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동아시아 역사책 읽기

『삼국사기』 연재를 마치며

by 북드라망 2016. 12. 28.

『삼국사기』 연재를 마치며



시절이 하 수상한 이유, 그 필연에 대하여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가 어지럽다. 작금의 이 시국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이상하다. 솔직히 사마천의 『사기』나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수록된 그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조차 이에 비교하니 있을법한 일로 느껴질 정도이다. 봉건 시대 혹은 전제군주 시대에도 일어나기 힘든 사건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그 어떤 드라마, 오락프로그램도 재미없게 만든, 이 참담할 정도로 웃기고 기막힌 사건은 21세기 가장 핫한 이슈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니 길이길이 남아 뼈아프게 새겨야 할 것이다.


김부식이 역사책을 쓴 까닭은 아주 분명했다. 나라가 어지러운 이유, 나라가 멸망에 이르는 이유를 명명백백 드러내어 후세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그 한결같고 단조로운 주장이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충정이 요즘 유독 절실하게 다가온다. 



김부식은 신라가 통일할 때, 고구려가 왜 멸망했는지 그 까닭을 따졌다. 고구려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천착하여 결론을 내렸다. “임금과 신하가 화평하고 백성들이 친목하였을 때는 아무리 큰 나라라도 고구려를 빼앗지 못했다. 그러나 정사를 옳게 처리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몹시 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의 원성을 불러일으킨 뒤에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었다. 그러므로 좌구명이 말한 바 “나라가 흥하려면 백성을 상처와 같이 아끼나니 이것이 복이요, 나라가 망하려면 백성을 흙이나 검불같이 여기나니 이것이 화이다”는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구려본기」, 『삼국사기』) 국민이 개돼지 같다고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이 시대, 김부식에 의하자면 재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부식은 고구려의 역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경계한다. “나라를 맡은 자들이 횡포한 관리들을 풀어놓아 백성들을 구박하고 권문세가들로 하여금 수탈을 가혹하게 함으로써 인심을 잃게 되면 제아무리 나라가 안정되어 어지럽지 않게 하며 나라를 유지하여 멸망하지 않게 하려 한들, 이것이 또한 취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고구려본기」, 『삼국사기』)


통일신라가 분열되고 끝내 신라가 멸망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김부식은 어김없이 사평을 달았다. “중국 군사의 위엄과 전술에 의해 백제와 고구려를 없애고 그 지역들을 군현으로 만들었으니 훌륭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가의 설법을 신봉하여 그의 폐해를 깨닫지 못하였으며 여기에 이르러서는 항간에까지 탑과 절간이 즐비하게 되고 일반백성들이 중으로 도피하여 군사와 농업이 점점 줄어들고 국가가 날로 쇠퇴하게 되었으니 이렇게 하고서야 어찌 문란하지 않고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겠는가?”(「신라본기」, 『삼국사기』) 

김부식은 통일신라가 쇠락한 주요 원인을 불교에 돌렸다. 종교는 구원일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미망이 된다. 일신의 복만 권하는 종교, 사리사욕을 채우는 종교, 권력의 시녀 노릇하는 종교는 분명 사람들의 혼을 비정상^^으로 만든다. 어찌 영혼이 맑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김부식이 유가적 역사의식을 지녔다고 불교 자체를 비판한 것이겠는가? 종교가 암매해질 때 일어나는 폐단을 비판한 것이다. 



김부식의 역사적 비전


김부식은 궁예의 뒤를 이은 왕건의 행위에 대해서도 은근슬쩍 돌려까기를 한다. 신라의 사신이 방문했을 때 왕건이 물었던 것은 신라에 있는 세 가지 보물이었다. 보물 세 가지는 황룡사의 장륙불상과 9층탑, 그리고 천사옥대(天賜玉帶)를 말한다. 이에 대해 김부식은 특별히 사평을 달았다. 그래도 고려의 태조이므로 왕건이 이 보물을 귀중하게 생각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고 변호한 뒤, 통치자가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 세 가지 보물이란 역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사치한 물건일 따름이니 나라를 통치함에 있어 어찌 이것이 꼭 필요하겠는가? 맹자는 말하기를 ‘제후의 보배가 셋인 바, 토지, 인민, 정치이다’라 하였으며, 『초서』에는 ‘초나라에는 보물로 할 것이 없으나 오직 선으로써 보배를 삼는다’ 하였다. 이런 것을 국내에서 실행하면 족히 온 나라 사람을 착하게 할 것이며 국외에로 옮기면 족히 온 천하에 혜택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니 이밖에 또 무엇을 보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신라본기」, 『삼국사기』)     



통치자는 잔악하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고 막히지 않아야 한다. 나라의 안정은 여기에서 온다. 김부식이 삼국시대의 전말을 기록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물론 나라가 어지럽거나 멸망하는 원인이 어찌 한 가지이겠는가? 그러나 김부식은 나라가 혼란스러워지는 핵심적 필연은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초지일관, 이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배열하고 평가했다. 개인보다는 나라가 우선으로 국가주의적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김부식에게 역사적 비전은 분명했다. 나라의 안정, 백성의 안녕! 이것 말고 통치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것이 김부식이 중국으로부터 배운 바이다. 이런 면모를 사대주의라 한다면 기꺼이 사대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삼국사기』라는 역사책에 집중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김부식은 왜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술했을까? 어떤 면을 강조했을까? 김부식의 역사의식은 어디에 있을까? 삼국의 역사보다는 『삼국사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다. 김부식과 『삼국사기』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풀고, 이 역사책이 이야기하는 바에 집중하고 싶었다. 『삼국사기』에 대한 변명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 그 오해가 풀렸는지 알 수는 없다. 내 필력과 시선의 한계로 인해 또 다른 오해를 낳을지도 모른다. 


역사학에 대해 문외한인 까닭에 분명 부족한 논의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를 사료로서보다는 역사책으로 읽을 필요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바, 감히 용기를 내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보태었다. 자칫 군더더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읽기 중의 하나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미흡한 점들을 보완하고, 절차탁마하여 책으로 엮을 예정이다. 『삼국사기』에 대해 흥미를 갖는 독자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연재를 마친다.          

 

글_길진숙(남산강학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