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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아기가왔다 1

임신과 출산 그후―사라진 것, 생겨난 것, 남은 것_엄마편

by 북드라망 2017. 12. 1.

임신과 출산 그후―라진 것, 겨난 것, 은 것 



(고령)임신과 출산 후 엄마의 심신에는 참 큰 변화들이 생겼다. 임신 소식을 25년 된 지기(知己)에게 전했을 때,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하며 잘됐다고 축하해 주던 그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너 지나가다가 아이만 봐도 눈물이 나온다~.” 읭? 그…그렇게까지? 라는 것이 속마음이었지만, 그러냐 하고 말았다(게다가 나는 원래 걸어 다닐 때 주변을 잘 보는 타입이 아니다. 따라서 내 눈에 아이들이 잘 띄지도 않는다). 근데, 사실이었다. 지나가다 아이만 봐도(아이들이 쏙쏙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나오기까지는 아니었지만, 더러는 설레고 더러는 가슴이 뻐근해지고 더러는 정신 나간 여자처럼 웃음이 비죽비죽 새나왔다. 호르몬의 조화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임신 기간은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내 몸의 변화를 내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고, 출산은, 말로 하기도 힘들 만큼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이 시간들은 내 몸에, 마음에, 멘탈에, 기존에 있던 것을 없어지게 하기도 하고, 없던 것을 생겨나게 하기도 하며, 조금 있던 것을 많아지게도 하고, 뚜렷하던 것을 희미하게 만들기도 했다. 오늘은 그렇게 사라진 것과 생겨난 것, 그리고 여전히 남은 것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볼까 한다.


▶사라진 것

- 편두통 : 힘도 세고,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성인병이나 만성질환도 없는 내게 딱 하나의 골칫거리 병이 있었으니, 바로 편두통이다. 편두통의 괴로움은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잘 알기 힘들 텐데… 아무튼 적어도 1년에 대여섯 번 이상은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했고, 숨쉬기도 힘들 만큼 괴로울 때는 응급실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겨우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임신을 했을 때도 주치의 선생님께 편두통을 앓는다는 것을 말씀드렸고, 사용되는 약이 아기에게 문제가 없는지 상의를 드렸다(편두통 약 중 일부는 자궁수축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임신 기간 내내 편두통이 오면 어쩌나 하며, 그냥 두통이 올 때도 초긴장 상태가 되어 혈자리를 지압첸으로 마구마구 누르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임신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만 1년이 훨씬 넘도록 편두통을 앓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진 건지 알 수는 없으나 20대 초반에 편두통이 생긴 이래 이렇게 오랜 기간 증상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다.


- 통잠 : 소싯적에 20시간을 깨지도 않고 참으로 화통하게(?) 자곤 했더랬다. 배고프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배고프지 않았다! 사실 배가 고파서 잠을 깨는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허리가 아프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프지 않았다! 왜 누워서 자는데 허리가 아픈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나였는데, 참, 나이가 들면서, 슬슬 배가 고픈 건 모르겠지만 허리는 아파졌고, 20시간씩 내리 자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뭐 12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통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임신 중기부터 방광이 눌리면서 화장실에 가려고 한밤중에 깬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단 하루도 그렇게 10시간은 고사하고 6시간도 깨지 않고 내리 잘 수 없게 되었다. 임신 기간에는 화장실 때문에, 출산 후에는 아기 때문에(지금은 아기가 한밤에 10시간 정도 통잠을 자기는 하지만, 자면서 여러 소리를 낸다. 잠꼬대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깨게 된다).




- 미드 정주행 : 여유 시간을 보내는 ‘꺼리’(표준어는 ‘거리’이지만 느낌을 살려서 적는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미드 정주행이다. 정주행이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전편을 모두 끝장내는 정도는 못 되고… 아무튼 체력이 허락하는 한까지 즐겨 찾는 미드를 아껴두었다가 몰아보곤 했다. 하지만 이젠 안녕. 내가 결국 이번 시즌의 끝을 보지 못한 몇몇 미드들이 아주 가끔 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안녕. 그러고 보니 ‘여유 시간’이 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여유 시간’도 안녕. 


- “어머님”이라는 호객소리에 물선 느낌 : 아마 30대 중후반 무렵 처음 겪었던 것 같다. 마트에 갔다가 어느 매장의 분이 나에게 “어머님, 아이들이 이거 참 좋아해요”라는 식으로 호객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나에게 하는 소리인 줄 몰랐고, 나에게 하는 소리인 줄 알았을 때는, 아마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어머님’ 소리가 너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 그런 소리를(꼭 마트에서 듣는 것 같다;;) 들었고(예전보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덜 들었는데, 그 이유는 미혼인 사람이나 아기가 없는 부부도 많아진 사회 변화가 자주 뉴스에 오르내리다 보니, 그리고 아마도, 손님의 심기 거스르는 일을 되도록 삼가려는 의식이 더 높아져서, 그러니까 서비스 차원에서, 아기를 직접 데리고 장을 보는 사람이 아니면 그런 호객소리는 하지 않게 되어서인 듯하다), 당황스러움은 옅어져 갔지만 낯설고 서먹한 물선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출산 이후에는 아기를 데리고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가거나 집 앞 가게에 가거나 할 때 다른 이를 부르는 어머님 소리에도 내가 돌아보게 되었다. 


  

▶생겨난 것

- 골반통을 비롯한 각종 통증이랄지 질환이랄지 :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병원에 가는 걸 참 싫어해서 웬만하면 가지 않았다(게다가 통증에도 무디고 잘 참는 편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임신 전까지 병원에 다녔던 횟수보다 임신 후 병원에 다닌 횟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우선 출산 후 벌어진 골반은 어쩐지 계속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느낌이랄까. 양반다리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산후 마사지 해주는 분이 말씀하셨는데 책상에 앉을 때 습관처럼 굳어진 자세라 자꾸 하게 되고, 몸이 약간이라도 피로해지면 골반들이 벌어져서 끼이끽 소리를 내는 느낌이 든다. 여기에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를 들었다 놨다 하며 생긴 손목 통증이랑 아기를 안고 재우느라 어슬렁거리며 악화된 발 통증(원래 약하게 족저근막염이 있었다), 임신 때 생긴 손 피부 가려움증은 출산 후 잠시 괜찮더니 재발해서 밤마다 잠결에 손을 긁는다. 그 외에도 각종 소소한 통증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사라지고 소소한 질환을 앓게 되었지만 생략한다. 덧붙이자면 이 모든 병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견딜 만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 살들 : 임신 기간 중 불어난 체중은 17kg이었다(참고로 요즘 임신부들은 체중 증가에 무척 예민하며 10kg 이상 불어나지 않도록 관리에 힘쓴다). 뭐, 나도 13kg쯤에서 막아 보고 싶었으나, 적극적으로 뭘 하지는 않았다. 그랬더니 뱃속의 딸이 쑥쑥 크는 것보다 더 살은 쭉쭉 늘어났다. 올케가 출산 직후 딱 아기 몸무게만큼만 빠졌던 경험을 전하며 경고해 주었음에도 어쩐지, 나는 좀더 빠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더랬다. 말하자면… 출산 직후에는 정말 아기 몸무게 정도만 빠진다. 나는 17kg이 늘었는데, 우리 딸은 3.75kg으로 태어났다. 6개월 동안 서서히 빠진다는 말도, 6개월 이후의 살은 빠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어쨌든, 나는 출산한 지 7개월이 되었고, 여전히 6kg이 더 불어난 상태이며, 그 6kg 중 절반 이상은 배에 몰려 있다(배 가운데로 생겨난 갈색의 임신선도 좀 옅어지긴 했으나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 엄마라는 흐뭇함(?) : 이건, 참, 나의 어설픈 표현력으로 얼마만큼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막 엄마가 되어서 참 좋다거나 행복하다거나 뿌듯하다거나 이런 얘기와는 좀 다른 이야기다. 어느 날, 퇴근 길에, 내일과 다음 달과 올해 남은 기간의 계획 등을 생각하다가 걱정되는 것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지어 이어졌다. 내 특기와도 같은 안 해도 되는 걱정까지 모두 캐내면서 하다가, 다른 때 같았으면 그 걱정거리들을 마음에 다시 차곡차곡 쌓으며 해결방안을 조금씩 고민해 보고 했을 텐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아, 나에게는 딸이 있지’라는 생각이 났고, 아무것도 모르는(아마 2개월 좀 넘었을 때의 일인 것 같으니,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딸아이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러자, 참, 이상하게도, 걱정거리들이 산더미처럼 있어도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니까 딸이 있으니 걱정거리를 이겨내자거나 딸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하자, 같은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어쩐지 흐뭇하달까 괜찮달까. 걱정거리들은 걱정거리로 있는 채로, 엄마가 된 나는 괜찮달까. 그런 느낌인 건데… 역시 잘 말하지는 못한 것 같다. ㅠㅠ 


▶남은 것

임신과 출산을 거쳤으니, 키우는 게 남았다! 200일이 넘어서자 눈에 띄게 ‘의지’를 가지고 ‘앵앵’ 울고 ‘꺄르륵’ 웃고 ‘우어우어’ 소리 지르는 딸아이와 앞으로 보낼 수천 일, 또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생겨나고 여전히 남아 있을 그날들을 기대한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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