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달빛을 품은 달력

달빛과 함께 춤을

손영달(남산강학원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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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두 개의 풍경

‘달’하면 떠오르는 것은? 정월대보름이나 추석의 환한 보름달, 풍성한 먹거리와 정겨운 풍습들. 우리에게 달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다. 환하게 밝은 달이 떠오르면 사람들은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이런 우리에게 달을 곧 광기(狂氣)와 동의어로 놓는 서양인들의 정서는 낯설기 그지없다. ‘광기 어린’이라는 뜻의 영어 ‘lunatic’은 라틴어 ‘luna’에서 왔다. ‘luna’는 달이라는 뜻이다. 서구인들의 기억 속에 달은 어둡고 음산한 이미지로 기억되어 왔다. 보름달이 뜰 때마다 괴수로 변하는 늑대인간 이야기, 보름달이 뜨는 날에 자살율과 살인율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여기에는 달이 내뿜는 서늘한 빛이 인간의 숨은 본능을 자극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나의 달을 두고 동과 서는 너무도 엇갈린 생각을 해왔다는 것. 휘영청 보름달이 떠오른 밤, 서양인들이 원초적인 두려움에 휩싸여 하늘을 봤다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은 달빛을 가운데 두고 축제를 벌인 셈이다.

소싯적에 기도 좀 해 봤다고 자처하는 필자는 달과 관련된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를 가지고 있다. 벌써 십 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와 기도를 드리러 산에 올랐었다. 목적지는 친척 중 누군가의 꿈에 나타났다는 고목나무.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날은 그믐날 밤이었다. 그믐날 밤에 꿈에 본 고목나무 찾기라……. 아마도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도 그보다는 쉽지 않았을까? 그믐날 밤의 산 속은 무엇도 없는 절대 어둠의 상태, ‘칠흑 같은 어둠’ 따위의 뻔 한 수사로는 형언할 수 없을 암흑의 극치다. 그런데 일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 모퉁인가를 도는 데 갑자기 달빛이 나타난 것이다. 달 없이 빛나던 그 날의 달빛은, 꿈에서 본 고목나무를 찾아 치성을 드리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우리 집안사람들은 그 달빛을 산신의 보살핌이자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같은 상황을 서구인들이 겪는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선, 산을 오른다는 것 자 체에 대한 견해부터가 엇갈린다. 중세 유럽의 신학자들은 산을 ‘추악한 대지의 혹’이라 여겼다.* 그곳은 악마와 마귀가 드글거리는 저주의 장소였다. 그렇기에 산은 오로지 정복의 대상으로서만 의미가 있었다. 서구인들은 산꼭대기를 찍는 등산의 방식으로 산을 대한다. 반대로 동양인에겐 산은 온갖 신령과 수도자들로 가득한 제의와 수행의 공간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에겐 정상을 오르는 것 보다 깊고 그윽한 곳에서 산과 감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런 서구인들에게 골짜기와 달빛의 조합이라면,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최악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 상황을 마귀의 저주라 여기며 혼비백산하지 않았을까?

*유아사 야스오,『몸과 우주』, 331쪽, 지식산업사

달은 동(東)과 서(西)의 너무나도 상반된 태도를 잘 보여주는 매체다. 이 차이는 천 길 사이로 벌어진 두 세계관을 명징하게 드러내 준다. 은은한 달빛을 두고 동과 서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단층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 보자.

내 몸을 휘감는 달빛

동양에서 해와 달은 부단히 교대되는 두 양상으로 이해되었다. 이들 사이에는 어떠한 위계도 설정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음양(陰陽)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낳는 데 일조했다. 양은 상승과 발산의 국면이며, 음은 하강과 수렴의 국면이다. 음과 양은 서로 의존하는 가운데 부단히 순환한다. 음양의 개념으로 말하면, 달은 음기(陰氣)를 주관하여 세상에 하강과 소멸의 기운이 가득하게 만드는 밤의 주인장이라고 할 수 있다.

(陰)은 발산하는 기운을 수렴시켜 구체적인 결과물을 벼려내는 기운이다. 그렇기에 밤은 생산의 시간으로 이해되었다. 낮이 발산한 양기를 벼려서 물질로 길러내는 시간. 달은 그런 생산의 과정을 총괄하는 천체이다. 태양이 용솟음치는 양기로 생명의 주재자 역할을 한다면, 달의 음기는 야무진 손끝으로 만물의 몸체를 빚어낸다. 좀 구태의연한 비유를 갖다 대자면, 태양은 돈 벌어다 주는 아빠 역할이고, 달은 세세한 살림살이를 주관하는 엄마 역할이라고 할까. 돈줄을 쥐고 있는 건 엄마 소관, 엄마한테 밉보였다간 밥 못 얻어먹는다. 물질세계를 주관하는 달은 만물의 밥줄을 쥐고 있는 우주적 엄마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달에 기대고 있는 것이 많다. 구체적이고 경험 가능한 물질세계의 거의 모든 것이 음(陰)의 담금질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우리가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차원의 것이 바로 우리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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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다. 괜히 엄마 뒤에 업혀 있으면 잠이 저절로 오는 이유. 자꾸 먹을 것이 생기는 이유. 마음이 한없이 편했던 이유. 엄마가 풍요의 상징인 달의 리듬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달의 리듬에 영향을 받는다. 달의 성정은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그리고 그믐달로, 차고 기우는 것이다. 달이 만들어내는 순환의 율동은 지상의 만물에 차고 넘친다. 그것이 바다에 가서는 밀물과 썰물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사람에게 오면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만들어낸다. 바람이 없는 상태에서 파도의 물결이 이는 것은 1분에 약 18회이다. 이에 응하여 사람도 1분 동안 약 18번 숨을 쉰단다. 자, 여기에 숫자 2를 곱해보자. 그러면 사람의 평균 체온 36도가 된다. 36이란 수(數)는 달의 파동 18이 음양의 두 국면으로 확장된 것이다. 도가 수행자들은 36이란 수(數)를 몹시 중요하게 여겨 도인술의 동작들을 꼭 36번씩 반복했다. 여기에 다시 2를 곱하면 72가 나오는데, 이는 일 년 360일을 오행(五行)의 다섯 국면으로 나눈 수이자, 사람의 평균 맥박수와도 일치하는 수이다. 이 신비로운 수(數)의 유희는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달의 율동이 우리 몸에 리듬을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의 월경주기도 달의 영향을 받는다. 여성의 월경주기와 달의 삭망월(朔望月) 주기는 모두 29.5일이며, 임신과 출산도 달이 그득한 보름달일 때 가장 왕성하다. 인체는 달과 함께 춤춘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따라 몸의 기(氣)도 돌고 도는 것이다.『황제내경』에는 인체와 달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인체는 자연계와 유관하며 해와 달의 운행과도 상응한다. 그러므로 달이 차면 바닷물이 서쪽으로 차오르고, 인체의 기혈 역시 쌓이므로 기육이 충실하고 피부가 조밀해지며 모발이 건조해지고 주리가 닫히며 기름때가 끼는데, 이때는 비록 적풍사기가 침입하더라도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다. 달이 이지러지면 바닷물이 동쪽으로 차오르고, 인체의 기혈이 부족해져 위기가 가라앉으며 형체만 있을 뿐이고 기육이 감소하고 피부가 이완되며, 주리가 열리고 모발이 손상되며 기육의 결이 얇아지고 검은 때 같은 것이 떨어지는데, 이때에 적풍사기가 침입하면 사기가 깊숙이 들어가 갑작스럽게 발병한다.

─『황제내경』,「영추」, <세로론>

만월 · 만조일 때는 몸의 혈기가 강건하고 기육이 튼실해지지만 달이 기울면 혈기의 운위가 쇠약해 진다. 이 말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듯이, 달의 우아한 율동에 따라 우리 몸도 차고 기운다. 일찍이 옛 사람들은 인간의 몸이 달의 리듬에 상응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리듬을 거스르지 않고 살려 노력했다. 달과 바다,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우주의 리듬에 밝았던 것이다.

신화시대의 흔적들을 들춰보면 고대인들이 공통적으로 모신(母神) 숭배 전통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특히 달은 남신(男神) 태양의 능동성을 받아들여 만물을 자라나게 하는 지모신(地母神)의 대표 격이었다. 사람들은 달을 원초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 잉태와 다산을 주재하는 여신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그리고 달을 향해 풍요를 기원했다. 인류의 역사 상 달 숭배 전통은 태양숭배신앙의 흔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발견된다. 역사를 가지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일찍이 우주의 엄마, 달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해와 달의 궁합은?!

달은 생명체의 몸을 주재할 뿐 아니라, 인간이 문명을 구축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달은 가장 가시적인 순환의 주기를 보여주는 천체다. 영화나 TV에서 좁은 감방에 갇힌 죄수가 창밖의 달빛을 가늠하며 날짜를 새기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달만큼 시간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천체는 없다. 달이 차고 기울면서 만들어내는 보름이라는 주기는, 소리 없이 흘러 가는듯한 시간의 강물에 일정하게 굽이치는 리듬과 순환의 주기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은 이 순환의 질서 속에서 규칙성을 읽어냈다. 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을 발명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다. 인류에게 달은 첫 달력이 되어 주었다.

여기 한나라의 어느 무덤에서 출토된 재미있는 유물이 있다. 두 그루의 나무 그림. 너무 평범해서 누군가 무덤가에 휘갈겨 놓은 낙서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기에는 옛 사람들이 달력을 만들었던 원리가 들어 있다. 왼쪽의 나무는 6개의 잎을, 오른쪽의 나무는 15개의 잎을 가지고 있다. 벌써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오른쪽의 나무는 달의 이지러짐을 보고 날을 헤아리는 기능을 한다. 차오르는 달을 보고 15일 동안 여기에 잎을 붙여나가고, 달이 기울면 다시 잎을 뗀다. 이렇게 한 주기를 돌고 나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찬다. 그러면 왼쪽의 나무에 잎을 하나 붙인다. 왼쪽의 나무는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잎을 붙이고 6개월이 차면 다시 잎을 뗀다. 잎이 모두 떨어지면 1년이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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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이 잘 보여주고 있듯, 달력의 탄생에 있어 달은 가히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 비단 중국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사라진 제국 잉카 등 거의 대부분의 문명권에서 달을 고려한 달력을 만들어냈다. 그 당시 달력의 용도는 오직 제의에 국한됐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달력이 보다 실용적인 용도로 쓰이길 바랐다. 특히 농경의 시작에 있어 달력의 필요는 너무도 절실한 것이었다. 달력의 발달과 문명의 고도화는 궤를 함께 해 갔다. 사회가 복잡하고 고도화 될수록 보다 체계적인 천체 질서를 반영한 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각 문명권마다 다양한 천체의 질서를 반영해 달력을 만들었지만, 주 쟁점이 되었던 사안은 해와 달의 주기를 맞추는 문제에 있었다. 해와 달의 운행을 동시에 고려한 이런 달력을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이라고 한다.

태음태양력의 난점은 지구의 공전주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1년(365.2422)과 달의 공전에 따라 만들어지는 1달(29.5306 => 29.5306*12=354.3671)이 서로 어긋난다는 것, 어찌 보면 해와 달은 궁합이 안 맞는 부부인 셈이다. 그럼에도 둘이 함께 살아가자니 부단히 지지고 볶을 수밖에.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달만을 고려한 태음력은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엣지 있게 포착할 수 없다. 절기의 변화에 대해서도 사실상 알려주는 바가 없다. 하지만 태양의 운행을 고려하면 한 해의 기준점과 절기 변화를 단박에 움켜쥘 수 있다. 해와 달의 어긋나는 리듬을 조율하기 위한 비결, 이 문제는 달력에 윤달을 넣는 문제로 모아졌다.

윤달의 문제에 있어 중국인들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집요함을 보였다. 제대로 된 시간질서의 확립이라는 과제는 천자에게 주어진 가장 비중 있는 과제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전설의 요임금이 이렇게 한 말씀 남기실 정도. “삼가 천체 운행의 원리를 파악해 해와 달과 뭇별의 운행을 계산하고 관측하도록 하라. 그리고 경건히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리도록 하라~~” 해와 달의 공전주기가 자연수로 똑 떨어지지 않고 소수단위로 늘어짐에도 불구하고(둘의 차이는 10.8751 얼마나 머리에 쥐나는 계산이었을까!), 보다 정교하게 윤달을 넣는 법을 골몰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년 7윤법(19년 동안 7번의 윤달을 끼워 넣는 방법)이 도입되는데, 이는 태양이 선회하는 기점인 동지일과 달의 기점인 초하루가 같은 날에 들어오도록 맞춘 것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중국인들은 동짓날 자시(子時)에 해와 달이 동시에 반환점을 끊는 76년의 주기를 알아내기도 하고, 동짓날하고도 갑자일 자시에 해와 달이 나란히 골인 하는 4617년의 주기를 계산해내기도 한다.(이 징한 계산에 참여한 이가 그 유명한 사마담-사마천 부자이다.) 여기에 1태양년의 주기에 질서를 부여한 24절기 체계가 확립되면서 중국의 달력은 달의 위상과 계절의 변화를 정교하게 포착하는 보다 균형감 있는 모습을 갖춰갔다.

달(moon)없는 달(month)

달력 하나에 이다지도 많은 관심을 보였던 중국인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천체의 운행을 모델로 해서 인간사회의 규칙을 찾으려 했던 천인감응의 세계관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간체계는 서양의 달력이 받아들여진 이후, 달력의 한 귀퉁이로 밀려나고 말았다. 하지만 달력의 작은 글씨에서나마 이를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일지 모른다. 우리가 소위 ‘양력’이라 부르는 서양의 그레고리우스력의 실체를 알고 나면 우리가 얼마나 앙상한 시간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지에 몸서리치게 될 것이니 말이다.

달을 배제하고 순전히 태양의 운행만을 고려한 달력인 태양력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산물이었다. 나일 강이 범람하는 하지 무렵을 짐작하기 위해 그들은 일 년의 정확한 길이가 얼만큼인지를 따지려 했다. 하지만 이 달력은 농사를 위해 고안된 반쪽짜리 달력에 불과했다. 제의를 포기할 수 없던 이집트인들은 이 달력을 다른 태음태양력과 병행해 사용했다. 이 태양력이 세계적인 시간 체계로 급부상한건 로마시대 정복자들의 눈에 들면서부터다. 로마의 정복자들은 태양력의 간편함에 매료되었고 이를 자신들의 달력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서구의 시간질서에서 달의 운행은 배제되어 버리고, 달(moon)없는 달(month)로 이루어진 기계적인 달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기고만장한 정복자들은 급기야 각각의 달에 매겨진 이집트 신들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서구인들은 시간의 질서가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한 달(moon)의 존재를 깡그리 지워버리고 오로지 눈에 환하게 들어차는 태양의 길만을 따라 외발로 걷게 된 것이다.

시간의 체계에 있어 달의 주기를 배제했다는 것은 몹시도 위태로운 일이다. 달의 주기가 잊혀 졌다는 것은 동시에 우주의 순환의 질서도 함께 망각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달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없이 연이어 있을 것만 같은 아득한 시간들을 위해 세워진 일종의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달력이 있기에 우리는 연속되는 날들 속에 매듭을 지을 수 있게 된다. 하루, 한 달, 한 해의 시작과 끝. 하나의 국면을 온전히 마무리 할 수 있기에 비로소 새로운 시작 또한 가능한 것이다. 달력은 시간의 순환의 질서를 제시함으로써 세상에 생명의 리듬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달 없는 달력이란 엔진을 들어낸 자동차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달의 주기가 사라짐과 함께 사람들은 열리고 닫히는 시간의 마디를 상실하게 되었다. 달이 차오르고 기울고, 파도가 밀려왔다 쓸려가고, 호흡이 들고 나는 것처럼, 시간은 돌아오고 떠나가는 순환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 시계 바늘이 지나가는 균질한 거리의 칸들, 혹은 일직선으로 뻗어가는 화살 같은 게 결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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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달력이다. 뭐가 이렇게 생겼냐 싶겠지만 이 달력이 만들어질 때는 최고 수준의 천문학과 수학이 동원되었을 게다. 그렇다. 달력은 당대의 사상과 문화의 지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달력은 너무 밋밋하기 그지없다.

이쯤에서 서구인들이 달을 보고 느꼈던 공포감이 이해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어쩌면 그들은 굽이치는 시간의 물결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아닐까? 삶이 죽음으로 죽음이 또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또한 시간 그 자체가 매번 사라지고 탄생하는 순환의 연속이라는 것을, 감당치 못했던 것 아닐까? 피로로 가득한 질주로부터 잠시 숨을 돌리고, 이 밤 달빛과 함께 춤 한 자락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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