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H
"진짜 소중한 것은 무엇?"
한 달 전, 노들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내 이용자 H로부터 활동보조를 교체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관계가 흔들렸던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올 것이 왔구나 싶었지만, 같이 일 해온 시간이 몇 년인데, 어떻게 아무런 내색도 않고 센터에 얘기를 할 수 있나 서운한 마음부터 올라왔다.
재작년 4월부터 그녀를 만나면서 활보 일을 시작했으니 H를 만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녀는 내 첫 이용자였다. 또 H에게도 나는 첫 활동보조인이었다. 그녀에 대한 첫 인상은 소녀티를 채 벗지 않은 풋풋한 모습이었다. 센터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난 좀 긴장했었다. 서먹한 가운데 초면의 H에게 여러 질문을 건넸다.
“뭘 제일 신경 써주면 좋겠어요? 빨래? 청소? 외출 동행? 요리?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그녀는 카르르르~ 웃기만 했다. 낙엽만 굴러다녀도 웃는다는 여중생처럼? 아니 그러기엔 웃음소리가 좀 기이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꺼렁꺼렁한 웃음 소리였다. 동석했던 활동가들은 웃는 그녀를 잠시 놔두고 따로 나를 불러 당부했다. “시설에서 처음 나온 분이라 의사 표현하는 게 서툴 수 있다. 그러니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이용자의 말을 먼저 들어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처음 만난 그녀는 '카르르르~'웃기만 했다.
일을 하게 되면서 H에게서 의외의 면들이 보였다. 처음 봤을 때의 이미지는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내 눈 앞엔 무엇이든 자기 뜻이 정해지면 다른 사람 말 잘 안 들리는 무대뽀 사장님이 앉아계셨다. H는 이전에 활동가들이 우려한 것처럼 표현이 서툴지 않았다. 오히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말했다. 뭘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특히 스케줄에 있어서는 활보에게 하루 전, 일주일 전, 아니 어떤 건 두세 달 전부터 반복해서 각인시켜 줬다.
대체로 그녀가 원하는 것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이었다. 그녀는 돈을 무척 좋아했다.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은 돈 계산을 하면서 보냈다. 또 동사무소에서 선물 받은 쌀이나 식료품, 지인으로부터 받은 비누, 로션, 커피 등 일상용품을 또 다른 지인에게 되팔았다. 그걸 생활비에 보탰다. 그녀에겐 통장이 아주 많았고, 저축을 많이 했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연금은 거의 대부분 여러 개의 적금통장으로 들어갔다. 그 돈으로 주택 자금을 마련하고, 치아 교정을 하고, 맛있는 것 먹고, 교회에 기부하고, 여건이 되면 해외여행 갈 거라고 했다.
돈을 알뜰하게 모으는 H
그녀에겐 그 외에도 주된 일이 있었다. 그건 시간 계산하는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활보 시간을 계산하는 일. 이를테면, 아침 8시부터 14시까지는 A활보에게 시간을 주고, 그 후에는 B활보한테 주고, 시간이 남으면 C활보를 몇 번 자고 가라고 한다거나. 오늘은 시킬 일이 없으니 C활보를 두 시간 일찍 가라고 한 다음에 다음 주에 일이 더 많을 때 시간을 더 많이 쓰게 한다거나 다음 달엔 공휴일이 평소보다 더 많으니 활동보조 수당을 생각해서 B활보 시간을 좀 줄이거나 말이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고, 한 달은 보통 30일인데, 유독 H의 시간표와 달력은 훨씬 복잡해보였다. 사실 정부가 장애인들에게 지원하는 활동보조 인건비는 정해져있고, 활동보조를 처음 고용할 때, 보통은 당사자와 시간을 정해놓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렇게 복잡할 일은 없다. 제도 자체는 그렇게 복잡할 게 없다. 활동보조 제도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그게 돈과 결합하면, 사람 마음과 결합하면 어마무지하게 복잡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H는 늘 활보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활동보조인의 임금은 시급으로 책정된다. 그 임금은 기본적으로 장애인 이용자가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 정부에서 100프로 지원을 받는다. 그러니까 이용자 또한 장애정도에 따라 정부로부터 일정한 활동보조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스템을 바우처 제도라고 부르는데,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 모두 매일 출퇴근부를 찍는 기계를 통해 자신의 노동시간과 임금, 혹은 정부로부터의 지원시간과 지원금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자칫 마음을 잘못 쓰면 장애인 이용자는 활보에게 주는 임금을 아까워하게 되고, 활보는 장애인 이용자를 물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활동보조를 하면서 내 노동시간 뿐 아니라 돈, 그 숫자에 대한 나의 애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원래 정해놓은 12시간이라는 근무 시간을 이용자가 임의로 깎아버린다거나, 혹은 반대로 심야 활보 시간이 늘어난다거나 했을 때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곤 했다. H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어져서 서운한 적은 드물었다. 마음을 달리 먹으면 일을 짧은 시간에 더 빡세게 하여 상쾌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적은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다른 활보와 임금을 비교하면서, 깎인 임금을 아까워하면서, 혹은 반올림되어 계산되는 출․퇴근부 시스템에 신경을 쓰는 가운데 내 소중한 활동의 현장이, 그러니까 코앞에 있는 사람이 ‘실종’되었다. 장애인들의 자립 생활을 좀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활동보조제도가, 그리고 내가 몸을 움직여 떳떳하게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소중한 현장이 관계를 껄끄럽게 만드는 함정이 되고 족쇄가 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돈, 숫자에 대한 것들이 내 소중한 활동경험을 순식간에 잠식했다.
H와 나는 2년여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 이불 개기, 청소, 목욕, 식사, 설거지 등 일상을 유지하는 기본적인 일부터 장애인 차별 반대 집회, 손님접대, 사이버대학 과제, 은행 업무, 영화 관람 등등. 그 많은 순간들은 결코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H의 앞에서 장애물이 없나 살펴보면서 길안내를 자처했던 경험이나 말끔하게 청소를 하면서 느꼈던 개운함,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던 갑갑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통해 접점을 만들었던 경험들은 절대로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건 아마 H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H는 그동안 자립생활센터 코디네이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나를 해고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작용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내가 자신의 일을 전적으로 도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녀는 앞으로 시간을 유동적으로 쓰고 싶은데 거기에 발맞춰줄 의지를 나한테서 보지 못 했다고 했다. H가 생각하기엔 활보일보다 내 개인적인 일정을 중시한다고 여긴 것 같다. 임금에만 연연하고 장애인 이용자의 마음은 모르는 활보. 그것이 나에 대한 그녀의 마지막 평가였다. 그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참 뼈아픈 코멘트였지만, 변명할 여지는 없었다. 그녀에게 서운함과 불만을 돌리기 이전에 나 자신부터 돌아보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돈에 대한 마음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그 왜곡된 마음을 찬찬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나와 H는 닮은 점이 많았다. 비슷한 또래에 자립이란 큰 숙제를 갖고 있었던 우리. 우리는 2년의 시간을 함께 했고,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짐이 영광스럽진 않았지만 그간의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동안 H 덕분에 삼시 세끼를 먹을 수 있었고,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녀와 만났던 그 시간들 또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효진(감이당 대중지성)
나와 참 많이 닮은 H,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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