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서의 몸
“사람의 몸은 부모를 근원으로 하고 천지를 시작으로 한다.”
─가이바라 에키켄, 『양생훈』
앞서 살펴본 신체관의 변화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켜야 할 몸’의 탄생이었다. 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무언가 외부의 영향을 막아내고, 내부를 지켜야 한다는 발상! 그러나 앞서 보았던 ‘해체신서적’ 사유가 곧바로 일본에 뿌리 내렸으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양생훈』은 전통적 사상이 아직 강하게 규정되는 예를 보여준다. 동양에서 전통적인 신체관은 『황제내경』에서부터 근대 서구적 신체관이 들어오기 전까지 줄곧 그 자리를 유지해왔다.
에도시대 초기의 철학자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이 쓴 『양생훈』 역시 마찬가지다. 주자학자이자 본초학자였던 그의 저술들은 일반 대중들도 알기 쉽게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저작들은 근대 수신서에서도 많이 인용될 만큼 300여년을 거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몸은 부모를 근원으로 하고 천지를 시작으로 한다. 천지와 부모의 은혜를 받아 태어났고 또 길러진 몸이니 자신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천지로부터 받은 것, 부모가 남겨준 몸이므로 삼가 잘 기르고 상처 입지 않도록 하여 천수를 길게 유지해야 한다.”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양생훈(養生訓)』, 24쪽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이 쓴 『양생훈』
에키켄은 책의 시작부터 사람의 몸은 자신만의 소유가 아니라 부모를 근원으로 하고 천지를 시작으로 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언뜻 당연한 수사어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신체에 대한 전통적 관념과 근대적 관념의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단지 내 몸이 부모로부터, 천지로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사유는 존재론적으로는 전혀 다른 기반 위에 서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전통적 사유 속에서 신체는 개별적 소유가 아니다. 개인이라는 말이 근대적인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몸이라는 사유 역시 전통적인 사유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황제내경』에서 사람은 하늘의 정기와 땅의 형기가 교합해 생겨남을, 이 천지음양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사유의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러한 신체관은 유학적 세계관에 기반한 것이었다. 가이바라 역시 이를 『서경』과 『주역』을 가지고 와서 설명한다. 즉 『서경』에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며 사람은 만물의 령이라는 말이나, 『주역』에 천지의 큰 덕을 일으키는 생생불식(生生不息)은 사람의 몸이 만물과 일체하는 개념임을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몸은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독립’한 것이 아니라, 천지의 기를 받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만물과 일체라는 관념을 강조하는 것이라기보다 존재론적으로 사람의 몸은 천지인의 구도 속에서 통합된다. 개인적 소유물로서의 신체라는 근대적 개념이 신체의 자율성을 근거로 자기결정론을 바탕으로 한다면 이와는 정반대에 위치하는 논리였다.
몸을 지킨다는 것
따라서 이를 지키는 방법 역시 근대적 발상과 다를 수밖에 없다.
“양생(養生)의 기술로는 우선 내 몸을 해치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 몸을 해치는 것이란 내욕(内慾)과 외사(外邪)다. 내욕이란 식욕, 색욕, 수면욕, 수다욕, 그리고 희(喜), 노(怒), 우(憂), 사(思), 비(悲), 공(恐), 경(驚)이라는 칠정(七情)의 욕심을 말한다. 외사란 하늘의 네 가지 기, 즉 풍(風), 한(寒), 서(署), 습(濕)을 말한다. 내욕은 억제하여 적게 하고, 외사는 두렵게 여겨 막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원기를 잃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으며 천수를 유지할 것이다.”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양생훈(養生訓)』, 24∼25쪽
전통의 논리에서 양생을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즉 ‘내욕(内慾)’과 ‘외사(外邪)’를 경계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양생훈』에서 외부의 삿된 기운을 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근대적 방역(防疫) 논리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적에게 이기려면 상대를 두려워하고 한 발 앞서 막아내야 하는데, 이를 성을 굳게 지키는 마음에 비유한다. 즉 풍한서습(風寒暑濕)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에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다. 바깥의 나쁜 대상, 그것이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세균이 되었건 전통의학에서 말하는 사기(邪氣)가 되었건 그것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논의는 전통과 근대 의학을 불문하고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논리가 전적으로 같다고 볼 수만은 없다.
“양생도의 근본은 내욕(內慾)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 근본에 힘쓴다면 원기가 강해져 외사(外邪)의 침입도 받지 않는다. 내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원기가 약해지면 외사에 침입받기 쉬워져 질병에 걸려 천수를 유지할 수 없다. … 이것들이 모두 내욕을 억제하여 원기를 배양하는 길[道]이다. 또한 풍(風)·한(寒)·서(暑)·습(湿)이라는 외사를 막아 침입받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내부와 외부의 여러 가지를 조심하는 것은 양생의 중요한 항목이다. 이는 능히 삼가 지켜야 한다.”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양생훈(養生訓)』, 32∼33쪽
내욕을 확실히 억제한다면 원기가 강해져 외부의 사기의 침입을 받지 않는다. 즉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역으로 내부의 충실함이 강조되고 있다. 이 근본을 확실하게 이행한다면 원기가 강해져 외사의 침범도 받지 않는다. 반면 내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원기가 약해지면 질병에 걸려 천수를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원기를 배양하는 것이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풍·한·서·습이라는 사기를 막아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외사에 의해 질병에 걸려 죽는 것은 천명이며 성인도 현자도 피할 수 없지만 내부의 기를 충실히 유지하며 능히 삼가고 예방한다면 외사의 침입도 줄일 수 있다. 『황제내경』에서 “사기만으로는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없다. 반드시 허사의 바람이 몸의 허한 곳을 만나야만 바람은 몸속으로 침입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활기가 넘쳐흐르는 몸에는 사기가 들어올 틈이 없다.
이처럼 외사를 막는 것에 우선은 내부의 기를 충실히 유지하는 것이다. 동일하게 방벽을 제대로 쳐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지만 안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다. 즉 전통적 신체 관념 속에서 안[內]과 밖[外]은 분리되지 않으며 지켜야 할 내부라는 관념 역시 외부와 분리되어 지켜내야 할 개체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체관의 차이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 시기 두 의학의 차이를 논한 다카노 초에이(高野長英)의 「한양내경설(漢洋內景說)」이라는 글이다. 나가사키에서 시볼트에게 의학을 배운 초에이는 제언에서 학술기예의 정교함과 탁월함이 서양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며, 이는 그들이 솔직함과 간명함을 귀하게 여겨 입으로만 말하지 않고 실제로 실험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러한 서양의 학문상의 특징은 천문, 지리, 측량, 역법 등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경쟁하게 함으로써 정미한 것을 발명케 한다는 데 있다.
의학의 발달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의술에서 가장 긴요한 것으로 해부를 꼽는데, 이는 의술이 인명에 관해 중대한 임무를 맡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해부란 전신(全身)의 안과 밖의 기관들의 이치를 깨닫는 것인데, 이를 통해 건강이 해석된다. 초에이는 병의 원인은 신체 내부의 기관들의 이상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따라서 신체를 바깥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확실하게 내부를 보아 ‘리를 숙고’하려면 해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주목할 점은 초에이에게 신체의 내외의 ‘지배-피지배’관계가 명확히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내부는 외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위에 서있다. 즉 신체 내부에서 일어난 ‘원인’과 신체표면에 나타난 ‘증상’ 사이에 직접적인 대응관계를 인정하고, 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를 해부로 둔 그는 신체를 내부가 외측을 지배하고 있는 ‘기계’로 비유한다. 예컨대 자명종을 분해하여 그 안의 기관을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정확하게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다는 사유다.
“흡사 자명종이 한밤에도 스스로 선동해 쉬지 않고 시각의 도를 맞추는 것은 밖에서 볼 때는 기이한 생각을 일으켜 괴상하고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측정하는 것이 어렵다 해도 하루라도 그 안의 기기(機器)를 검열해 그 이치를 숙고하면 용이하게 시계가 독자적으로 울어 분호(分毫)도 그릇되지 않는 까닭을 쉽게 알 수 있어 무엇도 불가사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해부의 과는 분기를 배우는 기초이며 치료술[療術]을 시행하는 모루[鑕的]인데, 이는 서양의 의사가 말하는 바와 같이 옛날부터 모두 이를 표준으로 해서 우선 내경을 밝히는 일을 힘쓴 이후에 병인을 강구하고 생사를 구별하고 진찰을 정하고 치법을 세워 방제를 처방함으로써 그 논의가 하나의 망단 없이 실로 실효가 있고 우주 간 정교함이 나오는 이유이다.”
─다카노 조에이(高野長英), 「한양내경설(漢洋內景說)」, 『崋山・長英論集』, p. 154쪽
이때 기계의 특징은 모든 활동이 미리 결정된 움직임의 반복이라는 점에 있다. 기계는 각 부품이 각각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전체의 활동을 실현한다. 전체가 변화 넘치는 활동을 한다 해도 내부의 각 부품은 항상 정해진 역할을 반복할 뿐이다. 즉 기계의 모든 활동은 사전에 그렇다는 것이 결정되어 있다. 그 때문에 기계에는 우연적이거나 신비적인 활동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이제 신체의 활동은 이러한 기계의 구조에서 이해된다.
초에이는 「한양내경설」에서 당시의 사람들의 몸에 대한 미신 같은 오해를 풀고자했다. 이때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이 생리학이다. 그에게 생리학이란 신체를 기계로 간주해 내부의 ‘구조’와 ‘짜임새’를 밝히는 학문이었다. 초에이는 심장, 혈액순환, 신경기능 등의 움직임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외부의 신비적 힘에 의해 좌우된다는 몸의 관념을 내부의 기관들의 작동에 의해 지배되는 신체 관념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가령 맥(脈)의 경우 한방의학에서는 이를 단순히 바깥으로부터 느껴질 수 있는 것만으로 한정해 동맥의 원인과 작동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발저림 역시 한방에서는 혈액이 없어서 발이 저린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한방의학자가 신경의 존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픔의 원인을 장부의 경락 탓으로 돌린 것이라 비판한다.
이러한 논리는 그가 심장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한양내경설」 본편은 심장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데 이 역시 서양 의학서의 편제를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의서들이 우주론을 시작으로 몸으로 들어간다면, 초에이는 바로 몸의 내부로, 그것도 심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때 심장은 전통적인 오장육부 중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해부학에서의 심장으로 다루어진다. 그는 전통의학에서 심과 혈, 맥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우연히 사실에 어긋나지 않은 것일 뿐, 필경 영혈(營血)이 순환하는 작용을 상세히 알지 못해 얼버무리는 바가 많다고 말한다. 하물며 ‘심이란 군주의 기관으로 신명(神明)이 이곳에서 나온다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고 비판한다. 이는 『황제내경』 등에서 전통적인 심을 군주의 기관에 비유하는 것을 직접 반박하고, 심장을 순환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전통적 신체유비가 부정되는 것은 물론 더 이상 심장이 다른 장부와 연결 속에서 사유되지 않으며 가시적인 해부학적 사실만이 중요시된다.
오장육부 중의 하나로서의 심장 vs 해부학으로서의 심장
결국 이 시기 새로운 신체에 대한 상은 내부와 외부의 분리에 기반한다. 그 동안 몸은 존재론과 인식론, 가치론으로 구성된 종합적 지식 체계였다. 심이 몸에서 군주를 담당하며 온 몸을 주관하는 기관이라는 사유와 심장을 혈액을 퍼나르는 펌프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유의 차이는 단순히 그 역할 상에서의 차이만은 아니다. 우주론을 포함하여 도덕론, 인성론, 정치론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지식 체계였던 몸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논리 속에서 개체적인 것이 탄생한다.
이에 대해 부르통이 서구 사회에서 몸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기반은 해부생리학, 즉 생의학적 지식이라고 평가한 것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을 근거로 서구적으로 독특한 인간 개념이 성립하게 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소유의 형태로서 ‘내 몸’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근세기에 이르러 해부생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담론들이 몸에 관련된 지식으로 급격하게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정치철학적으로 보면 개인주의의 또 다른 단계로서 자아(ego)에 대한 성찰적 태도가 강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몸에 대한 근대적 개념이 개인주의 구조의 영향인 동시에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망을 통해 사람을 전체와 우주에 조화시키던 중세적인 세계관의 연대의식이 깨어져 버린 결과였다. 전통적인 몸이 시공간으로 연장되어 있는 우주론적 몸이라면 이제 개별 신체 안으로 쪼그라든 몸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글_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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