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생생 동의보감

양생(養生), 욕심을 줄이고 계절에 맞게 살아라

by 북드라망 2019. 2. 28.

양생(養生), 욕심을 줄이고 계절에 맞게 살아라

 


『동의보감』의 임상 사례 중에는 실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서사들이 많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들. 다음의 한(漢) 무제(武帝)가 등장하는 이야기도 그런 경우다.

 

옛날 태산(泰山)아래 한 노인이 살았는데 그 이름은 알 수 없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가 동쪽 지방을 순행하다가 길옆에서 김을 매는 한 노인을 보았는데 등에 두어 자 되는 흰 광채가 솟았다. 무제가 이상하게 여겨서 그에게 도술을 쓰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이에 노인이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이 85세 되던 때 노쇠하여 죽을 지경으로 머리는 세고 이는 빠졌습니다. 그 때 어떤 도사가 신에게 대추를 먹고 물을 마시면서 음식을 끊으라고 하는 한편 신침(神枕)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베갯속에는 32가지 약을 넣었는데 그 중 24가지 약은 좋은 것으로 24절기에 맞는 것이고 나머지 8가지는 독성이 있는 것으로 팔풍(八風)에 응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 방법대로 했더니 도로 젊어져서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왔으며 하루에 300리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은 금년 180세인데 속세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손들이 그리워 속세에서 곡식을 먹은 지 이미 20여 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신침(神枕)의 효력으로 늙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제가 그 노인의 얼굴을 보니 한 50세쯤 된 사람같이 보이므로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진실로 그렇다고 말했다. 이에 무제가 그 방법대로 베개를 만들어 베었으나 곡식을 끊고 물만 마시는 일은 하지 못했다. 

- 「내경편」, ‘신형’ 227쪽

 

한(漢) 무제(武帝)는 중국 한나라의 5대 황제 (BC141~BC87 재위)이다. 그는 안으로는 유학으로 정치의 기틀을 잡았고 밖으로는 흉노를 정벌하고 서역을 개척하는등 한나라를 강대한 제국으로 만든 실존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만난 노인이 180세라 하니 선뜻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 글 앞에 나오는 양생법을 읽다보면 꼭 허구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을 닮은 소우주이다. 그러므로 수련을 통해서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 수련의 요체는 물질이든 욕심이든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양생(養生)이다. 그러면 무병장수 아니 불사에 이를 수 있다. 

  



말을 줄이고 색욕을 줄이고 음식을 줄이고 생각을 적게 하고 기쁨과 슬픔을 적게 하고...등등 온통 절제의 미덕을 강조한다. 『동의보감』이 인용하는 도가(道家)의 경전에는 급기야 곡기(穀氣)를 끊으라는 말도 나온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호흡과 집중만으로 단(丹)을 수련하여 기(氣)를 기를 수 있다고 본다. 위의 노인처럼 대추와 물만으로 신선이 된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원기(元氣)가 곡기보다 많으면 여위어도 오래 산다.’고? 정말? 설령 사실이라 해도 무슨 재미로 살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먹는 재미도 없이 고행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련하면 입에 단맛이 돌고 그것을 단전으로 내려 보내면 신기가 몸속 깊은 곳까지 충만하게 된다니 노인은 곡식을 먹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환희를 느끼며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인의 180세 장수가 허망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등에서 흰 광채가 난다는 것도.

  

한무제는 순행(지방 제후국 순시)길에서 목도한 이 노인을 보고 그 무병장수에 탐이 났음직하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그가 불로장생을 위해 수많은 방사(方士)들에게 현혹되어 온갖 방중술을 구하고 신선을 만나려고 애쓰는 장면들이 나온다. 천하를 거머쥔 황제가 무엇인들 시도해보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노인으로부터 곡기를 끊고 신침을 벤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말을 듣고 할 수 있는 것은 베개를 만드는 것 뿐이었다. 지금 그는 순행중이다. 수많은 살육을 하며 제국을 만들어내는 그가 곡식을 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베개야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어찌 ‘줄이고 또 줄일 수’ 있었겠는가? 

  

노인은 베개만 벤 것이 아니라 베개처럼 살았을 것이다. 베개 속을 메운 24가지 약재가 24절기에 대응하는 것이니 그 삶도 24절기에 순응하지 않았을까? 독성이 있는 8가지 약재는 8풍을 막아주는 것이다. 8풍이란 절기가 바뀔 때마다 팔방(八方)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때론 병을 일으키는 악풍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럴 때 노인은 베개로만 8풍을 막은 것이 아니라 외출을 자제하고 근신했으리라. 일상에서 양생을 실천한 노인. 지금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정도로 일상에 충실하다. 이제 곡식을 먹게 되어서인지 곡식 가꾸는 일상을 기꺼이 하는 신선!밭에서 김매는 신선이라?  참 신선하다^^. 신선이라면 허연 수염을 기르고 깊은 산속에서 은거함직한데.

  

우리는 이 노인처럼 곡식까지 끊으며 살 수는 없다. 한무제처럼 베개 정도야 만들 수 있지만 음식을 안 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도 노인처럼 계절에 맞게 양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욕심도 줄여볼 수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글_박정복(감이당 대중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