시키면, 급히 제 방으로 돌아가서도 안 되고 글을 읽는다는 핑계로 거절해서도 안 된다. 바로 이것이 글을 읽는 것이니, 혹 글 읽기에 열중하느라 혼정신성(昏定晨省)도 제때에 하지 아니하고, 때 묻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로 지내는 것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다.


( 박지원, 『연암집』(하), 「원사」, 돌베개, 379쪽)


여태껏 나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글에 푹 빠져서 읽는 것은 몰입이고, 그거야말로 글을 제대로 읽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연암이 말하는 글 읽기는 정반대다. 연암에게는 매일 부모님을 문안드리러 가서 무슨 일을 시키면 글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거절하지 않으며 공손히 대하는 것이 글을 읽는 것이다. 심지어 글을 읽느라 때를 모르고,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도 신경 안 쓰는 것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어찌 보면 연암이 말하는 글 읽기란 글자를 읽는 행위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책을 등한시하는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햇볕이 나면 조심스럽게 말려야 하며, 책을 베개 삼아 베거나 눕지도 않아야 하며, 책을 읽는 중에는 내달리며 급하게 읽지도 않으며 하품을 하거나 눈썹조차 찡그리지 않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책을 대하는 마음이 정성스럽다. 거기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병폐가 없는 것이 글 읽기고, 글 읽는 소리만큼 질리지 않는 게 없다며 글 읽기에 대한 애정표현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글에 애정을 느끼는데도, 부모님 앞에서 글 읽기는 왜 뒤로 밀려나게 되는 걸까? 아니,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 연암은 책을 읽고 있지 않을 때도 글 읽기를 멈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부모님을 공경히 대하는 것, 책을 읽는 것, 평소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 모두 연암에게는 글을 읽는 과정이었다.


마치 부모의 명을 들으면 머뭇거리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친구와 더불어 약속을 하면 곧바로 실천할 것을 생각하듯이,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글 읽는 방법이다


( 박지원, 『연암집』(하), 「원사」, 돌베개, 381쪽)


연암은 지금 자신의 마음과 몸가짐을 정성스럽게 하고 기꺼이 응하는 것을 글 읽는 것이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글_남다영(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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