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의 비밀, 족삼리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1844년 일본의 도쿄. 영대라는 다리의 개통식이 열렸다. 그러나 이날 최고의 화제를 모은 건 다리가 아니었다. 관심은 온통 한 가문의 세 커플에게로 쏠려 있었다. 이유인즉슨 이 커플들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 기록에 따르면 이들의 연세(!)는 자그마치 이러했다. “만평의 나이는 243세, 그의 처는 242세. 아들 만길의 나이는 196세, 만길의 처는 193세. 손자 만장의 나이는 151세, 만장의 처는 148세.” 평균연령 195.5세. 육십갑자를 세 번이나 돌고도 남을 나이다. 무슨 드라큘라들도 아니고 인간이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단 말인가. 당시에도 이게 무척이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급기야 개통식에 참석한 지체 높은 한 장군이 이들을 불러들인다. “어떻게 해서 그대들은 그렇게 오래 살아 있는가?” 만평이 대답한다. “매달 1일부터 6일까지 왼쪽과 오른쪽 다리의 삼리혈에 뜸을 뜹니다. 이것이 무병장수하는 비결입니다.” 족삼리와 뜸. 이 단순한 조합이 끔찍하게도 오래 사는 비법이었다. 이후 일본은 한동안 족삼리-뜸 열풍이 몰아친다. 만세가 평안하려면 족삼리에 뜸을 떠야 한다. 이른바 만평삼리구(萬平三里灸)! 그런데 왜 그토록 수많은 혈자리들 가운데 유독 족삼리였을까. 족삼리와 장수는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족삼리는 한국에서 유명한 혈자리다. 일명 김남수옹의 무극보양뜸에 들어가는 혈자리!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이 족삼리가 와따다!
족삼리와 어록들
일단 족삼리(足三里)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습득해보자. 그래야 장수와 족삼리가 어떤 관계인지 실마리가 좀 잡힐 거다. 족삼리는 다리에 있는 혈자리다. 무릎으로부터 3촌(寸)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해서 삼리(三里)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럼 3촌이란 어느 정도 길이인가. 자, 손을 펴보시라. 이 상태에서 엄지를 뺀 나머지 네 손가락의 길이가 3촌이다. 실제로 족삼리를 찾을 때는 무릎에 손바닥을 대서 찾는다. 이름만 듣고도 혈자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한 이 작명센스!
그런데 족삼리라는 이름이 다른 이유에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三은 크다는 뜻으로 天地人을 가리키므로 중요하다는 의미다. 里는 논밭의 두렁[土]을 나타내는 말로 인체에서 胃腸을 가리킨다. 즉 위장과 깊은 관계를 갖는 중요한 穴이라는 뜻이다. 이 혈은 上中下 세 부위의 모든 질환을 통치하지만 위치가 下肢에 있기 때문에 足三里라고 하였다.” 천지인을 관통하고 모든 병을 다스리는 혈자리이기에 삼리(三里)라고 했단다. 아, 환장하겠다. 이 혈자리 하나만 집중공략하면 장수는 따 놓은 당상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족삼리를 지압하면 우리 몸 사지(四肢)에 쌓여 있는 나쁜 기운들을 3리(里) 밖으로 걷어차 버릴 수 있어서 삼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러브 족삼리!
그래서일까. 족삼리에 관한 어록들도 무지 많다. 하나하나 감상해보자. “족삼리를 항상 눌러 주면 씨암탉을 먹는 것과 같다.” 족삼리에 사위에게나 잡아준다는 씨암탉의 기운인 온전히 들어 있단다. 게다가 “몸을 편안하게 하려면 삼리를 가만두면 안 된다.” “복부는 모두 삼리에 머문다.” 족삼리를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몸은 편해진다는 이 역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이 서른 살이 지나서는 족삼리에 뜸을 뜨지 않으면 기(氣)가 눈으로 치밀어 오르게 된다.” 아주 구체적이다. 체력이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는 30대부터는 족삼리를 집중공략 해야 한다는 충고다. 급기야 족삼리는 과거 일본 여자들의 혼수품(?)으로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여자들이 시집가기 전 족삼리에 뜸을 뜨는 법을 배워서 갔다.” 또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갈 때 족삼리에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한양 천리길이 힘들지 않았다.” “족삼리에 뜸을 뜰 줄 모르는 인간과는 같이 여행하지 말라.” 뭐 이 정도면 족삼리를 몰랐다가는 왕따가 될 판이다. 맞다. 족삼리는 국민혈자리다.^^ 그런데 이 어록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족삼리가 다리, 복부와 관련이 깊은 혈자리는 거다. 그렇다면 이 둘이 장수와도 관련되어 되어 있을 터! 이 미스터리한 관계망을 파헤치려면 먼저 족삼리와 복부의 관계부터 살펴야 한다.
족삼리, 배를 품다
복부(腹部)는 배다. 이 배 안에는 우리 몸의 소화기관들이 다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는 위-소장-대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꼬불꼬불 배를 채우고 있다. 좀 민망한 사실이지만 이 라인은 일종의 통이다. 그것도 처음과 끝이 뻥 뚫려 있는 통이다. 생각해보시라. 입에서 항문까지 뚫려(!)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아예 이 소화기관들을 내 몸 안의 외부라고 부른다. 소화기관들이 근본적으로 외부와 연결되어 있고 몸의 바깥(?)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래서 소화기에 해당하는 육부(六腑)는 양(陽)이다. 양은 바깥이고 발산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발산. 맞다. 똥이다.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은 소화기를 거쳐서 똥으로 배출된다. 배출이 안 되면 죽는다. 배를 복(腹)이라는 한자로 쓴 이유도 이거다. 복(腹)은 우리 몸을 뜻하는 육달월(月=肉)과 발로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의 상형인 복(㚆)이 합쳐진 글자다. 바람이 들었다 빠졌다 하는 것처럼 음식물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하는 곳이라는 거다.
이렇게 먹으면 배가 왔다갔다 하면서 슬슬 잠이온다. 저 분께서는 이미 졸고 계신지도...
그런데 『황제내경』에서는 이 소화기관들을 모두 위(胃)라고 우긴다. “대장과 소장은 모두 위(胃)에 속한다.”(『황제내경』 「영추·본수」) 엄연히 다른 소장, 대장을 왜 모두 위에 속한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들이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위, 소장, 대장은 모두 소화를 담당한다. 그렇기에 이 소화기관들은 모두 위(胃)라고 해도 무방하다.(뭐 늘 이런 식이다.^^) 핵심은 모양이나 형태보다 기능상의 분류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는 거다. 그럼 왜 소장이나 대장이라고 하지 않고 위(胃)라고 했을까. 같은 기능인데 말이다. 위는 우리 몸의 소화기관이 음식물을 받아들이는 첫 관문이다. 위에서 제대로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려 보내지 않으면 소장과 대장은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한다. 배가 고프다고 우리가 항문으로 먹을 순 없지 않은가! 맞다. 위(胃)를 후천지본(後天之本)이라는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거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위(胃)에서 시작되고 위(胃)의 힘으로 소화된다.
그렇다면 위(胃)는 대체 어떤 기능을 하는가. 위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납(受納)이고 다른 하나는 통강(通降)이다. 수납은 우리 몸으로 들어온 음식물을 모두 위에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통강은 그것을 밑으로 내려가게 해서 통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외부로 내보낸다는 의미다. 그래서 위를 중심으로 하는 소화기관들은 이 채움과 비움의 질서를 따른다. “음식물이 위에 가득 차면 장이 찌꺼기를 배설하여 비고, 위에서 소화되어 내려온 음식물이 장에 가득 차면 위가 빈다. 번갈아 비고 번갈아 차므로 기가 상하로 소통되는 것이다.”(『황제내경』 「영추·평인절곡」) 쿵짝쿵짝. 위와 소장-대장은 박자를 타듯이 움직인다. 이 하모니에 문제가 생기면 기(氣)가 통하지 않는 불통(不通)상태에 빠진다. 맞다. 이 불통사태, 특히 소화불통사태는 만병의 근원이다. 한의원에 가면 제일 먼저 소화가 잘 되느냐고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 몸 안의 통이 지금 잘 소통되고 있는가. 이것에 문제가 생기면 병에 걸리고 오래 살지 못한다.
소화불량엔 당근 족삼리다. 여기만 힘주어서 마시지해줘도 소화가 잘 된다.
족삼리는 이 만병의 근원인 소화불통상태를 바로 잡는다. 족삼리는 족양명위경의 혈자리로 위경 가운데서 土의 기운을 가진 혈이다. 위경(土) + 족삼리(土)의 조합. 그렇다. 소화의 시작이자 끝인 위를 건강하게 하는 데는 족삼리만한 혈도 없다. 실제로 소화기계통에 문제가 생기면 먼저 족삼리에 침을 놓거나 마사지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위-족삼리를 베이스로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소화의 힘을 기반으로 몸의 병을 고치고 건강한 몸으로의 변화를 꾀하겠다는 계산이다. 장수하려면 일단 소화력이 좋아야 한다. 뭐든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몸 자체의 기운이 없다. 소화를 통해서 얻는 영양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족삼리를 어찌 그냥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특히 먹고 가만히 앉아서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요즘 사람들에게 족삼리는 최고의 혈자리다. 복부는 위(胃)다. 또한 “복부는 모두 삼리에 머문다.”
족삼리, 다리로 난 길
인트로에서 봤듯이 우리 몸의 장부와 경맥은 서로 하나다. “가령 폐(肺)의 경맥은 가슴부위에서 시작해 팔을 따라가서 엄지손가락 끝에서 끝난다. 이걸 그냥 ‘폐(肺)다’라고 이야기한다. 폐가 아프면 당연히 이 경맥도 아프고 경맥이 다치면 폐도 다친다. 맞다. 그거 그냥 ‘폐(肺)다.’^^” 같은 시그널, 같은 기운의 배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폐경이 지나는 팔 부위를 살살살 두들겨주면 폐가 건강해진다. 이 원리로 만들어진 게 경락마사지고 경락체조다. 위와 위경도 마찬가지다. 위경은 눈 밑에서 시작해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지나 헤어라인을 따라 머리끝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목으로 내려와서 복부를 관통하고 다리를 지나 둘째 발가락 끝에서 끝난다. 살짝 감을 잡으셨을 거다. 몸의 상하축을 관통하면서 다리로 뻗어 있는 위경. 다리와 장수. 이게 그냥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다리에는 비경이나 방광경, 신경, 간경 등 많은 경맥들이 지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경(胃經)이 土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土는 오행상 중앙이자 다른 木火金水를 묶어주는 힘이다. 이 土가 중앙에 없으면 木火金水 또한 방향을 잃는다. 몸의 중심이자 다른 오행들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것이 土의 작용인 셈이다. 좀더 나가보자면 土는 저장과 변화의 기운이다. 땅을 보라. 뭐든 받아들여서 그것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땅이 가진 힘이 아닌가. 위경(胃經)이 土에 배속된 것도 이런 기운의 배치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소화와 변화. 그래서 과격하게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소화와 변화의 힘,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리를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비약이 아니다.
걷는다는 건 우리를 낯선 환경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지금은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걷는 일이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잘 실감이 나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에게 걷는다는 건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동한다는 의미였다. 가령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간다거나 전국을 유람할 때는 오로지 다리의 힘에 의지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다리가 약하면 어디도 갈 수 없다. 지금의 내 세계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 요원하다는 얘기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다른 것과 만나야 한다. 매번 계절마다 다른 음식들을 먹고 매일 흐름이 바뀌는 공기를 들이마셔야 한다. 다른 사람과 만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게 소통의 시작이자 전부다. 이 흐름이 막혀버리면 곧 우리 몸은 금세 갑갑함을 느낀다. 아니 마음마저 꽉 막힌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으면 왠지 모르게 가벼운 산책이라도 하고 싶다. 정적인 것이 극에 달하면 동적인 것으로 변하고 동적인 것이 극에 달하면 정적인 것으로 변한다. 이 반복. 순환이다.
맞다. 다리를 움직인다는 것은 이 순환의 힘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덩달아 다리를 많이 움직이면 몸에서 위로 뜨기 쉬운 기(氣)를 밑으로 내려준다.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을 가진 기(氣)가 밑에 있으면 몸의 순환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걷는 것, 그게 곧 몸의 순환을 이루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다리는 우리 몸에서 쓰고 남은 정(精)을 저장하는 곳이다. 특히 허벅지는 정(精)을 저장하는 대형 창고다. 그래서 우리는 꿀벅지를 보면 끌린다. 그게 그 사람이 건강하다는 증거, 정(精)이 많다는 몸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결국 걷는다는 건 몸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 그 순환의 힘으로 몸의 건강을 지키는 것, 이 건강함으로 이질적인 것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우리는 오로지 한 가지 방식으로만은 살 수 없다. 위경은 삶의 변화, 몸의 변화를 만들고 감당하고 그것을 다시 우리 삶의 힘으로 전환하는 기운들이 모인 통로다. 그래서 위경은 강하다. “황무지에다 던져지더라도 살아날 수 있는 끈질긴 생활력의 밭을 일구어 자식들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강인함이 바로 건강한 위경락의 기운이다.” 이 강인함이 곧 생명력이자 장수의 길이다. 다리와 위경, 위경과 족삼리, 소화와 순환. 장수엔 이만큼 환상적인 커플이 또 있겠는가.
허벅지가 이 정도는 되어야 정(精) 좀 쌓았다고 어디서가 얘기할 수 있다. 아우 튼실해~~
사실 족삼리의 기능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고? 너무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잠깐 나열만 해봐도 기가 질린다. “복통, 사지권태, 신경통, 소화불량, 위경련, 변비, 눈질환, 빈혈, 고혈압, 반신불수, 불면증, 무릎, 다리통증, 편두통, 현훈, 하지마비, 급성·만성위염, 장염, 설사, 구안와사, 중풍.” 끝이냐고? 더 있다. “심한 화가 났을 때도 삼리를 긁으면 화가 내려가 마음이 가라 않는다.” “침에 대한 공포가 심한 사람, 소심한 사람, 빈혈이 있는 사람에게는 삼리부터 침을 놓고 치료한다.” “술에 취하여 정신이 없을 때도 삼리를 쓴다.” 등등. 안 통하는데가 없이 두루 쓰인다. 맞다. 그래서 족삼리(足三里)의 리(里)를 리(理)라고 보기도 한다. 몸의 이치가 되는 혈자리라는 것! 그 숱한 어록들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족삼리(足三里), 다리에 장수로 통하는 길이 있다. 이 길을 가만히 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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