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이야기
손영달(남산강학원 Q&?)
고천문학의 용어들 중 우리 귀에 가장 익은 단어는 아마 “일월오성(日月五星)”이 아닐까 한다. 일월은 해와 달, 오성은 태양을 가운데 놓고 공전하는 다섯 행성을 일컫는 말이다. 태양계의 행성들 중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다섯을 엮어서 오성이라 했다. 수성, 화성, 목성, 금성, 토성. 그리고 여기에 일월의 두 요소를 합쳐 칠요(七曜) 혹은 칠정(七政)이라 불렀다. 칠요와 칠정은 곧 일월오성의 다른 말이다. 칠요는 음력 한 달을 4등분해서 얻은 7일의 시간주기이고, 칠정은 일곱 개의 천체의 운행을 정치원리에 대응시킨 것이다. 각각 일월오성에서 얻어낸 시간 질서와 정치 원리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일월과 오성의 운행이 지상의 시간질서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나라의 정치원리까지 결정한다는 것. 하늘의 무수한 천체들 중 이들 일곱이 그만큼 인간의 삶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임을 알 수 있다. 하늘의 운행을 살펴 인간의 삶에 적용시키려 했던 고대인들에게 이들 일곱 천체는 하늘의 관전 포인트가 되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성(五星)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나란히 돌고 있는 다섯 행성(行星). 이름 그대로 이들은 “떠돌아다니는 별”이다. 하지만 이들은 마구잡이로 떠돌아다녀 궤도를 예측 할 수 없는 혜성(彗星)과는 다르다. 태양을 중심으로 엄밀한 궤도를 지키며 돌고 있지만, 태양계의 세 번째 별인 지구에서 보기에 어지러이 떠도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태양처럼 안정적이진 않지만 이들의 궤도는 예측가능하다. 일찍이 고대인들은 복잡하게 얽힌 오성의 길을 읽어낸 바 있다. 고천문학이 이룩한 경이로운 성과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탄성을 금하지 못하지만, 정작 그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서 여기에 도전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하지 않는다. 옛 중국인들은 오성에서 무엇을 보려 했을까? 오성의 운행과 우리의 삶 사이에 어떤 접점을 찾고 있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고대 사회에서 천문학은 나라의 비중 있는 국책사업이었다. 천체의 운행은 시간질서의 확립에 중요한 기준점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왕들이 핵무기를 원하듯 그 당시의 군주들은 시간(시간질서)을 갖기를 원했다. 고대 군주들에게 시간 질서의 확립은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시간을 다스리는 것은 곧 세계를 다스리는 것과 같았다. 무질서한 세계를 문명화 시키려는 야심찬 군주라면 먼저 무상한 시간의 흐름을 다스릴 수 있어야 했다. 그저 흐름으로 있을 뿐인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 만든 시간(시간체계)이란 발명품은 인간이 자기의 필요에 따라 어떤 것을 다스리는데 필수적인 디딤돌이 되었다.
역시 모든 건 다 시간의 문제다.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시간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늘 시간이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는!
이때 우선하는 과제는 하늘을 공간화 시킨 천구(天球)라는 구면에 천체의 움직임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가장 그리기 쉬운 건 역시 태양의 움직임이다. 이에 비해 오성의 궤도는 굉장히 복잡하다. 중국인들은 태양이 지나가는 길을 천자의 길로 여겼다. 이를 천도(天道)라 부른다. 태양 주위를 도는 다섯 행성의 궤적은 태양을 보좌하는 관리들의 영역이라 여겨졌다. 왕은 유려하게 뻗은 자신의 길을 순행하며 스스로가 천자임을 세상에 천명했고, 자신의 다섯 신하들에게는 그들 각자에 맞는 직무를 나누어 부여한다. 오성이 운행하며 이룬 궤적은 말하자면 태양으로부터 하사받은 업무들의 그래프와 같은 것이었다. 이때 오성은 오행(五行)에 배속되어 각 기운이 주재하는 방위를 상징한다. 다섯 행성이 모두 모이면 동서남북과 중이 합쳐진 정방형의 공간이 완성되는 것이다. 오성은 왕이 다스리는 땅에 해당한다.
고대 문명권 중 중근동의 지역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이걸 그려낸 것이 ‘황도대zodiac’이다. 황도대는 곧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궤도이다. 이 황도구역을 달의 열두 주기를 뜻하는 12구역으로 나눈 것을 황도 12궁이라고 한다. 천구상의 공간 이 구획 되면 그걸 시간 질서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간체계는 태양과 달의 운동이 함께 반영된 ‘태음태양력’으로 발전해갔다. 이들의 시간체계는 해와 달의 운행을 고려해 만든 일 년 열 두 달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다.
이에 비해 중국에서 시간추산을 위해 주목한 것은 뜻밖에도 목성의 공전주기였다. 그리기도 어려운 목성의 공전주기를 떡 하니 고른 대인배들! 그리하여 중국인들은 상당히 복잡하고도 독특한 시간 질서를 의도한 것이다. 목성이 태양 주위를 한 번 도는 동안 지구는 약 12번(11.86) 공전 한다. 그러니까 목성의 한 해가 지구의 12년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지구의 한 해를 년(年) 이라 부른다. 목성의 한 해는 세(歲) 라고 한다. ‘세월이 흐른다’고 할 때의 세월(歲月)은 목성의 주기를 열두 번 끊어 나온 한 해의 명칭이다.* 제사의 축문 앞머리에 붙는 ‘유세차(唯歲次)’라는 말도 그 해에 목성이 어떤 위치에 자리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의 시간체계는 세성이 위치한 위치에 따라 각각의 해를 다른 식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중국은 여기에 태음태양력의 역법 체계 마저 고수하려 했으니 해와 달 그리고 목성 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꿰차는 시간 체계를 가지려 했던 셈이다. 일 년 열두달 뿐 아니라 십이 년 한 해 한 해 특이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16쪽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고대의 시간관은 너무도 낯설다. 우리들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무심한 삶의 습관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하루가 한 달이 그리고 일 년이 각각 얼마나 다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천체의 순환과 함께 매번 회귀하는 듯한 시간 속에 도드라지는 차이의 지점들을 포착해내려 했다. 매 순간이 얼마나 새롭고 다른 것인지! 우리가 망각해가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이 여기 있다.
오성의 점성적 의미
오성은 시간 질서의 협조자로 나서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제까지 수차례 이야기했던 천인감응. 거리상으로 까마득한 격차로 떨어져 있는 천체와 인간이 감응하고 공조하는 질서를 이룬다. 오성의 궤적을 관찰하는 것은 주로 점성학자들의 몫이었다. 수많은 천체들 중 지구와 나란히 궤도를 이루고 있는 만큼 이들의 파급력은 강력했다. 점성학을 오로지 국운을 내다보는데 복무시켰던 중국의 특성 상, 오행의 점성적 의미는 주로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거시적인 틀로 해석되고 있다. 대략적으로 오성의 점성적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과거 점성술사들에게 오성은 인간의 운명을 읽어내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했다. 별들의 세계와 인간의 운명. 이 기묘한 조합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쉰다. 사주나 별자리점 등도 별의 운행과 인간의 운명 사이에서 탄생한 것들이니까!
목성은 동방의 목기에 배속된 행성이다. 앞서 봤듯이 세성(歲星)이라고 한다. 목의 기운이 추진력을 의미하기에 목성의 세를 보고 어떤 지역의 정벌 여부를 점쳤다.
화성은 남방의 화기운에 속한 행성이다. 뜨고 지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사람을 미혹시킨다고 해서 형혹성(熒惑星)이라 부른다. 화는 예를 뜻하므로, 화성이 어지러우면 나라의 예법이 문란해 진다. 그리고 화는 폭발력을 의미하기도 하니,화성의 세는 전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옛날에 전투를 할 때는 화성의 운행을 눈여겨 봐야 했다. 화성의 운행을 따를 경우 승리하고 거스르는 경우 지게 된다. 화성과 금성이 충돌할 경우 화극금(火克金)하므로 금이 상징하는 군대가 파괴된다.
토성은 중앙의 토기에 배속되니 점성학적으로는 제후와 임금의 상으로 여겨진다. 토성이 특정 궤도에 머물 경우 그에 해당하는 지역에 길한 일이 있다. 오래 머물수록 그 복은 크다. 한편 토성이 급하게 움직이면 왕이 편안하지 않고, 거꾸로 운행하면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금성은 태백성(太白星)이라고 하는데 서방의 금에 배속된 행성이다. 금성은 군사를 주관하기에 금성의 운행이 순조롭지 못하면 군대가 패하거나 임금이 왕위를 찬탈당한다.
수성은 북방의 수에 배속된 행성. 수가 잉태의 기운을 상징하듯이 이 별은 뭇 별들을 잉태하는 어머니와 같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진성(辰星)이라고 불린다. 수성의 운행이 순조롭고 그 빛이 고르면 풍년이 들고 날씨가 조화로우나 그렇지 않으면 흉년과 기근이 찾아온다.
물론 오성을 살피는 방법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것의 빛이 어떤지, 어느 궤도로 어느 속도로 운행하는지, 그리고 주변의 천체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 복잡한 변수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기억해 둬야 할 것은, 오성은 저마다의 궤도 위에서 돌고 돌고 돈다는 것. 오성의 운행은 그치지 않고 이어지며, 천체들의 관계는 매번 새로운 장 속으로 접어든다. 세상의 오행, 그리고 우리의 삶은 모두 천체의 조화와 같다. 천체의 운행에 쉼이 없듯 교차하고 얽히며 매번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삶 역시나 매번 새롭게 벌어지는 사건의 무대 위를 살아가고 있는 것. 하늘의 오성은 매순간 새롭게 거듭나는 이 시공으로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한다.
매순간 다르게 거듭나는 시공간, 차이를 느껴보아요^^
'출발! 인문의역학! ▽ > 별자리서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 별자리와 동양 별자리, 그 기원은 어떻게 다를까? (3) | 2012.08.16 |
---|---|
북두칠성, 영원을 기록하다 (5) | 2012.08.02 |
세상의 중심엔 내가 있다 (0) | 2012.07.19 |
달빛을 품은 달력 (0) | 2012.06.21 |
우리들은 태양의 아들이다 (0) | 2012.06.07 |
우주전쟁, 별을 탐하라! (0) | 2012.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