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니것,『제5도살장』
- 어떤 소설들의 원조격
‘무엇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엔 문장만 남게 됩니다’라거나, ‘역시 내용보다는 형식이 훨씬 중요하다’라거나, 어쨌거나 나는 저 말들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용은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 년 전에 살았던 인간들이나, 지금의 인간들이나, 먹고 마시고 질투하고 싸우는 일을 멈췄던 적이 없다. 그 ‘내용’들이란 그 자체로 보면 대개 식상하게 마련이다. 쉽게 말해 또 듣고 싶지가 않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아니면 음악을 만들든 ‘작가’란, 아니 작가들이 만들려고 하는 것은 결국엔 ‘형식’이 아닐까? 예를 들어 그 위대하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 ‘내용’들은 얼마나 식상한지……. 그 소설의 놀라운 점은 그 길고, 길고, 긴 소설 속에 인생을 찍어 놓은 데 있다. 거기에 ‘기억’을 건져 올리는 전례 없는 방법이 출현한다. 그것은 결국 프루스트가 자신의 인생을 형식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최근에 재출간되어 있은 『제5도살장』도 그렇다. 이 소설이 어떤 ‘기념비’와 같은 작품이라면, 그것은 순전히 이 소설이 가진 독특한 형식에 있는게 아닐까? 소설의 화자 빌리 필그람의 세계에서 시간은 붕괴되었고, 그래서 서사는 뒤죽박죽 뒤섞이고, 비극은 희극의 옷을 입고, 혹은 그 반대이기도 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여기가 어딘가 싶을 때가 많은데, 그것은 말 그대로 어떤 ‘전쟁의 체험’과 관련이 있다. 이 소설이 ‘반전’(反戰) 소설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독자는 전쟁의 끔찍함을 경험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러는 와중에도 어렵다거나, 지루하지가 않다. 중반에 갑자기 등장하는 익숙한 인물(보니것의 다른 소설, 가령 ‘로즈워터씨’ 같은 소설을 읽었다면 더 재미있으리라.)이 등장하는가 하면, 작가 자신이 거의 분명한 어느 소설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어판 300쪽이 채 안 되는 이 소설은 사실상 보니것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다.
다시 ‘형식’과 ‘내용’의 문제로 돌아오자면, ‘반전’(反戰)의 내용을 가지고,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보여주기만 하는 것은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충분히 부족하다. 일단, 그런 식의 이야기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아서, 거기에 또 그와 같은 이야기 하나가 더 붙는다고 하여 ‘반전’에 더 도움이 되거나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그 형식을 고민한다. 전쟁터의 포성 아래에 감춰진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마지막 목격자들』)나, 전쟁이 끝난 뒤에 남은 ‘광기’에 주목하거나(『지옥의 묵시록』) 아니면, 한 개인의 의식이 어떻게 붕괴되는지 드러내거나(『제5도살장』의 경우) 하는 것이다. 여하간에 ‘기억’에 남으려면, 그래서 어떤 ‘효과’를 얻으려면(아니면 역으로 효과를 얻어서 기억에 남으려면) 무엇보다 ‘그릇’에 신경을 써야 하는 법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는 다만 작품의 형식 뿐 아니라, 보니것의 모든 작품에 서려 있는 그 어찌할 수 없는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성향 또한 좋아(?)한다. 그것은 ‘인생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어떡하겠어. 살아야지. 그래 뭐, 그냥 사는거야. 기왕이면 착하게’ 같은 태도다. 세계를 어떻게 바꾸겠다거나, (자신이 믿는) 더 훌륭한 세계를 만들어 후세에 전해주겠다거나 같은, 그런 오만이 없다는 점이 뜨겁게 좋다. 결국 그런 오만이 전쟁을 만드는 법이니까.
제5도살장 (반양장) -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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