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슬기로운 복학생활] 연애가 하고 싶습니다만

연애가 하고 싶습니다만



연애가 하고 싶습니다만


“진짜 연애하고 싶어?” 친구들은 이렇게 물으며, 그런데 너는 뭐라도 노력하고 있는 게 있느냐고 따진다. 피부 관리는 하는지, 옷은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지, 술자리나 모임은 잘 나가는지,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대쉬는 적극적으로 해봤는지 등의 각종 ‘노오력’들. 그리고 무엇보다 연애를 시작하는 제 1원칙, ‘일단 여자가 있는 곳에 가라’를 잘 실천하고 있는가? (연구실에는 자주 나가고 있다만… 맥락이 약간 다른 듯하다) 대답은 절레절레. 물론 나는 대학을 다니고 있고 내가 듣는 수업에는 예쁜 여자 후배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딱 수업만 들을 뿐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회도 하지 않고 술자리나 행사도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수업 조별과제 팀원들은 모두 복학생들이다. 이렇게 여후배들과는 말 붙여볼 기회도 없이 한 학기가 끝나간다.




집-강의실-연구실-집. 이것이 나의 하루 동선이다. 나는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이 건전한 동선 속에서는 연애를 하게 될 가능성이 제로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내가 좋아서 공부하는 것이면서 나는 종종 ‘이놈의 공부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어!’하고 울분을 터뜨린다. 커플들 사이를 비집고 대학로를 지날 땐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 공부를 하지 않으면 연애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건가? 역시 절레절레. 그것을 위한 ‘노오력’들 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한다고 한들 짠 하고 여자친구가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연애에 대한 욕구불만이 한 번씩 치달을 때 애꿎은 공부를 탓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떤 친구는, 네가 그렇게 생활 패턴을 바꾸지 않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넌 사실 별로 연애를 하고 싶지 않는 거야, 정말 원했다면 뭐라도 했겠지, 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결국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연애 같은 것은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하루 동안 나의 생각의 팔 할은 여자나 연애와 관련된 것들인데?


공부에 대해 내가 가지는 생각이나 느낌은 단순하지가 않다. 어느 때는 새롭고 신기하기도 다른 때는 괴롭고 지루하기도 하다. 또 어떤 면은 부담되고 힘든 한편 다른 면으로는 재미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어떻다고 하기 어렵고 복합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나 연애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한결같다. 늘 닿고 싶고 닿아야 하는 미지의 핑크빛 세계. 그것은 순수한 관념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서도 계속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 번도 깨져보지 않고 침해받지 않은 나의 FANTASY. 그것은 무엇으로 부풀어 있는 걸까.



환상 점검


누군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온갖 이미지들이 뭉게뭉게 떠오르지만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지금 네가 이런 것들을 따지고 있을 때니, 민호야?’ 하는 마음의 소리가 피어나는 환상들을 제지한다. 내가 뭐가 되는 것도 아니면서 과분한 걸 바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단순히 이상형일 뿐인데도 ‘양심’의 문제가 걸리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나의 핑크빛 환상들을 살짝 열어보고 가야겠다. 나의 이상형은 몸매가 탄탄한 여자, 된장찌개 잘 끓이는 여자, 책 좋아하는 여자, 가식이 없고 잘 웃는 여자,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등 끝도 없다. 딱히 특별한 이유나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느낌들의 나열이다. tv, 친구들, 길거리 등 어디선가 듣고 보아온 이미지들이 만들어낸 참 거창한 희망사항들이다. 뭐 어디까지나 이상형일 뿐이니까, 아님 말고, 하며 넘어가면 될 일이다.



그런 환상들 사이에서도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는 포인트가 있다면 바로 밤산책이다. 나의 로망은 노오란 가로등이 켜진 캠퍼스를 여자친구와 함께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연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까이 살아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사이여야 한다. CC라면 어떨가. 그런데 과 CC는 이런저런 귀찮은 소문도 나고 깨졌을 경우 리스크가 너무 크기도 해서 안 된다. 다른 과 학생이거나 가까운 대학의 학생이면 참 좋겠다. 그런데 그러면 그 주변에 모르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이 신경 쓰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여대생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 매일 밤 산책을 나가고, 시험기간에 같이 공부하고, 근처 강변으로 자전거도 타러 다닐 수 있겠지?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바라는 것이 조금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꽤 까다롭기도 한 것 같다. 오롯이 나 자신의 니즈로만 가득 한 핑크빛 시나리오. 여기에는 다툼이나 질투, 실망감이나 부담감 등 지저분한 것들이 없다. 피곤한 일들 다 쳐내고 좋은 것만 모아놓은 순수한 환상이었다. 설마 이렇게야 되겠어, 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 환상들은 수정되지 않고 고이 접혀 마음속에 간직된다.





‘제대로 된’ 연애


갓 자대배치를 받은 이등병은 취침소등 후 온갖 ‘썰’을 풀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당사자는 가장 긴장하고 선임들은 가장 기대하는 메인 파트는 바로 연애 이야기이다. “여자친구 있어? 제일 최근에 연애한 게 언제야?” 개중에는 화려한 썰을 풀어 “오~~(짜씩 @0@)”하고 환호를 받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놀림감이 되거나 야유를 받는 녀석이 있다. 물론 나는 후자였다. 그때의 굴욕감과 자괴감은 엄청난데, 남들에게 놀림을 받아서라기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근원적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21년을 살면서 남들에게 들려줄 제대로 된 연애담 하나 없을 수가 있지, 지금까지 뭐하고 산 걸까’하는 존재론적 고민을 하며 쓰라린 마음으로 모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만다. 그런데 이때 20대 초반 남자애들의 환호와 인정을 받는 ‘제대로 된’ 연애란 무엇이고 어떤 조건들을 전제하고 있는 걸까?


먼저 얼마나 사귀었는가, 진도는어디까지 나갔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런 점에서 중·고등학교 때의 연애는 애들 장난이지 진짜 연애가 아니라고 취급한다.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핵심인 섹스가 빠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섹스가 없으면 ‘제대로 된 연애’로 쳐주지 않고, 섹스만 있는 관계 또한 연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친구 중 한 녀석은 200백일이 넘은 여자친구와 헤어질 것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 애가 ‘혼전순결’을 고수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녀석은 잠만 자는 관계인 친구(friend with benefit)들이 지역마다 있는데 자기는 풋풋하고 설레는 ‘진짜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먼저 ‘왜 나한테 굳이 그런 말을...(또륵)’하는 원망과 함께 반감과 부러움이 차오른다. 그런데 잠시 진정하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연애라는 것이 섹스가 없으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잠만 자는 관계가 연애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성욕 없이는 성립되지 않지만 그것으로만은 환원되지 않는 특정 조건들이 갖춰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연애가 가능해진다.


내가 보고 들어서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연애란 무엇일까? SNS에 ‘연애 중’을 띄우고, 며칠인지 카운팅을 하며 기념일을 챙기고, 맛집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가끔씩 경복궁이나 롯데월드, 가로수길로 놀러가 데이트를 하는 것. 커플룩을 입고 찍은 프로필 사진을 걸어놓고 늘 연락을 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것 등. 꼭 이런 것들을 다 하는 것만이 연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털털한 관계이더라도 사귀기 시작한 날짜도 모르고, 데이트도 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연애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로등 켜진 밤거리는 함께 산책해줘야 연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런 것들은 해줘야지’ 하는 조건들이 내재되어 있었던 내 머리 속 ‘제대로 된’ 연애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위너와 루저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나 홀로 집에’의 주인공 케빈이 솔로들을 비웃는 사진이 유행한다. 방구석에서 특선영화로 방영되는 《나 홀로 집에》 시리즈를 보고 있을 솔로들의 처지를 조롱하는 것이다. 한두 해도 아니고 이제는 별 감응도 없을 법도 한데 캐럴이 울리면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솔로탈출’이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솔로는 탈출해야 될 상태로 여겨진다.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불완전한 상태로 여기고 솔로들 자신들도 그렇게 느낀다. 특히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해 본 ‘모태솔로’는 어딘가 문제가 있거나 남자/여자로서의 능력이 없는 루저로 여겨진다.


 나에게는 ‘연애하려면 이 정도는 갖춰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조건들이 있다. 일단 피부가 좀 깨끗해야 하고, 눈썹 정리도 하고, 틈틈이 운동을 하는 등의 기본적인 자기관리 해줘야 한다. 유머감각이 있거나 활달한 성격, 즉 ‘인싸력’도 어느 정도 갖춰야 한다. 물론 거기에 잘생기거나, 돈이 많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 하는 장점들이 있다면 그 가능성은 더 올라간다. 즉 연애능력은 ‘타고남 + 노오력’에 비례한다. 그런 눈으로 또래들을 둘러보면 쟤는 연애를 잘 하겠군, 못 하겠군, 하는 임의판단을 내리게 된다. 또는 반대로 여자친구의 유무가 그 녀석의 능력을 증명하기도 한다. “엥 쟤가?” 머리도 지저분하고 늘어진 티셔츠만 입고 다니는 깡마른 녀석이 여자친구가 있다니, 필시 숨겨진 매력이 있나보군. 아니면 훤칠한 녀석이 ‘모쏠’이라니, 어딘가 문제가 있나보군 하고 생각한다. 어디가 어떻든 있는 놈이 위너이고 없는 놈이 루저라는 구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솔로탈출이 아닌 망상탈출


나는 연애를 시작하는 ‘제 1원칙’도 못 지키고 아무런 ‘노오력’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핑크빛 환상을 품고서. 이것은 단순히 성욕 때문일까? 거기에는 연애라는 것을 둘러싼 다양한 생각들, 이미지들이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모름지기 제대로 된 연애라면 적어도 이런 것들은 갖춰야 한다는 생각과 그런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들. 그리고 연애를 못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무능력함을 보여준다는 인식 등이 깔려있다. 연애란 정말 뭘 갖추고 대단한 노력들을 해야만 따라오는 대가나 보상 같은 것인가? 그럼 이런 저런 자격들을 갖춘다면 핑크빛 연애가 펼쳐질까?




하지만 연애라는 것이 정해진 법칙이나 틀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던가? 나는 지금까지 연애라는 사건이 일어날만한 상황이나 조건들만 따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그러한 상황 속에 있지 않고, 그러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지 못함을 한탄했다. 하지만 연애란 특정한 조건들이나 상황들이 갖춰진다고 자동으로 시작되는 것일 수가 없다. 무엇보다 연애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마주치게 될지 모를 미지의 상대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면 혹시 나는 연애에 대한 온갖 표상이나 관념들을 만들어내며 쓸데없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다고 연애를 (잘) 하게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연애에 대한 나의 망상들은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뿅’하고 연애가 시작되는 것도 아닐 테다. 그래도, 이런 망상들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글_민호(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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