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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약선생의 도서관

『손자병법』 - 마음을 움직이는 자

by 북드라망 2017. 5. 16.

『손자병법』 - 마음을 움직이는 자



영화 《매트릭스》에서 토마스 앤더슨이 빨간 약을 삼키고 난 후, 물컹물컹해진 거울에 이끌려 그것에 손을 댄다. 그러자 거울이 액체로 변해서 그의 팔을 타고 흘러 올라온다. 아마 앤더슨이 보던 것들이 보던 그대로가 아니라는 뜻일 게다. 이내 그 다음 장면에서 앤더슨은 “토끼 구멍”으로 쑥 빠져 들어가는데, 바로 그 순간 앤더슨은 유선형 용기 안에 담겨 있는 자신의 진실과 대면한다. 알몸인 채로 환상에서 깬 것이다. 그는 현실이 우리가 아는 그 현실이 아니고, 컴퓨터가 만들어낸 꿈의 세계라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영화는 묘하다. ‘진실’을 찾았고, 더 이상 새로운 진실을 찾아 나서야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앤더슨 일행은 끊임없이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와 싸운다. 이 내러티브는 불교의 보살론(보디사트바, Bodihissattva)을 상기시킨다. 앤더슨은 깨달았으므로 속세(매트릭스)에서 벗어났지만, 해탈의 문을 열어 그 속세를 빠져 나가지는 않는다. 앤더슨 일행에게 매트릭스 안은 진정 현실이 아니지만, 인간들을 가두어 지배하는 장이기 때문에 여전히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야만 매트릭스와 싸울 수 있었으며, 그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들의 해방구는 여전히 매트릭스 안에서 찾아야만 했다.


그러했기 때문에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가상현실에서 싸우는 기술을 가르쳐준다. 영화에서는 가상현실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현실이 아니지만 여전히 현실인 이곳, 그러니까 환상 속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다는 설정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처음 대련에서 네오는 모피어스에게 당하기만 한다. 모피어스가 말한다. “자네의 약점은 기술이 아니야.” 네오가 지는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다. 그 다음 말이 더욱 인상적이다. “내가 빠르거나 힘이 센 게 내 근육 탓일까? 여기서? 네가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대련 장면에만 몰입했던 우리 관객들은 불현듯 그들이 우리가 사는 ‘여기’에서 숨 쉬는 것이 아니란 점을 깨닫는다. 네오가 싸움에 번번이 지는 이유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마치 우리들이 현실의 국면마다 마음이 무너져서 세상살이가 헝클어지는 것처럼. 


그러나 ‘마음’을 이야기한다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싸움은 마음이라는 ‘말’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옛날 조(趙)나라에 조사(趙奢)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적국인 진(秦)나라에서는 그를 매우 두려워했다. 그런 조사에게 조괄(趙括)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조괄은 어려서부터 병서(兵書)를 읽고 군사를 논했는데, 세상에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고 여겼다. 아버지 조사도 말로는 아들 조괄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조사는 전쟁은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데 아들이 분별없이 전쟁을 가벼이 보는 것을 걱정했다. 사실 조괄은 병서를 읽고 머리로만 전쟁을 그릴 줄 알았지, 실제 전쟁을 수행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조사가 죽자 진나라에서 조나라에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조괄이 아버지를 이어 장군이 되는 것을 진나라가 제일 두려워한다는 내용이었다. 전형적인 ‘가짜뉴스’였다. 여기에 넘어간 조나라 왕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괄을 장군으로 삼고 만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조괄은 장평에서 진나라에 대패해 40만 병사가 구덩이에 생매장당하고, 단지 어린아이 240명만 돌려보내는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 이게 그 유명한 장평대전(長平大戰)의 전모이다(『사기』, 「백기왕전열전」).[각주:1]

 


조괄은 병서를 읽을 줄만 알았지 병사를 거느리고 직접 싸운 경험이 없어서 사람을 마음대로 쓰고, 규정도 마음대로 고쳤다. 결국 현장의 여러 가지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싸움에 대패하고 만 것이다. ‘종이 위에서 전쟁을 논한다’[紙上談兵]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들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네오가 들어가 싸우는 매트릭스의 현실처럼, 진짜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해 있다. 그러나 그런 가짜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다치고, 죽는 일은 진짜로 다치고 죽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현실이 아니면서도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그런 환상들과 싸우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 싸움에서 지는 것은 진짜로 지는 것이니까. 좀 서둘러 말해본다면 우리들의 현실은 마음의 위험한 현장이다.


내가 보기에 『손자병법(孫子兵法)』은 마음의 훈련서이자, 현장의 스토리이다. 나는 오래도록 『손자병법』을 자기계발이나 경영서에 인용되는 처세술적인 책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리링(李零) 선생이 설명해준 『손자병법』을 읽고, 마음의 현장을 더욱 리얼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것은 중국 현대 철학자인 리쩌허우(李澤厚)도 같은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중국의 고대 병가들은 단순히 ‘경험적 귀납’이기만 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관념의 연역’도 아니었다.[각주:2] 그것은 마음과 현장이 결합된 사유였다. 


리링은 그것을 손자의 ‘형세’라는 개념으로 강렬하게 드러내 준다. 춘추전국시대의 백과사전인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도 제자백가들의 사유를 비교하면서 손자가 이것을 중히 여겼다고 소개했다.[각주:3] 『손자병법』에서 형세부문은 「형」, 「세」, 「허실」 세 편이다. 이 세 편은 모두 병력의 배치에 대해 설명하는 챕터들이다. 리링은 형세를 ‘병력의 배합 방법’이라면서, 영어로 ‘레시피(recipe)’라고 소개하고 있다. 레시피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요리법, 처방전, 비결을 의미한다. 요리를 만들려면 식재료간의 배합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만든다고 할 때, 그것은 주어진 어떤 것들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것을 말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병서에서는 의약 처방으로 병법을 비유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 주제는 대단히 흥미롭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병을 적으로 상정하고, 약을 아군으로 비유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동아시아와 서구의학의 중대한 차이가 드러난다. 아마도 병법의 차이가 의학의 차이로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동아시아는 싸우지 않고서도 이겨야 진짜 이기는 것이라는 병가(兵家)의 오랜 관점이 의학 처방에도 스며들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의사는 사람을 구하고, 병사는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서로가 서로를 비유한다고 하니, 왠지 기묘한 느낌인 건 사실이다.


리허쩌우(李澤厚)



이 배합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형(形)’과 ‘세(勢)’이다. 리링의 절묘한 설명에 따르면 ‘형’은 미리 조제해 놓고 약국에 진열해 놓은 약들이고, ‘세’는 의사가 병의 증세와 기운의 허실에 따라 그때그때 내리는 처방들이다. 조금 더 정리해보면, ‘형’은 사전에 축적되어진 가시적인 것들이고 ‘세’는 아직은 가시적이지 않지만 상황에 따라 조성되는 것이다. 이런 정의부터가 동아시아 전쟁술이 가시적인 것들만을 가지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대변해준다. 전쟁의 현장은 이미 가시적인 것들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형은 가시적으로 축적되어진 것이므로 병법에서 보자면 우리가 보통 ‘실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형’을 가리킨다. 그러나 실력만 갖고는 적을 이길 수 없다. 실전에 들어가면 전장의 기상조건이나 지형이 굉장히 난해할 수 있고, 상대인 적도 예상치 못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변화를 주며 적에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변화가 ‘세’다. 결국 승리는 이 두 가지를 잘 합쳐야 성취할 수 있다. 손자는 이렇게 말한다. “적이 나를 이길 수 없게 하는 조건은 나에게 있고,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은 적에게 있다(不可勝在己 可勝在敵)”(「형」 【4-1】)[각주:4] 실력은 내가 어찌어찌하여 쌓는 것이지만, 현장의 상황은 적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승리는 나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적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승리의 길은 나와 적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축적해 놓은 실력과 적들의 움직임들을 어떻게 연결하여 배치시키느냐에 따라서 승리는 좌우된다. 

그렇다면 승리의 논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평소에 ‘형’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서 극대화시켜놓고, 실전의 상황에 맞추어 순간적으로 그 ‘형’을 제대로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전자가 ‘형’이고 후자가 ‘세’다. 물에 비유하자면 물을 저장하는 것이 ‘형’이고, 적절한 때에 물을 방류하는 것이 ‘세’이다. 리링은 ‘형’의 영어표현을 ‘포텐셜 에너지’(potential energy, 위치 에너지)로, ‘세’를 ‘릴리즈드 에너지’(released energy, 방출 에너지)로 제안한다.[각주:5]

물을 저장한 통을 산꼭대기에 들고 가서(위치에너지를 극대화한다!), 한꺼번에 쏟아 부으면(방출 에너지를 극대화한다!) 웬만한 것들은 물의 힘에 휩쓸릴 것이다. 손자의 말은 굉장히 단순하지만 정확한 것이다.


결국 쌓은 실력도 없으면서 요행을 바라고 승리하는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평소 실력만 쌓으면 승리가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것도 아니다. 이 지점에 이르러서 손자는 승리에 대해 강렬한 문장을 남긴다. 


“무릇 전쟁은 정직함으로 적과 싸우고 기발함으로 승리한다. 그런 까닭으로 기발함을 잘 쓰는 자는 작전의 변화가 천지처럼 다하지 않고 강과 바다처럼 마르지 않는다. 끝난 것 같지만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해와 달과 같으며,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살아나는 것이 사계절의 변화와 같다. 소리의 기분은 다섯 가지에 불과하지만 오성이 변하면 다 들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색의 기본은 다섯 가지에 불과하지만 오색이 변하면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맛의 기본은 다섯 가지에 불과하지만 오미가 변하면 다 맛볼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전세는 기와 정 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기정이 변화하면 다 알 수 없다. 기정은 상생하여 순환하는 것이 끝이 없는 듯하니 누가 다할 수 있겠는가?(奇正相生, 如循環之無端 孰能窮之哉)”(「세」, 【5-2】)[각주:6]


정직하게만 싸워서는 승리를 절대 획득할 수 없다. 손자는 승리가 기발함의 발휘에 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발함의 발휘는 ‘기정(寄正)’의 상생에 달려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니까 정직함(정[正])과 기발함(기[奇])이 서로 짝을 이루고 서로 보완하는 데 달려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오음(五音)·오색(五色)·오미(五味)가 배열조합에 따라 음악의 선율, 그림의 형상, 음식의 맛이 끝없이 변하는 모양에 비유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 오면 결국 끊임없이 변한다는 말이로구나, 하고 감탄하여 생각을 멈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것은 ‘기’와 ‘정’이 서로 상생한다[寄正相生]는데 있다. 기발함, 그 자체만 보면 그게 기발해봐야 얼마나 기발하겠는가. 또 정직한 실력, 그 자체만 보면 그걸 아무리 많이 축적했다한들 그게 얼마나 많겠는가. 그 각각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아무리 많아도 전쟁은 질 수 있다. 미국도 실력은 누구보다 많았지만, 베트남전에서 기습전에 번번이 지면서 결국 전쟁에 패배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기’와 ‘정’ 각각만 본다면 최대한 노력을 한다고 해도 어떤 제한된 선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전세(戰勢)의 출발은 ‘기’와 ‘정’ 두 가지 제한된 요소뿐이다. 그러나 손자는 ‘기’를 얼마나 사용하고 ‘정’을 얼마나 사용하며, 그것들을 어느 방향으로 더 투입하고 덜 투입하느냐에 따라서, 다시 말하면 ‘기’와 ‘정’의 상생하는 방식에 따라서 작전의 변화가 끝없이 달라질 수 있으며, 오로지 그것만이 승리를 획득한다고 말하고 있다. 승리는 정직함과 기발함 사이에 있는 것이다. 




훈련을 통해 마음은 단련되지만(정[正]), 그것은 현장에서 다른 모든 것들의 움직임과 함께 완성된다(기[奇]). 모피어스가 말했던 ‘마음의 감옥(prison for the mind)’은 영어표현에서도 드러나지만, 그것은 물을 담은 용기와도 같다. 우리가 앞서 말했던 바로 위치에너지(potential energy)인 바로 그 ‘형(形)’이다. 그것은 훈련을 통해서 끊임없이 축적해야 할 것이다. 마음의 훈련, 그것은 바로 정(正)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승리는 불가능하다. 훈련된 마음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물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움직여야만 한다. 그 현장성, 그것은 바로 기(奇)다. 그래서 손자가 말한다. 적의 변화에 따라 승리를 빼앗는 사람을 ‘신’이라 한다“(能因敵變化而取勝者, 謂之神)(「허실」, 【6-5】)[각주:7] ‘마음의 감옥’을 그릇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자, 바로 그런 자여야 비로소 싸움을 이긴다.


네오가 싸움에서 이기는 문제는 언제나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문제였다. 그는 시스템이 주는 훈련 방식에 따라서 끊임없이 실력을 쌓는다. 그러나 싸움은 그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네오는 스미스 요원이 쏜 총알에 심장이 관통되어 죽는다. 그 순간 트리니티가 네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네오를 부활시킨다. 그 사랑이 네오의 의심을 없애고 새로운 네오로 부활시켜 되돌려 보낸 것이다. 그는 이제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붙잡아 놓지 않는 자가 되었다. 총알이 쏟아지는데도 그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마음이 총알과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앤더슨 두 번 깨닫는다. 토끼 구멍에서 빠져나오면서 한번, 총알들과 함께한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비로소 싸울 줄 알게 된 것이다. 손자의 말대로 적의 변화에 따라 승리를 빼앗는 사람, 즉 그는 신이 되었다.

    

글_약선생(a.k.a 강민혁)

  1. 사마천 지음, 『사기-사기5, 열전 상』 「백기왕전열전」, 정범진 옮김, 까치글방, 1995, 193~194쪽. [본문으로]
  2. 리쩌허우 지음, 『중국고대사상사론』, 정병석 옮김, 한길사, 2005, 185쪽. “그것은 명확한 주체활동과 이해를 목적으로 삼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관찰과 현실을 빠르게 파악하는 바탕 위에서 다른 많은 부차적 요소들을 가능한한 빨리 제거해버리고 잡다한 세부적인 내용들을 피하여 사물의 핵심을 분명하고 집중적으로, 신속하고 분명하게 발견하고 파악하려는 것이다.” [본문으로]
  3. 여불위 지음, 『여씨춘추』, 김근 옮김, 글항아리, 2012, 499쪽. “노자는 부드러운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공자는 어진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묵자는 몸을 다 갈아서라도 천하에 봉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관윤은 순정한 기운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열자는 빈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진변은 도를 따라 행하여 치우침이 없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양자는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손자는 기세를 중요하게 여기고, 왕료는 계략을 먼저 써놓고 싸우는 것을 중히 여기고, 아량은 싸움의 결과를 중히 여긴다.” [본문으로]
  4. 리링 지음, 『리링의 『손자』강의-전쟁은 속임수다』, 김숭호 옮김, 글항아리, 2012, 330쪽. ; 손무, 오기 지음, 『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 손영달 풀어읽음, 북드라망, 41쪽. ; 손자 지음, 『손자병법』,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2011, 120쪽. [본문으로]
  5. 리링 지음, 『리링의 『손자』강의-전쟁은 속임수다』, 김숭호 옮김, 글항아리, 2012, 358쪽. [본문으로]
  6. 리링 지음, 『리링의 『손자』강의-전쟁은 속임수다』, 김숭호 옮김, 글항아리, 2012, 373쪽. ; 손무, 오기 지음, 『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 손영달 풀어읽음, 북드라망, 41쪽. ; 손자 지음, 『손자병법』,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2011, 135쪽. 김원중 선생님은 ‘정(正)’을 ‘정공법’으로 ‘기(奇)’를 ‘기습’으로 번역하셨다. [본문으로]
  7. 리링 지음, 『리링의 『손자』강의-전쟁은 속임수다』, 김숭호 옮김, 글항아리, 2012, 453쪽. ; 손자 지음, 『손자병법』,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2011, 174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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