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에 대해 한 마디 하고 가겠습니다
왜 나의 패션을 가지고 뭐라고들 하는가
‘내일은 저 바지에 저 상의 입으면 되겠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는 다음날 입을 코디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잔다. 거울에 직접 비춰보고 입을 옷을 개켜놓고 잠드는 날도 있다. 따라서 매일 내가 입고 나오는 코디는 나름대로 엄선된 것들이다. 그러나 그 옷들이 내 마음에 쏙 들고 내 취향에 꼭 맞아서라기보다는, 그나마 입을 만한 것들이라 주워 입고 나온 거라는 게 내 하소연의 요점이다. 나도 옷장 앞에 서면 답답하다. 매일 아침마다 푹푹 한숨이 나온다. 왜 이렇게 옷이 없는 건지. 집에 불이라도 난 것 마냥 입을 옷이 없다.
내가 입는 옷은 대개 흰색 검은색 아니면 회색이다. 흰 신발, 검은 바지, 흰 상의, 검은 아우터, 흰 양말. 왜 맨날 흑백만 입느냐고, 그게 네 취향이냐고 물으신다면 오산이다. 사실 그것밖에 없기도 하고 그나마 가장 낫다고 생각해서 입었을 뿐이다. 그리고 블랙엔 화이트가 그렇게 이상한가? 물론 나도 컬러풀하게 입고 싶다. 다 형편이 안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한 달에 티셔츠 한 개를 살 수 있고 지금 내게 검정색과 흰색이 있다면 회색을 사야 자주 입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면 말고) 나름 활용성과 밸런스 면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에는 후회가 없다. 어쨌든 올해 겨울, 매우 옷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안전성 차원에서 블랙엔 화이트를 고수했다는 점을 밝힌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정이 좋아지고 있다. 올해 3월부터 나의 ‘뉴 반지하 하우스’로 입주하게 되면 월세가 3분의 1은 준다. 겨울도 지나가고 있고 이제 하나씩 차차 마련해갈 생각이다. 어차피 돈 쓸 곳도 없다. 그 동안 담아놓기만 하고 자린고비처럼 쳐다보던 나의 ‘장바구니’를 하나씩 비워갈 수 있을 것이다. 커밍 순.
남친 아니지만 남친룩
누군가 내가 옷 입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면 이상하게 발끈한다. 내가 얼마나 신경 쓰는데. 결코 나는 스스로 옷을 못 입는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다만 옷이 없다고는 늘 생각한다. 나는 늘 주변사람들이 어떻게 옷을 입었는가를 스캔한다. 혜화역에서 연구실까지 걸어오는 길, 대학로를 가로지르면서 ‘저 사람은 저렇게 입었군, 나름 괜찮군. 저건 영 아니야’하고 유심히 본다. 나 비록 패션왕은 아니지만 패션에 둔감하지 않은 자로서 늘 ‘어떻게 입는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 또한 밝힌다.
대학에서, 유행과 브랜드에 집착해 매일 새 옷을 입고 나타나는 애들도 싫지만, 회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미정장을 갖춰 입고 갑갑하게 앉아 있는 녀석들도 싫다. 움직일 때마다 쉭쉭 소리를 내며 강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롱패딩 애벌레가 되고 싶지도 않다. 전역 후 맞은 첫 겨울, 3년째 유행 중인 롱패딩을 사지 않은 이유 두 가지 중 하나는 그것이 이미 너무 진부해져버렸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격이 너무 세다는 것(누가 줬다면 성실히 입고 다녔을 것이다. 이번 겨울, 너무 추웠다^^). 너무 유행하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너무 튀는 것도 싫다. 브랜드로 치장한 패션은 더욱 싫다. 이걸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무난·깔끔 스타일이 좋다. 입기에도 보기에도 답답하거나 거북하지 않은 조합. 셔츠보다 폴라티가 좋고, 니트보다 맨투맨이 좋다. 슬림핏보다 루즈핏이 좋고, 로퍼보다 슬립온이 좋다. 단어가 좀 부적절하지만(슬픔), 흔히 ‘남친룩’이라고 하는 편안하고 캐주얼한 스타일로 입고 싶다. 절대, ‘이렇게 입으면 혹시 남친이 되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에서 ‘남친룩’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밝힌다. 괜히 힘 잔뜩 준채 무스탕이나 가죽 자켓을 빼입거나, 안 어울리는 코트 차려입고 다니는 남자 애들보다 부담스럽지 않게 스포티하게 입고 다니는 애들이 훨씬 호감 간다.
노스페이스 신드롬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옷 입는 것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했을까? 옷은 그냥 옷인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옷은 입고 싶고, 어떤 옷은 입기 싫다는 식의 ‘취향’같은 것이 생겨난 걸까? 옷의 중요성을 알게 된 구체적인 경험을 되짚어보면, ‘노스페이스 패딩’ 신드롬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때는 옷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싸이월드 감성이 만연하던 00년대 말, 한국에는 모든 학교를 아우르는 공통의 교복이 대유행했다. 이 아웃도어는 ‘등골브레이커’라고 불릴 만큼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기울어가던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한국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고 한다. 웹툰 <패션왕>은 당시 그 아웃도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인공 우기명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 파급력을 잘 보여준다. 옷을 입는다는 문제가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고 그 주류 안에서도 끊임없는 위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그리고 친구관계, 이성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도 파고들어와 그것들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어떤 옷이 없다는 것에서 결여감과 위기감을 느꼈다. 이제 옷은 그냥 몸에 걸치기만 하면 되는 천 조각이 아니었다.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느냐가 나와 나를 둘러싼 관계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헐렁거리는 교복바지를 입고 다닐 수도, 블링블링 튀는 캐릭터 잠바를 입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런 것들은 ‘멋’의 저편, ‘촌스러움’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나는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지 않았다. 그 정도의 가격을 요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때마침 그 유행의 압박이 조금 덜한 대안학교로 전학을 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것들을 가지고 싶었고, 그 옷을 못 입는다는 사실에 쪼끔 원한을 가지기도 했다. 누가 싸게 갖다 주면 감지덕지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류의 유행을 따르지 못할수록 나는 거기에 더 민감해졌다. 40만원짜리 노스패딩 대신에 16만원짜리 나이키 패딩을 입었고, 10만원짜리 카파 바지 대신에 3만원짜리 험멜 바지를 입었다. 그렇게 유행의 언저리에서 그것을 곁눈질하며 그나마 적절한 것을 찾고 찾아 구색을 맞췄다. 그때는 백만원이 생기면 어떻게 써야할지가 딱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저 유행의 첨단에 있는 옷들로 한 세트를 맞춰야지.’
그런데 어느 순간 노스페이스의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싸의 상징이었던 ‘필수템’이 갑자기 너무 촌스럽고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구도 노스페이스를 입으려 하지 않았고, 입으면 놀림감이 되었으며, 작년에 새로운 버전을 큰맘 먹고 장만한 애들은 울상이 되었다. 어제까지 유력하던 후보자가 스캔들로 하루아침에 ‘나가리’되듯 노스페이스는 얼굴 한번 들지 못하고 죄인처럼 퇴치 당했다. 카파도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나는 이때 ‘유행의 덧없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절대다수의 전형이었던 패션이 이렇게 힘없이 무너져버릴 수 있지? 그럼 그 비싼 패딩은 다 집구석 어딘가에 구겨져 있는 건가? 다행히 나의 나이키 패딩은 집 밖에 나와도 별 문제가 없는 눈치였다. 한 시절, 모든 사람의 취향을 지배했던 대유행의 최후란 이런 것이었던가?
‘사복 데이’의 추억
내가 다닌 이상한 대안학교는 교복과 생활복을 입게 했지만, 매주 수요일마다 사복 입는 것을 허용했다. 일명 ‘사복 데이’인 이날은 아침부터 니 옷 내 옷 빌려서 멋부리느라고 기숙사가 난리였다. 학교건물에서 10m거리에 불과한 기숙사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놈, 왁스로 머리에 잔뜩 힘준 놈, 쫄바지에 셔츠를 풀어헤친 놈 등 온갖 멋쟁이들이 쏟아져 나와 학교로 런웨이를 했다. ‘몬스터 대학교’를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너무 우습지만 그때의 우리는 꽤 진지했었다. 주로 ‘쫄바지에 셔츠를 풀어헤친 놈’이 나였지만, 다른 놈들의 옷을 빌려 앞의 두 유형을 포함한 괴상한 시도들도 했었다.
아마 이런 과정에서 나는 패션의 기본 원칙들을 조금씩 접해보게 된 것 같다. 왜, 양말 신고 샌들을 신지 않는 것처럼, 옷을 입는 것에 몇 가지 금기와 어울리는 조합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리닝과 셔츠 사이에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엄청난 거리가 있어서, 그에 맞는 신발이며 겉옷의 영역이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셔츠 위에 맨투맨이나 후드를 겹쳐 입어도 어울린다는 것과 청바지는 롤업을 해줘야 예쁘다는 것, 운동화 매듭을 안으로 넣어 신으면 깔끔하다는 것, ‘패션의 완성은 양말’이라고 할 만큼 양말의 중요성이 상당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유행하는 옷을 똑같이 입는 것이 오히려 촌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있어서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꼭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만 유행을 싫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이런 방식으로 여러 가지 ‘옷 입기’의 코드라고 할 만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패션의 역사이다. 노스페이스의 공포로부터 지금의 ‘무난 깔끔 스타일’(언짢지만 ‘남친룩’)까지. 그리고 지금은 상황이 좀 열악하지만, 이제 곧 나아질 거다. 나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행도 반反유행도 아닌(반半유행이라고 하면 너무 싱거워 보이려나), 나름대로 봐 줄만 한 패션이 다가오고 있다.
친구의 신발은 왜 나를 분개케 하나
내 친구는 월급이 100이고 월세가 40인데 지난달에 50만원짜리 워크부츠를 샀다. 신나서 자랑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그 돈이면 다른 좋은 신발 5개도 더 사겠다, 이 정신 나간 놈아! 나는 이런 식의 소비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돈도 없는 놈이 저런 신발을 사 신는 걸까. 몇 번이나 신을 수 있을까. 한심스럽기가, 아주 그냥····. 그런데 나는 왜 남이 신발 신는 것에 이렇게 분노하는 걸까? 나는 그 녀석이 더 합리적인 소비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지 멋있어보이지도 않는데 굳이 그걸 산단 말이지, 합리적이지 못해, 이해할 수 없어.
나는 원래 아이유를 좋아하는데, 언젠가 어떤 기사를 보고 아이유가 더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그 기사는 아이유가 입은 옷들이 거리에서 살 수 있는 일이만원짜리 보세 옷이더라는 내용이었다. ‘오, 아이유는 대스타임에도 평범하고 예쁜 옷들로 코디를 했구나(마음도 고와라)!’ 이와 반대의 케이스로 체 게바라가 롤렉스 시계를 찬 사진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본 적 있다. 평등과 혁명의 아이콘인 그가 사치스런 명품을 애용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나도 조금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보니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아이유는 비싼 옷을 입을 수 있는데 싼 옷을 이쁘게 입어서 좋고, 체 게바라는 평등하게 입어야 하는데 불평등한 롤렉스를 차서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다. 친구의 신발은 나를 분노케 하고, 아이유의 코디는 나를 기쁘게 하고, 체 게바라의 시계는 나를 언짢게 한다? 나는 어느 장단에 춤추고 있고, 어느 장단에 성을 내고 있는 거지? 그것이 합리적인가 아닌가, 올바른가 아닌가를 따지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그 기준은 어디서 만들어진 걸까?
마무리
나에게 백만원이 있다고 가정하고 한 번 장바구니를 채워보자. 일단 너무 유행하는 것들은 경계해야지.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옷과 어울리는지, 오래 입을 수 있는지 등을 따지며 하나씩 엄선한다. 이때, 클릭 하나에 온갖 것들이 치고 들어온다. 요즘의 이쁜 옷 몇 개 유형들 한 움큼, 베이직한 기본템들 한 줌, 엊그제 본 친구의 옷차림 한 줌, 겨울 다 갔는데 아우터를 사? 말어? 잠깐, 충동구매는 안 되는데, 좀 킵해두고 나중에 살까, 월세도 내야하는데····. 지금 있는 옷이랑 비슷해도 안 되는데, 차라리 가방을 하나 할까, 그나저나 몇 시지, 너무 시간 낭비하고 있나, 할 것도 많은데····.
이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끼어드는데. 내 패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합리성을 유지하기란 사실 조금 피곤한 감이 있다. 게다가 그 합리성에는 돈 문제 말고도 이상한 ‘올바름’ 같은 녀석들까지 들어와 훈수를 두고 있다. 유행인지 아닌지, 실용성은 어떤지를 따지기도 바쁜데, 친구 신발이 어쩌고 하는 문제까지 생각하니 골치 아프다. 내가 패션과 취향의 문제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었나? 내 클릭 하나만 봐도 거기에는 꽤 많은 것들이 껴들어 있다. 너무 튀진 않을까, 이 가격에 딴 거 두 개 살 순 없나, 결국 또 블랙엔 화이트 아닌가? 그나저나 내일은 또 무슨 옷을 입어야 하나. 머리는 복잡한데 옷장은 또 왜 이렇게 단순한지. 이래서는 패션왕이 되기 어려울 거 같은데.
글_민호(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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