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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세계', 각자가 보는 것은 같으면서 '다른 세계'이다(2)

by 북드라망 2019. 7. 11.

'시각의 세계', 각자가 보는 것은 같으면서 '다른 세계'이다(2)

 

 

‘본다는 것’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을까?


지난 9월의 글에서 ‘시각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인식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복잡한 과정임을 살펴보았다. 잠시 요약해보면, 우리 눈이 어떤 사물, 앞에서 예를 든 사과를 본다고 해보자. 사과를 본 순간 그 사물의 상은 눈의 망막에 맺힌다. 망막에 맺힌 사물은 전기신호로 바뀌어 망막에 위치해 있는 시각 신경선을 통과하여 우리 뇌의 뒷부분인 후두엽에 전달된다. 후두엽에 전달된 전기신호는 다시 측두엽과 두정엽으로 전달된다. 측두엽에서는 그 사물이 무엇인지, 그 사물의 형태와 모양은 어떤 것인지를 판단한다. 즉 사과의 모양과 형태를 판단하고 예전 경험했던 사과와 매칭시켜, 사과구나 하게 된다.(측두엽의 언어영역의 활동이 일어나면서) 두정엽으로 전달된 신경정보는 멈추어 있는 사과인지 움직이는 사과인지 판단하고, 사과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즉 먹는 것이고 맛있는 것이구나를 판단한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수초사이에 우리 눈과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우리는 사과를 본 순간, 사과라는 이름을 말하고 사과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까지를 종합적으로 인식한다.

 



측두엽의 기능을 조금 더 이야기해보면, 측두엽에서는 귀로 들은 소리를 신경정보로 전달받아 소리를 인식하는 부분도 함께 위치해있다. 이것을 청각령이라고 부른다. 시각령과 청각령이 잇달아 위치한 셈이다. 측두엽에서는 시각정보를 받아들여 청각정보와 함께 그 의미를 해석한다. 때문에 이 부위의 뇌에 손상을 입으면 시각정보와 청각정보를 받아들여 의미를 해석하고 말하는 능력에 손상을 입게 된다. 사과를 보아도 사과의 색, 형태, 움직임 등은 인식하지만 그것이 사과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사과를 가져오라고 말하면 사과가 무엇인지 몰라 가져오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측두엽 안쪽(뇌의 겉피질 안쪽)에는 ‘해마’라고 불리우는 우리의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영역이 측두엽의 피질 안쪽에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보고 그 사물에 대한 예전의 경험과 그 경험이 있었던 상황, 냄새, 맛, 사람들의 관계까지 함께 떠올리는 이유이다. 이처럼 사람이 눈으로 보고 뇌로 인식하는 이 모든 과정을 통칭하여 ‘시각’이라고 말한다.

​요가에서는 이러한 ‘본다는 과정’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를 ‘감각에 대한 이해’라고 표현한다. 눈이 보고 뇌가 해석하는 이 과정을 “외적인 마음이 감각 자료를 조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기도 한다”(『아유르베다와 마음』, 136쪽,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사)고 표현한다. 이때 요가에서는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신체의 기관과 뇌 활동의 전 과정을 관장하는 것을 마음이라 한다. 이 마음이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와의 마주침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때문에 ‘외적인 마음’이라고 이름 붙였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후각·미각·촉각들도 다 각 기관과 뇌의 활동을 외적인 마음이 관장하고 해석한 것의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의 감각 기관이 어떤 대상을 인식하면 뇌에서는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이 일어나는데, 이때 위에서 이야기한 해마가 매순간 관여한다. 우리의 경험 중에 같은 경험이 있는지 빠르게 검색하여,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 당시의 느낌, 냄새, 상황 등을 마음에 떠올린다. 해마의 활동으로 감각이 인식되면 그와 동시에 마음에는 감각 인식과 그로 인한 감정이 함께 떠올려진다. 때문에 요가에서는 “감각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아유르베다와 마음』, 137쪽,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사)라고 말한다. 또한 “감정은 감각의 성분, 곧 장면, 소리 또는 그것들을 전달하는 다른 감각에 의해"(『아유르베다와 마음』, 137쪽,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사) 불러일으켜진다.

​외적인 마음은 감각하고 수초 후에 감정이 불러일으켜지면서 마음이 감각인식으로부터 생긴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감각이 일어나면 거의 동시적으로 감정을 느낀다. 감정이 느껴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운 것에 접촉하면 기쁨을 느끼고, 고통스러운 것에 접촉하면 슬픔을 느낀다. 이 기쁨과 슬픔의 밀도와 강도를 조금씩 다르게 느끼고 있다.

이러한 감각과 감정을 느끼는 과정이 일상에서 매 순간 일어나면서(외부세계는 끊임없이 감각을 인식하게 하기에) 좋아하는 것은 좀 더 느끼려 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피하려고 하는 자신만의 특정한 패턴들이 만들어진다. 이 패턴은 낯선 사물이나 상황을 만났을 때, 빠르게 자신이 어떻게 그 사물과 상황을 만날 것인지의 대응방식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마주쳤을 때, 외적인 마음은 감각기관의 정보를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서 해석함과 동시에 기쁨과 슬픔 중 자신에게 보다 의미를 주는 쪽으로 감각 자료를 조정하게 된다. 감각 자료의 조정과 해석이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때문에 사람마다 같은 사물이나 상황을 보았을 때, 그 사물에 대한 의미가 달라진다. 또한 같은 상황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들마다 기억하고 의미를 주는 장면이 달라진다. 외적인 마음의 감각 자료의 조정과 해석에 따라 이처럼 같은 사건을 경험하지만, 그 사건에 대해 각자의 기억이 달라지는 일들이 생겨난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시각과 의미 있는 감각들의 정보들만이 해마의 활동으로 경험과 학습으로 축적된다. 

각자가 본 하나의 사물, 하나의 상황, 하나의 사건들은 각자의 외적인 마음의 활동에 따라 다르게 보게 되고, 다르게 이해되고, 다르게 경험된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이 각자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게 되는 것이다. 즉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의 세계로 데려간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모든 감각은 자신의 신체를 통해 받아들여지고, 이 정보는 뇌의 활동으로 해석되며, 해석된 감각들은 자신만의 해석체계를 통해 인식되고 기억되고 패턴화된다. 이 인식에 따라 자신의 활동과 일상의 삶이 만들어진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신체를 떠난 객관적인 감각은 없는 셈이다. 사람의 신체가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같지만, 그 활동의 결과인 외부세계는 모두에게 각자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자신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요가에서 말하는 ‘외적인 마음’은 자신의 외부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감각을 통해 들어온 자료를 조정하고 해석한다. 우리에게 매 순간 인식되는 감각은 각자의 신체의 감각기관을 통과하여, 자신의 경험이 만든 해석체계를 거쳐서 하나의 인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토론을 해도 다 각자 다른 경험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 각자가 감각한 자료를 해석하는 ‘이 해석체계가 자신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요가에서는 이야기한다. 자신의 해석체계에 따라 의미를 만들어내는 감각에 집중하고, 이 집중에 따라 감각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지고, 이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의 해석체계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자신의 신체를 통해 감각된 정보들과 그것들을 해석하는 뇌활동(뇌 역시 신체의 일부이다)의 총체이다.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같은 감각이 달라지기도 한다. 감각은 어찌 보면 매 순간의 몸의 변화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해석체계는 신체와 정신의 통합으로서의 만들어지고 있다.

“외적인 마음은 늘 우리를 몰아붙여 무언가를 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생각하고, 계획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외부적인 일에 종사하도록 추구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을 의식한다.”

(『아유르베다와 마음』, 135쪽, 데이비드 프롤리 지음,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 출판사)

​외적인 마음은 그 방향성이 외부를 향해있으며, 외부 세계와의 마주침을 감각하고 해석하는 마음이다. 때문에 외적인 마음은 우리를 외부 세계에 집중하게 한다. 외부 세계와의 마주침에서 생겨난 감각과 감정들을 바탕으로 외부 세계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계획하고 반응하게 한다. 외부 세계를 감각하고 그에 따라 반응하여 행동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며, 이러한 일상을 사는 것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미성을 인식한다. 감각하고 반응하는 외적인 마음은 우리를 늘 무언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감각된 정보를 해석하는 방식도 이전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해석하는 방식으로 패턴화되어 있다. 

 



요가에서는 이와 같이 외적인 마음이 자신의 기존의 해석체계에 따라 외부 세계를 만나는 것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이 요가 수행의 하나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요가를 수련할 때, 신체에서는 각 신체 부분 부분마다 감각들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외부의 대상이나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감각이 아니다. 자신이 자신의 몸을 움직임으로써 자신 안에서 만들어지는 감각들이다. 때문에 지나간 경험들을 꺼내서 비교해보고 해석할 필요가 없다. 자신 안의 해석체계가 잠시 활동을 멈추고 신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감각을 느끼는 쪽으로 집중된다.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방향성이 자신 안으로 바뀌게 된다. 이때야 비로소 마음이 늘 우리를 무언가를 하게하는 상황을 잠시 멈출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일을 잘 실행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계획하는 일을 멈추게 된다. 외부의 사물과 상황들이 주는 감각들을 해석하는 끊임없는 활동 역시 멈추게 된다.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감각을 느끼는 것만으로 세상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요가를 수련하면서 우리는 외부로 향할 때 썼던 많은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요가의 동작을 수행하면서 신체의 움직임을 느끼고 이와 동시에 호흡을 해나간다. 이 과정을 통해 요가의 호흡과 동작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편안함을 만나게 된다. 마음은 외적인 마음이 자신의 감각과 인식을 주도할 때와는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물론 동작 중에 힘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동작 후에 찾아오는 편안함 속에서 자신 안의 에너지가 새롭게 차오르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요가의 수행과정 중 ‘감각을 제어하는 수행’이라고 말한다. 요가의 수련을 통해서 감각을 인식하는 방향성이 바뀜으로써 자신 안에서 에너지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요가 수행의 경험이 한 번 두 번 이어지면서 요가 수련을 통해 새롭게 회복된 에너지는 자신의 외적인 마음이 자신을 외부세계에 집중하고 반응하게 만들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외부로만 향하던 자신을 잠시 멈춤으로서 자신의 해석체계에 대한 질문이 생겨날 공간이 자신 안에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질문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식과정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내게 된다. 자신의 해석체계만으로 외부세계를 만나고 있던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이 인식이 자신 안에서 기존과는 다른 해석체계를 위한 길을 만들려는 조짐으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신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감각들을 내적인 시선으로 감각하면서 자신의 해석체계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요가에서는 바로 ‘감각을 제어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글_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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