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소크라테스 이전, 그 오래된 현대
니체는 그리스인들이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하면서, 그러다 보니 ‘철학자의 유형’을 창조했다고 극찬했다. 우리가 이미지로 떠올리는 철학자는 모조리 그리스인들이 창조했다는 말이다. 오로지 앎을 위해서만 삶을 영위하는 유일한 인간으로서 ‘철학자의 유형’. 제왕처럼 당당한 헤라클레이토스, 우울하게 신비로운 입법자적인 피타고라스....... 영화 포스터의 광고 문구처럼 니체가 묘사한 그리스 철학자들은 어쩐지 장르영화의 주연배우와도 같다. 1
그러나 이들의 글은 대부분 소실되었다. 니체도 이 부분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 독창적인 철인들의 저작의 대부분을 우리들 손아귀에 쥐고 있지 못한 덕분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저들을 과소평가하고 말았다. 니체는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같은 이들의 책이 소실되고, 대신에 다른 이들의 책만 얻게 된 것을 ‘악의에 찬 책들의 운명’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2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런 말을 글로 남겨 놓았을까. 3
그래도 그들의 남겨진 흔적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책이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헤르만 딜스가 편집하고, 나중에 발터 크란츠가 보충 편찬해서 나온 이 책을 통해 잘려나간 철학자들의 문장들을 보다보면, 암흑 속에 던져진 다른 문장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러기를 반복하다보면 그들이 마치 현대 철학자인양 느껴지는 착각마저 생긴다. 어떻게 보면 소실된 문장 덕분에 살아남은 문장들이 더욱 강렬해지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자, 이제 저 편으로 사라져버리고 흔적으로만 남은 철학자들을 보자. 우선 탈레스. 탈레스는 천체연구를 위해서 하늘을 보고 다니다가, 길에 있는 우물에 빠져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으로 치면 ‘천문학 오타쿠’라고 불러야할 이 사람이 우리들에게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오타쿠 탈레스는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고 상상했다. 물이 서로 붙어서 진흙으로 변하고, 그 진흙이 굳어서 땅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씨앗이 축축한 본성을 가지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고 추론한다. 4 우리가 항상 충분히 물을 마셔야 한다는 사실이나, 생물의 씨앗이랄 수 있을 정액이 물기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주 별난 생각은 아닌 것도 같다. 5
물론 그가 참 희한하게 생각한다고 웃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탈레스의 상상을 읽자마자, 지구가 마치 거대한 배와 같아서 물 위로 항해하는 그림을 떠올렸다. 한번쯤은 나도 그렇게 상상했던 장면이어서인지, 오히려 천체물리학의 정교한 설명보다 그의 상상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게다가 탈레스는 그런 우주에 혼(psychē)이 섞여 있다고 하면서 모든 것은 신들로 충만하다고도 말한다. 그러니까, 그에겐 우주 자체가 영적인 구성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6
이런 탈레스가 현대 금융시장에서는 최초의 파생금융상품 거래자로 알려져 있다. 오타쿠 탈레스는 천체연구로부터 다음해에 올리브 풍작이 있을 것을 예측해내고 겨울인데도 돈을 모아 올리브 짜는 기계를 미리 값싸게 모두 임대해 둔다. 드디어 때가 되어 사람들이 올리브 짜는 기계가 필요하게 되자, 비싼 값으로 기계를 임대해 주어 큰돈을 모았다. 지금으로 보자면 일종의 ‘선물거래’였다. 임대 가격의 변동성을 헷지(hedge)하기 위해서 미리 기계를 임대한다는 발상은 현대 금융시장에서는 너무나 흔한 방식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를 전해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평하는 이런 말이다. “철학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들의 진지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7 어떤가? 머리를 써서 돈을 번 탈레스도, 그 이야기를 전하며 철학자의 자존심을 보여준 아리스토텔레스도 참 사랑스럽지 않은가. 8
탈레스가 우주는 물로부터 나왔다고 했던 반면, 아낙시만드로스에 오면 물이나 불과 같은 질료와 달리 우주가 어떤 무정형인 것으로부터 나왔다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무한정한 것”이라고 번역되는 아페이론(apeiron)이다. 그것은 물도 아니고, 원소라고 불리는 것들 중에서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물이나 불과 같은 구체적인 질료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적(theion)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영원하고, 늙지 않으며, 또한 모든 세계를 둘러싼다. 9 사멸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그것으로부터 세계(kosmos)가 생겨난다. 10 그렇다고 아페이론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이 영원히 운동(kinēsis) 중에 있다고 말한다. 이런 운동이 세계를 생산하는 것이다. 11 내식으로 말하자면 아페이론은 ‘운동하는 신’인 셈이다. 12
이 운동하는 신속에서 무언가 대립자들이 떨어져 나오는 데서 우주가 형성된다. 우주가 생성되는 모습을 아낙시만드로스가 묘사한 문장을 보면 무척이나 아름답다. 껍질이 나무를 감싸고 자라는 것처럼 둥근 불꽃이 땅 주위의 공기를 감싸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둥근 불꽃이 부서져서 몇 조각(이른바 ‘산출자’)이 되어 떨어져 나오는데, 그것들이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된다. 그 별들을 ‘불의 바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불의 바퀴는 날숨을 쉬기 위해서 숨구멍인 관 모양의 통을 달고 있는데, 그 통을 통해서야 그 별들이 보인다. 달이 차고 기울게 보이는 것도 달의 통로가 막히거나 열리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또 해는 테두리에 풀무의 주둥이가 있어서 바람처럼 불을 내보인다. 해가 불꽃으로 둘러싸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현대의 어떤 동화보다 아름다운 묘사라고 여겨진다.
아낙시메네스가 생각하는 우주의 기원을 보면 나를 더욱 들뜨게 만든다. 그는 공기를 있는 것들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그냥 공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혼(psychē)과 같다. 혼이 우리를 구성해주고, 바람과 공기가 세계를 감싸고 있다. 그것은 무한하기 때문에 바닥나는 일이 없고, 언제나 운동하는 비-물체(asōma)이다. 공기는 희랍어로 ‘아에르(aēr)’인데, 이 무한정한 아에르로부터 모든 것이 생겨난다. 놀랍게도 신마저 여기서 생겨난다. “생겨나고 있는 것들, 생겨난 것들, 생겨날 것들, 그리고 신들과 신적인 것들이 공기에서 생겨난다.” 13 그러니까, 공기가 신적인 속성을 갖고 있을뿐만 아니라, 아예 신들을 만들어내는 근원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 그 자체를 자연학으로 구성하려는 대담한 시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시도 자체가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이 아포리즘을 읽으면 읽을수록 고대와 현대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느낌이 들 정도다. 14
자연학적인 이야기만 현대적인 것이 아니다. 다소는 엄격한 공동체주의자라고 해야 할 피타고라스. 아무나 그의 공동체에 가담할 수는 없었다. 피타고라스의 공동체가 있었던 크로톤에서 굉장히 큰 부자였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피타고라스의 공동체에 가담하려고 크게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거칠고 강압적이고 요란하며 전제적인 자로 알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피타고라스는 이제 연로하여 공동체의 원로가 되어 있는 상황. 하지만 원칙주의자 피타고라스는 부자인 그가 공동체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 15 피타고라스의 공동체는 공산주의 정신으로 작동되었다. 함께 하려는 사람들의 재산들은 공동의 것이어야 했다. “친구들의 것들은 공동의 것이다(koina ta tōn phiōn)”란 이탈리아의 속담은 여기서 생성되었다. 16 17
물론 피타고라스가 무척이나 난해한 진리들을 소유한 자라는 소문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도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굉장히 아름다운 주장들이 많다. 지혜의 원천이라고 할 델포이의 신탁이 무엇이냐고 스스로 묻고, 그는 그것은 ‘테트락튀스(tetraktys)’라고 답한다. 테트락튀스란 숫자 4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Tetra'에서 유래한다. 만물을 포괄하는 통일의 수로서 정수 1, 2, 3, 4를 말한다. 파타고라스는 이것을 세이렌들이 이루어내는 ‘조화(harmonia)’와 연결시켰다. 우주 최고의 것이란 바로 이 조화를 말한다. 즉, 피타고라스에게 조화란 우주의 조화이다. 그가 테트락튀스와 화음을 연결한 것을 보면, 우주는 숫적인 비율로 구성된 화음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면 피타고라스가 편집광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묘파한 우주의 모습들을 보면 의외로 정답다.
“바다는 크로노스의 눈물이고, 곰자리는 레아의 손이며, 폴에이아데스는 무사들의 뤼라이고, 행성들은 페르세포네의 개들이며, 청동이 두들겨질 때 거기서 나는 소리는 청동 속에 갇힌, 어느 영령의 소리이다”(포르퓌리오스 DK58C2) 18
어쩌면 우리는 피타고라스가 플라톤 이데아론의 주범으로 계열화시킴으로써, 파타고라스의 정다운 주장들을 모조리 땅 속에 파묻어 버린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사람의 생각이 그리 단순하지 않은데 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로 들어가면 더욱 흥미로운 문장들이 튀어 나온다. ‘만물은 흐른다(panta rhei)’라고 주장했다던 헤라클레이토스는 피타고라스를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모든 것이 변하는데, 항구적인 원리라는 게 무엇하러 필요하냐는 퉁명스런 반응일 것이다. 사실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소는 독특한 철학자였나 보다. 그러다보니 후대의 기독교 교부 철학자들의 저작에서 이교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거꾸로 기독교가 로마로 들어오기 전 철학자들인 스토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계승한 선배철학자로 존경을 보낸다. 그러나 후대 철학자들이 헤라클레이토스를 위치시키는 방식을 기준으로만 헤라클레이토스를 읽으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참맛을 모르게 된다. 21
그는 “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고 선언하였다. 평소 본성(physis)은 스스로를 감춘다고 22 생각했던 그이고 보면 자기 자신을 탐구했다고 하는 말이 그리 낯설게 보이진 않는다. 또 이런 이야기도 한다.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이다(hen panta einai)’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 23 앞서 서술한 문장과 연결하여 보면, 나 자신은 만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탐구한다는 뜻은 현상적인 나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진리의 말인 로고스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로고스가 나인 것이다. 24
나 자신과 로고스의 일치를 강조한 이 현자는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현상적인 나’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장자(莊子)와 같은 어법들을 구사한다.
“바닷물은 가장 깨끗하고 또한 가장 더럽다. 물고기들에게는 마실 수 있고, 삶을 보존해 주는 것이지만, 인간들에게는 마실 수 없고 삶을 앗아가는 것이다”(히폴뤼토스 DK22B61) 25
이런 주장 끝에 급기야 “가장 아름다운 세계질서(kosmos)는 아무렇게나 쌓인 쓰레기 더미이다”라고까지 말한다. 이보다 급진적인 철학이 어느 시대에 있었단 말인가. 그는 고대에 부활한(?) 니체이다. 이런 그가 인생을 장기에 비유하고, 왕국을 아이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 29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30
이런 철학자들 중에서 우리는 귀한 현자를 또 하나 만난다. 고르기아스의 스승, 엠페도클레스. 니체가 비극의 시대라고 불렀던 그리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던 현자.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시대의 사람. 엠페도클레스가 특유의 존재론자,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의 추종자라고 해서 이데아론자로 편견을 가지면 큰 코 다친다. 그는 사유를 운문으로 풀어 쓴 시인이자 자연학자였다. 질 들뢰즈가 전유하여 사용한 “만물의 네 뿌리들(tessara rhizomata)”에 대해 앞서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이 뿌리의 혼합과 분리를 통해 생성되고 소멸된다. 그러므로 어쩌면 출생과 죽음은 존재하지도 않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혼합(mixis)과 혼합된 것들의 분리(diallaxis)만이 있으며 출생이란 이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갖다 붙인 이름일 뿐이다. 31 이것으로부터 매우 현대적인 주장들이 탄생한다. 32
“도대체 변화란 어떤 것인가? 변화란 벽돌들이나 돌들로 벽을 쌓는 것과 같은 결합(synthesis)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혼합(to meigma)은 항시 보존되는 원소들로부터 원소들의 작은 조각들이 서로 나란히 놓여서 형성된다. 이런 식으로 살도 생겨나고 다른 각각의 것들도 생겨난다.”(아리스토텔레스 DK31A43) 33
마치 세상 사물들이 계열화되어 새로운 것이 생성된다고 말하는 현대 철학자들의 음성을 이 짧은 아포리즘을 통해 다시 듣는 느낌이다. 이런 계열화는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면서 결코 멈추지 않는다. 엠페도클레스에 와서 우주는 어느 하나로부터 탄생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계열화를 통해 뿌리와 뿌리들이 혼합되고 분리되는 과정 그 자체로 되어 버린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마치 언덕 위의 핀 들꽃들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피어있다. 그들의 흔적은 흔히 알고 있듯이 진부한 고대가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현대적이며, 기운이 넘치며,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다. 어쩌면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을 더욱 강한 집중력으로 끌어당기고 있는지 모른다. 데모크리토스는 혼이 원자들의 덩어리라고 말한다. 그 덩어리가 안정된 상태에 있는 것이 혼의 평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연학과 윤리학을 이렇게 연결해내는 이야기꾼들이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곳이 바로 이 ‘선집’이다. 니체가 ‘편파적인 자들(Einseitigen)’이면서 ‘창시자들(Eifinder)’이라고 불렀던 ‘오래된 현대’가 바로 여기에 숨겨져 있다.
글_약선생(a.k.a 강민혁)
- 니체 지음,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김기선 옮김, 책세상, 2003, 232쪽. [본문으로]
- 사실 데모크리토스는 당대에는 우리가 플라톤을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최대의 철학자로 여겨졌다. [본문으로]
- 니체 지음,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김기선 옮김, 책세상, 2003, 235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21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26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29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22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122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39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36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35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37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51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54쪽. [본문으로]
-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경에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거기서 살명서 이집트를 여행하기도 하지만, 기원전 530년경에 폴뤼크라테스의 폭정 때문에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크로톤으로 이주하였다. 거기서 많은 사람을 이른바 ‘파타고라스적 삶의 방식’으로 인도하여 공동체를 만들고 종교적, 도덕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갖는다.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69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68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90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91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191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26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35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35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36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39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39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40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42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40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249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349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351쪽. [본문으로]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7인 옮김, 아카넷, 2005, 354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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