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자기 밖으로 나가기

뤼시앵 페브르,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자기 밖으로 나가기



내 고조할아버지 이야기다. 고조할아버지는 꽤 활동적이셨는지, 마을 다반사를 거의 도맡아 하셨다. 하지만 뭐든 많아지고 커지면 나쁜 일이 생기는 법. 몇 가지 일로 주변과 크게 다투게 되었다. 땅 문제가 꼬이면서 이웃친척들과 큰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그 사달이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급기야 할아버지는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그러나 급하게 도망쳐 나왔지만, 사실 그 즈음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사방이 산과 바다로 막혀 있는 섬이라 섬 밖으로 나서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고, 더군다나 섬 공동체들의 네트워크는 매우 촘촘했기에 섬 안에서는 어디 도망가더라도 잡혀오기 십상이었다.




나오자마자 막다른 곳에 서 있는 셈이었다. 도무지 도망갈 곳은 없고, 그렇다고 마을로 돌아가면 맞아 죽을 상황. 바로 그 순간, 할아버지 머리에 스치는 한 장소가 떠올랐으니, 바로 외국인 신부가 있는 성당(聖堂)이었다. 그때까지는 노랑머리, 파란 눈동자의 신부가 있는 성당을 이상한 사람들이나 다니는 곳으로 생각했던 당신이고 보면, 그 장소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매우 의외이고 낯선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당시 마을사람들은 그곳을 치외법권이 있는 곳,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으로 여겼다. 


아무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쳐들어가 신부님께 통 사정을 한다. 아마 사제관에 주무시던 신부님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신부님은 할아버지를 사제관에 잠자게 하고, 그 후에도 당분간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섬이라는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성당으로 피신한 것은 기막힌 한수였다. 이후 마을사람들이 어찌어찌 누그러지자 무사히 집에 돌아갔는데, 그때 할아버지가 맨 처음 한 일은 온 가족을 성당으로 이끈 일이었다. 당연히 할아버지도 세례를 받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었다. 이후 5대째 우리 집안사람들은 예외 없이 카톨릭 신자가 되어야 했다. 그때 성당이 고조할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전혀 존재하지도 못할 후손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올해로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지 500년이 되었다. 물론 그가 실제로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논제를 제시했는지는 논란이 많지만, 아무튼 2017년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각주:1]


사실 루터는 마지막 중세인이면서 뼛속까지 중세인이었다. 그는 철저히 중세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며 구원을 추구했던 기독교인이었다.[각주:2] 그러나 아버지 한스 루터는 성공에 대해 야망을 갖고 있었고, 근면하고 성실하여 짧은 시간에 제련업자와 상인으로 성공하면서 계급적인 상승을 이룬 사람이었다. 당연히 아버지는 루터가 법률가가 되기를 확고하게 원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루터가 에르푸르트 대학에 다니던 7월 어느 날, 에르푸르트에서 가까운 슈토테른하임 근처에서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를 만난다. 그때 자신의 바로 옆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성모마리아의 어머니이며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성 안나를 부르며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하게 된다.[각주:3] 그 순간 바로 그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아우구스티누스 엄수파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 사건은 루터 신학에서 보자면 매우 징후적이다. 그는 그 자신이 출구가 없는 상황이라고 느꼈고,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신을 찾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종말론적이었다.

  



수도사 루터는 수도원 규율을 유순하게 지켰다. 그러나 훗날 루터는 그 생활이 조금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았을 것이라고 회고한다.[각주:4] 역설적으로 수도사가 된 후 자신의 구원에 대해 더 큰 회의를 품게 된다. 바로 이 시절, 루터에게 결정적인 것이 찾아왔다.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서 주해를 가르치면서 「시편」과 「로마서」를 새롭게 읽게 된 것이다. [각주:5]페브르의 말대로 루터는 책을 한 권 펼치면 자기 생각을 그것에서 끄집어내 읽어냈다. 텍스트를 통해 자기 안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도 몰랐던 맑은 샘물을 찾아내는 것이다.[각주:6]  다음과 같은 「로마서」 강의에서 말한 주해 내용을 보라.


“그리하여 신은 예레미아를 통해 우리에게 ”내가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게 하였느리라“고 말하였다...(중략)... 신은 우리 자신의 의와 지혜를 통해서가 아니라 외적인 의와 지혜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우리로부터 발생하고 우리 안에서 성장한 의와 지혜를 통해서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여기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유래한 의와 지혜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따라서 이질적인 의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서 발생한 우리 자신의 의를 먼저 뿌리 뽑아야 한다.”(루터, 로마서 강의)[각주:7]


중세 교회는 선행을 통해서라야 신 앞에서 의롭다고 말한다. 여기서 선행은 현대적 의미의 착하고 어진 행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 교회 축일, 서원, 자선, 면죄부 구매, 수도원의 금욕적 삶 등을 말한다. 이를 ‘행위의 의’, ‘인간의 의’ 또는 ‘행위칭의’라고 부른다. 여기서 ‘칭의’(δικαίωσις[dikaíōsis] 디카이오시스)[각주:8]는 ‘의롭게 됨’ 또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음’을 뜻하는데, 신으로부터 죄인인 인간이 의로워졌다고 선언 받는 것을 말한다. 중세 구원론은 선행을 통해 칭의되었기 때문에, 즉 의로워졌다고 선언 받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 중심적 구원론이었다. 즉, 인간하기 나름인 것이다. 그런데 루터는 이를 뒤집는다. 우리의 안으로부터 오는 인간적인 의를 폐기하고 우리의 “밖으로부터” 오며 우리에게 “낯선” 의인 신의 의를 설파한다. 즉, ‘믿음의 의’, ‘그리스도의 의’ 또는 ‘이신칭의’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믿음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찾아온 신에게서만 의롭게 된다는 뜻이다.


아마 내가 루터의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여기면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버리고 신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것 아닌가. 그것은 대표적인 반(反) 자기배려 아닌가. 물론 형식적인 방향만을 보면 그렇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주체의 변화 측면에서 내용을 살피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온다. 중세의 행위칭의가 교회가 하라는 데로 하면 주체 스스로 변하지 않더라도 그런 행위가 축적되기만 하면 신이 구원을 준다는 뜻이지만, 루터의 이신칭의는 현재의 자기를 버리고, 성경이 말씀하신 새로운 자기로 변하면 신이 내 안으로 들어와 구원으로 인도한다는 말이다. 즉, 행위칭의는 주체의 변형이 수반되지 않지만, 이신칭의는 주체의 변형이 결단코 수반된다. 결국 중세의 반(反) 자기배려적 행태가, 루터의 자기배려적 저항에 직면한 셈이었다.


페브르는 이를 더욱 명확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불완전성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신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로부터 신이 임재하여야만 칭의될 수 있고, 그 순간에야 비로소 옛날부터 신이 구원을 예정하는 그 선택받은 자들의 일원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생겨난다. 매우 역설적으로 절대적으로 외부의 신에게 의존하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탄생한다는 것이다. “신을 기뻐할 때 그는 신을 사용한다. 사용과 기뻐함(Uti, après frui)... 그의 삶은 계속 발전한다. ‘선함에서 더욱 선함으로’(de bono in melius).”[각주:9]


여기서 어떤 역설이 생긴다. 이 순간 찾아온 신은 거꾸로 인간에게 자기를 맡긴 신이다. 내가 신에게 맡기는 순간, 신은 자신을 인간에게 맡긴 것이 된다. 아마도 사람의 아들이 된 그리스도는 이런 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사건일 것이다. 어쩌면 독특한 자기배려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로부터 루터는 페브르에게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루터는] 신학자,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한 신앙인이자 신을 갈급해하는 한 인간이다. 그런 그의 마음상태는 욕망과 격정, 초인적인 환희와 끝없는 고뇌가 들끓고 그로 인해 온몸이 떨리며, 상황들의 여파로 그는 거칠게 밀어닥치는 불가항력의 물결들처럼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범람하고 요동친다. 그런데 물결들은 저마다 자기 리듬에 따라 흘러갈 뿐 앞서가는 물결이나 뒤이어 오는 물결을 생각지 않는다. 각 물결은 그것이 유래하는 머리와 가슴의 풍요로운 생각이나 감정에서 적당한 하나의 몫을 지닌다. 그러므로 그 물결들은 저마다 루터의 모습 가운데 하나를 반영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식으로, 때로는 자신의 모든 통찰력을 믿음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루터는 간절히 신을 소유하고자 애쓰며 율법을 건너뛰어 곧장 복음으로 달려간다."(강조는 인용자)[각주:10]


신을 소유한다는 이 관념은 종교개혁의 핵심, 교회형식의 변혁에도 영향을 끼친다. 루터는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에서 평신도와 사제, 군주와 주교,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차이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그는 로마서(12:4), 고린도전서(12:12), 베드로전서(2:9) 등 성서를 토대로 그런 내용을 강렬하게 주장하였다.[각주:11] 즉, 우리는 모두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한 몸이며, 서로에 대하여 지체들이라는 성경 구절에 의거해서 모든 그리스도교인은 참으로 ‘영적 계급(신분)’에 속하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의 차별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이른바, “만인사제직”(사실 본인이 직접 이 말을 한 적은 없다)을 표명하였다.[각주:12] 더불어 고린도전서(2:15)에서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않습니다.”라고 한 바울의 말에 의거해서 교황의 성경해석 독점권을 비판했고, 신앙, 이성, 성경, 성령을 소유한 모든 신자들이 동일한 권리와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였다.[각주:13]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그의 생각이나 주장이 무척이나 급진적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급진성이라면 빠지지 않을 푸코에게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이 부분은 푸코가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에서 대항품행에 대해 강의했던 제8강에서 간단하게 다루어진다. 푸코는 그리스도교화된 서구가 체험한 품행상의 반란 중 가장 큰 것은 루터의 반란이었다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숱한 근현대의 혁명들보다 종교개혁을 더 큰 사건으로 여긴 것이기도 했다.[각주:14]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것이 그렇게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강의가 사실 『안전, 영토, 인구』라고도 할 수 있다.


푸코가 이 부분을 설명하는 과정에는 명시적이진 않지만, 내용상 “만인사제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사목 권력은 그리스도교가 발전하면서 사목적 기술과 절차가 극도로 복잡해지고, 매우 엄밀하고도 조밀하게 제도화된다. 특히 푸코는 사목의 제도화 차원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를 대치시키는 이항대립적 구조가 형성되는 것에 주목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둘은 동일한 권리도, 동일한 의무도, 동일한 시민적 특권도 갖지 않았다. 바로 이 지점, 이런 이항성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사목적 대항품행의 충돌지점 중 하나”가 된다. 


다시 말하면 사목적 대항품행의 충돌지점은 바로 “성직자 대 평신도 구도”와 “만인사제주의”간 충돌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목 권력의 속성, 즉 사목 권력이 인간의 품행을 대상으로 삼는 매우 특이한 유형의 권력이었으므로, 그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도 품행상의 대항논리로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었다. 여기서도 느껴지지만, 푸코가 얼마나 자신의 사유에 충실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권력은 권력관계다. 저항은 이 관계 안에서 생산된다. 사목 권력이 품행에 몰두하는 권력관계이므로, 그 관계 안에서 대항품행적인 종교개혁도 가능했다는 것을 푸코는 다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푸코가 후기에 몰두했던 '주체 변형의 문제', 즉 '영성의 문제'와 만난다. 루터는 그때까지 있어왔던 주체의 존재 방식에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인 것이다. 그는 사목 권력이 구성하고 만들어나간, 그러니까 사목 권력에 의해 정해진 대로 성서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도록 조련된 품행에 반기를 들고, 내 자신이 그것을 해석하여 판단하겠다는 새로운 주체였다. 바로 자신만의 신을 자신이 소유함으로써 새로운 품행을 창조한 사람이었다. 그리스도교가 생겨서 뿌리내린 지 1500년이 넘어서는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대항품행의 정신은 살아나서 루터를 탄생시켰다. 


추석, 설이면 거대한 친족회의를 하듯이 성당에서 이웃친척들을 만난다. 결혼이나 장례가 발생하면 모든 친척이 성당에 모여 의례를 지낸다. 나는 한동안 이런 집안 문화가 익숙하면서도 몸에 어울리지 않은 기묘한 상태에 있었다. 집안의 모든 명령체계가 성당을 통해서 전달되는 느낌인 것이다. 그래서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자 그 익숙하지만 어울리지 않은 의례를 손쉽게 벗어 던져 버렸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크고, 아내가 다시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자, 벗어 던질 때의 손쉬움만큼이나 손쉽게 다시 그 의례의 옷을 입게 된다. 그만큼 장치는 무척이나 강고하고 깊은 것이다. 성당이 어쩌고저쩌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거대한 의례들을 벗어던지기 위해, 진정 벗어 던지기 위해 어떻게 자기를 배려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언제나 멀리 갔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순식간에 되돌아가 버리고 마는 이 탄력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루터는 너무나 긴 역사여서 더 이상 바꿀 길이 없다고 여겼던 기독교 내부에서 주체를 변형시키는 반란을 일으켰다. 루터의 자신 밖으로 나가기, 지금 그것을 배워야 할 때다. 


글_약선생(a.k.a 강민혁)


  

  1. 박흥식 지음, 『미완의 개혁가』, 21세기북스, 2017, 29~65쪽. 보통 우리는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 판매에 항거하고, 고해성사를 비판하는 95개 논제를 직접 비텐베르크 성벽교회 문에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여러 가지 논란이 많다. 박흥식 교수님 글에 따르면 루터가 직접 본인이 교회 문에 내걸었다는 증거는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전해준 멜란히톤(Melanchthon, 1497~1560)이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간 것은 1518년 8월이었기 때문에 루터가 실제 그랬는지 확인해줄 사람이 아니었다. 가톨릭계 역사학자인 에르빈 이절로(Erwin Iserloh)는 루터가 95개 조항을 교회문에 내건 것은 아니고, 고위 성직자들, 그러니까 브란덴부르크 주교와 마인츠 대주교에게 면죄부 오남용을 개선해달라고 편지를 보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루터의 가장 가까운 동료인 뢰러(Rörer )의 메모[자기 성경에 루터가 교회문에 논제를 걸었다는 내용의 메모를 한다]에 의해 증거로 제시되기도 하였지만, 여러 학자들에 의해 증거능력이 반박되었다고 한다. 자기 성경에다 써놓은 것일 뿐이므로 증거력을 확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김덕영 지음, 『루터와 종교개혁』, 길, 2017, 46쪽. [본문으로]
  3. 뤼시앵 페브르 지음,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김중현 옮김, 이른비, 2016, 31쪽. ; 김덕영 지음, 『루터와 종교개혁』, 길, 2017, 55쪽. [본문으로]
  4. 뤼시앵 페브르 지음,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김중현 옮김, 이른비, 2016, 32쪽. [본문으로]
  5. 「시편」 강의는 1513~15, 「로마서」강의는 1515~16이다. 종교개혁의 해 1517년 바로 직전이다. [본문으로]
  6. 뤼시앵 페브르 지음,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김중현 옮김, 이른비, 2016, 59쪽. [본문으로]
  7. 김덕영 지음, 『루터와 종교개혁』, 길, 2017, 71쪽. [본문으로]
  8. 라틴어 justificatio, iustisia, 영어 justification, 독일어 Rechtfertigung. 의화(義化)로 번역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9. 뤼시앵 페브르 지음,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김중현 옮김, 이른비, 2016, 78쪽. [본문으로]
  10. 뤼시앵 페브르 지음,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김중현 옮김, 이른비, 2016, 81쪽. [본문으로]
  11. “우리가 한 몸 안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지체가 모두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 않듯이,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로마서 12:4~5),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2:12~13),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베드로의 첫째 서간 2:9) [본문으로]
  12. 마르틴 루터 지음,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황정욱 옮김, 길, 2017, 31쪽. [본문으로]
  13. 마르틴 루터 지음,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황정욱 옮김, 길, 2017, 38쪽. [본문으로]
  14. 미셸 푸코 지음, 『안전, 영토, 인구』, 오르트망 옮김, 난장, 2011, 273쪽. ; Michel Foucault, 『Security, Territory, Population』, translated by Graham Burchell, PICADOR, p. 19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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