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얼real"트립
모름지기 여행이라는 것은
기껏 휴학씩이나 해서 여행한다는 곳이 겨우 유럽이라고? 학과 공부도 안 맞고,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 녀석의 결심을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돈쓰고 놀러간다고 하면 이해하겠는데, 굳이 없는 돈 모아서 유럽여행을 간다니. 그것도 ‘나 이제 인생에 대해 고민해보려 해’라는 표정으로. 마치 ‘대학생이라면 꼭 해야 할 것들 20가지’ 같은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뻔한 여행을, 대단한 모험 마냥 여기고 있는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대학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다보면 익숙한 배경이 눈에 띈다. 에펠탑 야경, 런던아이, 오사카의 뜀박질 전광판(Glico Man) 등 랜드마크를 배경사진으로 해놓고, 그 아래서 뒤돌아서 브이를 한다거나,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 놓는다. 교환학생이든 어학연수든, 그냥 여행이든 졸업 전에 유럽은 꼭 가봐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라도 있는지 다들 미션을 수행하듯 떠난다. 그게 아니면 최소한 일본이나 라오스라도 다녀와줘야 한다. 이번 겨울에도 나갔다 온 사람들이 많다. 한 친구는 루브르에서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들이 가득했다고. ‘그야 가는 곳이 너무 뻔한 곳이니 그러지 않겠니?’ 찍어낸 듯이 똑같은 블로그 후기에는 트립어드바이져에 다 나오는 뻔한 볼거리, 뻔한 맛집, 뻔한 액티비티가 포스팅 되어 있고, 그걸 보고 그들은 똑같은 ‘나만의 여행’을 한다. 그리고 남는 건 똑같은 ‘인생샷’
정말이지 이런 것들은 참을 수가 없다. 아니, 이쁜 옷 입고 이쁜 곳 가서 인생샷 찍는 걸 정녕 여행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있어 여행이란 자고로 배낭여행이어야 하고, 여행지란 언제나 한국인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 남들 다 가는 (그리고 비싼) 유럽이나 일본 같은 곳은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이 딸린 휴양과는 달라야 한다. 그리고 역시 혼자 떠나야 한다(그래야 인생을 고민할 수 있지 않겠는가!). 햇볕에 그을리고, 허름한 숙소에서 손빨래해서 널어두며, 현지인들과 부대끼는 그런 여행이라야 ‘참여행real trip’인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여행경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내 힘으로 한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참여행’이 완성된다. 그리하여 나의 로망은 자연스레 아프리카와 남미를 향하게 되었다. 아프리카는 갔다 왔으니 이젠 남미에 가야 할 차례였다. 뻔한 것, 돈 많이 드는 것에 대한 반감과 고생에 대한 (약간 변태적인) 로망이 합쳐져 나는 이상한 ‘여행 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여행
파마를 하는 동안 미용실 아주머니는 자기는 터키가 너무나 좋았다면서 어디는 꼭 가보라고 당부하며 볼거리부터 먹거리, 주의사항까지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여행지 너무 잘 골랐다고, 근데 어디 교회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런 건 아니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응 이란? 어디더라?” 한참 터키에 대해 말해주던 친구는, 내가 이란도 간다고 말하니 말문이 막혔다. 이란이라니. 몇 개월 전까지 나는 이란이라고 하면, 가끔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보았던 흰색 유니폼에 수염 난 얼굴, 석유, 차도르, 그 이상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여름, 우연히 소생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관심을 가질 생각조차 못했던 이슬람과 페르시아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 이슬람에 시아와 수니가 있다는 것도, 테헤란로의 테헤란이 이란의 수도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소생프로젝트는 6개월 간 공부를 해서 한 달 간 여행을 하는 연구실의 프로그램이었다. 첫 번째 여행지는 페르시아 제국이었고, 참가 멤버들은 이십대부터 오십대까지 다양했다. 그렇게 순수한 백지상태에서부터 하나씩 텍스트를 읽고 꿈적꿈적 세미나를 시작한지 6개월 후, 이제 이슬람사가 한국사보다는 자신 있겠다고 생각할 즈음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여행은 내 머릿속 ‘참여행’도 내가 욕했던 뻔한 여행도 아닌 뭔가 다른, 듣도 보도 못한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멤버 구성이 누가 봐도 갸우뚱 할 만 한 조합이었다. 얼핏 팩키지 여행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여행지를 선정했고 경로를 짰다. 그렇다고 ‘참여행’이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우린 운전기사씩이나 딸린 렌트카를 탔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밤마다 이슬람과 이 문화에 대한 텍스트를 읽고 세미나를 했다는 것이다. 경건한 종교 여행이었나 하면, 물담배를 피러가거나 쇼핑에 중독되기도 했다. 이건 뭔가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에 있는 어떠한 여행의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는 기묘한 여행이었다.
청춘도 낭만도 없지만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유별난 것 중 하나는 궁금증이 자꾸만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리면 정말 사람들이 절을 할까?’ 같은 사소한 질문들이 있는가 하면, ‘성속이 일치된 삶이란 뭘까?’ 같이 커다란 질문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핫도그 가게 카운터에서 절을 하는 점원을 보기도 하고, 모스크에서 드러누워 자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생각했던 차도르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그것이 상품화나 대상화로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하기도 하겠구나, 생각을 했었다. 여행을 하면서는 이 문화가 정말 여성을 존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차도르를 혐오하는 여성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다이어트와 성범죄가 늘 이슈 되고 있는 우리나라가 떠오르기도 했다. 또 술도, 유흥도, 유투브도 금지된 나라에서 내 또래 애들은 뭐하고 노는지, 답답하진 않은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이어졌다.
나는 늘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에 이상적인 여행자의 모습이 있다고 생각했다. 외국인이지만 그들처럼 생활하고 그들처럼 먹고, 그들의 교통수단을 타고 다니는 모습.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이국적인 곳에서 현지인들에 가깝게 여행 중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비일상적인 곳에서 비일상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뭔가 다른 것,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자 했지만 정작 그것들은 ‘낯섦’이라는 고정된 이미지 속에 가둬질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비일상적인 것을 향유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도취될 뿐이었다.
사실 낭만이랄 것도, 막 신이 나는 즐거움이랄 것도 없던 이번 여행이 특이한 점은,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여전히 정리가 안 되기도 하고, 문득 알던 것과 연결되기도 하면서 이상하게 내 일상이 되물어지는 것들도 있었다. 물론,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어쨌든 이 여행은 적어도 ‘그곳에 간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 따위의 자기만족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신기한 방법으로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아니 꽤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갈 수 있다면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글_민호(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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