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말 부대끼는 게 싫어요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각종 질병의 원천은 고립감이다. 쉽게 말해 친구가 없어서 일어나는 증상이다. 아니,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현대인은 친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각종 상담처나 병원을 찾아 다니며 하소연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것도 시간과 비용을 엄청나게 지불하면서! 이런 모순을 타파하려면 일단, 친구라는 존재가 생명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또 그 사람과 맺는 관계가 곧 나다!
고미숙,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156쪽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너무나도 내 이야기 같아서 얼마나 뜨끔 했는지 모른다. ^^ 나는 어느 모로 보나 의지도 박약하고, 스트레스 저항성도 최저다. 그리하여 어려운 일을 만나면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불의를 보면 기꺼이 참는 것을 생활의 제1원칙으로 삼아 살아왔다. 말인즉 나는 남과 부대끼는 것이 정말로, 진정으로 싫다.
그렇다면 그런 일을 피하고 난 다음은 어떠한가? 주로 ‘집’에 있는다. ‘집’이란, 그야말로 포근하여서,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가 싫은 그런 곳이다. 무엇보다 ‘집’에는 ‘남’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아늑하고, 달콤하고, 포근한 집에 문제가 생겼다. 무슨 일인가 하면, 엄청난 ‘층간소음’이 습격한 것이다. 마늘을 빻기도 하고, 새벽마다 주방과 욕실을 오가고, 엄청난 볼륨의 텔레비전 소리까지. 남과 ‘부대끼’는 것이 싫어서 집을 그렇게나 좋아했던 것인데, 집에서 마저 부대껴야 한다니……. 집이 지옥이 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몇차례의 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던 관계로, 나는 그냥 꾹 참았다. 그 사이에 ‘정신과 상담’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엔가 갑자기, 윗집이 아들의 결혼과 함께 이사를 가버렸다.
다시 집이 좋아졌던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어느날 갑자기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정말 얼마나 우울해졌는지 모른다. 화가나고, 황당하고 뭐 그런 감정은 다음 문제고, 일단은 너무 심하게 우울해졌더랬다. 당장 윗집에 올라가, 그 사실을 알렸는데……. 윗집의 반응이 참 대단했다. (이제 막 이사온 본인들의 탓도 아닌데) 너무 미안해했던 데다가, 어떻게든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그 태도들을 보고 있자니, (말하자면 피해자인) 내가 더 송구스럽고 그랬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원인을 찾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 사이에 어쨌거나 나는 윗집 아저씨와 매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윗집 아이들과도 꽤 얼굴을 익힌 사이가 되고 말았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 날 저녁, 그 사이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층간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순수한 강도로만 따지자면, 지난 번 윗집이 내던 소리, 그 이상. 그런데 뭐라고 해야할까, 그렇게 거슬리지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지옥’을 만든 것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어느 층간소음이든 상황에 따라 몹시 괴로울 수 있다. 여전히 가끔 밖에서 부대끼다 들어온 날에는 괴롭기도 하다. 그때마다 누수를 해결한 다음 날을 떠올리곤 한다.
‘사람’을 알고 나면, 더 나아가 그 사람을 좋아하면 같은 소음도 괜찮을 수 있다. 인용문의 말대로 하자면, 그 사람하고 ‘친구’가 되면 괜찮을 일이다. 그게 누구든 소음 레벨이 80데시벨을 넘는 순간 미쳐버리고 그러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이번에는 내가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번에도 우리 윗집은 엄청나다. 추정해 보건데 70대 이상 노부부께서 사시는 듯하다. 여름이면 베란다에서 고추도 말리시고 그러는 집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 하시는 일이 많은 관계로 항상 대단한 수준의 소음을 내시곤 하는데, 괜찮다. 괴로울 때마다, ‘아우’거리면서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누수 다음날을 생각하면서 내 증상을 완화시킨다. 이번 윗집 분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으니까, 적절히 마음을 조절하며 사는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이걸 못 참아서 정신과나 기타 공공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하게 된다면, 음… 지금 생각으로는 그게 더 괴로울 것 같다. 차라리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뭐 윗집 분들은 평생 모를 뒷담화를 풀면서 그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 나한테 더 좋을 듯싶다. 더 좋은 것이라면 ‘부대낌’을 좀 더 잘 수용할 수 있는 쪽으로 나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겠지. 예전엔 막 싸웠는데, 지금은 부쩍 잘 넘어가는 걸 보면, 그러니까 내 주변과 맺는 관계가 좀 나아진 걸 보면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 고미숙 지음/북드라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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