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낭송 18세기 연행록』 풀어 읽은이 인터뷰

『낭송 18세기 연행록』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중국이 명나라일 때나, 청나라일 때나 조선에서는 사신들을 중국으로 보냈고 또 그에 따른 기록들도 남겨졌는데요. 그런 기록을 청 이전 세대에는 ‘조천록’(朝天錄)이라고 하고, 청대부터는 ‘연행록’(燕行錄)이라 한다고 하셨습니다. 조천록과 연행록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또 명나라이건 청나라이건 조선의 사신들에게 중국은 새로운 문물의 세계였을 텐데 하필 18세기 이후에 중국에서의 견문을 글로 남긴 연행록이 쏟아져 나오게 된 배경도 궁금합니다.


연행록이란 ‘청의 수도인 연경(燕京, 현재의 베이징)에 간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청(淸) 이전 세대까지는 주로 ‘천자의 나라에 조회(朝會)를 간 기록’이라는 뜻의 ‘조천록(朝天錄)’이라고 불렸습니다.  


둘 다 ‘사행(使行)이라는 해외 체험의 결과로 나온 기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제목서부터 가는 나라에 대한 마음의 온도 차가 확연히 보입니다. 조천록이라는 타이틀은 천자(天子)에 나라에 정례적으로 가는 외교 행위를 수행하는 공무(公務)적 목적을 드러내며 본문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보이는 반면, 연행록이라는 명칭이 주는 지배적인 인상은 ‘가다’[行]에 집중되면서, 길을 가면서 본 광경과 일들을 좀 더 자유롭게 담을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지금의 말로 풀어 본다면 조천록은 ‘명나라 출장 기록 보고서’ 내지는 ‘성지순례기’쯤으로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대상국에 대한 경외심이나 대상국으로 가는 의도가 한정되어 있음을 밝히는 의도가 명칭에 이미 명시되어 있는 것이지요. 연행록은 지금 말로 풀어본다면 ‘연경을 가다’ 정도가 되겠는데, 우리는 그 비슷한 제목을 블로그에서도, tv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체험인 ‘여행’으로 이 경험들을 생각한다는 저자들의 의도가 보이는 것이지요. 


대답이 자연스럽게 두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이 기록들의 명칭이 조천록에서 연행록으로 대세가 넘어가는 순간,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들이 갔던 그 길이 공무인 사행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여행으로 체험하고, 그것을 개인적 기록으로 남기는 일들이 양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임기중 선생님께서 연행록 원문을 집적하여 정리해 놓으신 2016년 개정판 『연행록 총간』(www.krpia.co.kr)에 따르면, 17세기 명에 간 사행기록들을 주로 지칭한 조천록 류는 105편(이본 포함)인데 1637년 청 건국 이후의 대청사행 체험 기록들인 연행록은 18세기까지 봤을 때도 229편(이본 포함)으로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 주체로서의 개인’을 자각하는 것이 기록 급증의 배경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2. 『낭송 18세기 연행록』에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함께 3대 연행록으로 꼽히는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와 홍대용의 『담헌연기』를 포함한 총 10종의 연행기들이 추려져 있습니다. 물론 18세기에 쓰여진 연행록은 그 종수가 훨씬 더 많을 텐데요, 다양한 연행록 중에서 『낭송 18세기 연행록』에 실릴 글들을 선정하는 기준은 어떤 것이었나요? 


개인 저작 연행록이 본격적으로 지어졌던 영·정조 시기(1724~1800)는 18세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시기 연구가치가 있는 49인의 개인 저작 연행록(이본 포함 72종) 중 현재 독자들에게 최고 수준의 연행록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열하일기』(1780)를 빼고 18세기 연행록들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10개의 연행록 중에서 이 책의 내용을 선별했습니다. 1712년에 지어진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를 시작으로, 1791년에 지어진 김정중의 『연행록』까지 그 내용을 선별하고 모았습니다. 


『열하일기』를 왜 뺐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데서부터 『낭송 18세기 연행록』의 텍스트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흔히,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곤 합니다. 이러한 ‘열하일기’의 유명세에 가려서 나머지 연행록들은 단순히 모방작이나 아류작으로 생각되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1780년, 영·정조대의 거의 끝자락에 나온 『열하일기』는 혼자서 평지돌출한 책이 아니라 18세기 초부터 꾸준히 지어진 이 연행록들의 기반에 힘입어 쓰이고 읽힌 책입니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이러한 연행록의 기반과 수준을 보여 주는 주요작, 즉 삼대 연행록으로 후대에 소개된 『노가재연행일기』, 『담헌연기』는 물론 연암이 인용했던 이기지의 『일암연기』, 연암 이후 두번째 열하행을 그린 서호수의 『연행기』 등뿐 아니라 한글, 한문본이 함께 공존하여 연행록이 어떻게 독자층을 넓혔는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의봉의 『북원록』, 강호보의 『상봉록』 등 다양한 18세기 연행록을 선정하였습니다. 그 기준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18세기 (한문) 산문 연행록의 광대한 편폭을 잘 보여주는 텍스트’들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3.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낭송 18세기 연행록』의 최고의 명장면은 무엇인가요? 또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제가 특히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압록강을 넘어 청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광경을 소개한 이기지(李器之)의 『일암연기』(一菴燕記)에서 고른 짧은 부분입니다(본문 59쪽). 

  

압록강을 건넌 뒤로부터는 사람 키를 넘는 갈대숲이 이어져, 수백 보를 가다 뒤돌아보자 벌써 강 언덕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강 언덕에서 바라보는 사람 또한 응당 이와 같을 터이니, 만약 아끼고 사랑하는 이를 강가에서 전송하는 자가 있다면 그 이별의 슬픔을 더욱 견뎌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강에서 4리를 가서 방피포(方陂浦)를 건넜다. 강은 좁았지만, 말허리까지 차오르는 깊이로 더러운 물이 흘렀다. 또 2리 가서 삼강(三江)을 건넜다. 이 강은 곧 또 다른 지류로 압록강으로 흘러드는데, 강폭이 넓으면서도 물은 얕아 겨우 사람의 무릎에 닿았다. 작은 언덕에 올라 의주 통군정을 돌아보니 역관들이 말했다.

“돌아올 때 이곳에 이르러 이 정자를 바라보면 고향집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입니다.”

_이기지, 『일암연기』, 1720년 8월 18일 



일암 이기지가 아버지 이이명(李頤命)을 따라서 갔던 이 사행길은 숙종의 승하를 알리고, 경종의 왕위 승계를 승인받기 위한 임무를 띤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정계는 경종의 동생인 연잉군(후일의 영조)를 세제(世弟)로 책봉하는 문제 때문에 노론과 소론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때인데, 그것 때문에 결국 1721년 1월 7일 돌아왔다가 1721년 10월부터 세제 책봉 문제로 인하여 신임사화가 일어나 그 결과 1722년 3월 경종 제거의 역모죄 주역으로서 몰려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암연기』는 오랫동안 메모뭉치로만 남아 있다가, 39년 뒤인 1759년에야 난리통에서 겨우 살아남은 아들 이봉상(李鳳祥)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1720년 길을 떠나던 일암 이기지가 이러한 상황을 몰랐을까요? 읽을 때마다, 저는 그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더 보고, 알고 싶어서 길을 떠났을 거라는 믿음을 굳히게 됩니다. 결국 그는 연행을 떠나 청의 모습은 물론 청에 와 있던 천주교 선교사들을 통하여 저 세상의 끝인 서양의 문물까지도 접하게 되고, 열심히 그것을 기록합니다. 연경에 있는 동안 물을 길어 오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돌아다니고,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보려고 하는 중간 중간에 문득 들리는 한양의 소식을 접하는 장면이라든지, 복명하기 위해 돌아가면서 점을 잘 본다는 현지인에게 ‘우리가 잘 돌아갈 수 있겠는지’ 등을 물어보는 장면이 『일암연기』 중간중간 나옵니다. 이런 맥락에서, 소개한 글을 보면 처음에는 단순히 길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면서 느끼는 서운한 감정, 무서움 등을 그린 것 같지만 저는 ‘귀환의 반가움’마저 포기하고 보고 싶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한 자락 보는 것 같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4. 앞으로 이 책 『낭송 18세기 연행록』을 낭송하게 될 독자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을 남겨 주세요.


18세기 연행록은 여러 가지 내용과 생각이 녹아든 글입니다. (지리적 위치로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지만 문화의 중심으로 인정은 할 수 없는 오랑캐 나라 청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에 대해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신문물 수용 지침이나 계몽을 위한 기록이 아닌 이유는, 저자들의 자기 인식이 ‘지식인, 선비’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일 저일 다 겪으며 길을 가는 여행자’로 수정되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자의 맘에 피어나는 모험심과 문명을 이해하고자 하는 지식인의 분석안(分析眼) 사이 유쾌한 긴장, 이것이 18세기 산문 연행록이 가지고 있는 맛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풀어 읽는 동안 정말 전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 이 글들의 특징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이에 그러한 유쾌한 긴장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으나, 아쉽게도 독자들께서 느끼실 수가 없다면 그것은 온전히 저의 탓입니다. 읽는 여러분께서 부디 18세기 연행록의 맛을 느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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