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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 천인감응(天人感應)설의 역사

by 북드라망 2016. 10. 4.

『삼국사기』

: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역사




우주라는 물리적 환경과 인간 사이에는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감응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저 상고시대로부터 우주의 움직임와 인간의 행위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패턴을 주목하고 이를 체계화했던 것이다. 이런 원리를 정리한 것은 한나라 때 이후로,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서』의 「천문지」와「오행지」에서 논리화하였고, 당나라 고종 때는 『천지서상지』가 편찬되어 여러 문헌에 기술된 천지변화의 길흉화복을 총괄하였다. 


저 하늘과, 땅과, 그리고 인세(人世)의 삶


별자리가 떨어져있는지, 붙어있는지, 침범하는지 등을 관찰하여 전쟁이 일어날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할지, 반란이 일어날지 등을 예견했다. 붉은 기운이 불빛같이 나타나는 것은 신하가 군주를 배반할 징조이고, 금성과 토성과 화성이 궤도를 잃으면 전쟁이 나거나 국상이 있을 징조이며, 성운이 비와 같이 쏟아지면 인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아래로는 토벌이 있으며 대인의 근심이 될 징조라는 식으로 별자리의 여러 현상을 인간사에 대응하는 징표로서 파악했던 것이다. 또한 “군주가 도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 화는 불이 궁을 태우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식으로, 군주의 사치와 참람됨이 정도가 지나칠 때 불이 나거나 가뭄이 든다고 보는 식이다. 구체적인 일이 있고, 뒤에 재이현상이 출현하는 그 구체적 양상을 정리함으로써, 군주나 신하들에게 행동을 삼가고 몸을 닦아 정도를 행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대우주의 움직임과 감응한다는 사고는 삼국시대 역사가들이나 김부식에게서 나온 고유의 것은 아니다. 한나라 때의 역사철학자 동중서로부터 정리된 천인감응설의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천인감응설은 삼국시대 사람들의 세계인식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 예종, 인종 연간의 지식인들에게도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사유 방식이었다. 사실 고려 때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통치자들의 행위를 돌아보고 수신하게 하는 강력한 기제로써 작용했다.  


김부식은 자연현상을 과거의 중대한 사건으로만 다룬 것이 아니었다. 현재를 해석하는 근본 원리였다. 김부식은 인종 12년 왕이 묘청의 말을 듣고 서경으로 가서 재난을 피하고자 하니 재이설로써 만류했다. "금년 여름에 서경 대화궁에 30여개소나 벼락불이 떨어졌으니 만약 그곳이 길한 땅이라면 하늘은 반드시 이렇게 할 리가 없을 터인데 그런 곳으로 재난을 피하러 간다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까? 하물며 서경 지방은 추수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만일 거동하신다면 반드시 농작물을 짓밟을 것이니 이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본의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하늘과 백성들의 마음을 읽어내라는 것이다. 


자, 처벌 날아간다~ 응?!


또한 왕 스스로도 천인감응설에 입각하여 신하들을 견책했다. 인종은 황충이 심할 때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간관의 말에 의하면 경기 지방의 산야에 황충이 솔잎을 먹는다고 하니 이는 아마도 국내에 간사한 사람이 많고 정부에 충성스러운 신하가 없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하여 마치 하늘이 경고하기를 '벼슬자리에 앉아서 봉록만 먹고 공로가 없으면 벌레와 다름없으니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난리가 일어날 것이요 행실이 바른 사람을 선발하여 높은 자리에 앉히면 재앙이 없어질 수 있다.'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신하가 하는 일 없이 봉록만 타는 것을 탐욕이라 하나니 그에 따르는 재앙으로서 벌레가 뿌리를 먹으며, 일정한 덕이 없는 것을 번잡하다고 하나니 그에 따르는 재앙으로서 벌레가 잎사귀를 먹으며, 덕이 없는 자를 쫒아 내지 않으면 벌레가 밑둥을 먹으며, 농사일을 방해하면 벌레가 줄기를 먹으며, 악한 일을 엄폐하고 죄를 지으면 벌레가 속을 먹는다고 하였다.'(계축11년(1133) 5월 을축일) 신하들의 게으름과 부덕과 탐욕이 황충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 하늘의 의지는 현실화되는가


인간이 이상한 기운을 불러온다는 것. 혹은 이상한 기운은 이상한 인간의 일을 불러온다는 것. 하늘이 이상한 조짐을 보여주면 반란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국가는 멸망한다. 이렇게 예정된 것이라면 천문역관들이 이것을 세심하게 관찰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은 김부식이 이것을 어떤 역사적 사건 못지않게 촘촘하게 기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인간의 행위에 따라 이 조짐은 실현되기도 하고 실현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짐을 관찰하고 그 조짐이 불러올 사건을 예견하는 주된 목적은 그 조짐이 사라질 수 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데 있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삼국사기』에는 천재지변이 일어나지만 실제 전쟁과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한 사건들이 기술된다. 하늘의 의지는 현실화되기도 하고, 그저 예시에 불과하기도 하다. 그것은 온전히 사람의 몫이다.『삼국사기』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신비롭게 출현하는 하늘의 뜻이 아니다. 결국 인간의 역사이다. 그래서 인간에 주목한다. 하늘을 불길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 불길함을 바꾸기도 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외면한 자는 재앙을 맞고, 하늘의 뜻을 제대로 읽은 자는 천재지변을 행위의 거울이자 기회로 삼는다.  


그러니 이 시대 통치자는 일단 하늘의 뜻을 잘 읽어내야 한다. 그래서 신라 탈해왕의 아들인 구추 각간의 아들, 벌휴니사금은 “바람과 구름을 점쳐서 수재와 한재와 시절의 흉풍을 미리 알고 또 사람의 정직하고 부정직한 것을 알아맞히므로 사람들이 성인이라” 불렀다. 하늘과 사람을 알아보는 이를 성인이라 한 것이다. 이렇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첨성대는 어떠면 우리의 표상과는 많이 다른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천재지변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 그 때문에 충신들은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는 허물을 고치고 갱신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하늘은 근신하고 열심히 덕행을 베푸는 자에게는 화를 내리지 않는다.   


*경덕왕 

15년 봄 2월에 김사인이 근년에 천재지변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이유로 왕에게 상소하여 시국정치의 잘잘못을 극론했던 바,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받아들였다. 


22년 가을 7월에 서울에 큰바람이 불어 기와를 날리고 나무를 뽑았다. 8월에 복숭아와 자두나무 꽃이 두 번째 피었다. 상대등 신충과 시중 김옹이 퇴직하였다. 대나마 이순이 왕의 총애하는 신하로 되었더니 갑자기 하루아침에 세상을 피하여 산으로 들어갔으므로 여러 번 불렀으나 나오지 아니하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왕을 위하여 단속사를 세우고 거기에서 살았다. 


그 뒤에 왕이 풍악을 즐긴다는 말을 듣고 즉시 대궐문으로 찾아 들어가 왕에게 간하여 아뢰었다. “제가 듣자옵건대 옛날에 걸주가 주색에 빠져 음탕한 오락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정치가 결단이 나고 국가가 망하였사온 바 앞에 가는 수레바퀴가 엎어지면 뒤 수레는 마땅히 경계를 하여야 될 것입니다. 공손히 바라옵건대 대왕은 허물을 고치고 자신을 갱신하여 국가의 수명을 길도록 하소서.” 왕이 이 말을 듣고 감탄하여 풍악을 정지하고 그를 큰 방으로 끌어들여 그가 말한 오묘한 도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며칠 동안 듣다가 그쳤다.


경덕왕 시대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났다. 분명 왕의 덕화가 일어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천지만물이 계절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는다. 충신도 중이 되어 절로 들어가 버렸다. 경덕왕의 통치가 순조롭지 않다는 증거이다. 풍악을 즐긴다는 말로 보아, 경덕왕은 황음하고 사치했으리라 해석된다. 이럴 때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이다. 왕은 충신의 간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을 살피고 근신했던 것이다. 하늘은 천재지변으로 왕의 잘못을 온 천하에 밝게 드러낸다. 이럴 때 왕이 할 일은 딱 하나다. 자신의 잘못을 해와 달처럼 밝게 고쳐 알리는 것이다. 그래야 하늘도 마음을 돌린다.   

그러나 천재지변의 난리에도 삼가지 않고 하늘의 조짐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인간에게는 반드시 재앙을 내린다. 


*의자왕(백제)

5월에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서 천왕사, 도양사 두 절의 탑에 벼락을 쳤으며 또 백석사 강당에 벼락을 치고 동쪽 서쪽에는 용과 같은 검은 구름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쳤다. 


6월 왕흥사의 여러 중들이 모두 배 돛대와 같은 것이 큰 물을 따라 절문간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들사슴과 같은 웬 개 한 마리가 서쪽으로부터 사비하 언덕에 와서 왕궁을 향해 짖더니 잠깐 사이에 간 곳을 알 수 없었으며 서울에 있는 뭇 개가 노상에 모여서 혹은 짖고 혹은 곡을 하더니 얼마 뒤에 곧 흩어졌다. 웬 귀신이 대궐 안에 들어와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고 크게 외치다가 땅속으로 들어가매 왕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땅을 파게 했더니 석 자 가량 되는 깊이에서 웬 거북 한 마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등에 ‘백제는 달과 같이 둥글고 신라는 달과 같이 새롭다’는 문자가 있었다. 왕이 무당에게 물으니 무당이 말하기를


“달과 같이 둥글다는 것은 가득 찬 것이니 가득차면 기울며 달과 같이 새롭다는 것은 가득 차지 못한 것이니 가득 차지 못하면 점점 차게 된다.”  왕이 성을 내어 그를 죽여버렸다.

어떤 자가 말하기를 “달과 같이 둥글다는 것은 왕성하다는 뜻이요, 달과 같이 새롭다는 것은 미약한 것이니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왕성해지고 신라는 차츰 쇠약하여 간다는 것인가 합니다”하니 왕이 기뻐했다. 


*차대왕 

3년 가을 7월에 왕이 평유원에서 사냥을 하다가 흰 여우가 따라오면서 우는 것을 쏘아서 맞추지 못하였다. 왕이 스승 무당에게 물으니 무당이 말했다.


“여우란 것은 요사스러운 짐승이요 상서로운 것이 아닌데 더군다나 그 빛깔이 희니 더욱 괴이합니다. 그러나 하늘이 말씀으로 자세히 일러줄 수 없기 때문에 요괴한 것을 보여주는 것은 임금으로 하여금 조심하고 반성함으로써 자기 갱신을 하게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임금이 덕을 닦게 되면 화가 복으로 될 수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흉하면 흉하다고 하고 길하면 길하다 할 것이지 네가 이미 요사스러운 것이라 하고, 또다시 복이 된다고 하니 왜 나를 속이느냐?”하고 드디어 그를 죽여버렸다.


4년 여름 5월에 5성(수화금목토로 배합되는 , , , , )이 동쪽에 모였다. 천기를 보는 관원이 왕이 노할까 두려워서 왕을 속여 말하기를 이것은 임금의 덕이요, 나라의 복입니다.하니 왕이 기뻐하였다.

겨울 12월에 물이 얼지 않았다. 


8년 여름 6월 서리가 내리고, 겨울 12월 우레와 지진이 있었으며 그믐날에 객성이 달을 범했다. 

13년 봄 2월에 혜성이 북두성좌에 나타났고 여름 5월 그믐날 갑술에 일식이 있었다. 

20년 봄 정월 그믐날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10월에 연나조의 명림답부가 백성들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왕을 죽였다.   


*원성왕 

선덕이 죽자 아들이 없으매 여러 신하들이 의논한 뒤 왕의 족질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이 때에 주원이 서울서 북쪽으로 20리 되는 곳에서 살았던 바, 때마침 큰비로 알천의 물이 불어서 주원이 건너지 못하였다. 누가 말하기를 “임금의 지위란 본시 사람이 도모할 수 없는 것이니 오늘의 폭우는 하늘이 혹시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상대등 경신은 앞서 임금의 아우로 본디부터 덕망이 높아 임금의 체통을 가졌다.” 하니 이에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단번에 일치되어 그를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얼마 뒤 비가 그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이찬 김주원은 재상, 원성왕은 각간이 되어 재상 다음 자리. 꿈에 복두를 벗고 흰 갓을 썼는데 열두 줄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복두를 벗는 것은 벼슬을 잃을 조짐이고 가야금을 든 것은 칼을 쓸 조짐이요 우물 속에 들어간 것은 감옥에 들어갈 조짐입니다. 


아찬 여삼이 복두를 벗은 것은 더 높은 사람이 없음을 말하고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조짐입니다.ㅡ 열두 줄 가야금을 든 것은 12세손이 왕위를 이어받을 조짐이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대궐로 들어갈 상서로운 조짐입니다. 남몰래 북천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 말대로 함. 냇물이 불어나 김주원은 건너지 못함. 왕이 먼저 궁에 들어가 즉위 만파식적을 아버지에게 전해받음. 천은을 깊이 얻어 그 덕이 빛났음. ( 삼국유사, 원성대왕) 


백제의 의자왕은 흉조를 길조로 해석하여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신라의 차대왕은 하늘의 뜻을 무시해서 신하에게 살해당했다. 신라의 원성왕은 길조를 제대로 읽어내고 왕으로 등극했다. 하늘은 원성왕을 도우사 김주원이 나올 수 없도록 폭우까지 내려주셨다. 정말 하늘의 뜻이 관철된 것인가? 아마도 천문의 조짐이 실제 흉조인지 길조인지를 증명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뜻을 어떻게 읽고 행동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하늘이 재이를 내보여 견책할 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따른다. 『여씨춘추』에서 “하늘의 상서로운 조짐을 보고도 선을 행하지 않으면 복이 오지 않고, 요상스런 조짐을 보고도 선을 행한다면 화는 미치지 않는다”고 한 말이 바로 이 뜻이다. 흉조라도 나를 닦고, 길조라도 나를 닦아야 한다. 

닦는다는 것은 뭘까? 세상을 제대로 읽고, 좋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흉조가 나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변신이 필요하다. 허물을 해와 달처럼 명징하게 드러내고 두 번 다시 하지 않으면 된다.(맹자) 의자왕은 자신의 허물을 볼 줄 몰랐다. 민심도 읽을 줄 몰랐다. 원성왕은 일단 민심을 읽고 거기에 매진했다. 하늘도 적절할 때 폭우를 쏟아냈다가, 적절할 때 비를 그침으로써 감응해주었다. 이 때문에 김주원파와 대치국면 없이 조용히 등극할 수 있었다.  



❚ 하늘의 뜻을 바꾸는 인간의 의지


16년 정미는 바로 선덕왕의 말년이요, 진덕왕의 원년이었다. 이때에 대신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은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하여 무력으로써 왕을 폐위시키려 하므로 왕이 안으로부터 이를 막게 되었다. 그리하여 비담의 도당은 명활성에 집결하고 왕의 군사는 월성에 진을 쳐 열흘 동안 공격과 방어가 계속되었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밤 자정이나 되었을 무렵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의 도당이 병졸에게 이르기를 

“내 들으매 별이 떨어진 자리에는 반드시 피 흘릴 일이 있다 하였으니 이는 정녕 여왕의 패전할 징조라.”고 하니 병졸들의 고함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대단히 두려워하거늘 유신이 왕에게 말하기를,

“길흉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에게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나라 주는 상서로운 붉은 새가 나타났으나 멸망하였고, 노나라는 기린을 얻었으나 쇠약해졌으며 고종은 꿩의 울음이 있어서 흥왕하였고 정공은 용의 싸움이 있었으나 득세하였습니다. 이것을 본다면 덕은 언제나 요괴한 것을 이긴다는 이치를 알 수 있는바 별의 재변 같은 것은 두려워할 나위가 없으니 바라옵건대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하고 곧 허수아비를 만들어 거기에 불을 안기어 종이연을 달아가기고 띄워버리니 그것이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였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리에 소문을 내어


“어젯밤에 떨어졌던 별이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 고 하여 적군들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였다. 

그리고 흰말을 잡아놓고 별이 떨어진 자리에 제사를 지내면서 빌기를 

“하늘 이치에는 양이 강하고 음이 부드러우며 사람의 도리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은지라 만일 이것을 변경시켜 바꾸게 되면 즉시 큰 변으로 되는 것인바 지금 비담의 도당이 신하로서 임금을 모해하며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침범하니 이야말로 역적인지라 사람과 귀신이 함께 증오할 일이며 천지에 용납하지 못할 놈이거늘 이제 하늘은 여기에 관심이 없는 듯이 도리어 서울에 별의 괴변을 나타내니 이는 나로서 의아스러운 바이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늘의 위엄으로 사람의 희망에 따라 선한 자를 좋게 하고 악한자를 미워하여 신에 욕되게 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고 이에 모든 장졸들을 독려하여 들이치니 비담의 도당이 패하여 달아나매 그를 추격하여 목을 베고 그의 일족을 모조리 죽였다.(김유신 열전)


티브이 사극 <선덕여왕>에서 인기 몰이했던 비담과 김유신에 관련된 이야기다. 드라마 진행과 다르게 둘은 대척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늘은 비담에게 상서로운 뜻을 펼쳐 보였다. 큰 별이 선덕여왕 쪽에 떨어진 것이다. 별이 떨어지는 쪽은 피를 흘리며, 패배한다. 하늘의 예시는 그렇다. 여왕은 걱정했지만 유신은 달랐다. 길흉은 사람에게 달린 것. 흉조를 하늘로 되돌려 보낸다. 종이연을 띄워서 별이 올라간 듯 꾸민 것이다. 군사들을 안정시키는 전술. 그리고 하늘을 위협한다. 협박 주술이다. 흰말을 협박함으로써 하늘에 통하게 하는 방식이다. 하늘이 오히려 천명을 잘못 내렸다는 것. 천명을 선한 자에게 보내라고 되려 호통이다. 그리고 성공한다. 


하늘을 지고 있는 인간의 형상, 하늘천(天)자 한글자에 고대 동아시아의 세계관이 표현되어 있는 셈이다.



실상 하늘은 말이 없다. 하늘은 편을 들지 않는다. 선악을 판단하고, 의지를 관철하는 건 인간이다. 인간의 의지가 강렬하다면, 문제를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면 하늘은 나의 편이다. <혜성가>를 부른 융천사도 김유신과 마찬가지 전술을 구사했다. 사람들이 헤성이 나타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불안해 할 때 융천사는 이 사태를 전혀 다르게 해석해버린다. 꼬리달린 별은 불길한 혜성이 아니라 길쓸별이라고 명명하며 혜성은 애초에 없었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은 안정되고 왜구는 물러갔다. 하늘의 표식을 다르게 해석해버림으로써 문제를 무화시켜 동요된 민심을 가라앉혔던 것이다. 하늘의 불길한 조짐을 상서로운 조짐으로 해석하는 대담함. 어떤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을 수 있기에 하늘도 내 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과 맞장 뜰만큼 대담한 용기와 문제를 전혀 다르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면 흉조도 길조로 바꿀 수 있다. 


『삼국사기』는 천문의 흐름을 통해 인간의 지혜를 이야기한다. 김부식이 천인감응설에서 중시한 바는 신비주의에 입각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연을 거울삼는 인간은 자연의 비의에 숨지 않는다. 자연의 신비에만 빠져든다면 숙명론에 빠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자연이 궤도를 이탈할 때 천지의 지축이 뒤흔들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럴 때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연에 교감하여 인간이 근신 또 근신하며 또 다른 인간들과 교감하고 소통한다면, 자연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으로부터 야기되는 불운한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우주와 생명의 역사가 역사 중의 가장 인간적인 역사가 아닐까?


글_길진숙(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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