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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정치1/몸과정치2

한 마음의 사회

by 북드라망 2018. 6. 14.

한 마음의 사회

 


대개 회라 하는 것은 각 사람이 한 몸과 같이 한 회를 이름이라.

 사람의 몸에 본래 한 회가 있으니 마음은 회장이오,

이목구비 수족은 회원인데,

 회장의 지휘를 각각 맡은 직무를 일심(一心)으로 하여

 사람의 한 몸을 이룸이라.

─『독립신문』 1898년 6월 28일 논설

 


‘회’의 등장

 

그렇다면 조선에서의 상황은 어땠을까? 조선에서 역시 메이로쿠샤와 같은 단체로서 사회적인 것이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독립협회가 그것이었다. 독립협회는 그 협회가 주장하는 내용이나 주의보다, 우선 새로운 ‘회’라는 형식의 등장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립신문』 1898년 6월 28일 논설에는 ‘회’에 대해 연설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내가 회를 가지고 연설을 할 터인데 먼저 회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말씀하오. 회(會)자를 파자하여 보니 인(人)자와 일(一)자와 유(由)자와 일(日)자가 합하여 한 회(會)자가 되었는데 뜻을 삭여 보니 사람이 하나로 말미암는 날이오, 또 다시 보니 인자와 일자 아래 육구(六口)자가 있는지라. 그 뜻을 삭여 보니 사람이 많은 입을 한결같이 함이니 그 글자 모양만 보아도 귀일하여야 회가 됨이라. 대개 회라 하는 것은 각 사람이 한 몸과 같이 한 회를 이름이라. 사람의 몸에 본래 한 회가 있으니 마음은 회장이오, 이목구비 수족은 회원인데, 회장의 지휘를 각각 맡은 직무를 일심으로 하여 사람의 한 몸을 이룸이라. 옛적에 유지각한 사람 하나가 여러 아들을 경계할 새 아들더러 적은 나무 여러 개를 가져오라 하여 그 나무 한 개를 꺾으라 하여 그 아들이 명대로 꺾음에 즉시 꺾어지고 여러 개를 가지고 꺾어보라 하여 또 명령대로 꺾음에 꺾어지지 않는지라.

─『독립신문』1898년 6월 28일 논설


회(會)자를 파자하여 풀이하는 것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이었다. 회라는 글자는 인(人), 일(一), 유(由), 일(日)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글자로, 사람이 하나로 말미암는 날이오, 인(人)의 일(一)자 아래 육구(六口)자가 있으니 사람이 많은 입을 한결같이 함이라는 뜻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통적인 회를 설명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설명 방식은 새로운 ‘사회(society)’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신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 보자. 회라는 것은 ‘각 사람이 한 몸과 같이’ 이루는 것으로, 사람의 몸에도 본래 한 회가 있으니 ‘마음’이 회장이고, ‘이목구비’와 ‘수족’은 회원으로, 회장의 지휘를 따라 각각 맡은 직무를 한 마음[一心]으로 하여 한 몸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영화 <디벨레> 중에서



이러한 회는 비단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건과 짐승들 역시 마찬가지다. 작은 물이 모여 강과 바다가 되고, 작은 흙덩이가 모여 태산이 되는 것처럼 각각 있으면 업신여김을 면하지 못하며, 짐승 역시 회로 모여 떼가 많아야 큰 짐승들보다 무섭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모여 있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데, 이 회에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개미가 행진할 때 대열을 잃지 않고, 직무를 잘못한 꿀벌은 수문장이 목을 잘라 죽이는 것은 벌레들 사이에서도 회 안에 규칙이 있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회 역시 규칙이 분명해야 하는데, 이 규칙을 지킴은 작은 내 몸에서부터 내 집안 규칙, 동리 회의 규칙, 나라의 회의 법률과 규칙을 지키는 데까지 나아간다. 필자는 회자의 뜻을 깊이 궁구하고, 일심으로 협력해 대한 국회가 세계 만국에 제일 높게 되기를 바란다고 마무리 짓는다.

 

이처럼 규칙의 필요성이야말로 당시 지식인들이 회라는 모임을 이야기하면서 강조하고자 한 핵심이었다. 이들이 말한 한 몸은 ‘각심(各心)’이 아니라 ‘일심(一心)’이 전제 조건이었다. 이러한 일심에 대한 강조는 각심의 상황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앞서 량치차오가 ‘합군(合群)’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과 유사하게 개인주의적 경향을 넘어서 무언가 하나로 결집시켜야 한다는 것이 조선의 당대 지식인들이 가졌던 공통된 문제의식이었다.

대한의 인구가 일천이백만명이 있으나 사람마다 각심이요 대한을 자기 나라로 알아 나라 흥망이 자기 흥망과 같은 줄을 모르는 고로, 외국이 대한을 대하여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하며 정부를 대하여 실례되고 인민을 대하여 무리한 일을 하나 전국 인민이 조금도 분한 줄도 모르고 분한 줄 모른즉 개탄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지라. … 그뿐이 아니라 정부 안에를 들어가 보면 관인마다 자기 몸만 생각하고 일심으로 나라 생각 하는 것은 없으며 다 나뉘어 백이면 백이 다 불합하고 백성 틈에 들어가 보아도 또한 정부 속과 같아 모두 각심이라. 이렇게 각심된 나라에 합심된 나라 인민이 들어와 무슨 일을 하려든지 하면 무슨 거리낄 것이 있으리요.

─『독립신문』1898년 6월 28일 논설

 

 

일심과 각심

정부 안의 관인들조차 자기 몸만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의 인구가 천 2백만이 있는데 사람마다 모두 각심만을 갖는다. 이렇게 ‘각심된 나라’라면 ‘합심된 나라’의 인민이 들어와 무슨 일을 하는데 거리낄 거리가 없다고 비판한다. 각심으로 분열된 상황이 ‘홉스식의 자연상태’라 한다면, ‘회’란 홉스식의 자연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합심의 실천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목구비와 수족, 마음에 대한 신체의 유비는 ‘자연상태’를 극복하고 국가라는 하나의 신체를 만들기 위한 은유였다. 조선에서 ‘사회적인 것’의 부재에 대해서는 서재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회라 하는 의를 대강 말하겠는데, 우선 이 회의 규칙을 보건대 당장에 헌화들을 하여 남의 연설을 듣지 못하게 하고 남이 연설도 못하게 하니 무슨 주견인지 알 수 없으나 대범 대한 인민이 언제 회라 하는 것을 하여 보았으리요. 이전에 회라 하는 것은 편쌈하는 회나 아[亞]자 걸음으로 향음주례 하는 회뿐이라. 대저 회라 하는 것은 정부나 사회 상이나 제일 요긴한 것이요, 학문상과 지혜와 생각과 의견과 경제상에 가장 유조한 것이라. 배재학당에 협성회와 독립관에 토론회가 크게 아름다우며 충청남도 공주 쌍수 성하에 독립협회가 또한 극히 좋은 일이더라.

─『독립신문』1898년 2월 19일


서재필은 그동안 조선에서 회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남의 연설도 듣지 아니할 뿐 아니라 듣지도 하지도 못하게 하는 모양을 비판하며, 대한 인민에게 회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물론 이전에 회라는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편을 갈라 싸움이나 하는 회라거나, 술이나 마시며 비틀대기나 하는 회뿐이었다.

 

서재필



그는 회야말로 정부나 사회에서 제일 요긴한 것으로, 학문과 지혜뿐 아니라 경제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서서히 조선 땅에서도 회라는 사회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오 이후 상황이 일변하여 요사이에는 회라 하는 이름은 도로 간 데가 없게 되었음을 한탄한다. 관인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대신을 만나 방에 들어가 귀에 대고 은근히 ‘사사로이’ 의론할 뿐이고, 다른 대신들에게는 이름 밑에 도장만 찍으라 한다. 그러니 일이 어떻게 결정이 된 것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무슨 일이든지 따르기만 할 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 만 사람의 마음이 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서로 노론과 소론으로, 일본당이니 청나라당으로 나누어 대한당은 하나 없이 사사로운 욕심들만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서야 했다. 독립협회에서 회의 목적은 상하귀천을 동등하게 여겨 차등없이 대접하고, 일심으로 ‘애국’이라는 글자를 새겨 나라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전혀 하나로 뭉쳐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심에 대한 강조, 애국에 대한 강조는 필요했다. 그러나 앞서 본 메이로쿠샤에서 사회를 신체에 비유하며, 이견을 수용하고 토론하는 장으로서 이해한 것과 비교하면 독립협회의 신체는 전통적인 한 마음, 한 뜻을 강조하는 논의에 기반한다. 그들이 가야 할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으며, 이 목표를 따라 한길로 달려가게 하는 계몽의 신체, 애국의 한 몸에 가깝다. 조선에서 이 집합체로서의 사회는 국가와 인민을 연결하는 결사체로서 출현한다.

 

앞서 후쿠자와에게 보였던 국가를 제어하기 위한 수평적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백성과 인민의 관계를 수평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발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후쿠자와의 내자와 외양 논의와 흡사한 ‘반대의 공력’이 강조되는 글 역시 발견된다. 개화하는 나라일수록 시비하는 공론이 많으니, 영국이 그 분명한 예라는 것이다. 『독립신문』의 이 글에서는 이를 몸의 질병에 비유한다. 음식이 체하면 몸이 아프고 혈기가 고루 통하지 못해 사지가 잔약하게 된다. 이때 약을 써서 체한 물건을 씻어버리고 난 후 몸이 약하기 때문에 보제를 써서 몸의 원기를 회복시킨다. 나라의 정사도 이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이 불평하는 것은 몸에 병이 난 것과 마찬가지로 아픔과 잔약함을 낫게 하는 것, 즉 불평하는 문제의 본질을 없애는 것이 상책이지 불평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논의가 개화한 나라일수록 시비하는 공론이 많고 시비가 많을수록 개화가 잘된다는 이러한 발상 속에서 정치란 ‘반대의 공력’임이 강조된다.(『독립신문』1898년 11월 7일자)

 

이 글은 1898년 고종이 만민공동회 혁파의 조칙을 내린 것에 대해 반대하기 위해 쓰여졌다. 정부는 의회 개설 약속을 파기하고 17명의 독립협회 간부를 체포하고, 조칙을 내려 ‘회’란 이름을 가진 모든 모임을 혁파하라고 명령했다. 회라는 것이 정부와 인민 사이의 전통적 관계를 위협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를 두고 독립협회를 한국 최초로 사회계약이 맺어지는 결정적 단계에 돌입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독립협회가 정부로부터 몇 가지 큰 약조를 받아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기초로 삼는 것이 한두 소인을 쫓는 것보다 더 큰 공업일 듯하니, 그 약조할 몇 가지를 의견대로 말하노라”(『독립신문』1898년 8월 4일)라고 말한 대목은 군신 간의 계약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로써 사회계약이 맺어지는 본격적 과정이 시작됐다고 파악하는 것이다.(독립신문강독회, 『독립신문 다시 읽기』(서울: 푸른역사, 2004), p. 283.)

 

그러나 여기서 정부로부터 약조를 받았다는 것이 계약론적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것이 상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인민들의 상호약속으로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회계약론의 핵심이라면 독립협회와 군주 사이의 약속을 그 발상의 범주에 넣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 수 있다. 게다가 윗글에서 보듯 몸에 병이 걸렸을 때 보하는 약을 쓰는 것이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인 것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불평 역시 나라를 구성한다는 의미에서의 사회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기보다, 원기 회복 차원에 그치고 만다.

 


병든 시계로서의 나라

 

이는 『독립신문』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신체, 즉 정부를 머리로, 백성을 사지로 비유하는 방식을 쓰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서재필은 독립문의 초석을 놓던 날 그 의의에 대해서 말하며 신체 유비를 사용하고 있다.

나라가 독립을 하려면 사람이 혼자 서는 것과 같아 다리가 튼튼하여야 몸무게를 싣고 능히 걸어다니는 것이라. 나라의 다리는 곧 백성이요 머리는 곧 정부라 머리와 다리가 서로 도와 주어야 그 몸이 튼튼하여 능히 서고 앉기를 임의를 한 터인데 만일 머리가 다리를 상하게 한다든지 다리가 머리를 상하게 하면 그 몸이 병이 들어 운동을 못 할터인 즉 정부와 백성이 서로 위해 주어야 나라가 튼튼히 되야 독립이 될 터이라.

─『독립신문』1896년 11월 24일


다리를 백성에 정부를 머리에 비유하면서 양자가 서로 위해 주어야 나라가 튼튼해지고, 독립이 된다. 다리가 튼튼해야 몸이 능히 걸어 다니듯 나라에서 백성이 중요하다. 정부와 백성이 서로 도와주어야 함을 강조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백성들 각자가 맡은 바 직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재필은 이를 독립문을 세우는 일에 비유하여 돌맹이와 시멘트와 모래를 합쳐 그 무게를 서로 받치려면 돌맹이마다 제 직무를 다해야 함을 강조한다. 만약 그 중에 돌맹이 하나라도 제 직무를 못하면 문이 설 수 없는 것처럼  “인민이 사람마다 제 직무를 하여야 나라가 영구히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독립신문』1896년 11월 24일) 이처럼 『독립신문』에서는 ‘직무’에 대한 강조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신체에서의 직무에 대한 강조가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 의원은 첫째 사람이 어떻게 생긴 것도 모르는 것이 의원 공부 할 때에 죽은 사람을 해부 하나 해본 일이 없은즉 어찌 각색 혈관과 신경과 오장육부가 어떻게 놓였으며 그것들이 다 무슨 직무를 하는 것인지 그중에 하나가 병이 들면 어떤 병증세가 생기는지 화학을 모른즉 약이 어찌 효험이 있는지 약을 쓰면 그 약이 어떻게 사람의 몸에 관계가 되는지 모르고 덮어놓고 약을 주며 덮어놓고 침을 주니 이것은 곧 사람을 위태한 데다가 집어넣는 것이라. 정부에서 백성을 위하여 의학교와 병원은 아직 못 세워 주더라도 제일 침주는 법은 금하여 불쌍한 목숨들이 살터이요.

─『독립신문』1896년 12월 1일


여기서도 조선 의원의 문제로 해부 지식의 부족을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혈관, 신경과 오장육부가 어떻게 놓였는지, 그것들이 무슨 직무를 하는 것인지, 그 중에 하나가 병에 들면 어떤 증세가 생기는지를 모른다고 비판하며 신체에서 ‘직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직무로서 신체 기능을 파악하는 방식은 신체의 기계적 역할에 대한 강조와 맞물린다. 나라는 기계 같아서 그 안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목적이 있고 직무가 있는 것이 기계 속의 여러 톱니바퀴들과 못과 바늘들이 각각 자신의 직무를 행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라도 그 직무를 못하게 되면 시간을 맞추지 못하게 되어 ‘병든 시계’처럼 쓸데없는 물건이 된다.

물론 어느 나라고 나라가 서 있으면 그 서 있는 경개가 꼭 기계 같아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다 목적이 있고 직무가 있는 것이 기계 속의 각색 바퀴와 못과 강철과 바늘들이 다 각기 저의 직무를 하여 그 기계가 돌아가며 기계의 직무를 행하는 것이라. 시계와 똑같이 나라도 그 안에 임금이 계시고 정부가 있으며 인민이 있어 각기 직무가 있는데, 만일 그 중에 하나라도 직무를 못할 지경이면 병든 나라가 되니, 나라가 병들면 고치기가 시계 고치느니보다 더 어려운 것이, 시계는 시계 속을 아는 사람이 혼자 앉아 그 병든 것을 알아 고치지만 나라는 큰 기계라 혼자 고치기가 어려운즉 시계 고치는 데 비유할 일이 아니라.

─『독립신문』1898년 3월 3일자 논설


시계의 비유는 니시의 상생양의 도에서도 나오듯 직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수평적 관계를 그린다. 이제 임금도 정부도 하나의 시계의 부품처럼 여겨진다. 물론 시계와 달리 나라의 병은 고치기가 어려운 점 역시 지적된다. 이는 병든 자가 고치기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나라 밖에서 그 병을 이용하는 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기계로서 하나의 국가를 설명하는 방식은 새롭게 정부와 인민의 관계를 그려내는 것임이었다.

 



신체를 기계적인 직무를 담당하는 구조 속에서 파악하며, 이를 두뇌의 역할의 강조로 연결하는 글도 보인다. 사람의 몸에 이목구비와 사지, 대소장과 골과 여러 장부들은 다 까닭이 있고 이치가 있어 하나라도 없어서는 살 수 없으니 이 몸에 딸린 여러 ‘기계’가 각자 자기 직무를 하고 서로 도와주어 그 맡은 바 직무를 정해 놓은 대로 시행케 하는 것이 병에 들지 않는 조건이다. 여기서 특히 골이 강조되는데 골에서 생각한 것을 따라 각 기관이 직무를 행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뚱이에 있는 각색 기계들이 골에게 매여 있으며 골에 대하여 할 직무와 장정과 규칙과 의리가 다 있으며 또 골이 다른 기계들을 대하여 할 직무와 의리가 있으며 기계끼리 서로 할 직무와 장정과 도리와 인정과 의리가 있는지라. 나라라 하는 것이 사람의 몸뚱이 생긴 것과 똑같이 생겨 정부는 골인데 정부의 직무는 무엇인고 하니 아무쪼록 옳은 생각을 하여 그 밑에 딸린 인민들이 아무쪼록 직무와 도리를 하며 상하고 해롭지 않게 보호를 하여 주는 것이요, 인민은 곧 이목구비와 사지라 정부의 명령대로 시행하여 전국이 흥왕하고 각색 장정 규칙이 서도록 하는 것이며, 또 저희들끼리 서로 돕고 서로 구완 하여 병이 아니 나도록 하여 주는 것이 의리상과 도리 상에 마땅한 것이며 인정에 떳떳한 일이라. 만일 왼손이 오른손하고 싸운다든지 왼손이 왼손을 구완 아니 하여 준다든지 발이 손을 찬다든지 손이 다리를 꼬집는다든지 이가 손가락을 깨문 다든지 손가락이 눈을 찌른 다든지 할 지경이면 그 해를 당한 기계만 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 그 해가 전신에 있으니 곧 제게 해가 있는 것이라.

─『독립신문』1897년 8월 3일자 논설


나라도 이와 같이 정부가 이목구비와 사지를 생각지 아니하고 못된 데로 들어가게 한다든지 이목구비와 사지가 정부를 생각지 않고 명령도 시행하지 않고 골을 때린다든지 상하게 한다든지 자기들끼리 서로 싸워 서로 해가 있게 하며 서로 참소하고, 서로 속이고, 서로 도적질하며, 서로 꼬집으며, 서로 찌를 지경이면 그 몸이 병이 들어 약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여러 나라가 와서 그 ‘전국 몸뚱이’를 찢어 육시를 할 터이니 다리는 한 나라가, 다른 발은 다른 나라가, 팔과 머리는 또 다른 나라가 차지하게 된다. 글은 골에 속한 사람이나 이목구비와 사지에 속한 사람이나 다 자기의 맡은 도리와 인정과 직무를 생각해 조선 전국이 성하도록 자신의 도리를 하고 인민들이 서로 돕고 보호 하여주기를 요청한다고 마무리 짓는다. 마치 팔이 다리를 도와주며 왼손이 오른손을 도와주듯 하기를 바라듯이. 정부가 머리의 역할을 하고, 백성들이 이목구비와 사지의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이 둘이 따로 놀아서는 안 되며 둘은 하나의 몸으로서 전체를 위해야 남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국민의 직분을 강조하기 위해 국가라는 큰 몸의 구성 부분으로서 국민들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계몽시키기 위한 논리였다.

이처럼 『독립신문』에 등장하는 정부와 인민의 관계는 하나의 신체로서 파악되는 유기체적 발상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것이 등장하기에 정부와 인민의 관계가 아직 충분히 결합되지 않았다. 메이로쿠‘샤’가 자발적, 자율적, 독립적 조직으로서 사회적인 것을 기획했다면 독립협‘회’는 국가적인 것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서 기획되고 있다. 조선의 계몽기 지식인들은 아직 조건을 갖추지 않은 개명인민을 ‘국민’으로 호명하고 국가 구축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호명은 되었으나 국민을 채울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은 여전히 불분명했다.(송호근, 『시민의 탄생-조선의 근대와 공론장의 지각변동』(서울: 민음사, 2013), p. 289.) 우선 ‘국민’의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 낼 집합체, 즉 ‘사회’가 창출되어야 했고 이를 하나의 몸으로 묶어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시 ‘회’라 불리는 결사체들은 이처럼 지식인들의 호출 하에 국가 재건의 과제를 수행할 인민의 집합체로서 등장했지만, 그 새로운 방식의 집합적 신체의 등장은 아직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글_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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