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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생생 동의보감

내 몸의 곳간을 비우는 법

by 북드라망 2019. 12. 26.

내 몸의 곳간을 비우는 법



『동의보감』을 읽다보면 병과 치료가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토(吐), 한(汗), 하(下), 토하거나 땀을 흘리거나 설사하는 것은 병증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 이것이 치료법이 될 수 있다. 병이 상부에 있을 때는 토하게 하고 중간에 있을 때는 땀 흘리게 하며 아래에 있을 때는 설사시킨다. 계절에 따라 이 처방을 달리하는 것도 재미있다. 봄에는 토(吐), 여름에는 한(汗), 겨울에는 하(下)가 어울린다.




병은 대개가 담음(痰飮)으로 생긴다. 담음이란 진액, 즉 몸의 수분이 졸여져서 뭉친 것인데 이것이 진액의 흐름을 막고 기혈의 순환을 막아 온갖 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십병구담(十病九痰)이라는 말도 있다. 간질이나 두려움 등 정신질환도 담음의 일종으로 본다. 토(吐), 한(汗), 하(下)는 약을 먹고 하는데 몸의 허실에 따라 신중히 해야하고 기가 허하거나 특정 질병이 있을 때는 피해야 한다. 그러나 약을 먹지 않고 허실과 계절에 크게 관계없이 토, 한, 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동의보감』은 도창법(倒倉法)을 중시한다.



황소의 덕으로 비워라


도창법(倒倉法) 장위(腸胃)는 마치 시장과 같아서 모든 물건이 다 들어가지만 그중 곡식이 제일 많기 때문에 ‘창(倉,곳집)’이라고 한다. ‘도(倒)’는 오랫동안 쌓여있던 것을 뒤집어 쏟아서 깨끗하게 씻는다는 뜻이다. 음식에 심하게 상한 일은 없다고 하여도 정체된 담(痰)과 어혈(瘀血)은 날마다 쌓이고 달마다 심해져서 중궁(中宮, 脾胃)은 깨끗할 수 없고 토덕(土德, 소화작용)은 순조롭질 못하게 된다. 속에 병이 있으면 밖으로 나타나니 탄탄(癱瘓), 노채(勞瘵), 고창(蠱脹), 전질(癲疾)이나 이름모를 기이한 병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선철(先哲)들이 만든 萬病元, 溫白元등의 처방은 공(攻)하고 보(補)하는 작용을 겸하여 공교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도창법(倒倉法)의 빠른 효과보다는 못하다. (「잡병편』, ‘토(吐)’, 1006쪽)


위장은 창고처럼 음식물이 거쳐 가는 곳. 제아무리 잘 소화시켜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찌꺼기가 끼어서 뭉치게 마련이다. 하수구에 때가 끼듯이. 하물며 음식을 많이 먹거나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여 생기는 식적(食積)도 있을 것이다. 또 분노 등 여러 감정들에 의해 열이 나면 수액이 마르면서 담이 되기 쉽다. 어혈은 혈액이 돌지 못하여 뭉친 것이다. 이들을 제거하는데 위장을 뒤집듯 씻어내는 도창법이 효과 만점이라니 어떤 처방일까?


살찐 황소의 고기 20근, 또는 15근을 큰 가마에 넣고 강물을 부은 다음 삶는데, 물이 다 졸아들면 다시 끓는 물을 더 붓고 삶아야지 찬 물을 써서는 안된다. 그렇게 고기가 푹 삶겨서 끓는 물에 넣으면 다 풀어진 정도가 되었을 때 무명자루에 넣고 짜서 찌거기를 버리고 즙을 받아 다시 가마에 넣고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불에 호박 빛이 나도록 졸이면 된다. 복용법은 매번 한 종지씩 마시되 조금 있다가 또 마시고, 조금 있다가 또 마셔서 이와 같이 수십 종지를 마신다. 겨울에는 중탕(重湯)하여 따뜻하게 해서 마셔야 한다. 병이 상초(上焦)에 있으면 흔히 토하게 하고 하초(下焦)에 있으면 흔히 설사시키며 중초(中焦)에 있으면 흔히 토하는 것과 설사시키는 것을 동시에 행하는데, 이것을 사람의 체력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나온 것을 보아서 병의 뿌리가 빠졌으면 그만한다. (위의 책, 1006쪽)


알고 보니 별게 아니다. 소고기를 달인 국물이 아닌가? 먹기도 편할 것 같다. 특이한 게 있다면 강물을 넣어서 끓이는 것. 강물은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물이다. 그 흐르는 기운으로 찌꺼기들을 몰아내려는 전략이리라. 그런데 왜 하필 소고기일까? “무릇 소라는 것은 곤토를 상징하고 황색은 토의 빛이다. 순한 것을 덕으로 삼고 굳센 것을 본받아 공으로 삼는 것은 황소의 용이다.(1007쪽)” 소는 성질이 유순하고 무거운 걷을 싣는다는 속성에 따라 땅의 성질을 닮았다. 황색 또한 오행상 땅을 뜻한다. 땅은 신체에서는 소화기관 즉 위장이다. 그러니 “고깃국물이 장위에 들어가서는 마치 홍수가 범람하는 것같이 하여 떠도는 것, 걸려있는 것, 묵은 것, 썩은 것들을 다 쓸어”낼 수가 있다. 형체는 사라져도 기운은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소의 덕은 또 있다. 소고기는 위에 좋고 ‘중후하고 화순한 성질을 구비하여’ 허한 기운을 보해준다. 담음을 쓸어낼 때는 진기도 같이 빠져서 허해질 수도 있는데 그것을 보충해준다. 새삼 누런 황소가 고맙게 느껴진다. 자신의 살점까지 다 인간에게 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소. 그러나 아직은 효과를 보기에는 이르다. 이어지는 처방 하나 더.



오줌의 덕으로 비워라


토하거나 설사한 후에 혹 갈증이 나더라도 끓인 물을 마셔서는 안 되고 자기의 소변, 곧 윤회주(輪廻酒)일명 환혼탕(還魂湯). 한 두 사발을 마신다. 이렇게 하면 갈증만 멎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장위(腸胃)에 남아 있던 더러운 것도 씻어낼 수 있다. ……..만일 더럽다고 중도에서 그만두면 다 되어가던 일을 마지막 순간에 망치는 것과 같으니, 이 윤회주는 물리(物理)에 밝고 생리작용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좋은 술이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마실 수 있겠는가?(위의 책 1006쪽)




소고기 국물을 마시면 갈증이 나는데 이 때 자신의 오줌을 먹어야만 약효를 볼 수 있단다. 자신의 오줌을 윤회주라고 명명한 게 재미있다. 오줌은 음식물이 오장육부를 한 바퀴 돌면서 만들어진 최종의 물질로 오줌이 되어 나오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테면 오줌은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물인 셈이다. 그러니 면역력 짱! 강물의 흐르는 기운과 오줌의 오장육부를 굽이돌며 얻어낸 강한 기운, 그리고 소의 육중한 기운이 합세하여 정기(正氣)를 만들고 담음의 사기(邪氣)와 싸우며 그것을 몰아내는 것이다. 오죽 사기가 크면 이렇게 정기를 크게 만들었을까?


물론 명현반응이 뒤따른다. “몹시 답답하면서 아픈 느낌이 드는데, 아픈 느낌이 드는 것은 나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 좋은 징조로서 사기가 정기를 이기지 못하여 곧 잡힐 것이란 조짐이다. 따라서 답답한 것을 꾹 참고 또한 토할 것 같으면서도 토하지 않고 설사할 것 같으면서도 설사하지 않는 것이 번갈아 나타나서 괴롭더라도 다 좋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서 끝까지 흔들리지 말고 고요히 이겨낸다.”(1007쪽) 그러면 ‘환골탈태’할 수 있다고 했다. 내 몸의 쓰레기를 모두 몰아내서 새로운 몸이 되었다는 뜻이니 오줌이 또한 ‘환혼탕’으로도 불릴만하다. 하지만 이로써 끝난 게 아니다. 한 번 더 고비가 남아있다.



정욕을 절제하라


이 법을 쓰기 한 달 전부터 부인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고 이 법을 쓴 후 반년 동안은 부인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며, 3년 동안은 쇠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성질이 급하고 여색을 좋아하여 금기할 것을 지키지 못할 사람이라면 이 방법을 쓰지 말아야 한다. (위의 책, 1007쪽)


사람의 에너지, 즉 정(情)이 가장 많이 소모될 때는 언제일까? 『동의보감』에선 정욕을 불태울 때로 본다. 화기가 치성할 때다. 이 때 가장 기가 허해지며 몸의 진액이 말라서 담음이 되기 쉽다. 그래서 절제하라고 하는 것이다. 고기와 음식, 정욕을 절제하지 않으면 모처럼 어렵게 바꾸어 놓은 공이 허사로 돌아갈 터이니 경계하고 경계하는 것이리라. 도창법은 홍수처럼 쓸어내는 일인 만큼 자주 할 수 없고 일생에 한 두 번 할 수 있으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씻어내고 몰아내는 일 뿐 아니라 일상에서 절제하는 습관 또한 중요하다.


글_박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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