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순환의 고리, 소변과 대변
삶의 흔적, 삶의 증거
‘소변’, ‘대변’은 『동의보감』의 「내경편」 맨 마지막에 위치해서 내경편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소화라인의 마지막 단계다. 뒤에 위치 하지만 분량은 앞의 정, 기, 신이나 오장 육부 각 편보다 훨씬 많다. 거의가 증상과 처방에 대한 내용이다. 이는 똥오줌이야말로 병의 원인을 눈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이어서가 아닐까?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는 흔적이기도 하다. 사실 이 두 가지를 시원히 해결했을 때처럼 뿌듯한^^ 순간이 있을까? 휴지가 전혀 필요가 없을 만큼 깔끔하게 일이 끝났을 때 머리가 맑아지고 상큼해지는 걸 느낀다. 그렇지 못했을 때의 찝찝함이란.
『동의보감』에서는 입으로 음식물이 들어간 뒤 어느 소화라인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런 색깔과 이런 농도로, 이런 양으로, 이런 횟수로, 심지어 나오지 못하고 막히게 되는지 알아내고 처방을 하고 있다. 냄새나는 그것을 얼마나 세밀하게 관찰했는지, 그 진단이 아주 세분화 되어있고 그래서 처방도 무수하다. 요즘처럼 물에 떠밀려 휙 사라지는 시대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소변의 형성 경위: 『내경』에서는 “수액은 위(胃)로 들어가 그 정기가 넘쳐 올라 비장(脾腸)으로 수송되고 비장이 정기를 퍼뜨리고 수송하는 작용을 거쳐 다시 폐(肺)에까지 수송된다. 그리고 폐가 전신의 수액이 운행하는 길을 소통시키고 조절해주는 작용을 거쳐 수액을 방광(膀胱)으로 내려 보낸다.”라고 하였다. 곧 소변은 또한 물과 같이 정미(精微)한 기가 비(脾)와 폐(肺)로 올라가서 운화된 뒤에 이루어진 것이다. 『내경』에서는 “방광은 진액이 저장되는 곳인데 기화의 과정을 거쳐 오줌을 체외로 배출시킨다”라고 하였다. (「내경편」, ‘소변’, 484쪽)
대변의 형성 경위: 『난경』에서는 “대장과 소장이 만나는 곳이 난문이다”라고 하였다. 대개 위속으로 들어간 음식물은 썩어서 위의 하구에서 소장의 상구로 들어가고 소장의 하구에서 청탁으로 분별되어 수액은 방광으로 들어가 오줌이 되고 찌꺼기는 대장으로 들어가서 대변이 되는데 난문에서 분별되어 빗장으로 차단시켜 놓은 것처럼 나누어지므로 난문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내경편」, ‘대변’, 515쪽)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은 위에서 부수어지는데 무겁고 탁한 기운은 아래로, 가볍고 맑은 기운은 비장으로 간다. 비장에선 다시 폐로 보낸다. 폐는 그 기운을 다시 하부로 보내 신진대사에 쓰이게 한다. 생리대사 후에 쓸모가 없는 수액을 방광으로 배출하여 폐와 호흡통로의 청결을 유지한다. 위에서 비장으로, 폐로, 방광으로.
한편 위에서 1차 소화가 된 음식물은 소장에서 받아들여 2차 소화를 거치는데 이때 소장은 정미로운 것과 무거운 찌꺼기를 만들어낸다. 정미로운 것은 비장으로 올라가 폐로 보내져서 전신으로 퍼지고 무거운 것은 소장의 아래구멍으로 내려와 난문(闌門)에서 오줌과 똥으로 갈리게 된다. 소장과 대장이 접한 곳에 난문이 있는데 거기에서 액체는 오줌으로서 방광으로 들어가고 찌꺼기는 대장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소변과 대변은 어떻게 나가는가? 신기한 것은 소변이다. 소변은 방광에 있지 않고 방광 안에 있는 오줌보에 차 있는데 오줌보는 받아들이는 상구는 있지만 내보내는 하구가 없다. 어떻게 나갈까? 신장의 도움이 필요하다. 신장의 명문 즉 단전의 힘으로 기화작용을 일으켜 오줌보를 데우면 점차적으로 오줌보의 겉으로 스며나오 게 되고 오줌보 아래의 빈 곳에 쌓여 있다가 뿜어져 나온다. 대장에선 소장에서 받아들인 찌꺼기를 수분은 흡수하고 변을 만들어 내보낸다.
이러한 소화과정을 보면 오장 육부가 다 소화과정에 참여하긴 하는데 어느 장부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부지런히 운동하여 전 단계의 것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곳으로 보낼 뿐이다. 만들고 보내는 과정만 있을 뿐. 그것 자체가 오장육부의 존재이유이다. 패스하지 못하고 어느 단계에서든 막힐 때 병증으로 나타난다. 주로 열(熱)에 의해 막힌다.
“배출되는 수액이 혼탁한 것은 다 열증(熱症)에 속한다. 소변이 노란 것은 아랫배에 열이 있다는 것이다. 간에 열이 있는 병자는 소변이 먼저 노랗게 된다. 적색은 흔히 술로 인해 그런 것이고 백색은 하초의 원기가 허랭해서 그런 것이다.” “음(陰)이 허하면 소변을 보기 힘들다. 소변이 막히는 것은 혈(血)이 화(火)로 인해 타 들어가서 하초(下焦)에 혈이 없어지고 기(氣)가 내려가지 못하여 삼투되고 배설되는 기능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485쪽) 스트레스가 생기면 열이 발생하고 열은 몸의 수분과 오줌을 졸여서 색을 진하게 만들고 나오기 어렵게 만든다. 또 고기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열이 쌓일 수도 있다.
반대로 기가 허하여 냉하면 소변이 자기도 모르게 샌다. “신과 방광이 다 허하면 방광속의 기가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줌보가 저절로 열려서 나오는 것이 많고 색은 희다.”(494쪽)그런데 신, 방광의 기를 주관하는 것은 폐다. 폐가 허하기 때문에 방광의 괄약근이 오줌보를 조이는 힘이 약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수병의 근본은 신에 있고 그 표말은 폐에 있다.”(495쪽)
대변의 병증은 설사와 변비다. 설사 중에서도 ‘손설(飱泄)’은 곡물이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풍사가 오래 머물러 위를 침범하거나 하초에 열이 몰려 있어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위가 소화기능을 할 수 없어 그대로 나온다. 변비에는 허증과 실증이 있다. 허증은 정기(正氣)가 허할 때. 몸에 기운이 없어서 변을 촉촉하게 할 진액을 만들지 못한다. 또 오장이 차면 혈맥이 마르고 기가 도는 길이 막힌다. 실증은 사기(邪氣,화기)가 왕성할 때다. 대장에 열이 너무 많아 진액을 말리기 때문 변은 굳어진다. 대장은 폐와 짝을 이루는 장부다. 따라서 변비를 고치려면 폐기를 다스려야 한다. “대장은 모든 기의 통로와 연관되어 있다. 폐기를 잘 돌게 하는 것이 대변불통 치료법의 관건이 된다.”(556쪽)
『동의보감』에는 끔찍한 증상도 나오는데 ‘교장증’이다.
교장증(交腸症): “어떤 부인이 술을 즐겨서 늘 잔뜩 마셔도 취하질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똥이 요도로 나오고 오줌이 항문으로 나오면서 육맥(六脈)이 다 침삽(沈澁)하였다. 그래서 사물탕에….그러나 이 사람은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기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오지는 못하여 양(陽)이 극도로 허해진 데다가 주습이 오랫동안 쌓여 있어서 열이 생겨 혈을 달였기 때문에 음도 역시 크게 허해졌다. 이와 같이 음양이 허해졌는데도 잠시 동안이나마 살아 있었던 것은 그 형체가 실하고 술 속에 곡기가 그래도 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개월 후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소변’, 510쪽)
똥오줌 이야기
소화란 밖의 음식물이 몸으로 들어가 각 단계마다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시켜서 다른 데로 증여하는 것이었다. 한 사이클의 마지막에 나온 똥과 오줌은 어떻게 변해서 어디로 갈까?
다시 ”외부의 조건들과 만나 순환이 가능해진다. 분해되고 날아가고 흘러가고 곡식을 키우고 동물을 먹이고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변전을 하다보면 그것들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내게로 온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그린비, 213쪽) 이 순환이 막힐 때 몸에는 병증이 오고 우주에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
어릴 적 집에서 떨어진 마당 뒷켠에 돼지우리가 있었다. 거기에 디딤돌을 높게 놓고 변을 본다. 돼지가 와서 먹는다. 요즘 사람들은 기겁할 일이다. 돼지를 디딤돌 아래 오지 못하게 하려고 몽둥이로 따돌리거나 돼지 머리에 잘 떨어지게 하려고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돼지와 리듬을 맞추었던 추억이 있다. 초여름 보리를 타작하고 난 뒤 보리짚을 자꾸 넣어주면 돼지가 밟아서 가을까지 퇴비로 숙성되어 간다. 노란 보리짚을 금방 두텁게 깔았을 때 보리짚의 구수한 냄새와 돼지우리가 산뜻했던 느낌이 지금도 있다. 쌀뜻물이나 음식물 찌꺼기들은 돼지를 주려고 알뜰하게 모야야 해서 쓰레기따윈 없었다.
늦가을이면 집집마다 거름을 퍼내어 골목에 거름 무더기들이 나란히 있었다. 겨울 보리농사에 퇴비로 썼다. 그렇게 흙에게 보리가 싹트고 자라도록 증여했다. 그럼으로써 다시 한 싸이클이 시작되고 순환되는 것이다. 그렇게 소중해서일까? 제주엔 똥오줌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여기 그것을 소개해본다.
옛날에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제주도 오름은 설문대 할망이 똥을 싸서 만든 것이라고 해. 설문대 할망은 몸이 엄청 크니까 먹기도 많이 먹고 똥도 많이 누었을 거 아니라? 할망이 한 번 똥을 누면 산처럼 높아서 사람들이 빠져서 나오질 못했다고 해. 사람들이 할망 앞에 가서 청을 했지.
“설문대 할망님, 똥을 이래 저래(여기 저기) 나눠 누우면 안 될까요?”
할망이 그 말대로 이리 저리 나눠 누우니 오름이 300개가 넘게 되었어. 어렵지도 않았겠지. 워낙 큰 할망이니까 조금만 궁둥이 돌리면 되었을 테지.
설문대 할망은 워낙 손발이 기니 빨래하면 한 쪽 발은 저 서쪽 산방산에 디디고 다른 발은 저 동쪽 성산일출봉에 디뎠어. 어마어마하지. 그리고 한라산을 방석으로 깔고 앉아서 제주시 산짓물에서 빨래를 했어.
설문대 할망이 빨래 허다가 오줌을 싸면 그 오줌 줄기가 얼마나 센지 땅을 움푹 패이게 해서 내(川)가 되어 흘렀다고 하지. 또 계곡이 되었다고도 해. 한라산에서 바다까지 제주도 빙 돌아가면서 곳곳에 내가 있는데 이게 다 설문대 할망이 여기 저기서 빨래 허다가 싸 놓은 오줌 줄기들이라.
한 번은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에 한 발을 디디고 다른 쪽 발은 일출봉에 디디고 앉아서 오줌을 누었지. 오줌줄기가 얼마나 셌는지 성산포 한 귀퉁이가 잘려나가서 지금의 우도가 되었다고 해. 소가 누운 모양이라고 해서 소섬이라고도 하지. 우도를 가려면 성산포에서 배를 타는데 그 물살이 엄청 세지. 할망 오줌줄기가 이제도 흐르는 거라. 옛날엔 거기서 배가 파산되면 빠져나오기 힘들었어. 할망 오줌이 세긴 세었던 모양이라 하하하.
글_박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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