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
생은 길섶에 이야기를 숨겨둔다
용인으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집 뒤로 북한산이 있었다. 아파트 쪽문이 북한산 둘레길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 집의 여러 장점 중 하나였다(가장 큰 장점은 탑층! 그립다ㅜㅜ). 산에 가는 걸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 뒤에 있으니 한 번씩 가 보게는 되었다. 어떤 날은 화계사까지 갔다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국민대 쪽으로 빠지기도 했다. 국민대 쪽엘 처음 갔다왔던 다음 날인가는 삭신이 쑤셔서 연차를 내기도 했지만 ‘또 가나 봐라’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 또 어디선가 살게 되더라도 산 근처에 가서 살자고 다짐(?)하기까지 했다.
생각보단 그 다짐이 꽤 간절했나? 우주의 기운이 도왔는가 봉가;; 아무 생각 없이 이사 온 동네에 또 산이 천지다(용인이니까;;;). 하하하하하. 역시나 또 아파트 쪽문이 등산로로 이어지고, 집앞으론 석성산(石城山)이 둘러져 있다. 이사 와서 남편이 계속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경전철(에버라인) 타고 싶다’와 ‘석성산 한번 갔다와야 하는데’였는데 드디어 지난 5월 초 연휴 때 석성산엘 갔다. 진입로를 잘못 잡아서 험한 길을 타는 바람에 초반에 고생은 좀 했지만 길은 꽤 좋았다. 무엇보다 정상에는 음료수와 막걸리를 파는 아저씨가 계신다. 사먹고 오진 않았지만 정상에 가면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일단 기쁘다(^^). 또 올 만한 산이다.
지난 주말, 이렇게 또 뒹굴거리고 말 바에야 산에나 다녀오자고 다시 석성산을 찾았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 속의 옛이야기를 만났다.
띠용. 우리 책에 실린 것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당연히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가 더 재밌습니다^^) 줄기는 같다.
장은 담가서 봄을 지내며 장물이 오지그릇에 말라서 줄어들어. 근데 충주 사는 자린고비에게는 이 말이 통하지 않았어. 마누라더러 집을 지키라고 하고서는 마실을 갔다 와 보니 장이 줄어 있는 거야. 마누라를 붙잡아 두들겨 주며 말했지.
“장을 누굴 퍼 줘서 이렇게 줄은 거냐?”
자린고비의 마누라가 억울해하며 말했어.
“그럼 당신이 장독을 지키시우.”
“그래. 그래 보자.”
자린고비는 장독간에 앉아 장을 지켜보고 있었지. 가만히 보고 있자니 주먹댕이 같은 쇠파리가 ‘웅’ 하고 날아와서는 장독에 가서 풍덩 빠졌다가 날아가는데, 보니까 장이 줄었어. 충주 자린고비는 장물이 아까워 바가지에 물을 퍼서 쇠파리놈 발을 씻어 먹겠다고 쫓아갔어. 충주에서 용인의 백암까지, 백암에서도 제일 높다는 좌전고개에 왔어. 파리가 거기 앉을까 하더니 또 후루룩 날아가는 거야. 바가지를 들고 또 쫓아갔지. 쇠파리는 호랑이가 많다는 용인 메주고개에 앉았어. 날개가 아파 쉬려고 했는데 자린고비가 또 쫓아오네. 이번엔 어정으로 날아갔어. 자린고비가 물바가지를 들고 여기저기 쇠파리를 찾아 돌아다니는데 머리 위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나지. 올려다보니 그 쇠파리야. 그래서 바가지를 들고 다시 쫓아 내려가니 어정께를 돌다가 아차지고개를 날아가더니 그만 위로 높이 솟아 날았어. 결국 어정에서 어정어정하다가 아차지고개에서 아차 하고 놓쳐 버렸대._안성군 안성읍(박효숙 풀어 읽음,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
안 그래도 이 이야기를 처음 봤을 때, “어정에서 어정정정하다가” 쇠파리를 놓쳤다는 얘기에 깔깔 웃었더랬다. 어정은 이사 와서 출퇴근길로 매일 지나다니게 된 동네였기 때문이었다. 또 어정은 한자로는 ‘어정’(御停), 임금이 머물렀던 곳이란 뜻인데, 그런 ‘어정’을 ‘어정어정’으로 만들어 내다니! 풍자와 해학의 민족의 후손이라는 것이 새삼 자랑스럽다(ㅋㅋ). 좌우간 석성산길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지만 그곳이 메주고개란 곳은 아니고, 가늠해 보니 메주고개는 우리 집 뒤쪽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과 통하는 곳이었다.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 작업이 한창이었을 때 한번 다녀오기도 했는데 거기가 메주고갠 줄도 몰랐다(호랑이가 많았다니, 어쩐지 이 동네가 더 좋아진다. 하악하악). 그냥저냥 지나다닌 길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멀리멀리 퍼뜨리라고 만들어진 것이 낭송Q시리즈의 민담』·설화편인데, 바로 내가 사는 동네에서 미션을 받게 될 줄이야…. 입이 근질거려서라도 조만간 또 메주고개에 다녀와야겠다. ‘쇠파리와 자린고비의 뜻밖의 여정’을 이젠 남편에게 제대로 풀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6개월차 용인댁의 뜻밖의 맛집 소개(도대체 왜?;;)
혹시 어정 근처를 지나실 수도 있는 독자님들을 위해 맛집을 한 군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물론 저는 이 집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세 번 가서 모두 자비로 먹었습니다;;). 혹시 아나요. 에버랜드나 민속촌 가시다 한번 어정을 지나게 되실지. 무..물론 그럴 땐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의 쇠파리를 떠올리셔야겠지만 배가 고플 수도 있으니...흠흠.
좌우간 어정역 근처 <방자네 칼국수>라는 바지락 칼국수집이 있는데요. 바지락 국물과 감태로 반죽한 면이 별미이기도 합니다만, 이 집의 킬링 포인트는 바로 칼국수 2인분 이상 주문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하하하하. 반찬으로 나오는 열무김치와 막걸리의 조합이 환상입니다. 지나시다 한번 드셔보셔요. 운전자는 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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