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들의 시크릿 가든, 내정
이영희(감이당 대중지성)
소가 된 게으름뱅이
ㅡ피테르 브뢰헬의 <게으름뱅이의 천국>,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동화책 하나 읽고 시작하자. 제목은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는 이렇다.
일하기를 너무 너무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있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밥 먹고 방안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빈둥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늙은 어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해도 모른 척 한다. 마을 사람들은 날마다 먹고 놀기만 하는 게으름뱅이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흉 보고, 어머니도 방구석에서 뒹굴기만 하는 게으름뱅이 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자 한마디를 한다.
게으름뱅이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집을 나와, 어슬렁 길을 걷다 나무그늘 밑에서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는 황소를 무척이나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다가 탈을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나 소의 머리 모양을 닮은 탈을 쓰게 되었다. 신이 나서 얼른 탈을 쓴 게으름뱅이는 탈을 쓰자마자 진짜 소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벗으려고 애를 썼지만 몸에 철썩 달라 붙어 도무지 떼어지지 않고, 도와 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지만 “음매, 음매!” 하는 소의 울음소리만 날 뿐이다. 할아버지는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장터로 끌고 나가 농부에게 팔아 버린다. 그리고 소에게 절대로 무를 먹여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게으름뱅이는 농부의 집에서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뜨거운 햇볕아래서 무거운 쟁기를 등에 이고 밭을 갈아야 했다. 힘이 들어 조금 꾀를 부리면 기다란 채찍으로 맞아야 했기 때문에 게으름뱅이는 죽도록 일을 해야 했다. 저녁이 다 되어 농부가 여물을 가져다주었지만 먹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밥과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국이 그리웠고, 그렇게 듣기 싫던 잔소리도 그리웠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러 날이 흐르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게으름뱅이는 점점 야위어 가고 힘이 없어 일을 못하게 되었다. 농부는 일하기 싫어 꾀를 부리는 줄 알고 더욱 심하게 채찍질을 했다.
게으름뱅이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생각했다. 그러자, 자신이 팔려갈 때 할아버지가 소에게 무를 먹이면 죽으니 먹이지 말라했던 말을 떠올렸다. 게으름뱅이는 무 밭으로 달려가 와작 와작 무를 씹어 먹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게으름뱅이의 머리에 씌어 있던 탈이 벗겨지더니, 자기의 본모습을 찾게 되었다. 게으름뱅이가 다시 사람이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게으름뱅이는 잘못을 깨닫고, 그 날 이후로는 밭일도 열심히 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 동화에서 키워드 세 가지를 얻었다. 게으름뱅이, 밥과 국과 잔소리, 그리고 무.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오늘의 혈자리 내정을 꾀부리지 않고 부지런하게 풀어 보겠다.
게으름뱅이는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흔히 하는 일 없이 먹고 빈둥거리는 사람을 게으름뱅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움직이기 싫어하는 족속들인 거다. 이 족속들의 욕망은 어떻게 하면 안 움직이고 그냥 편안하게 먹고 놀까? 일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욕망에 끄달린다. 나또한 아니라고 말 못한다. 근데 이 좋은 걸 동화에서는 하지 말라고 한다. 게으르면 소 된다고! 어릴 적에 ‘누워서 밥 먹으면 소가 된다’고 들었다. 나는 너무 궁금했다. 소가 되는지. 그래, 해봤다. 완전히 눕는 게 께름칙해서 엉거주춤 팔을 괴고 밥을 입 속에 넣는 순간, 음매하고 밥이 튀어나왔다. 옆에서 보고 있던 엄마가 등짝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소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더 두고 봐야한다. 일단, 게으름뱅이들을 들여다보자.
게으름뱅이들은 많이 먹는다. 걸판지게 먹고 그대로 드러눕는다. 다음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껌딱지처럼 바닥에 붙어 있다. 그래야 몸은 더 오래 에너지를 저장·저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 따시고 배부르고, 상팔자가 따로 없다. 이런 상팔자가 소가 된다니 말도 안 된다.
이것이 게으름뱅이들의 전형적인 자세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을 수록 관절은 삭고 있다는 거, 잊지 말 길!
근데 이 상팔자의 습성은 오랜 역사와 함께 한다. 호랑이 담배피던 그 먼 시절, 원시인들은 한 번 먹었다하면 30킬로그램을 먹어치웠다. 그렇게 먹고는 며칠씩 잠만 잤다. 왜냐? 언제 다시 먹게 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공포는 인류의 오랜 무의식으로 남아, 게으름뱅이의 습성으로 나타난 거다. 원시인들에게는 생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습성이 이제 게으름뱅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상황은 많이 변했다. 지금 천지는 먹을 것으로 차고 넘치는데, 아직도 원시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우걱대며 먹는다. 그리곤 며칠씩 안 먹는 게 아니다. 먹고 또 먹는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다. 게으름뱅이의 몸은 둔해진다. 피는 어떻게든 소화시키려고 위장으로 몰린다. 피가 위장에 몰리다보니 머리는 멍해지고, 사지는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리다. 감각기능은 떨어지고 사물에 대한 판단력도 흐려진다. 계절이 가는지 오는지, 황소가 낮잠을 자는지 지가 자는지, 밥 맛이 있는지 없는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다. 음매~~ 게으르면 소 안 된다. 바보 된다! 엄마가 등짝을 후려친다. 꿈을 깨라고.
엄마가 등짝을 후려치듯이 게으름뱅이들을 후려치는 혈자리가 있다. 족양명위경의 형혈, 내정이다. 내정은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사지에 생기는 병을 치료한다. 한마디로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혈자리다.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건 팔다리에 관절이 있기 때문이다. 관절은 뼈와 뼈를 연결한다. 그 사이에 연골과 윤활액이 작은 물주머니를 이루고 있다. 날계란의 흰 자위처럼 맑고 투명하고 끈적거리는 진액이 윤활액이다. 이 연골과 윤활액은 우리 몸의 동작을 부드럽게 만든다. 움직이지 않는 게으름뱅이들은 특히 관절이 약해지기 쉽다. 관절이 약해졌다는 건 관절의 유연성을 유지해 주는 진액이 부족해졌다는 말이다. 어린아이는 유연하고 탄력이 넘치는 관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진액이 점차 줄어들고 관절뿐만 아니라 온몸이 건조해진다. 진액이 줄어들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신수(腎水: 신장에 진액이 모여 있다. 그것을 신수라 한다)가 머리까지 올라오지 못해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 관절 역시 진액이 말라 뻣뻣해진다. 내정은 이 진액에 해당하는 수(水)를 가진 혈이다. 이 물로 진액을 보충한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은 장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볼 때 장의 흡수력(金)이 쇠하면 뼈(水)가 마르기 때문이다. 내정은 양명의 金과 위경의 土, 형혈의 水를 가졌기 때문에 이를 만족시키는 혈자리라 하겠다.
밥 먹기와 잔소리의 철학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어머니가 해 주는 따뜻한 밥과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국과 그렇게 듣기 싫던 잔소리를 그리워한다. 그리워한다는 건 그 맛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 밥 맛, 국 맛, 잔소리 맛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매일 먹는 밥 맛을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장일순의 <매화춘당>
ㅡ무위당의 <다화춘심>, 밥 한 알에 전 우주가 들어 있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허겁지겁 밀어 넣는 우리 스스로 그것을 '텅 비게' 느끼고 있을 따름이다.
퇴계와 같은 해에 나서 영남의 동서를 갈랐던 큰 선비 남명 조식은 고위 관리가 되어 찾아온 제자에게식사를 하다 말고, 호통을 친 적이 있다. 음식을 ‘등줄기’로 먹지 않고, ‘목구멍’으로 먹는다고.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가 밥 먹는 걸 한번 보자. 입에 밥을 넣고 몇 번 씹지도 않고 밥알이 채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집어넣고 또 집어넣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음식을 목구멍으로 먹는 게 아닌가 말이다. 이에 반해 음식을 등줄기로 먹는다는 건 몸이 음식을 느낄 수 있도록 먹는 거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거다.
게으름뱅이가 밥을 많이 먹는 것도 음식 맛을 느낄 사이도 없이 먹기 때문이다. 몸이 음식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밥 맛, 국 맛, 오미를 느끼는 몸은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탐하지 않는다. 그렇게 먹은 음식은 정(精)으로 차곡차곡 쌓여 신수로 저장된다. 어머니의 잔소리도 이와 같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마음의 정(精)으로 쌓인다. 잔소리 없이 자란 아이는 음식을 목구멍으로 먹고 자란 아이와 같다. 생각을 맺고 끊어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없으니 쓸데없는 데 마음을 빼앗긴다. 게으름뱅이가 소 탈을 뒤집어 쓴 것도 그것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 아닌가.
내정은 족양명위경의 혈자리다. 위(胃)는 입으로부터 식도를 통과하여 들어온 음식물을 소화시켜 영양소를 만든다. 이것을 부숙(腐熟)이라고 한다. 이 부숙된 영양소는 비(脾)의 기능과 더불어 혈액을 생성한다. 이 혈액은 전신에 영양을 준다. 탱탱한 피부, 검은 머리카락, 유연하고 탄력 넘치는 관절을 만든다. 이 때문에 음식이 중요하고 위가 중요한 거다. 위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느껴보자. 몸짱이 멀지 않다.
나를 되살리는 소화
게으름뱅이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생각하고 무를 씹어 먹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게으름뱅이의 머리에 씌어 있던 탈이 벗겨지고, 자기의 본모습을 찾게 되었다. 무가 게으름뱅이를 탈바꿈시킨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무는 디아스타제라는 소화효소가 있어 소화를 돕고 위장을 튼튼하게 만든다. 중국 당나라 때 채소에서 한방약으로 격상된 식품이기도 하다. 또한 무는 혈액을 맑게 해서 혈액순환을 좋게 만든다. 무를 먹으면 체력이 붙는 느낌이 드는 것은 위장이 정돈되고 대사가 좋아지기 때문이다. 무에서 가장 주목할 포인트는 생즙이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점이다. 생즙이 몸을 차게 만드는 야채는 적지 않지만, 무는 정반대다. 피의 순환을 좋게 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내장의 기능을 강화시켜 준다. 내장의 기능이 정돈되면 변비가 개선되는 것은 물론 설사가 개선돼 좋은 변이 나오게 된다.
"무를 주세요~"
이 정도 되면 무는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무의 최고 가치는 소화에 있다. 위(胃)에서 이루어지는 초보적인 소화단계인 부숙을 촉진시켜 주는 것이다. 이 잘 만들어진 부숙은 피를 만들고 전신을 돌리는 에너지로 쓰인다. 게으름뱅이가 무를 먹고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은 제대로 된 소화를 거쳐 자신의 몸을 되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족양명위경의 혈자리가 대부분 이 무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내정도 마찬가지로 위기(胃氣)를 통하게 해식욕부진을 촉진시키고 소화불량을 치료한다. 혈자리 말고도 우리 몸에서 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있다. 그건 다름 아니라 팔다리다. 재미있는 것은 근육조직 중에 다리의 비복근(Gastrocnemius: 장딴지 근육)은 위와 배라는 뜻이다. 한의학적으로 밥은 팔다리로 먹는다고 한다. 튼실한 다리를 보고 무다리라고 하지 않는가. 무와 다리와 밥을 소화시키는 위장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이걸 생리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팔다리로 많이 움직여야 식욕이 생기고, 혈액순환도 좋아지고, 소화도 촉진된다는 거다. 나는 새삼 말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한다.
시크릿 가든, 내정
내정은 『영추·본수론』에 “두 번째 발가락 밖에 있다”고 한다. 둘째, 셋째 발가락이 갈라지는 부위의 들어간 곳, 발등에서부터 발가락의 접점 안쪽에 숨어있는 혈이다. 숨어있어서 그런지 이름의 뜻도 그러하다. 안을 뜻하는 내(內)와 작은 뜰을 뜻하는 정(庭), 시크릿 가든이다.
내정혈로 위장을 보해주기 위해서는 위경락의 흐르는 방향에 맞추어 밀 듯이 지압을 해주면 된다. 족양명위경은 눈에서 시작되어 발끝으로 가는 경락이니까 둘째 발가락 쪽으로 밀 듯이 지압해 주면 좋다.
혈자리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거는 이렇게 아플 때는 이 혈자리, 저렇게 아플 때는 저 혈자리 하면서 갖은 방편만 배우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때가 있다. 내 몸의 근본적인 원리를 알자고 한 공부인데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써 먹을 꼼수만 느는 게 아닌지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게으름뱅이를 위한 혈자리로 내정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게으름뱅이를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게으름뱅이들을 위해 내정이라는 처방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
움직이지 않는 게으름뱅이에게는 내정도 무도 다 필요없다. 닥치고 움직여라. 이게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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