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중국이 부르주아 경제를 다루다 원톄쥔 『백년의 급진』

중국이 부르주아 경제를 다루다

원톄쥔 『백년의 급진』



무슨 일을 할 때면 언제나 시작부터 모순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언가 새로운 공부를 하려면, 새로운 공부보다 더 많은 기초공부가 먼저 필요하다. 이를테면 미적분학을 공부하려면 방정식, 기하학 등 일반 수학에 능통해야 한다. 그것을 공부하다 미적분학은 구경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려면, 돈을 들여 집을 구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기초공부도, 집을 구할 자본도 없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지연되고, 다시 고민에 빠진다. 


경제개발이라는 사태에 직면한 개발도상국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개발도상국들은 서구국가들의 강력한 군사력과 만나고, 여지없이 그들의 힘에 매혹된다. 그리고 그 힘의 배후에 언제나 틀림없이 공업화의 성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모델로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는 순간 바로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그것은 ‘자본의 극단적인 결핍’이라는 것이다. 돈이 있어야 외국에서 재료를 수입해서 물건을 만들어 팔 것 아닌가. 




이런 결핍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수를 써야 하는데, 대개는 외국에서 자본을 빌려야 했다. 바로 외채다. 외채를 도입해 공업 생산품을 만들어 수출하고 무역에서 남긴 이익으로 외채를 상환한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성공적으로 이 과정을 이룬 나라는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도 외채를 들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자본 도입국이 그랬듯이, 투자국이 정해놓은 틀에 따라 자국의 정치체제를 수립했다. 소련의 자본을 도입하였던 중국은 1950년 이후 상부구조와 이데올로기 수립 과정에서 ‘전반적 소련화’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를테면 경제부문에 소련의 요구에 따라 8대 공업부와 5대 경제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정부 관리방식도 소련식으로 도입되어, 고급 간부들은 이를 학습해야 했다. 그런데 돌연 정치적인 문제로 1957년 소련이 중국에 대한 투자를 중단한다. 


이렇게 되자 소련화된 정부조직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역시 분명한 것은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사실이므로 소련의 투자라는 경제적 토대가 사라진 이상 소련식 상부구조는 지속되기 어려웠다. 


더욱이 세계는 바야흐로 완전히 다른 경제체제를 예비하고 있었다. 1971년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간신히 유지되던 금본위체제를 폐기하였다. 이로써 세계는 화폐를 통해 무한 팽창시키는 장으로 진입한다. 이른바 금융 중심의 글로벌 자본화 시대이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은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을까? 원톄쥔(溫鐵軍)의 『백년의 급진』은 이 고민을 지금까지와 다른 시선을 가지고 파악한 책이다. 서구의 발전에는 발전의 전제 조건이자 ‘경로 의존성’인 ‘식민화’라는 특징이 있는데, 개발도상국은 그런 경우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어떤 개발도상국도 서구 선진국처럼 식민지를 건설하여 자본을 발전시킨 경우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이 가르쳐준 이론에만 의존하여 발전을 추구하게 되고, 언제나 뒤늦게야 그 함정을 깨닫는다. 원톄쥔은 중국이 어떻게 이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되었는지를 자기 나름의 시각을 갖고 파헤쳤다.


먼저 중국은 광대한 농촌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 농촌에는 향촌사회가 존재하고 있다. 이 향촌사회는 장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집단문화인데, 이 문화는 시장경제의 심각한 외부성(externality) 문제를 내부화(internalization)해서 처리할 수 있게 하였다. 사실 수천 년 이어진 농가경제는 ‘대가를 따지지 않는 노동력을 자본에 대신해서 투입’할 수 있는 매커니즘이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극도의 자본 부족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원톄쥔의 시각이다. 




서구가 식민지를 통해서 자본을 축적해 나갈 기반을 마련했다면, 중국은 이와 달리 내향형의 자본 축적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도 자본의 원시적 축적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로 이루어졌지만, 중국에서는 특이하게도 극도로 결핍된 자본의 자리에 노동이 대체하는 특수한 모델로 창조되었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기초자본 건설에 투입된 대규모의 노동력을 농촌으로부터 거의 무상으로 집중 투입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대중에 대한 설득의 논리를 제공하여 효과적으로 일반대중을 동원하게 한 것이 그런 ‘혁명 이데올로기’이다.[각주:1] 이건 아주 묘한 논리이다. 자본의 시초축적을 위해서 혁명 이데올로기가 사용되어졌다는 말이다. 


공장이나 기계나 원료를 자본으로 만들려면 노동력을 자본에게 팔아주는 무산대중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있고, 땅이 있어도 공산품을 만들어줄 노동력을 만나지 못하면 그것들을 자본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는 임금노동자가 충분하지 않으면,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고 착취하여 이윤을 얻는 자본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자본가가 이 이윤을 모아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으로 표현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축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경우도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제 값을 주고 그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애초에 자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말대로 자본주의적 축적을 최초로 가능하게 했던 역사적 조건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축적에 선행하는 시초축적(primitive accumulation),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출발점인 축적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각주:2]


그런데 마르크스의 분석이 중요한 것은 이 시초축적의 순간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이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들은 이런 은폐된 순간들을 국민들에 대한 폭력적 수탈 혹은 식민지 지배를 통한 수탈 역사를 통해 구성하여 왔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순간을 획득할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당연히 중국은 다른 방향을 추구해야 했다. 바로 내부에서 축적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사실 혁명전쟁에서 농민을 정치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하도록 함)’의 선포 덕분이었다. 혁명전쟁은 토지전쟁인 셈이었다. 경자유전은 중국공산당이 농민을 동원하는 핵심 정책이었다.




농민들이 항상 바라는 것은 안심입명할 수 있는 소자산계급의 지위였다. 결국 중국이 세 차례의 토지혁명전쟁과 반세기의 노력을 거쳐 세운 것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농민이 주력이 되고 경자유전을 목표로 삼아 벌인 혁명전쟁을 통해 건설한 것은 세계 최대의 소자산 계급 국가였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이런 토대가 외부의 경제 공격를 막아낼 수 있는 터전이 된다. 즉 농민들이 노동력을 무상 투입할 수 있는 기반이자, 국가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기초였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물론 원톄쥔은 이 부분을 결론으로 주장하고 있다. 농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공업화에 성공하였다는 점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눈길을 끄는 장면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중국이 글로벌화한 금융자본에 당하지 않게 된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원테쥔이 보기에 구소련의 붕괴는 오늘날 오해하듯이 이데올로기의 붕괴가 아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실물경제 단계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경제를 금융화(화폐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구소련은 당시 동유럽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물물교환 무역의 전체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어서 부등가교환을 통해 가장 좋은 위치에서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동유럽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운영하였다. 그래서 굳이 금융화(화폐화)를 통해 글로벌 경제에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 원톄쥔이 보기에 그들은 외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여 그 안에서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세계 경제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점점 금융자본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쪽으로 발전하여 갔다. 예를 들면 미국은 1973~1985년 금융부문의 이윤이 국내 기업 이윤의 16퍼센트를 넘은 적이 없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21~30퍼센트 사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 역사상 최고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특히 이들은 미국 밖이나 산하의 금융자산을 운영하여 이윤을 획득한다. 일국적 수준에서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이윤을 획득하여 축적한다. 즉 글로벌 차원에서 산업이 재배치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나홀로 산업자본에만 머물러 경제를 운영하면, 외부의 은밀한 공격을 견뎌내지 못한다. 개발도상국들이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긴 하지만, 다시 그 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선진국의 채권이나 금융상품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다음 투자기까지 외화자금 규모를 인플레나 이자율 상승에 견디며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투자은행들은 이 투자를 통해 수입을 챙기고 거꾸로 M&A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전략적 산업들을 사들이거나, 통화전쟁을 통해 부를 도로 빼앗아 온다. 결국 개발도상국은 애써 번 돈들을 선진국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전략적 통제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국이 소련과 달리 금융화(화폐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중국은 소련처럼 안주하지 않고, 화폐화를 통해서 글로벌 경제상황에 적극 대응한 것이었다. 중국은 자신들이 금융자본에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별 수 없이 통화문제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다. 이로부터 기묘한 것은 이들이 공산주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외부의 적들과 싸워야만 하는데, 그것은 직접 자신들이 자본주의를, 특히 글로벌 금융을 직접 능숙하게 다루어야만 했다는 점이다. 


결국 윈톄쥔은 중국 경제가 발전해온 경로가 두 가지를 통해서 가능했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서구 선진국들이 자국 노동자나 식민지 노동자에게서 시초축적을 획득한 것을, 중국은 향촌사회를 통해 무상으로 노동력을 공급받아 축적을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심지어 외부충격을 향촌사회로 흡수시키면서 견뎌왔다. 그리고 그런 쿠션을 기반으로 외부의 글로벌 금융에 직접 뛰어들어 싸웠다. 이 부분이 구소련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은 경제현상이 근거하고 있는 뒷면의 역사를 철저히 배제한다. 그 이유는 역사 자체와 그것의 분석이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경제 뒷면의 역사는 두 가지일 텐데, 경험의 역사 축에서 이루어지는 시초축적의 역사와 이론의 역사 축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착취의 역사다. 이 모두 착취를 보여주기 때문에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으므로, 부르주아 경제학은 착취를 은폐하고 경제의 기계적 현상을 표면화하여 보여주기만 한다.




그러나 현대 부르주아경제학이 현재의 경제적 현상에 대해 항상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묘한 위치에 서서 현상을 오히려 과학적으로 규명해주는데(그 요체를 획득하려면 우리도 아주 묘한 위치에 서서 그것들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서사적으로 역사를 반복하면서 현상분석은 삼천포로 빠지는 이른바 소비에트식 정치경제학(이들은 외부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보다 훨씬 정확한 정보와 시각을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분석은 수용자들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포섭시키는 역할을 하면서도, 부르주아에게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하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을 공부하고, 부르주아 경제정책을 경험하는 것은 부르주아의 의지를 이해하고, 그와 싸우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경제학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공부가 그렇다. 언제나 항상 내가 지향하는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지식, 심지어 적대적인 관계에 서있는 지식조차 공부하고, 그 작동 방식을 경험하여 그 이데올로기의 현실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공동체가 외부와 관계를 맺고 싸우기 위해서 언제나 필수적인 과정이다. 어떤 공동체가 자신을 잘 유지하고 성장해 나가려면 내부와 외부를 모두 잘 다루어야 한다. 내부에서는 수많은 갈등들이 벌어진다. 아마 오랫동안 오이코노미아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프레임이 발전하여 왔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 갈등만 해결한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문제는 그것보다 더 크리티컬하다. 아무리 안정된 내부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움직임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한순간 위기에 몰린다. 아마 이 의미에서 중국이 외부지식(부르주아 경제학)을 다루는 방식은 정말이지 배워야할 새로운 영역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글_약선생(a.k.a 강민혁)

  1. 원톄쥔 지음, 『백년의 급진』, 김진공 옮김, 돌베개, 2013, 53쪽. [본문으로]
  2. 마르크스 지음, 『자본론』 Ⅰ-하,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89, 897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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