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체성을 열어라
일과 공부는 같이 간다
활보를 하게 되었다. 하게 된 이유는 여러 연구실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다. 평소 외부에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나의 이 좀비 같은 신체성을 바꾸기 위해선 활보가 제격이라는 것. 사실 나는 남에게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어떤 사건이나 책을 읽을 때에도 내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처음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활보를 하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없었다. 왜냐하면 일과 공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고,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있었을 뿐 그것을 일과 연결시키는 것에서는 반감이 있었다. 또 당시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만 보면 되는 편한 일을 하고 있어서 생활비를 충분히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은 정말 하는 일이 없이 그냥 앉아만 있는 경우도 허다하고, 시간 대비 돈도 많이 받는 이른바 ‘꿀 알바’였다.
앉아만 있어도 되는 '꿀 알바'는 신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면 할수록 그 단맛이 ‘꿀’이 아니라 ‘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아무런 생각 없이 무기력하게 모니터만 보다가, 퇴근을 하면 그런 무기력함 남아 책을 볼 때나 글을 쓸 때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단지 공부할 때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내 상태를 보고 선생님들은 그 일은 그만두고 활보를 하라고 하셨다. 나도 내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서, 우선 일을 그만 뒀다. 자연스레 연구실에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여러 활동에 더 접속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실체가 더 낱낱이 까발려지게 되었고 예전보다 더 많은 욕을 먹게 되었다. 어떤 일에도 그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충 넘어가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일을 처리하니, 욕을 아니 먹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욕도 연구실에서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던가. 그래서 그 때 먹은 욕은 꽤나 달았다. (꿀 욕이라고 해야 되나?)
최대의 난관은 '의사소통'
그런데 그렇게 6개월 동안 일은 안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활동보조보다는 학원 알바가 내게 더 맞을 것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학원 구인 사이트를 찾아보고 면접을 보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본 근영 샘께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안 된다고 하시면서 나를 말렸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이 연구실에서 공부한 걸로 학원에서 써먹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그렇게 연구실 외부에서 활동을 한다면 연구실의 활동에선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라고 진심으로 충고해주셨다. 사실 내가 학원 알바를 할려고 했던 이유에는 활동보조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조차 통하지 않은 뇌병변 장애을 가진 장애인을 만났을 때 신변처리 및, 목욕 등 여러 신체적인 지원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감도 못 잡겠고, 또 휠체어을 탄 장애인 옆에 서있는 나 자신이 있기 싫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이래 저래 활보를 피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활보를 하는 것이 나에게 공부가 될 것이라고. 여러 선생님들이 그렇게 나에게 얘기해주셨던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활보를 하기로 마음 먹고, 이내 활보를 시작했다. 한 지 2달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활보는 공부가 될까라는 말에 나는 확실히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부가 되는 지점은 의사소통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활보를 하겠다고 마음을 내자마자 자리가 들어왔다. 준영이가 활보 일을 그만둔다고 하는 것을 내가 대신 하게 되었다. 교육도 받지 않은 채 바로 실전에 투입된 셈. 막상 일을 해보니, 신변처리, 이동할 때의 부끄러움 같은 지점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용자를 들고, 움직이고 하는 일 또한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안 무겁던데?)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의사소통이었다.
뇌병변 1급 장애였던 이용자는 말이 어눌하고, 또 발음이 부정확했다. 그리고 신체 반응이 느렸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말하는 끝까지 처음 들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준영이는 2주만 있으면 다 알아 들으면 된다고 했지만 당시에 이용자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옷을 입거나, 어떤 음식을 먹을지에 대한 의사표현은 어느 정도 익히게 되었지만, 이용자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동시나, 업무보조를 할 때는 여러 요구 표현에 대해서는 쉽지 않았다. 특히 나에게 이용자분이 농담을 던졌을 때 그걸 이해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뭐라고요?”라고 말하고 이해할 때 ‘뭐야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라며 웃을 타이밍을 잃어버려 머쓱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이용자는 말을 하려면 온 몸의 근육을 위축시키면서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을 할 때 ‘지금 나에게 화가 난 건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속이 불편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을 한 지 한 달 정도가 되었던 때 이제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어서 굳이 이용자가 말을 하기 전에 일을 하려고 했을 땐 어김 없이 손을 뻗치면서 이용자가 뭐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무슨 뜻인지 여러 번 되물어도 계속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10 분 넘게 지하철 역사 안에서 있었는데, 결국 이용자가 원했던 것이 처음에 내가 하려고 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렸을 적 별로 말을 잘하지 못해서 내가 말을 하기 전에 누군가 이미 그 뜻을 알아 들어서 말없이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도 무슨 말을 떠올릴 때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서 “뭐시기냐, 그거 있잖아, 그거”라고하기도 하고, 어떤 일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 생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열려있지 않은 신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활보를 하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즉 내가 이용자의 말이나,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만 있다면 좀 더 내 생각을 잘 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정확한 말을 하지 않아도, 이용자의 감정은 그대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내가 ‘뭐라는 거야’라면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 뿐이다.
신체성을 열어랏!
두 번째 이용자를 만나고부터 이런 생각이 더 확신이 들었다. 시간 조정 문제 때문에 그만 두고 난 뒤 바로 다른 이용자를 구했다. (준오형의 말이 떠오른다. 활보계에서 젊은 남자는 귀해~) 집에서 직장을 다니던 첫 번째 이용자와는 달리 두 번째 이용자는 장애자들의 공동 주거 공간에 있다. 첫 번째 이용자와 마찬가지로 뇌병변 1급 장애로 혼자서는 거의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의사소통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언어 활동이 불가능하다. 간단한 단어도 발음하기 쉽지 않아서 손짓, 눈짓으로 모든 일을 맞추어야 한다. 이제 한지 만난지 비록 2번 뿐이지만 첫 번째 이용자보다 마음적 부담감이 덜했다. 말이 없으니 그 사람의 손짓, 몸짓에 항시 주의를 요했기 때문에 더 이용자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이용자는 아직 한글을 제대로 독해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이용자와 일상을 꾸릴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 이용자는 손짓, 눈짓으로 충분히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다. 문자를 보내야 할 땐 내가 여러 내용과 말투를 얘기하고 무엇이 좋을지 선택하면 됐다. 무엇보다 주위 사람이 여러 주제에 말을 하면 웃음과 손짓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 이용자는 말이 아닌 신체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 표정이나 말투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다. 수많은 선생님들이 나에게 했던 말 “제말 귀좀 열고 살아!”. 이 말이 내 신체를 열라는 소리라는 것을 이제야 활보를 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두 명의 이용자을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말하지 않아도 일상 꾸려나가는 이용자를 보면서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도 곧바로 어떤 기분을 포착해서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신체를 구성하는 것이 활보를 하면서 목표가 되었다. 좀비 신체는 그만! 이제 활동 신체로 변신할 때이다.
강병철(남산 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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