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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해계, 오뉴월 감기를 위한 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13.

해계, 감기를 품다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 ‘감기엔 약도 없다.’ 많이 들어본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여름감기가 극성을 부리고 감기약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저런 구라(?)를 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저 말들의 진의는 따로 있다. ‘니가 니 몸을 사랑하지 않았어!’ 왜냐고?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 말은 원래 이런 뜻이기 때문이다.


기에 잘 걸리지 않는 여름에 감기에 드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의 됨됨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 그런 사람을 비웃는 데 쓰는 속담이다. 간혹 여름감기는 개도 조심해야 할 정도로 매우 고약함을 뜻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 감기를 앓는 것보다 여름에 감기에 걸리면 손을 쓰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쓰기도 한다. 


ㅡ원영섭 엮음, 『우리속담풀이』, 세창출판사, 2000


뭐? 오뉴월엔 개도 감기에 안 걸린다고?!

 


개도 여름엔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자기 관리를 하는데 이걸 제대로 못해서 감기를 앓는다는 얘기다. 특히 요즘처럼 에어컨이 빵빵한 시대엔 겨울보다 여름이 더 위험하다. 여름에 우리 몸은 땀을 배출하기 위해 땀구멍을 모두 열어둔다. 그렇게 해야 몸의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열린 땀구멍으로 찬바람이 스며들면? 바로 감기에 걸린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늘 시원한 곳을 찾아들어가니 감기를 달고 살 수밖에 없다. 결국 여름감기는 몸에 대한 무지, 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생긴 결과인 셈이다. 더구나 ‘감기엔 약도 없다’는 말은 몸에 대한 무지를, 몸을 소외시키는 생활방식을 고치지 않고서는 감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명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몸의 혈자리 가운데 이 감기를 치료하는데 특효혈이 있다. 바로 해계(解谿)다.


해계와 관절 


일단 해계(解谿)에 대한 기본 정보들부터 감상해보자. 해계는 발목에 있는 혈자리다. 자, 의자에 앉아서 발등을 들어 올려보시라. 그러면 발목 근처에 두 개의 딱딱한 힘줄이 튀어나오는 게 보이실 거다. 이 힘줄 사이에 푹 들어간 곳, 거기가 해계다. 연못이나 시냇가를 뜻하는 계(谿)를 쓴 이유도 이런 지형(?)과 무관하지 않다. 재밌는 건 해(解)다. 해(解)는 원래 소(牛)의 뿔(角)을 뽑을(刀) 만큼 힘이 센 사람을 의미하는 글자였다. 본래의 뜻이 ‘뽑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풀다’라는 뜻은 나중에 파생된 거다. 그럼 왜 이 글자를 발목에 있는 혈자리에 쓴 것일까. 참 요 지점이 절묘하다. 해계는 근육과 관절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혈자리다. 실제로 발목을 삐었을 때 놀랜 근육을 푸는 데는 해계만한 혈도 없다. 즉, 해계의 대표적인 효능이 그대로 이름이 된 것!


그래서일까. 해계는 성장통을 앓는 아이들에게도 유용한 혈이다. 성장통은 뼈가 자라는 속도에 관절이나 근육이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통증이다. 특히 요즘처럼 먹을 것들로 넘쳐나고 영양분이 많은 음식들을 일찍부터 먹고 자란 아이들에겐 자주 나타나는 증상들 가운데 하나다. 이때 해계혈을 지압해주면 관절이나 근육의 긴장을 풀어줘서 성장통도 완화된다. 또 해계는 위열이 심해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치료한다. 지난 족삼리에서 봤듯이 위경은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이어져 있다. 위에서 생긴 열이 이 위경을 타고 올라가면 정신줄을 놓치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더구나 이 열로 머리가 무거워지고 두통이 생기는 일도 벌어진다. 해계는 이 열을 잡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이렇게 근육통이나 열증을 해소시키는데 쓰이는 해계가 어떻게 감기는 잡는다는 것인가. 요 이야기를 하려면 족양명위경과 해계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같이 살자, 감기! 


해계는 족양명위경의 화혈(火穴)이다. 그렇다. 이제 좀 익숙해지셨을 거다. 이 해계라는 혈자리, 불의 기운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런데 지난 수양명대장경에서도 보셨듯이 양명은 金의 성질을 가진 기운이다. 여기다 위경은 토()의 기운. 그러니 족양명위경의 해계는 ++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혈자리인 셈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건 지금부터다. 감기는 흔히 찬바람을 과도하게 맞았을 때 걸린다. 찬바람. 이건 의 기운이 만나서 생겨난 거다. 왜냐고? 목(木)은 바람, 수(水)는 차가움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시라. 목(木)의 기운이 솟아오르는 봄엔 바람이 많이 불고 수(水)의 기운이 지상을 점령하는 겨울엔 춥지 않은가. 이 두 기운이 만나서 생긴 찬바람은 몸에 들어와서 균형을 무너뜨린다. 감기란 지금 내 안에 있는 이 균형상태가 교란되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다.


바람 조심하세요!



그럼 해계로 이 감기를 어떻게 치료하는가. 원리는 간단하다. 내 몸 안으로 들어온 찬바람의 기운을 중화시켜버리면 된다. 어떻게? 다른 기운들을 불어넣어서! 일단 찬바람을 타고 목(木)과 수(水)의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균형을 이루고 있던 우리 몸에 의 기운이 많아진다. 이때 해계가 가지고 있는 의 기운을 북돋아서 많아진 와 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감기와 같이 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것을 몰아내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다시 내 안의 기운을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 여기에 깔려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한의학에서 사기(邪氣)와 정기(正氣)의 경계는 모호하다. 내 몸에서 균형을 잡고 순조롭게 운행되던 정기가 갑자기 몸을 위협하는 사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사기의 힘을 이용해서 몸의 병증을 반전시키기도 한다. 즉, 병이라고 해서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사고 자체가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흥미롭게도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전변(轉變)이라고 부른다. 병을 이리저리 굴려서 다른 것으로 변화시켜서 쓰겠다는 것. 그래서 의사의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것은 병이 어디로 튈지를 아는 것이고 그것에 개입할 줄 아는 것이었다. 이런 멋진 구절도 등장했다.


치료란 질병의 미래를 미리 알고서 현재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좌표계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ㅡ가노우 요시미츠, 『몸으로 본 중국사상』, 2007, 46쪽


 



해계에 침을 놓거나 지압을 통해서 감기를 극복하겠다는 것도 이런 발상에서 출발한다. 감기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다. 거기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그런 기운의 배치를 만든 건 오로지 나다. 여름에 찬 음식을 많이 먹어서 몸의 온도를 떨어뜨리고 거기다 에어컨 바람이 쌩쌩 나오는 곳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 이때 감기는 단순히 바이러스이기만 할까. 오히려 내가 감기를 원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것은 아닐까.

 

ㅡ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서로 너무나 달랐던 토마시와 테레자, "그로테스크한 우연에서 태어난 상대"이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함께 산다. 함께 산다는 건 내 안의 타자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감기는 우리가 평생을 같이 해야 할 병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우리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고 스스로의 몸에 대해서 배우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신호를 보낸다. 몸을 떨리게 하고 쉬게 만들고 심하면 앓아눕게도 만든다. 이 한바탕을 감기를 앓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우리들에게 찾아오고 어느 순간 사라지는 감기. 해계로 치료하기에 앞서 감기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삶의 모습들을 좀 지켜봐야 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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