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 지은이 인터뷰
1. 선생님께서는 『동자문』(童子問)이나 『맹자고의』(孟子古義)와 같은 이토 진사이(伊藤仁齊)의 주요 저작을 번역하시는 등 유가 사상이나 유가 경전에 대한 해석의 폭을 넓히는 고전을 소개하는 작업을 해오신 줄 압니다. 이번 책은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사기』 읽기’에 관한 책입니다. 『사기』는 지금껏 선생님께서 작업하셨던 책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지 않나 싶은데요, 어떻게 해서 『사기』를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제가 번역한 사상서들과 『사기』 같은 역사서는 장르가 달라 다른 동네(?)로 가는 데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전 학문 기준으로 하면 유가 경전을 읽고 사서(史書)를 읽는 것은 기본 과정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한문 고전을 처음 공부할 때 예전 기준을 적용한 셈입니다. 전공으로 넘어가더라도 기본 서적은 섭렵해야 한다는 전제를 따른 셈입니다. 철학서와 역사서는 다르지 않은가, 라는 질문인데 현대어로 번역하고 보니 성격이 달라 보이긴 합니다. 한문 고전이라 하면 한 테두리 안에 묶여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말이죠.
이상해 보이지만 『사기』가 사서(史書)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사서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라 사서 이상이라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저는 문사철(文史哲)이라는 근대적 분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면 『사기』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기에 필수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답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사기』가 중요한 까닭은 한(漢)나라 이전의 고대 전통을 총괄하기 때문입니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은 유가 경전을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저작을 기본 교양으로 읽어야 하는데 이때 접근하는 유가 경전은 송대(宋代)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글입니다. 경전에 익숙해지면 송대의 주석이 아니라 당시의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는 숙제에 부닥칠 수밖에 없습니다.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일급의 필수 자료가 『사기』입니다. 한나라 때의 학문이 정착하기 이전, 그러니까 관학(官學)이나 이데올로기로 변하기 전이라 유동성이 강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면이 오히려 읽기를 자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데올로기화했다는 말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관학이라 해도 송대와 같이 강력한 형태는 아니었다는 사실도 덧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위의 설명은 학술로 접근해서 간략하게 드린 말씀입니다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기』는 문장이 뛰어나기 때문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유 다 빼놓고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문장을 보기 위해 『사기』를 읽어야 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만큼 문장이 좋습니다. 저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의식적으로 언어와 문장을 중심에 두고 글을 읽는 편입니다. 서사물을 읽는 경우에는 문장에 강조점을 놓는 경우가 두드러지는데 내러티브와 문장이 호응해서 만들어 내는 진경을 대할 때 쾌감은 대단합니다. 『사기』가 그 원점이자 최고의 도달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공부하면서 사서(四書)를 읽고 『통감절요』(通鑑節要)을 읽은 다음 『사기』읽기는 자연스런 행로였는데 『사기』의 문장에 매혹된 겁니다. 붙잡힌 거죠.
2. 『사기』는 동양고전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텍스트가 아닐까 합니다. 꾸준히 번역 작업이 이루어져 왔고, 역사책으로서뿐만 아니라, 이야기로, 또 오늘날에는 처세의 요령을 담고 있는 책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사기』라는 텍스트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사기』의 가장 큰 매력은 문장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가리키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흔히 ‘문장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이때 아름답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표현이 좋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의식하고 생각은 했지만 언어화되지 못한 상태였는데 그것을 작가가 적확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드러냈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문(美文)이라고 칭할 때의, 수사적으로 훌륭하고 생각을 충실히 담고 있다고 찬양하는 말입니다. 제 경우에는 미문 쪽에 강조점을 두는 표현적 아름다움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닙니다. 제게 글이 좋다는 말은 문장의 호흡과 관련됩니다. 문장의 리듬이라고 할까요, 사고의 흐름이 느껴지는 글을 말합니다.
서예를 잘 몰라서 붓글씨의 아름다움을 알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글씨를 보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글자의 리듬을 파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글씨의 흐름과 호흡을 느껴 어떤 기운과 생동감에 몸을 맡긴다고 할까요. 그걸 리듬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서예와 마찬가지로 문장에서도 문장 고유의 리듬을 느끼려 집중합니다. 사마천의 글은 리듬이 불규칙합니다. 규칙적인 흐름을 깨뜨려서 유려한 글을 일부러 흩어 놓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저도 그게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 중입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장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할 수는 있습니다. 누구나 하는 말이긴 하지만 『한서』(漢書)와 비교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기』는 불규칙한 리듬을 따라가는 것이 매력이라고 고쳐 말할 수 있을까요.
3. 이 책에서는 『사기』를 ‘문학’ 텍스트로 읽겠다는 취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문학으로서의 사기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읽을 때 드러나는 『사기』의 새로운 면모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기』를 문학으로 읽겠다고 했을 때 문학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서사성(=이야기성)을 가리켰습니다. 서사의 힘이랄까, 서사가 갖는 지속적인 힘, 원초적인 유혹을 탐구해 보고 싶었던 겁니다.
사마천은 기존의 이야기와 자료를 가지고 작업을 했습니다. 그 원재료를 재구성해 다른 세계를 탄생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신이 악동(惡童)의 가랑이 밑을 지나기 전, 사마천은 “오랫동안 쳐다봤다(熟視)”는 말을 독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끼워 놓아 한신의 심리를 묘사하면서 독자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면 한신이 크게 성장하는 속 깊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밥을 준 여인에게 고마워하는 건 인간적으로 당연한데 그게 과한 반응일 수 있음을 대화를 통해 살짝 보여 줍니다. 이 장면을 음미하지 않으면 결정적 순간에 한신의 발목을 잡았던 게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기 어렵게 됩니다. 한신의 이중적인 속성을 잘 제시한 장면인데 이게 모순되는 속성인지 아닌지 독자는 종합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마천은 보여 주기만 하고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요. 에피소드 하나, 스쳐 지나가는 말들을 끼워 맞추고 뒤의 것을 앞의 것과 대조하고 동시대의 인물과 견주어 보면서 이야기를 계속 조립해야 합니다. 결과는? 사마천이 파악한 인간 군상이 하나하나 입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인간이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흥미가 더해집니다. 『사기』가 달라 보이죠. 재미있는 이야기가 다채로운 인간 이해로 변합니다. 폭넓게 인간을 다룬다는 것은 인간을 그만큼 깊게 이해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기』가 전혀 다른 책이 됩니다. 이야기의 근원적인 힘이란 독자의 호기심을 발생시키고 끌어가는 긴장감을 말하지만 인간관이 바탕에 깔려 사람을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4. 선생님께서는 이 책에서 “인간을 얽어매고 삶을 질식시키는 매너 따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윤리에 걸려 있고 그 윤리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수치심이다. 의로운 일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게 인간이라는 이상한 존재 아닌가. 나는 사마천의 부끄러움을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근본 자질로 이해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마천의 부끄러움은 『사기』라는 텍스트와 어떻게 연결될까요?
현대인이 사마천의 부끄러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주의가 모토인 사회에서 가문 중심의 사고는 이상해 보일 가능성이 높지요. 현대인인들 인간관계가 왜 중요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전통시대의 가문과 사제관계라는 사회성은 이 시대에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처럼 공공성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에서는 부끄러움에서 공분(公憤)으로 전화하는 사마천의 심리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기』의 기저에 부끄러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친과 가문에 대한 부끄러움은 옳은 일을 했음에도 부당하게 처벌받았다는 분노와 등을 맞대고 있습니다. ‘발분(發憤)의 서(書)’라는 것은 그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분노만으로 작품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감정은 형식화하지 않으면 휘발되거나 폭발합니다. 외침이나 한숨만으로 글이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새로운 형식을 창안하려 애썼던 이유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형식화하는 순간 객관화의 토대가 마련되고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작가의 글쓰기는 전진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은 자신을 반성하는 메커니즘이 되고 분노는 동력이 됩니다. 『사기』가 남다른 텍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을 잘 다스려 보이지 않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이 비석에 새겨진 글자처럼 뚜렷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개인 감정이 승화된 케이스라 할까요. 『사기』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그 정서를 감지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자신의 책과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기』는 흥미로운 대상입니다.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말이 레토릭에 그치지 않으려면 상처에서 치유로 가는 과정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 복잡한 길을 탐구하는 것도 『사기』를 읽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5. 이 책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사기』에서 독자들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사성을 강조했으니 서사가 두드러진 작품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오자서열전」입니다. 이야기의 열도(熱度)가 높아 금방 몰두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한데 주의해야 합니다. 사마천의 서사 방식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 주기만 합니다. 장면 사이에 비약이 많습니다. 장면 묘사가 자세하지 않아 상상해야 합니다. 심리 묘사가 없는 것 같아 인물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말과 대화를 인물을 드러내는데 다 얘기한 것 같지만 따져 보면 생략이 적지 않습니다. 모순되는 얘기를 하는가 하면 앞에서 한 얘기라고 지나가 버리기도 합니다. 빠진 부분을 메꾸고 앞에 한 얘기를 들춰 보고 읽을 때에야 재미가 배가 됩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남방 정서를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강남 지역을 다룬 일련의 글들(생각보다 많습니다. 유방의 측근들과 항우 등등이 남방 출신임을 상기해 보십시오)과 함께 읽어 보면 좀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냥 이야기로서만 즐겨도 흡족함을 안겨주는 강렬한 글이기도 하지만요.
책에서 강조하긴 했지만 저자가 전(傳) 마지막에 쓴 사평(史評)을 정독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야기가 완결되는 부분이 바로 사평입니다. 이야기에만 정신이 팔렸다가는 잃어버리는 게 생기기 마련인데 사마천은 사평에서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 줍니다. 앞의 이야기를 다 뒤집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그의 문장 솜씨와 안목은 여기에게 다 모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준 높은 독자라면 작가와 안목을 겨뤄 볼 수도 있습니다. 누누이 언급했듯이 사평은 특히나 문장이 압축된 데다 리듬이 불규칙해 갈피를 잡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따져 읽으면 그만큼 보람이 따라오는 명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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