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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과요가] 새로운 몸의 움직임, ‘습관’을 바꾼다(2)

by 북드라망 2019. 12. 12.

새로운 몸의 움직임, ‘습관’을 바꾼다(2)

                                                                                                                       



‘고정된 몸의 움직임’을 ‘새로운 몸의 움직임’으로


앞에서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방법기억을 익히고, 그 방법대로 움직임을 하도록 하는 뇌의 영역을 ‘기저핵’이라고 이야기했다. 기저핵과 몸의 합작으로 우리 신체를 움직이는 방법들을 익히고 그것에 바탕하여 생명활동을 한다. 눈으로 보는 방법, 귀로 듣는 방법, 말하는 방법 등등 우리의 신체가 생명활동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기저핵과 몸의 합작으로 습관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행동방식이 된다. 우리 일상의 많은 순간들은 이런 습관적 행동의 연속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습관형성의 이유는 에너지를 가능한 한 적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포인트라는 것.


앞의 쥐 실험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몸의 움직임 방법을 익힐 때는 꾸준한 반복훈련을 해야한다. “딱 한번만 해서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즉 반복된 훈련을 해야”(이케가와 유지 지음, 『단순한 뇌 복잡한 나』, 88쪽,  은행나무 출판사)익힐 수 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결과 몸을 움직이는 방법들을 익히게 된다. 이렇게 익혀진 몸의 방법기억들은 보지 않고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도 행할 수 있게 된다.


‘수리야나마스카라’-인도인들이 오래전부터 매일 아침 태양을 숭배하면서 수련했던 요가자세


우리가 어느 날 마음을 먹고 몸의 움직임 방법 중 ‘요가 수련’을 익히려한다고 생각해보자. 처음 요가의 동작을 접할 때는 자신의 자세가 왠지 엉성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움직임을 익히느라 힘 또한 많이 든다. 동작들을 익히는 과정에서 평상시에는 쓰지 않던 근육들을 쓰게 되어 몸의 여기저기가 아프고 근육통이 찾아온다. 그렇게 몇 번의 시간을 보내며 요가 동작 익히기를 반복하면 어느 순간, 동작들이 조금 쉬워진다. 익숙해진 것이다. 이때 요가의 동작을 전수하던 샘들은 조금 익숙해진 수련생에게 같은 자세에서 아주 작은 각도로 발가락이나 손가락의 방향성을 바꾸는 방법을 안내한다. 차이진 작은 움직임으로 인해, 같은 동작을 하지만 새로운 몸의 느낌을 만드는 자세가 된다. 요가의 동작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몸의 움직임이 고정화되려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아주 작은 움직임의 변화로 같은 동작을 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몸을 만나는 체험이 만들어 진다. 몸의 움직임이 고정화되자마자 다시 고정화된 몸의 움직임을 해체하고 새로운 몸의 움직임으로 나아가도록 안내하는 셈이다. 이것을 우리는 ‘수련’ 또는 ‘훈련’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험들은 요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몸의 움직임을 좀 더 고도화하려고 할 때, 혹은 새로운 개념을 익힐 때 언제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익숙해지고 나면 그 다음 스텝으로 고정된 몸의 움직임 또는 사고의 습관들을 살짝 해체하면서 차이를 만든다. 그 차이는 동작과 사유들을 다양하고 새롭게 만나게 한다.

 

동양을 중심으로 바둑경기와 장기경기가 발달해 왔다. 이런 경기를 하는 프로선수의 경우 오랜 시간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다. 그리고 경기에 나아갔을 때, 한 수 한 수를 계산을 해서 두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감이 이끄는 대로 장기알을 놓기도 한다. 그동안 해왔던 많은 경기들이 그에게 다양한 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수 중에서 마치 ‘딱 이 수밖에 없어~’하는 마음으로 승부수를 던질 때가 있다. 그 순간에 ‘감’이 온 것이다. 마치 중요한 자격시험을 볼 때, 고민을 하다하다 딱~그 답을 찍는 우리들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런 ‘훈련’을 거친 사람의 뇌는 장기판을 척 보기만 해도 ‘직감’이 작동합니다. 무의식의 뇌가 방대한 계산을 순식간에 해내고 답을, 즉 ‘다음 한 수’를 가만히 가르쳐 주는 것이죠. 그 직감대로 따라가면, 그렇습니다. 직감이라는 것은 거의 정확하므로 결국은 이기게 됩니다.(중략)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한 가지 중요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래요. 직감은 ‘학습’의 결과라는 겁니다. 

- 이케가와 유지 지음,  『단순한 뇌 복잡한 나』, 91쪽,  은행나무 출판사


장기프로선수들이 장기를 두는 몸의 방법기억들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뇌는 무의식적으로 다양한 수를 습득하여 내재화해두었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의 ‘직감’이 발동한다는 것을 느낀다. 헌데 이 직감은 하나의 몸의 움직임을 고정화해서 익힌 것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정화된 방법 기억은 익숙해진 순간, 다음 스텝을 향해 나아가면서 고정화된 방식을 해체한다. 해체되는 과정을 통해 방법기억은 수정되어진다. 이렇게 고정화되어 익숙해지고 다시 해체되면서 새롭고 다양한 방법들을 익히게 된다. 고정화와 해체화의 반복이 직감을 더욱 발달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고정화된 방식이 해체되고 다시 새롭게 몸의 방법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방법들이 익혀진다. 이렇게 훈련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고도의 정신활동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직감’이다.


 수련은 이처럼 고정화되고 다시 해체되고의 반복이다. 이 반복과정을 통해서 몸 움직임의 방법기억이 습관으로 저장된다. 저장된 습관은 무의식의 영역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무의식을 바꾸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무의식의 훈련은 직감으로 나타나고, 이 직감이 우리의 일상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행동 방식을 결정하곤 한다. 요즈음의 현대 요가는 아주 다양한 몸의 움직임 방법들이 있지만, 고전 요가의 경우에는 일정한 몸의 움직임을 반복했다. 같은 동작을 매일 수련하여 몸의 움직임을 익숙하게 만들어서 고정화한 후 다시 미세한 움직임의 변화로 같은 동작을 새로운 자세로 경험하는 것을 반복했다. 요가의 수련은 고정화와 해체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다. 요가의 동작에 익숙해지면, 동작이 만들어내는 몸의 체험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기회와 여유의 시간들이 찾아온다. 이어서 익숙함을 해체하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몸은 또 다른 체험 속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요가의 수련을 반복함으로써 오래전 인도인들은 자신의 무의식을 인식하고 훈련하는 과정을 연습해왔다.


 

‘지성’은 몸 움직임의 방향성을 알려 준다


요가에서는 지성을 통해서 몸의 움직임을 익히는 것을 매우 강조한다. 기원전 4세기 이후 인도에서는 여러 가지 요가의 방식들이 발전해 왔다. 요즈음에 우리가 많이 만나는 요가는 몸을 적극적으로 수련하여 해탈을 얻고자 하는 하타요가[각주:1]로부터 발전해온 요가방식들이다. 하지만 인도의 요가는 대표적으로 4가지 흐름으로 발전해 왔다. “까르마요가는 행위를 통한 해탈의 체계이며, 박띠요가는 헌신을 통하여 완전에 이르는 길입니다. 갸나요가는 지혜를 통한 해탈을 말합니다. 한편 라자요가는 마음 수련과 마음의 심리적인 요소들에 초점을 둡니다.” (이거룡 지음, 247쪽, 『요가수뜨라 해설』, 선문대학교 출판사) 이 중 ‘갸나 요가는 지혜를 통해서 해탈에 이르는 방식’의 요가이다. 갸나 요가에서 말하는 ‘지혜’의 다른 이름은 ‘지성’이다. 지성을 닦고 수련하여 지혜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삶에서 겪는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갈 수 있다고 그들은 전한다. 




또한 기원 4세기 경 파탄잘리가 정리한 요가의 8단계의 수련 체계[각주:2]를 보면, 파탄잘리는 인간이 깨달음에 도달하는 길로 8가지 요가 방식의 수련을 제시했다. 첫 번째가 피해야할 행동 방식으로 ‘야마yama[각주:3]'이다. 두 번째가 요가 수련자가 반복적으로 익혀서 행위 해야 할 행동방식으로 ‘니야마niyama’이다. 니야마는 사우챠(신체적 청결·청정), 산토샤(만족), 스바드야야(학습·자기학습), 타파스(고행), 아스바라 프라니다나(신심·신께 헌신)이다. 이중 스바드야야, 즉 학습(자기학습)의 과정을 통해서 요가 수련자는 지성을 익히고 수련한다. 요가의 수련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지성을 익혀, 자신이 삶에 대해 더 많은 자각과 이해를 갖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요가를 수련한다는 것은 요가 철학과 야마, 니야마를 끊임없이 공부하고 익혀서 그것이 자신의 습관이 되도록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지성은 삶을 밝혀 주는 진리의 불꽃이다. 그것을 어떻게 배양하느냐가 우리가 살고 성장하는 빛, 아니면 우리가 편협하고 쇠퇴해지는 어둠을 결정한다. (중략) 만일 지성을 올바로 개발하지 않는다면, 몸과 감각의 오용으로 음식과 생활양식에서의 무분별이 잇따르며, 그것이 활력을 약화시키고 노화절차를 가속시켜 감정적 동요와 정신적 고통이 증가한다. 반면에 지성을 올바로 사용하면 (중략) 단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더 잘 그리고 더 오래 살 수 있는 생활양식을 개발하며, 생각과 감정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한다. 

-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아유르베다와 마음』, 116쪽,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출판사


요가에서는 지성을 배양하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누누히 강조한다. 요즈음의 요가는 몸의 동작만을 뜻하는 오해를 받기는 하지만, 요가의 수련을 조금만 진지하게 만나본 사람은 알게 된다. 요가수련은 지성과 더불어 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요가 수련 과정에서 중요하게 개발되는 지성은 우리의 몸과 감각을 어떻게 훈련해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 몸의 방법기억은 에너지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습관화된다. 고정된 몸의 움직임 방법을 바꾸는데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자신의 고정된 몸 움직임을 인식해야하고 방향성도 설정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대체로 새로운 움직임을 익히는데 저항한다. 


이때 지성이 알려준다. 우리 몸 움직임의 방향성이 바뀌어야할 때가 되었음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성을 익히고 또 익혀야할 이유이다. 고정화된 몸의 움직임 즉 습관이 몸-마음 복합체인 우리들의 활력을 약화시킨다면 우리 안의 지성은 내면의 불을 밝혀 단호히 고정화된 몸의 방식을 해체해야함을 알려준다. 고정된 몸 움직임을 해체하고 새로운 몸 움직임을 익힐 때, 생명차원에서 보다 더 좋은 생활양식을 개발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새로운 몸 움직임을 익히는 것이 생명을 보다 오래 살 수 있는 방향성으로 개선됨을 알려준다. 저항하는 고정된 몸의 움직임을 고수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성이다. 


하여 요가에서는 지성의 다른 이름이 “‘부디(buddhi)’이며, 이는 ‘인식하다’ 또는 ‘깨어나다’를 뜻하는 ‘부드(bud)’라는 어원에서 파생”(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아유르베다와 마음』, 117쪽,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출판사)되었음을 말한다. “부디가 충분히 개발되면 부다(buddha, 깨달은 자)가 된다”(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아유르베다와 마음』, 117쪽,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출판사) 요가 수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식이 깨어나는 지성을 수련하여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이다. 요가수련의 과정은 지성을 수련하는 과정과 같다. 이는 자신의 삶을 활력있게 만들어 감정적 동요와 정신적 고통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몸-마음 복합체인 인간이 지성을 수련하게 되면 고정된 몸의 방식을 바꿀 때가 온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고정된 몸 움직임 방법을 바꾸는 경험이 자신을 생명차원에서 훨씬 유리하게 하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지성은 자신의 경험적 지식에 따라 마음, 감각, 생명력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중략) 문제는 만일 지성이 올바로 개발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마음, 감각, 생명력에 지배되며, 우리는 뒤에 후회하게 될 일들을 충동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지성의 이 무능력이 질병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아유르베다와 마음』, 124쪽,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출판사

 



요가와 지성의 수련은 충동을 제어해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게 한다. 자신의 생활패턴이 자신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를 인식하는 힘은 지성으로부터 나온다. 고정된 몸의 움직임, 습관이 자신을 주도하고 자기 삶의 주인처럼 행세할 때가 있다. 바로 이 순간 습관에게 자기 삶의 주도권을 내준 자로서 살기를 거부하는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이 힘이 지성이다. 지성이 내면에서 빛을 밝히는 때이다. 고정된 몸의 움직임이 다른 방향성을 만들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무능력으로 이끌 때 이 충동을 끊을 수 있는 힘은 지성으로부터 나온다. 때문에 요가에서는 고정된 몸 움직임과 변화되지 못하는 습관에게 자신의 주도권을 내준 것을 지성의 무능력이라고 말한다. 지성이 무능력해질 때 우리는 무지하다. 이런 순간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고정화된 몸 움직임을 더욱 고정화하는 방향성으로 지속적으로 살아가다보면, 우리에게는 질병이 기다리고 있다. 질병이 찾아온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과 마주한 질병이 고정화된 몸 움직임의 방향성을 바꾸지 못한 결과임을 알게 하는 힘 또한 지성으로부터 나온다.


요가 수련을 조금 해보신 분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요가 수련을 통해서 자신 안의 에너지가 북돋우어지는 경험들 말이다. 요가 수련은 호흡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에너지가 깨어나고 활동하면서 자신안의 미묘한 역량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경험된 에너지는 자신 안의 지성 또한 깨어나게 한다. 요가 수련은 몸 움직임을 새롭게 만드는 수련이다. 또한 지성을 닦는 수행이다. 이 과정을 통해 깨어난 지성은 우리 몸 움직임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을 마련한다.  파탄잘리가 체계화한 요가의 8단계 중 맨처음에 위치한 야마와 두번째인 니야마가 수련의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야마와 니야마를 자신의 몸 움직임 방식으로 익히고 익혀서 습관으로 만드는 수련이 요가수련에서 매우 중요한 수련임을 이제사 느끼게 된다. 야마와 니야마가 자신의 일상에서 불을 밝히는 지성으로 발휘되는 그 순간 몸 움직임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감을 잡게 된다. 요가에서 지성을 닦아야함을 매순간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 이유이다.  

 

글 _ 정은희

  1. 하타 요가는 우리나라나 서구 등 인도 밖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요가 형태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가를 이 하타 요가와 동일시한다. 하타 요가의 목적은 자아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감각 통제를 통해 몸을 다스릴 수 있고, 신체적 단련을 통해 의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념이 하타 요가에 의해 발전되었다. [본문으로]
  2.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 중에서 두 번째 장에 요가를 이루기 위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 벙법은 8가지 단계로 야마(전 인류의 공통되는 보편적인 도덕률), 니야마(개인적인 수행에 적용하는 행동 규율), 아사나(요가의 동작), 프라나야마(호흡), 프라티아하라(감각의 제어), 다라나(집중 통일 행법), 디아나(명상), 사마디(삼매)이다. [본문으로]
  3. 야마는 다섯 가지의 행동 방식이다. 아힘사(비폭력·불상생), 사트야(진실·거짓을 행하거나 말하지 않는 것), 아스테야(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지 않는 것), 브라마차리야(절제·금욕), 아파리그라하(저장하거나 모으지 않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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