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자기배려의 책읽기』 인터뷰 2 - "철학의 놀이는 끝이 없습니다"

by 북드라망 2019. 1. 22.

『자기배려의 책읽기』 인터뷰 2

"철학의 놀이는 끝이 없습니다"

(인터뷰 1편 보러가기)


4.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고자 하는 직장인 독자들에게 공부에 입문하기 좋은 책이나 강좌가 있을까요?


저는 맨 처음 공부하려는 분들에게 언제나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함께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인문학 공동체나 기관이 많아졌습니다. 신뢰할 만한 곳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면 좋습니다. 혼자 공부할 때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풀리고 자신만의 공부 지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언제나 글을 쓰라는 것입니다. 읽기만 해서는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철학은 언어에 대한 각별한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공부인 것 같습니다. 철학은 근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공부이기도 하지요. 글을 쓰고, 그 글에 대해 비판을 받는 작업을 통해서 생각이 더 깊어지게 됩니다. 혼자 하는 공부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좋은 인문학 공동체를 찾아가서 적당한 세미나를 골라 몸으로 부딪히라고 권합니다. 제가 그렇게 했으니까요. 물론 “내가 해봐서 아는데...” 버전으로 들려서 좀 불편할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이 방법을 제일 먼저 권합니다. 저의 경우는 옛 <수유+너머>에 찾아가 ‘장편 읽기 세미나-그리스·로마 서사시와 신화 읽기’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과 친해진 후에 그 분들이 참여하는 다른 프로그램들, 예를 들면 ‘니체 세미나’ 같은 곳에 들어가서 드디어 철학책을 읽을 수 있었지요. 물론 처음에는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그렇게 단번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빙빙 돌아갔으면 지금도 철학책 한 권 제대로 읽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리고 옛 <수유+너머>나 <감이당> 같은 곳에서는 휴일에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지성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직장인인 저의 경우 딱 시간이 맞아서 그 프로그램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학기제로 운영하고, 저와 유사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학인들이 모이니, 공부하는 재미도 생기고 서로 격려도 해주는 장점을 누릴 수 있었지요. 특히 제가 다녔던 프로그램들은 모두 글쓰기를 강조하는 곳이라, 학기가 끝나면 학기 중 배운 책을 가지고 함께 글을 쓰게 하고, 그 글에 대해서 합평도 해주었는데, 그게 저의 공부를 굉장히 크게 도약시켰습니다. 




그래도 제게 입문용 책을 골라 주라고 계속 부탁하면 부득불 몇 권을 권합니다. 그것은 한 가지 철학원전과 철학원전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몇몇 책들입니다. 먼저 플라톤의 『향연』입니다. 『향연』은 엄청나게 유쾌한 작품입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대단한 유머의 소유자입니다. 또 ‘향연’의 그리스 원어인 ‘심포지엄’(symposion)의 의미를 알고서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 뜻은 ‘함께(sym-) 마신다(posion)’ 음, 요즘 말로, 그냥 ‘뒤풀이’, ‘회식’(會食)이더군요. 물론 이 제목은 후대에야 정해진 것이긴 하지만, 이 제목의 뜻을 알고 너무 편안하게 책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뒤풀이 기록 아닙니까. 아무튼 읽기 시작하면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철학책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이때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은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들뢰즈의 『니체』(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들뢰즈의 니체』)입니다. 니체 원전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이 두 책을 먼저 읽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고병권은 제가 알고 있는 한국 최고의 글쟁이 중 하나입니다. 제가 아는 한 한국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 중 한 분이고, 사회적 실천면에서도 최선두에 서 있는 이들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철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니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사람 중 한 명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책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를 함께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니체』는 들뢰즈의 다른 책들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들뢰즈가 니체 입문서 형식으로 편찬한 책이기 때문인데, 니체의 이력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니체 사상을 힘에의 의지, 긍정, 니힐리즘, 영원회귀, 초인 등으로 나누어서 쉽게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니체를 처음 접할 때 이 책을 읽고 꽤 도움이 된 기억이 납니다.

 

현대 철학의 핵심들을 잘 설명해 준 책으로 일본 학자 오카모토 유이치로의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물론 책의 주제가 프랑스 구조주의이므로 협소하다고 느끼실 수는 있는데, 프랑스 구조주의가 현대철학에 영향이 컸고 현대철학을 공부하려면 가장 핵심적인 사조 중 하나일 테니, 이 책을 읽어 두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습니다.  대개 교양 사상사는 여러 철학자를 잡다하게 집어넣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만큼 잡다한 지식을 얻게 하는 데 만족하는데, 이 책은 ‘구조주의’라는 주제에 집중해 깊게 들어가면서도, 가장 쉬운 언어로 풀어 써 주어 현대철학의 핵심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입문서입니다. 


그리고 시중에 나와 있는 철학 입문서 시리즈 중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리즈는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온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와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된 ‘HOW TO READ’ 시리즈입니다. 전자는 한국 저자들이 고전을 설명해 주는 입문서이고, 후자는 외국의 전문가들이 철학자들의 사상을 그들의 문장을 내세워 직접 설명해 주는 입문서입니다. 이 두 시리즈에 고미숙, 고병권, 이진경, 권용선, 박성관, 강대진, 황수영 등 쟁쟁한 한국 저자들과 레이 몽크, 슬라보예 지젝, 피터 오스본, 키스 안셀 피어슨, 모리치오 비롤리 등 외국의 유수 저자들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모두 읽어 보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필요할 때 들춰보면 가장 좋은 입문서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철학책 읽기는 입문서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해당 원전에 들어가서 철학자가 쓴 책의 문장들을 직접 만나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야 그 문장으로부터 진리가 흘러 나와 내 신체로 들어온다고 상상하곤 합니다. 철학자의 문장 그 자체에 철학도 함께 살아 있기 때문에 그가 직접 쓴 문장을 보지 않고 그의 철학에 접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러므로 어디든 이런 공부를 하는 친구들을 찾아나서서 꼭 그 친구들과 철학 원전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5. 『자기배려의 책읽기』에서 다루고 있는 책 중에 특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은 미셸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 『성의 역사 3 : 자기 배려』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책들입니다. 세 책 모두 저에게 ‘자기’와 ‘자기배려’라는 개념을 가르쳐준 첫 철학책이고, 철학의 참다운 즐거움을 안겨 준 첫 책들입니다. 특히 『주체의 해석학』은 그리스·로마 철학들에 나타난 ‘자기배려’의 개념들을 푸코적으로 박진감 넘치게 설명해 주는 책이라서 저에겐 결정적인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아름다운 그리스·로마의 사유인들, 그러니까 플라톤, 에피쿠로스, 에픽테토스, 세네카, 키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접하고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버릴 문장이 없을 정도로 니체의 사상을 완벽하게 보여 주는 철학책입니다. 시적인 표현, 장엄미 넘치는 표현이 넘쳐나므로 읽으면 읽을수록 정신이 푹 빠지게 되는 책이죠. 저는 이 책을 낭송할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정말 훌륭한 책이죠. 읽는 이의 마음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내는 책입니다. 

그리고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가 쓴 대작, 『천 개의 고원』입니다. 저는 읽었지만 아직 읽지 않았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정말 어려운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펼쳐 들고 읽으면 괜히 흥분됩니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지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손에 쥐고 읽기만 해도 새로운 세계에 온 듯한 책. 21세기 지금 여기에서 산다면 이 책을 한번 손에 쥐고 읽어 보지 않는다면 정말 후회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링의 『집 잃은 개』와 『리링의 『손자』 강의 — 전쟁은 속임수다』입니다.  『집 잃은 개』는 공자의 『논어』 본문에 대해 고문헌학을 동원하여 한 문장씩 설명하는 책입니다. 또 『리링의 『손자』 강의 — 전쟁은 속임수다』는 『손자병법』을 그렇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두 책 모두 단어 하나하나 고고학과 고문헌학을 이용해서 정확하게 해석해 가는 과정이 경이로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에 담긴 리링의 문체가 더 흥미로웠습니다. 매우 학술적인 지식을 이용해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데도, 문장이 모두 명쾌하고, 심지어 문장 속에는 초탈이랄까, 유머랄까 하는 묘한 정신도 숨겨져 있습니다. 굉장히 멋진 공자 해설서, 손자 해설서입니다. 꼭 읽어 보십시오. 



6. 지금은 어떤 공부를 중점적으로 하고 계신지요? 앞으로의 공부와 집필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공부 계획’이라는 게 말하고 나면 장황하기만 하여, 나중에는 부끄럽기만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런 곳에서 말해 두면 창피해서 뭐라도 조금은 하게 되더군요. 자기에 대한 구속으로 몇 가지 말해 두고 싶습니다. 

서구 철학과 관련해서는 스피노자와 칸트에 대해서 좀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내들러의 해설서 도움을 받아 『에티카』를 다시 집중적으로 읽고, 『순수이성비판』만 읽다 말기를 뱅뱅 돌았던 칸트의 3대 비판서를 이제는 완독을 목표로 집중 독서를 할 예정입니다. 특히 스피노자에 대해서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의 스피노자 독해를 더 깊이 파고들고 싶습니다. 알렉상드르 마트롱의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와 『대중들의 공포』,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 그리고 빅토르 델보스의 『스피노자와 도덕의 문제』 같은 책들을 일부 참고만 하지 말고, 좀 더 집중적으로 읽고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동아시아 철학에서는 주자(朱子) 철학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주자에 대해서 좋은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기존에 있던 미우라 구니오의 『인간 주자』(저는 미우라 구니오가 편집한 『주자어류선집』을 읽고 주자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진래의 『주희의 철학』, 야마다 게이지의 『주자의 자연학』을 제대로 읽어 보고, 최근에 나온 수징난(束景南)의 『주자평전』과 위잉스의 『주희의 역사세계』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에겐 철학 2기가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부족하다고 여겼던 외국어 공부를 확장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그리스어와 라틴어. 2년 전에 어느 목사님에게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고전 그리스어를 두 달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승진하면서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 아쉽게도 포기했었죠. 올해 그리스어를 제대로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동시에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였던 불어를 문법책이라도 다시 잡아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푸코나 들뢰즈의 문장을 인용하게 되면, 어떻게든 불어 원서에서 해당 문구를 찾아 육안으로 확인합니다. 앞뒤 맥락이 내가 생각하는 취지와 맞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혹시 번역본으로 읽어서 오판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이지요. 그러나 이제 그렇게만 해서는 도무지 더 큰 도약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결심을 하고 이렇게 차근차근 공부를 하다 보면 70세가 되기 전에 중요한 몇 가지 언어는 책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노년에는 외국어에서 해방되어 ‘나의 언어’로 된, 완전히 새로운 제 철학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 제 큰 바람입니다. 

그리고 요즘 저는 제가 일하고 있는 분야인 금융을 중심으로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습니다. 아마 당분간 경제학 공부에 좀 더 매진할 것 같습니다. 금융과 자본시장에서 20년이 넘게 일해 와서 제게는 경험적으로 달라붙어 얻은 지식과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 전문가라고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저는 이 분야를 이론적으로, 철학적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고 여겨졌습니다. 철학을 익히면서 점점 내가 활동하고 있는 지금-여기의 이론과 철학에 관심이 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동안 보지 않았던 주류 경제학들, 그러니까 경제학원론,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공공정책론, 화폐금융론, 경제수학 같은 과목들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읽을수록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점들을 점점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금융체제, 경제체제라는 것이 어떤 모양인지 지금까지 일로만 봐 왔던 차원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제 시야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경제학’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에 ‘담론적 배치’라는 매우 이질적인 요소를 도입한 것 같습니다. 케인스가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유효수요가 부족하므로 주어진 자원이 완전히 활용되지 못하는 불완전고용 혹은 비자발적 실업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경제적 과정에 ‘국가의 자율성 확보’라는 이질적 요소를 도입했던 것과도 같거나, 그보다 더 큰 요소의 도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다음에 쓸 글들은 철학과 정치경제학이 어우러진 글들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또 다시 새로운 영역으로 제 지적 영토를 넓히는 것이라 너무너무 흥미진진합니다. 철학의 놀이는 끝이 없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